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569
568화 660리의 치수(治水)! 여포의 대역사(大役事)! (1)
————– 568/753 ————–
그냥 단순한 헛구역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저고는 흉노 사람이니 호병 같은 음식에 익숙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여포는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 같았다. 그의 낯빛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일 났네! 일 났어!’
여포는 가슴이 철렁 했다. 저고가 헛구역질을 하는 이유가 자신도 모르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고, 너 설마······?”
차마 아이를 가졌냐는 말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포가 못 다한 말이 무엇인지 저고도 알아차렸다. 그녀는 대답 대신 멋쩍은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녀의 미소에 여포는 더욱 궁지에 몰리는 기분이었다. 이미 정처인 초선이 있었다. 그런데 저고와 사통해 아이까지 생겼다고 하니 남부끄러운 일이었다.
“내 애란 말이냐?”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일까? 굳이 해서 득 될 게 아닌 말을 하고 말았다. 충분히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얘기다. 하지만 저고에겐 해당사항이 없는 듯했다.
“너 말고 또 누가 있단 말이냐? 역시 내가 선택한 사내답다. 한방에······.”
저고는 수고했다는 듯 여포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더 가관이다.
“너는 내가 책임지겠다. 아이를 가졌다고 버리지 않겠다 이 말이다. 너는 운이 좋은 줄 알거라. 본왕은 사내들을 많이 거느릴 생각이 없으니까.”
“책임은 지겠다. 하나 나는 이미 정처가 있어 나와 혼인해도 측실이 될 뿐이다. 그런 굴욕은 주고 싶지 않구나.”
“한인이 혼인을 하는 방식 따위는 상관없다. 고석흉노부에서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으니까. 다만 마음이 맞는 동안에 함께 할 뿐. 그리고 딸을 낳으면 여 씨가 아니라 연제 씨다. 아들을 낳으면 쓸모가 없으니 여 씨 성을 이어받게 해주겠다.”
“아들이든 딸이든 내 자식이니 반드시 책임질 것이다. 단, 당장은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마라. 대신 치수가 끝나면 혼례를 올릴 수 있도록 초선에게 서신을 보내 놓겠다.”
여포는 말을 하면서도 걱정이 태산 같았다. 초선에게 이 일을 어찌 알려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지금은 치수에 집중할 때였다. 개인의 일은 잠시 뒤로 밀어두어야만 했다.
* * *
걱정으로 가득했던 식사시간이 끝났다. 여포는 걱정을 떨쳐내려 다시금 일에 집중했다.
여포는 힘자랑을 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무거운 것을 들어 몸을 힘들게 하고자 했다. 그러면 걱정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 테니까.
장정 몇 명이 들러붙어야 간신히 들 수 있을 바위를 홀로 짊어지고 옮기기 시작했다.
쿵!
여포는 물가에 바위를 내려놓고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오오! 장군, 천생 신력을 타고 나셨습니다.”
“어찌 이렇게 큰 돌을 혼자서 들 수가 있단 말입니까?”
하내의 일꾼들은 이제 스스럼없이 여포에게 말을 걸 정도가 되었다. 그들은 여포의 신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이들의 관심은 여포에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
“우와! 저기 봐라!”
일꾼 하나가 연신 손가락질을 하자 여포 주위로 몰려든 일꾼들이 시선을 옮겼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고순이 있었다. 그는 여포가 들었던 것보다 더 큰 바위를 들고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사람이 아니다!”
“여 장군보다 더 큰 돌을 들었다!”
고순이야 힘으로는 여포 휘하에서 당할 자가 없는 자가 아닌가. 여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여포는 고순에게 묘한 경쟁심이 생겼다.
“저 정도야 공깃돌이지.”
여포는 소매를 걷어붙이고는 고순보다 더 큰 돌을 번쩍 들어 옮겼다.
“우와! 크다! 크다!”
근방의 일꾼들은 일손을 멈추고 여포에게 시선을 모았다.
고순 역시 여포의 힘이 대단하다 여겼다. 하지만 그는 아직 여력이 있었다.
쿵!
여포가 바위를 옮겨 내려놓자 이를 지켜보던 일꾼들이 박수를 쳐댔다. 하지만 고순이 다시 나서자 박수소리도 잦아들었다.
고순은 여포를 주인으로 모시는 자였으나 힘으로는 지고 싶지가 않았다.
“주군, 소장이 더 큰 돌을 들어 옮겨 보이겠습니다.”
“오냐! 어디 한 번 해보거라!”
“으라아아차아!”
고순이 기합을 지르며 든 바위는 여포가 옮긴 돌보다 더 컸다.
“더 크다! 더 커!”
일꾼들은 입을 쩍 벌리고 좀처럼 다물지를 못했다.
고순의 힘자랑은 다시 여포의 호승심에 불을 질렀다. 물론 사내들 간의 원초적인 힘대결이긴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여포는 급박한 일정 탓에 지칠대로 지친 일꾼들과 함께 일하며 고난도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그래도 윗사람인데 아랫사람이 든 것보다는 더 큰 걸 들어줘야지. 그래야 본이 되지.’
여포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고순이 든 바위보다 더 큰 것을 찾기 위해서였다.
마침 적당한 바위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여포는 웃옷을 벗어던졌다. 몸 곳곳이 흉터로 가득해 온전한 살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흉터보다는 성난 근육이 구경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금껏 여포와 고순이 옮긴 바위들도 사람이 옮길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크고 무거운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여포가 들려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여포가 바위를 붙잡자마자 저고가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흙부대를 패대기치고는 황급히 달려왔다.
“허리! 허리! 허리! 사내는 자고로 허리가 생명이다! 나무토막마냥 드러누워만 있으면 사내를 품는 재미가 없지 않느냐?”
저고는 여포의 허리를 붙잡고 바위에서 떼어내려 했다. 그러자 고순은 슬쩍 모른 척 자리를 떠버렸다.
* * *
구경꾼들도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더 구경할 게 없어졌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저고는 내팽개쳤던 흙부대를 다시 짊어졌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몇 걸음 옮기지 못하고 돌연 휘청였다.
여포는 그녀가 짊어진 흙부대를 받아 내려놓았다.
“아무리 번왕이라고 해도 명색이 흉노의 왕인데 이런 일을 해도 되나?”
여포는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이런 고된 일을 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속마음을 그대로 내놓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
지금도 흉노 번왕제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했다. 그래도 명색이 왕이니 허드렛일은 하지 않을 거라 여겼다.
물론 고석왕은 여타의 번왕들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저고는 여포에게 마음이 있다보니 뭐라도 함께 하고 싶었으리라.
“너도 한조에선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관직에 있다면서 바위를 나르고 있지 않느냐?”
저고 역시 속마음과는 달리 따지듯 말해버리고 말았다. 하기야 고석 여인이 사내를 대하는 것은 이런 것이 유행이었다.
‘사내라는 것들은 잘해주면 안 된단 말이지. 계속 잘해주다가 한 번 못해주면 어찌나 바가지를 긁어대는지······. 어쩌다 한 번씩 잘해줘야 그저 좋아가지고 정신을 못 차리거든.’
저고는 나름의 방식으로 여포와 정을 더해가려 했다.
“재물이 필요하면 말을 하지.”
여포는 저고가 재물이 필요해 일을 하고 있다고 여겼다. 하기야 누구든 일을 하면 품삯을 주기로 했으니까.
“흥! 그까짓 재물 따위야 원하면 빼앗으면 되는 것인데······.”
“그런데 왜 이런 일을 하느냐?”
“내 사내가 험한 일을 하는데 고석여인이 그 꼴을 보고만 있으랴?”
저고의 입장에서 사내는 그저 살림이나 하고 애나 봐야지 이런 험한 일을 하면 안 된다.
여포는 코웃음을 쳤다.
“흐흐흥! 언제부터 내가 네 사내가 되었더냐?”
“부끄러워하기는······.”
저고는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여포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는 돌아서는데 돌연 또 눈앞이 핑 돌았다. 여포는 그녀가 갑자기 몸을 휘청이며 쓰러지려하자 황급히 부축했다.
여포의 팔이 그녀의 허리를 휘감았다. 그는 초선과 떨어져 오랜 시간 독수공방해온 처지. 오랜만에 여인의 몸에 손이 닿자 짧은 순간이나마 음심이 동했다.
“대형! 다들 열심히 일하는데 지금 뭐하는 거요? 정도 종사 위월이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구려. 남녀가 유별한데 어찌 정처가 있으면서 다른 여인을······. 백주대낮에 끌어안고······.”
위월이 쫓아와서 또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자 여포는 열심히 항변했다.
“저고가 쓰러지려고 해서 부축을 해준 것이지. 네 녀석 말을 들으면 내가 아주 쳐 죽일 놈 같구나.”
“그저 계집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지. 서시랑 혼인해도 종이춘이랑 바람나는 것이 사내라지만······. 쯧쯧쯧! 이미 부인으로 얻어놓고는 또 다른 여인을 노리면 어쩌자는 거요? 아직도 병주 종마 노릇을 더 하고 싶은 게요?”
위월이 잔뜩 잔소리를 늘어놓자 여포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모습을 본 위월이 으름장을 놓았다.
“이, 정도 종사 위월을 핍박하면 후 다후에게 달려가 낱낱이 고해 기록으로 남기게 할 거요. 이미 말도 다 생각해 놓았소. 지 버릇 개 못 주고, 여색을 탐하여······.”
“알았다, 알았어.”
여포는 쥐었던 주먹을 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위월은 잔뜩 의기양양해 했다.
“대형, 언행을 조심하시오. 이, 위월이 언제든 지켜보고 있겠소.”
위월은 검지와 중지로 자신의 눈을 가리키고는 다시 여포를 향해 까딱였다. 여포는 한 시라도 빨리 위월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마침 적당한 곳이 보였다.
* * *
장도가 가후와 함께 죽간을 들고 치수 공정을 살피고 있었다. 여포는 그들을 향해 걸음을 바삐 옮겼다.
“장 대인! 장 대인!”
여포는 장도를 부르며 다가갔다.
“장군, 수고가 많소이다.”
“장 대인이야 말로 수고가 많소. 듣자하니 하루에 두 시진도 안 잔다고 하던데······. 그러다 몸이 상하오.”
“생각보다 일의 진척이 많이 더디니 마음 편히 잠을 청할 수가 없소. 이제 곧 우기가 시작될 터인데······.”
“둑을 쌓는 일은 대충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으니 너무 걱정 마오.”
하지만 장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폭을 더 늘려야만 하오.”
“에이! 이 정도면 되었지 더 얼마나 늘린단 말이오?”
서로의 의견이 엇갈렸다. 그러자 가후는 장도의 편을 들고 나섰다.
“장군, 결코 물의 힘을 얕보셔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자연 앞에서 한 없이 무력할 뿐이니까요.”
“하지만 현실과 타협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하오. 이제 곧 우기가 시작된다하니 시간이 없소. 주야로 일을 계속 하겠지만 장 대인이 원하는 만큼은 하지 못할 거요.”
가후의 말도, 여포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장도는 조금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제아무리 큰 둑도 작은 구멍 하나에 무너지고 마는 법이오. 이번 치수의 성패에 수십, 수백만의 백성들이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소. 어찌 허술하게 일을 하리까?”
“현실적인 면을 고려해야 한다 이 말이지 치수 공사를 허술하게 하자는 얘기가 아니잖소.”
“백성들을 더 동원합시다.”
장도는 하내 백성들에게 노역을 부과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여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인근의 장정들을 모조리 데려와 일을 시키고 있소. 품삯을 준다지만 다들 지칠대로 지쳐 있단 말이오.”
“그럼 포로들의 쉬는 시간, 식사 시간, 자는 시간을 모두 줄이십시다.”
이번에는 포로들의 휴식시간까지 줄이자는 방안을 들고 나왔다. 그러자 가후가 우려를 표했다.
“그리하면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가후는 포로들에게 노역을 가중시킨다면 폭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포가 장도의 편을 들었다.
“까짓 거 합시다. 그놈들이 지은 죄를 생각하면 목숨을 부지하게 해주는 것만 해도 잘해주는 거요. 떼지어 몰려다니며 사람을 죽이고, 약탈을 자행했던 자들이 아니오?”
여포의 논리는 간단했다. 포로들은 백파의 무리로 그간 천하를 어지럽혀 왔으니 속죄의 의미로 치수 공사에 전념을 다하라는 것이다.
3만이나 되는 포로들을 모조리 처형하는 것은 명백한 도살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속량금을 받을 수도 없으니 몸으로 때우라는 얘기다.
가후는 여포가 너무 강경책으로 치우치는 듯하여 나름 꾀를 내었다.
“장군, 그러면 이렇게 하시지요. 포로들을 백 명 단위로 묶어서 일을 할당하는 겁니다.”
“못 하면 본보기로 한 놈씩 처형을 해버리는 거요?”
여포는 자기가 말해놓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후문이 이 말을 들었다면 또 기록을 하려 들 테니까.
“벌이 있으면 반대로 반드시 포상이 있어야 하는 법. 그들에게도 상을 약속하십시오. 우선 가능한한 많은 일을 나누어주는 겁니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 안에 해내면 형기를 줄여주는 거죠.”
“에이! 그놈들은 나쁜 짓을 할 때에만 신명이 나는 놈들이오. 짐승이지, 짐승. 일이 힘들면 차라리 채찍질을 당하는 쪽을 택할 거요. 어차피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면서 말이지.”
“같은 양의 일을 돈을 주고 쓰는 일꾼들에게 시키십시오. 약속한 시간 안에 해내면 돈을 배로 주겠다고 하십시오.”
여포는 그제야 가후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포로들에게는 형기를 걸고, 일꾼들은 두 배의 재물을 약속해 두 집단을 경쟁시키겠다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상대보다 더 빨리하면 된다는 간단한 조건을 걸고······.
가후가 말하는 ‘약속한 시간’이란 상대집단이 일을 끝내기 전이 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자면 반드시 상대집단보다 더 빨리 일을 끝내야 하는 것이니 승자와 패자를 반드시 가르는 처절한 승부가 될 터였다.
“선생의 귀계는 역시······.”
“귀계는 독해야 제 맛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