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583
582화 도리불언(桃李不言) 하자성혜(下自成蹊)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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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현 땅이 내려다보이는 중조산 중턱.
관우의 유골을 매장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여포는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냈다. 이를 펼쳐들고 읽으려했으나 내심 배알이 꼴려 서황에게 넘겼다.
그러자 서황은 여포에게서 두루마리를 받아 읽었다. 두루마리에 쓰인 글은 관우를 위한 제문(祭文)이었다.
하기야 관우를 위한 제문을 어찌 여포가 읽을 수 있겠는가. 관우의 빈소를 지켰던 것도 결국은 죽은 관우를 이용해 하동의 민심을 얻으려는 방편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풍 가 ‘현’은 하동에서 태어났으나 타향에서 죽었도다. 이에 열흘 동안 그 혼백이 오길 기다렸으니 망자에게 고하노라.”
서황은 제문의 서문을 읽은 후 상주 풍평에게 말했다.
“상주는 망자의 유골을 안장하시오.”
풍평은 관우의 유골이 담긴 단지를 묘혈에 내려놓았다. 풍평이 묘혈에서 올라오자 기다리던 자들이 흙으로 묘혈을 재빨리 메웠다.
그 사이 서황도 다시 제문을 읽었다.
“망자의 혼백은 하늘로 올라가고, 육신은 땅으로 돌아갈지어다. 풍 가 ‘현’은 하동에서 태어나 하동 백성들을 위해 큰일을 행하였으니 마땅히 하동 땅에 묻힐 자격이 있도다. 그러니 원혼이 되어 구천을 떠돌지 말라.”
서황은 제문을 다 읽는 동안 계속해서 여포에게 시선을 보냈다. 자신이 제문은 읽어줄 수는 있어도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일은 여포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여포는 내심 짜증이 났지만 이 일이 왜 필요한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나섰다.
“풍 가 ‘현’은 의리(義理)를 좇아 협(俠)을 행하는데 일생을 바친 유협 중의 유협이다. 이에 나, 여포 봉선은 이곳 중조산에 망자를 위한 비석을 세워 하동과 천하의 백성들이 그 이름을 기억하게 할 것이니라!”
여포가 유비의 의제인 관우를 위해 비석을 세워준다는 것은 얼핏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일이 필요한 까닭은 바로 여론 때문이다.
빈소를 지키던 지난 열흘 내내 서황은 여포의 곁에서 그를 설득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 마음이 없더라도 풍현을 하동의 영웅으로 만드십시오. 하동 백성들의 자존심을 세워주면 그들은 장군에 대한 의리를 다할 것입니다.
여포는 서황의 말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자신의 고향인 병주에서는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라 생존이 문제였다. 북적들의 침탈을 막아주기만 한다면 누구라도 좋다는 풍조가 있었다.
반대로 하동은 자존심을 세워주기만 한다면 백성들은 그를 지지할 것이다. 관우가 일천이 넘는 생목숨을 끊어버렸지만 하동 백성들은 그를 의인으로 여겼다.
여포는 서황에게 떠밀린 것이기는 했으나 어쨌든 관우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이는 하동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계기가 되었으나 그 뿐만은 아니었다.
여포를 바라보는 장비의 눈빛이 달라졌다.
‘유비, 그놈은 말로만 위해주는 놈이었다. 결의형제라는 놈이 의리도 지키지 않았고, 예도 모르고, 도리도 몰랐다. 그런데 여포는 다르다.’
장비는 여포와 적으로 만났다. 비록 만남은 좋지 않았으나 하동에서 다시 만난 여포는 실로 존경할 만한 인물이었다.
적이었던 관우의 장례를 후히 치러주었다. 게다가 관우의 명예를 회복시켜 하동의 영웅으로 만들어 주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유비놈이 아니라 여포를 먼저 만났다면······. 참으로 아쉽구나.’
장비는 여포와 먼저 만났으면 지금의 처지에 이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그 일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 * *
장례가 모두 끝나고 중조산에서 내려오는 길. 서황이 장비와 나란히 걸으며 물었다.
“장 장군은 그래, 마음의 결정은 하셨소?”
하지만 장비는 묵묵부답이다. 그래서 서황은 다시 한 번 장비를 재촉했다.
“여 장군과 같은 주인은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오. 그리고 그런 주인을 모실 수 있는 기회 또한 흔한 것이 아니지.”
“이 기회를 놓치면 더는 기회가 없을 거라는 얘기요?”
“솔직히 그렇소. 잘 생각해보시오. 보는 눈은 다 같소. 영웅호걸이라 한다면 여 장군께서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를 쉽게 알 수 있을 테지.”
장비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서황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장비가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은 은연중에 여포를 인정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열흘 간 나도 많이 생각했소. 생각하고 또 생각했소. 내가 여 장군 휘하에 든다면 어떨까? 아니야. 차라리 산중대왕 노릇을 한다면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를 듣지 않고 한 평생 세월이나 죽이며 잘 살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장부로 태어나 태사록에 그 이름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어떤 결론이 나왔소?”
“나는 아직 젊소. 남은 세월이 많지. 다시 한 번 일어설 기회가 있다면 일어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소. 다만······.”
장비가 이런 말을 할 때에는 이미 여포에게로 마음이 기울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말끝을 흐린 것은 분명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리라.
서황은 장비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여 장군 휘하에 맹장이 즐비하니 중용되지 못할 것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내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나오셨소?”
서황은 빙그레 미소지었다.
하기야 여포 휘하에 종사하고 싶은 무장들은 아마 장비와 같은 고민을 하는 자들이 적지 않을 터. 서황 같은 장수는 이를 이해할 수 없겠지만 알고는 있었다.
여포 휘하에서 맹장 소리를 들으려면 그 기준은 역시 팔건장이다.
하지만 팔건장의 막내인 조운마저도 안량을 꺾은 실력자가 아닌가. 웬만한 실력으로는 팔건장은 커녕 장수자리 하나 얻기도 힘든 것이 작금의 여포군이었다.
물론 현사들의 사정 또한 마찬가지.
여포군은 어떻게 보면 인재들에게 자신의 한계를 절감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장수만 일천이 넘고, 36가의 병법자들이 득실거리는 관동군에 투신하더라도 여포군에서 만큼의 절망은 느끼지 않을 지도 모른다.
“장 장군, 이 몸은 말이오. 구병은 아니지만 여 장군이 하찮은 자리에 있을 때부터 휘하에 있던 사람이오. 지금 여 장군 휘하에 있는 수많은 맹장과 현사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지.”
서황은 그리 말하고는 장비를 위 아래로 훑었다. 그럴수록 장비는 위축되는 심정이었다.
따지고 보면 장비가 못 쓸 사람은 아니다.
천하에 크게 이름난 가문은 아니나 탁군에서는 그래도 열국의 시절부터 기원한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이다. 그 스스로가 경서와 병서를 탐독했으며 시서예화에 두루 능했다.
기골이 장대하고 그 인물이 미장부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니 기품이 서려있다 할 것이다.
무예로 따져도 기마술은 말할 것도 없고, 신력을 타고났으며, 사모의 달인이 아닌가.
하지만 문제는 기가 너무 꺾여 있다는 점이었다.
* * *
“이, 서 공명이 말이오. 한 때는 천하에서 내 적수가 없다고 여겼소. 사실 여 장군 휘하의 팔건장 대부분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자들이지. 하지만 여 장군이라는 큰 벽을 만났소. 그리고 좌절했소.”
서황의 말에 장비는 그렇겠거니 생각했다. 장비 스스로도 유비와 관우를 만나 박살나기 전에는 천하에 자신의 적수가 없을 거라 여겼었으니까.
“그런데 말이오. 지금은 좌절했던 기억 같은 것은 생각도 나지 않소. 이따금 처음 여 장군을 만나 얻어맞은 곳이 아파오긴 하지만······.”
“여 장군은 수하들을 매질하지 않소?”
장비의 걱정은 이것이었다. 하기야 허구한 날 유비에게 얻어터졌던 장비로서는 그 걱정이 안 될 수 없었으리라.
“에이! 여 장군은 그런 사람이 아니올시다. 매질이라니······. 당치도 않소.”
“그래도 군기를 세우자면······.”
“여 장군은 그런 방법은 쓰지 않으시오.”
장비는 서황의 말을 쉬이 믿지 않았다.
“여 장군의 군대는 강병 중의 강병이라 들었소. 엄정한 군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오.”
“가끔 꿀밤을 맞는 녀석들이 있지만······.”
장비는 여포에게 머리를 쥐어박히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지 못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 매질로 강병을 만들 수 있다고는 믿지 않소. 장졸들이 꼭 매질을 해야 말을 듣는다면 그들이 축생이거나 아니면 총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겠소?”
“매질을 하지 않고도 엄정한 군기를 세운다? 그게 대체 가능한 일이오?”
“위로는 군사와 팔건장부터 아래로는 하찮은 졸병에 이르기까지 스스럼없이 여 장군과 얘기를 나눌 수 있소.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지는 않을 거요.”
서황은 장비의 옷깃을 살짝 붙잡아 걸음을 늦추게 했다.
이내 뒤로 약간 떨어져 걷고 있던 여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서황은 장비에게 확실히 확인시켜줄 요량으로 여포에게 물었다.
“장군.”
“서 공명이, 내게 할 말이 있더냐?”
“장군, 총사는 장졸들에게 어떤 존재여야 합니까?”
“뜬금없이 그런 건 왜 물어보느냐?”
여포는 서황이 뭘 잘못 먹었냐는 듯 바라보았다. 그러자 서황은 여포를 재촉했다.
“소장도 이제 하동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있으니 총사로서의 마음가짐을 배우려 합니다. 장군을 본받으려 하니 한 수 가르침을 주십시오.”
서황이 여포를 한껏 추켜세웠다. 그러자 여포는 아이처럼 들떠서는 떠들어댔다.
“서 공명이, 총사는 말이다. 평시와 전시의 모습이 달라야 한다.”
“어떻게 달라야 합니까?”
“평시에는 편안한 형님 같아야 한다.”
“어찌 그렇습니까?”
서황도 그렇지만 장비 역시 여포가 무슨 말을 할까 귀를 쫑긋 세웠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누구든 총사에게 말을 해야 총사가 알고 고칠 것이 아니냐? 흠흠!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고, 언로가 막힌 군주는 혼군이 되는 법.”
여포는 자신이 말해도 멋지다는 듯 어깨가 으쓱해졌다. 하기야 여포의 머리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말이기는 했다.
“그러면 전시에는 어떤 존재여야 하오?”
서황 대신 장비가 끼어들어 물었다. 그러자 여포는 조금도 막힘없이 대답했다.
“힘이든 수하의 지모로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적의 군략을 깨고, 빗발치는 화살비를 뚫고 달려가 위험에 처한 수하들을 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전시의 총사다.”
“군을 지휘 통솔해야 할 총사가 전방에서 적과 싸운다고? 현실적이지 못하오. 그런 총사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이오?”
“여기 있지. 총사는 언제든 선봉에 서서 싸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뒷짐이나 지고 헛소리나 해대는 것이 총사는 무슨 총사?”
“지휘는 누가 하오?”
“지휘는 감군이 하지. 나보다 낫거든. 군략은 군사가 내고, 지휘는 감군이 하고, 싸움은 내가 하는 것이 최선이다.”
여포는 시간을 거슬러 돌아오며 몇 가지를 크게 깨우쳤다. 그 중 하나는 총사로서의 역할이었다.
예전의 삶에서 여포는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수하들은 엄히 대했다. 스스로가 음주가무를 즐겼으나 수하들에게는 금주령을 내렸을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자신이 술을 끊을 생각이 없으니 수하들에게 금주령을 내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군략은 글을 읽지 못하니 병서를 읽을 수 없었고, 지휘는 기병을 부리는 것 말고는 엉망이었다.
그럼에도 진궁의 계책을 거듭 물리치고 제 맘대로 하다가 결국 백문루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때의 일을 교훈으로 삼아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여포의 대답에 장비는 얼척이 없었다. 여포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자신의 상식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 가관인 것은 이어진 여포의 말이었다.
“흐흐흐! 우리 군에서 총사는 오직 돌파를 위해서 있는 자리다. 일점돌파!”
여포는 그리 말하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아! 너무 오래 쉬었단 말이지. 누구든 전서(戰書)를 보내오면 지겨울 때까지 일점돌파를 해야겠다.”
여포는 돌연 주위를 곁눈질했다. 그리고는 서황을 향해 자신의 입에 검지를 세워보였다.
“가 선생한테는 일점돌파 얘기는 하지 말거라. 장수들이 나쁜 본을 받는다고 타박이······ 타박이······ 말로 다 못할 정도다.”
여포의 얘기가 끝나자 서황은 장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떻소? 들으셨소? 우리 여 장군께서 이런 분이시오. 장 장군도 경학을 익힌 몸이라 들었소. 그러니 우리 여 장군이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을 몸소 실천하고 계심을 알 것이오.”
기소불욕(己所不欲) 물시어인(勿施於人).
논어 위령공 편에 나오는 말로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의미다. 논어는 사인들에게 있어 경전인 만큼 사인들은 공자의 말씀을 행하는 자를 곧 군자로 여겼다.
장비 역시 사인가문 출신으로 경학을 익힌 자이니 서황의 말을 듣고 여포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유비나 운장 형님은 경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 나와는 결국 길이 다른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여포가 열어주는 길이 내가 가야할 길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