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635
634화 형제의 정의(定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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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사가 당했다는 것은 곧 패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도적의 무리가 아니라면 투항하는 적을 쉽게 죽이지는 않는다. 강제로 징집된 자도 있을 것이고, 마음을 돌려 귀부한다면 다른 자의 휘하에서도 싸울 수 있다.
어떤 특별한 신념이 없는 이상 난세에선 당연한 일.
하지만 조청룡군의 경우는 좀 애매했다. 확실한 것은 이대로 여포가 조청룡군 잔병들을 놓아준다고 해도 황보숭에게 가봤자 중용될 리는 없다는 것이다.
조청룡이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설묘에게 자신이 당하면 투항하라 했던 것도 이를 잘 알기 때문이다.
“싸움이 끝났다! 관서군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위월과 장합이 말을 몰고 달리며 이같이 소리쳤다. 그러자 서하병들은 아직 무기를 들고 저항하는 자들과 거리를 벌리며 대치하기만 했다.
그들도 이 싸움을 이쯤에서 끝내고 싶었으리라.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삼로의 필두가 누구였던가를 생각한다면 적병이 일천 남짓 살아남은 것이 도리어 기적이라 할 만 했다.
싸움이 끝나던 시점부터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여전히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 끼여 있었지만 잠깐 동안은 참아 주리라 여겨졌다.
조청룡을 비롯해 장수들이 끌려 나와 무릎 꿇려졌다. 군대의 사기를 생각하면 이 자리에서 장수들의 수급은 끊어 내야함이 마땅했다. 그리고 다들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위월은 조청룡이 아직 살아있는 게 불만이었다.
“적장을 안 죽이고 살려 두면 어쩌자는 거요? 대형, 당장 베어 버립시다. 시간 끌지 마오.”
여포는 위월의 말을 깡그리 무시한 채 조청룡의 앞에 섰다. 그는 다시 조청룡을 회유하려 들었다.
“사문의 정리를 보아서라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없겠느냐?”
조청룡의 답은 한결 같았다.
“목숨을 버릴지언정 한번 섬긴 주군을 바꿀 수는 없다.”
조청룡이 회유를 거절할 것을 알았기에 위월은 더욱 화가 났다.
“대형, 장졸들의 사기도 생각을 좀 해 주오.”
사기를 생각한다면 이 자리에서 적의 장수들을 모두 목 베는 것이 옳았다. 또한 그리 하면 투항한 자들도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체념할 거라 여겼다.
“죽여라!”
조청룡은 여포가 회유를 권하는 것이 자신을 욕보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목을 쭉 빼며 도발까지 감행했다.
그러자 위월이 대도를 들고 나서서 그를 목 베려 했다.
“오냐! 죽기가 그리 소원이라면 그 소원 들어주마.”
하지만 위월의 대도는 여포의 화극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이에 위월은 씩씩거리며 불만을 쏟아냈다.
“내 당최 대형이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소. 그렇게 정에 연연해서야 어찌 대업을 이룰 수 있단 말이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곽가와 장합은 여포와 위월 사이에 섰다.
“위 장군, 장졸들이 보고 있습니다.”
곽가가 부드럽게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가후였다면 몰라도 곽가로서는 위월을 견제할 수 없었다.
“곽 선생, 내 말 좀 들어 보시오. 대형이 왜 적장의 목을 못 치게 하는 줄 아시오? 적장이 상산 창술을 쓰기 때문이라오.”
“상산 창술?”
“조자룡이 가문의 창술 말이오.”
“그러면 적장이 상산 조 부 출신이란 말입니까?”
이번에는 여포가 항변했다.
“조 부의 비전식까지 익힌 자다. 분명 조완 대인과 관계가 있을 터. 조 대인과 가까운 자를 참한다면 내 훗날 조 대인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다.”
“흥! 대형이 상산 조 부에 도움을 줬으면 줬지 받은 거 있소? 그렇다고 조 대인에게 여식이 있어 혼연을 맺을 것도 아니고, 안 그렇소?”
위월의 말대로 여포는 조 부에 큰 은혜를 베푼 은인 중의 은인이다. 여포가 아니었다면 공손찬이나 원소에게 구걸하듯 제자들을 출사시킬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이제 상산 조 부가 여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조완의 차남인 조운은 팔건장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안량을 꺾은 일로 상산 창술의 명성은 천하에 이름 높은 창술들을 제치고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 일로 상산 창술의 전인이 되겠다며 찾아온 자들 때문에 문지방이 남아나질 않을 정도가 되었다.
이런 것을 생각한다면 상산 조 부의 사람들은 여포의 은혜를 대대손손 갚아야 할 터였다.
장합 역시 위월을 두둔하고 나섰다.
“소장의 생각도 위월 형과 같습니다. 어차피 출사를 하면 주인을 따라야 하는 것. 사문의 정리는 그보다 중할 수 없습니다.”
이에 여포는 곽가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의 도움이 필요한 때였다. 하지만 곽가는 아직 가후만큼 깊이 있는 지모를 내지는 못했다. 다만 눈치는 있기에 여포의 편을 들었다.
“여 장군께서 까닭 없이 이러실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곽가는 그리 말하고선 여포에게 귓속말을 했다.
“장졸들이 보고 있습니다. 저들을 설득할 명분이 없다면 못 이기는 척 적장을 베십시오. 나머지는 소신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곽가의 말은 여포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여포는 속에 품어 두고 있던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가 선생이 그러더군. 충과 효는 병행할 수 없다고······.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너희들은 무엇을 선택하겠느냐?”
여포는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다. 쉽게 말하마. 위월아, 네 형 위속이 관서군에 있으면 어쩔 것이냐? 네가 없을 때 내가 적으로 위속이와 맞닥뜨렸다고 생각해 보아라. 그래도 시신만 온전히 보내 주랴?”
* * *
여포의 말에 위월의 머릿속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해 버리고 말았다. 이런 것은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던 일이다.
“내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다 만은 집안에서는 형제끼리 다투어도 집밖에서 형이나 동생이 수모를 당하면 형제로서 함께 힘을 모아 대항해야 한다 했다. 형제는 그런 것이다.”
여포는 자신이 할 말의 출전을 알지 못했다.
형제혁장(兄弟?牆) 외어기모(外禦其侮). 시경에 나오는 말로 형제의 본질을 정의한 것이다.
“대형은 내 형의 일까지도 염두해 두고 있었단 말이오?”
“내 품을 벗어났다고 해도 여전히 네 형이다. 내 화극에 네 형의 목이 떨어졌다고 생각해 보아라. 그 때도 네가 여전히 지금처럼 나를 따르겠느냐? 조자룡이도 마찬가지다. 이자는 상산 창술의 비전식을 알고 있었다. 족인이 아닌 다음에야 비전 절예를 전수했을 리 없다.”
“생각해보니 대형의 말이 옳소. 무조건 옳소. 난 사실 거기까지는 생각도 안하고 있었소. 형님이 집을 나간 후로 소식이 끊겼는데 별 걱정은 하지 않았소.”
“네 형의 용맹과 무예라면 내 휘하가 아니라도 손에서 칼을 놓을 리 없다. 관서로 왔다면 관서군의 휘하에 있을 것이고, 관동으로 갔다면 관동군의 장수로 있을지 모른다.”
여포는 제법 논리적인 추론을 보였다. 그러자 위월이 여포에게 무릎을 꿇었다.
“대형, 내가 잘못했소. 대형이 나를 이토록 깊이 생각해 주는 줄도 모르고, 그저 가진 것이 많아지니 마음이 물렁해졌다고만 여겼소.”
위월은 그리 말하고선 스스로 자신의 뺨을 쳤다. 이에 여포는 그의 손목을 붙잡아 일으켰다.
“그러지 마라.”
“아니오. 대형의 깊은 배려를 헤아리지도 못하는 내가 무슨 정도 종사의 자격이 있겠소?”
“나도 내가 너희들의 대형이 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말은 했지만 어찌 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숱한 목숨들을 끊어 놓은 내가 이런 말을 하니 스스로도 우습구나.”
여포는 스스로 생각해 봐도 앞뒤가 안 맞다고 여겼다. 하지만 사람 목숨에 어찌 경중이 없으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죽음과 친인의 죽음은 달리 받아들여지는 게 당연했다.
조청룡이 화통하게 웃었다.
“아하하하!”
여포와 장수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조청룡이 말했다.
“상산 조 부가 날 두 번씩이나 살려 주려는 모양이로다. 잘 듣거라. 나는 조완 대인의 혈육이 아니니 걱정 말고 베어라.”
“혈육도 아닌데 어찌 비기를 전수 받았을꼬?”
여포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자 조청룡은 답을 내주지 않으면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풍(風)! 운(雲)! 조(造)! 화(化)!”
“풍운조화(風雲造化)?”
여포가 되묻자 곽가가 끼어들었다.
“장군, 조완 대인의 장남이 풍이고, 차남이 조자룡 장군입니다. 그러니 아마도 조완 대인의 자식들에게 안배된 이름으로 여겨집니다.”
“저토록 현명한 군사가 있으니 농락당한 것이 억울하지만은 않구나. 그렇다. 나는 조 대인께 성과 이름을 받은 양자다.”
여포는 조완에게 양자가 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당대에 재물만 좀 모아도 양자를 들이는 일이 비일비재한 일이 아닌가. 하물며 예부터 이름 높은 조 부라면 양자를 들인 것이 문제 될 일은 없었다.
“풍과 운은 있으니 네 이름은 조와 화 중에서 하나일 터. 조조는 아니겠지?”
“내가 바로 조조(趙造)다.”
“내게는 조청룡이라 하지 않았느냐? 자(字)가 청룡이냐?”
여포의 말에 조청룡이 코웃음을 쳤다.
“흐흐흥! 내가 열두 살 먹은 어린 아이도 아닌데 자(字)에 용(龍)자를 넣을 리가 있겠느냐? 청룡은 내 도명이다.”
자는 관례를 치른 후에 가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어려서 부모를 잃거나 정말로 자신이 쓰기를 원하는 게 있다면 관례 전에도 쓸 수가 있다.
물론 명문 사인 가문에선 결단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상산 조 부는 무가였고, 조운은 어려서 가출을 했었다.
쉽게 말하자면 조운은 어린 나이에 멋대로 자신의 자를 지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의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자도 유치찬란하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었을 터.
하기야 스스로를 용이니 어쩌니 했다가 출세를 하지 못했다면 평생토록 밤마다 이불을 차야 할 것이다.
“도명?”
“관서로 와서 비적 노릇을 했는데 차마 조 대인께서 주신 이름을 쓸 수 없어 본명을 숨기고 도명을 썼다.”
“상산 창술이라 하면 하북제일창이라 불리는 것인데 어찌 비전을 전수받은 전인이 도적이 되었단 말이냐? 혹 조 대인이 다른 여인을 취해 얻은 자식은 아니냐?”
여포의 말은 조청룡이 조완의 혼외자가 아니냐 묻는 것이다.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으니 내 목을 친다고 해도 네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터.”
“친자도 아닌데 어찌 비전을 전수 받았을꼬?”
하지만 조청룡은 깊은 얘기를 들려주지 않았다. 그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여포가 곽가에게 말했다.
“곽 선생, 이럴 때는 어찌 해야겠소?”
“조 부의 비전식을 전수 받은 걸 보면 조 대인이 이자로 하여금 가문을 잇게 하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무가는 핏줄보다는 용맹과 무예를 잇는다 했습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깁니다.”
“그런 자를 내 손으로 베기도 그렇고······.”
“조 대인께 서신을 보내 처결을 물어보면 될 일입니다. 그리만 하면 조 부와의 관계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여포는 곽가가 내놓은 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장수들은 어찌하면 좋겠소?”
여포는 설묘를 비롯한 조청룡의 장수들에 관한 처결을 어찌 할지 물었다.
“적장을 베지 않는데 그 수하들을 벨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황보숭이 속량금을 내어 줄 리 만무하오.”
“하동으로 보내시지요. 노역이 필요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 삼 년 정도 노역을 시키고 후일 풀어 준다면 결코 과하지 않다 봅니다.”
“하긴 개똥밭에 굴러도 목이 달아나는 것보다는 낫지. 곽 선생이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하오.”
* * *
빈양 싸움의 뒷정리가 끝나자 여포는 다음 싸움을 서둘렀다.
“곽 선생, 이곳에서 남은 일을 처리하오. 나는 빈양으로 오는 구원병을 쳐야겠소. 위월, 장 준예.”
“대형, 기다리고 있었소. 어서 갑시다.”
“소장도 언제든 출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에 곽가가 여포에게 두 손을 모아들었다.
“장군, 어찌 소신은 빼놓으십니까? 먼 길이 아니니 소신도 데려가십시오.”
“이미 선생이 군략을 내놓았는데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가 있겠소? 게다가 하루에 끝날 싸움이 아니오.”
여포 역시 데려갈 수만 있다면 곽가를 데려가고 싶었다.
기병을 지휘해 상대를 공격하는 야전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병법이 더해진다면 당예기의 위력은 더욱 강해지리라.
하나 여포가 곽가를 두고 가려는 것은 그의 몸 상태 때문이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지만 아직 그 독성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매일 밤 순채와 운우지락을 나누어 오훼의 독성이 발작하는 것을 막아야만 했다.
“하루 이틀은 괜찮습니다.”
곽가는 여포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여포가 자신을 걱정해 주고 있음은 고마웠다.
하지만 사십 리 밖에서 벌어질 싸움에도 나서지 못한데서야 군사로서의 체면이 서질 않는 것이다.
“정말 괜찮겠소?”
“정말 이틀 정도는 문제없었습니다.”
“좋소. 같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