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760
759화 호된 신고식 (2) > >
최열을 구워삶는 일은 잘 진행되고 있었지만 성 밖의 전투는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안되는 군세로 하간왕의 대군을 맞아 잘 버티고는 있었으나 결국 버티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이대로 소모전을 계속한다면 성 밖의 싸움은 하간왕군의 승리로 돌아갈 게 뻔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좌우로 우회해 상산군의 후미를 치려던 하간왕군 기병들의 진격이 막혔다는 점이다.
좌군의 조풍과 풍운대가 크게 활약해 우군인 선우군까지 도와 기병들을 격퇴시켰다. 그 와중에 조풍이 적장 견상을 사로잡기까지 했다.
그 과정에서 다시 풍운대 고수 십여 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하나 문제는 중군의 싸움이었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조 청룡이 중군의 선봉에 섰으나 병력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집단전에서 상산 창술은 전혀 힘을 쓰지 못하는구나!’
조 청룡은 지금의 상황이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상산 창술을 익힌 자들로 선봉부대를 구성했지만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그것은 서로 간의 간격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휘두르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마음껏 휘둘렀다가는 곁에 있는 동료가 다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상산군의 창격은 찌르기 위주가 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많은 제약이 따랐다.
‘조 대인께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 지금은 내가 뭔가를 해야 해!’
조 청룡이 느끼는 압박감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조완의 양자일 뿐이지만 상산 창술에 대한 긍지는 조완의 친자들에 못지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대로라면 상산 창술의 명성은 땅바닥에 떨어질 판이었다.
‘결국 사진을 펼칠 수밖에 없는 건가?’
조 청룡이 생각해낸 해결책이란 진세의 변용이었다. 그 중에서도 ‘사진(蛇陣)’이다.
지금의 거마진은 대 기병전에 합당한 진세. 하나 하간왕군 철기는 한 번의 돌파 이후로 물러나고 보군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그러니 상산군도 달리 대응해야만 했다.
“나를 따르라! 사진으로 변용한다!”
조 청룡은 풍운대가 우군을 도우러 빠졌기에 좌측으로 말을 몰아 달려 나갔다. 그러자 그 뒤를 따라 병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후군이 아직 그 모양이니…….”
견초를 보낸 후에도 후방의 소란이 잦아들지 않자 하간왕은 잔뜩 독이 올랐다. 적 본대가 진세를 변용하는 이 때야 말로 승기를 완전히 거머쥘 호기 중의 호기.
여유만 있다면 후군을 움직여 치명타를 가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런데 후군의 발이 묶여 있으니 이 방법은 못 쓴다는 얘기다.
하간왕은 하는 수 없이 병력의 우위를 활용할 수 있는 대응책을 쓰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상대와 같은 진세로 변용하는 것이다.
“사진을 펼쳐라! 놈들보다 몇 배는 더 긴 장사진을 펼쳐서 집어삼켜라!”
하간왕의 명이 떨어지자 중군의 군세는 상산병의 움직임을 쫓아 장사진으로 변용을 시작했다. 이것이 패착. 상산 창술의 이점은 오히려 동료들과 떨어졌을 때 극대화 되는 것이 아닌가.
상산 창술의 전인들로 구성된 선봉 부대가 전열을 이탈하자 상산 일대의 의용병들이 그들의 빈자리를 채웠다.
“형제들, 조 청룡이가 뭔가를 해보려 하는 모양이니 중군은 우리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조완의 말에 노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싸우다 죽는 것이야 말로 무인의 숙명이 아니겠소?”
“사형, 명만 내리시오. 이, 양고가 앞장서리다.”
노고수들의 필두 자리를 다투는 부봉과 양고가 호기를 부렸다. 부봉은 부사의 조부이고, 양고는 풍운대 양위구의 아비. 대대로 상산 조 부와 함께 해온 무가의 자손들이었다.
하나 노구를 이끌고 싸움에 나서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 아닌가. 그런데 그들을 혈전에 앞세워야 하는 조완의 마음이 결코 편치는 않으리라.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니다. 최대한 적의 공세를 막아내어 시간을 끄는 것이 목적이니 함부로 목숨을 던지지 말라!”
조완은 신신당부를 하고서 자신도 직접 창을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 * *
“정병들이 측면으로 빠졌으니 놈들의 중앙이 허술하겠구나! 중군에 병력을 보강하라!”
하간왕은 조 청룡의 군세가 사진을 이루며 측면으로 빠져나가자 중앙이 허술해졌음을 직감했다. 약한 부분을 물고 늘어져 깨버리는 것이 병략의 기본이 아닌가. 수천을 상대로 수만 병력을 지닌 하간왕에게는 승리가 눈앞에 선했다.
하지만 전황은 그의 뜻대로 끌고 갈 수가 없었다.
“왕야! 후군이 밀리고 있습니다!”
“우군에서 지원을 청해왔습니다!”
“좌측면의 진세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보고와 원군을 청하는 전령들 때문에 하간왕은 삽시간에 머리가 띵했다.
후군에선 악진과 서막군이, 좌측으로는 풍운대와 선우군이, 우측으로는 조 청룡의 군세가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견초, 이놈은 대체 무얼 하는 놈이냐!”
성질을 부려보지만 그런다고 전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견초 장군, 동쪽으로 퇴각!”
“견가병, 동쪽으로 퇴각!”
“누구 마음대로 퇴각이란 말이냐!”
하간왕은 길길이 날뛰었다.
퇴각은 총사의 명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총사의 허락을 받지 못한 퇴각은 자칫 추후에 군령으로 참수를 당할 수도 있는 대죄인 것이다.
하간왕군 십만 군세 중에서 견가병이 가장 정병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인데 그 수장인 견상이 군세를 동쪽으로 물리는 것이다.
물론 이미 견상은 조풍에 의해 사로잡혀 포로 신세가 된지 오래다.
수장을 잃은 견가병들이 마음대로 동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맹장이라 여겼던 견초 역시 기병을 수백이나 이끌고 갔음에도 후방을 정리하지 못했다.
하간왕으로선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꼴이 된 것이다.
‘절반도 안 되는 군세에 밀려 내 수만 병마들이 포위를 당했다? 기가 차는구나!’
하간왕은 지금의 전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상식대로라면 승부의 향방은 진작 정해졌어야 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하간왕군은 사방에서 포위된 형국이었다.
‘소모전을 지속해서 적병들을 모조리 황천길로 보내야 하는가?’
하간왕은 마지막 한 사람이 쓰러질 때까지 소모전을 계속한다면 병력의 우위를 점한 아군이 유리하다 여겼다.
그러나 천하를 목표로 땅을 넓혀 나가려면 지금 같은 싸움은 계속해서 있을 터. 그 때마다 이렇게 병마를 잃는다면 기주를 벗어나는 것도 불가능할 게 뻔했다.
“왕야, 고정하십시오. 이럴 때일수록 보다 냉철하게 전황을 판단하셔야 합니다.”
유자혜가 제법 그럴듯한 말로 하간왕 유건을 진정시키려 했다. 그러자 하간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고작 이 정도 일이 이, 하간왕 유건에게 고난이 될 수는 없다.”
하간왕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전황을 살폈다. 타개책을 찾기 위해서는 유자혜의 말처럼 냉정한 판단이 필요했다.
‘당장은 좌우와 후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버티는 것이 내 목표는 아닐 터. 결국 가장 약한 곳을 쳐서 이, 지루한 싸움을 끝내리라!’
하간왕의 시선이 머문 곳은 정면의 적들이었다. 역시나 선봉군이 빠져나간 자리는 컸다. 다른 곳들과는 달리 오직 그곳만은 하간왕군이 승세였다.
“나를 따르라! 총 공격이다!”
* * *
하간왕은 직접 칼을 뽑아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호사들이 한 덩어리를 이루며 나아가자 하간왕군의 주력이 정면으로 집중되었다.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전선이 다시금 변하기 시작했다.
주력군이 전방으로 집중되자 상산군 총사 조완은 결전을 각오했다.
“북을 울려라! 가죽이 터질 듯 두들겨라! 상산의 영웅들이여! 상산 전고가 내 마지막 길을 함께 하리라!”
조완은 더 크게 상산 전고를 치도록 명했다. 북소리 높이 일고, 그 박자는 더욱 빨라졌다.
북소리가 빨라지자 조풍의 마음도 급해졌다.
‘아버지가 위험하다!’
상산 전고는 그저 전장의 흥을 돋우기 위한 북소리가 아니다. 상산병들은 상산 전고의 박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들 알고 있었다. 굳이 신호기를 들 필요도 없고, 뿔피리를 불 필요도 없으며, 명적도 쓸 까닭이 없었다.
오직 상산 전고 하나면 만사가 해결되었다.
지금의 북소리는 본대가 결전에 나선다는 의미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자식 된 도리로 아비가 위급지경에 처한 것을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조풍은 공격로를 꺾어 중군을 구원하려 했다.
조 청룡 역시 마음이 급해진 것은 마찬가지.
하나 어렵게 이룬 사진을 풀 수는 없는 일이었다. 측면의 우세마저 잃는다면 정면에 더 많은 적병들이 몰리게 될 테니까.
‘손 하나만 더 있었어도…….’
그만큼 응원군이 아쉽다는 얘기일 뿐, 장수가 하나 더 있었다고 해도 전황은 그리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상산의 명성도 이제 끝인가?’
조 청룡은 조완이 자신의 친부는 아니나 그에게 있어 부친은 조완뿐이며, 고향은 상산뿐이다.
어떻게든 이 싸움에서 이겨 상산 조 부의 명성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 굴뚝 같았다.
그의 간절함을 하늘이 알아준 것일까?
새벽녘의 어둠이 걷히고 해가 가는 빛으로 대지를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여명이 밝아오는 그 때. 조 청룡은 혈전을 벌이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서쪽으로 돌렸다.
가끔 직감이라는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을 벌인다. 지금이 그랬다. 마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고나 할까? 아니면 시선이 느껴졌다고 할까?
어쨌든 강한 끌림에 그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 선 수많은 장정들이 있었다.
그들 앞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말을 달려오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조운 자룡.
그의 좌우로 여포의 성 씨인 ‘여(呂)’라는 글자가 쓰인 대기와 태항의 깃발을 든 번병들이 말을 몰아 달려오고 있었다.
조운은 창을 높이 치켜들고 사자후를 터뜨렸다.
“태항의 십만 호걸, 출전이오!”
조운의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쩌렁쩌렁 울려 퍼져 산천초목을 뒤흔들었다.
조운의 출전은 성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싸움의 판도를 순식간에 뒤집어 버렸다.
* * *
“뭐라? 십만? 어디서 그런 군세가……!”
하간왕은 조운의 출전에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십만. 자그마치 십만이다. 하곡양에서 박릉성으로 향했던 하간왕군의 군세가 그 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반수에도 미치지 못했다. 불바다가 되어버린 박릉성 성안에 갇혀버린 몇 만. 그리고 성 밖에서 상산, 한단, 역의 군세와 싸워 잃은 병마도 역시 기만.
서막. 이 농사꾼은 벌써 하간왕군 후군 진영 한복판에 시체밭을 일구었다.
하간왕은 이 싸움의 승부수를 중앙의 싸움에 걸었다. 그것도 병력의 우위를 믿고서 말이다. 그런데 서쪽에서 적의 대군이 나타났으니 하간왕의 입장에선 큰일이 난 거다.
“왕야, 부디 퇴각을……!”
유자혜는 퇴각을 청했다.
“싸움이 한창인데 무슨 퇴각이란 말이냐!”
“굳이 찍어 먹어봐야 똥인지 장인지 알겠습니까? 십만입니다, 십만! 우리 군세보다 배는 많은데 끝을 볼 필요가 있겠습니까?”
유자혜의 말대로였다.
굳이 마지막 한 사람이 쓰러질 때까지 싸울 필요는 없었다. 소모전이라면 이제 하간왕군이 불리하게 되었으니까.
‘병마를 물린다? 가능할까?’
방법이 있기는 했다. 전 병력을 집중해 가장 약한 한 축을 뚫어버리는 것이다. 그 방법이 아니라면 이 전장을 이탈할 방도가 없으리라.
역시나 가장 약한 쪽은 동쪽. 선우군이다.
하간왕은 전황을 주시하고 있었기에 그 정도를 아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전방으로 집중시킨 주력군을 다시 동쪽으로 움직인다면 이곳의 진세마저 무너져 버릴 게 뻔했다.
“왕야, 더 이상 결단을 늦추시면 안 됩니다. 부디 대국을 보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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