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759
758화 호된 신고식 (1) >
선우은 군세를 물렸고, 선우보는 그들의 퇴각을 위해 결사대 일백과 함께 적의 공세를 막아내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성평의 견상이 상대해주마!”
견 부의 기반은 성평을 넘어서 관진까지 아우르고 있었다. 때문에 견초의 아비 견상은 자신의 이름 앞에 성평이라는 지명을 붙였다.
하기야 견 부하면 관진보다는 성평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하북에서 견 부의 위상이 결코 낮지 않으니 이름만으로도 상대가 물러났으면 하는 바람이 깃들어 있으리라.
그러나 선우보도 물러서지 못할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격전 중의 수하들에게 눈짓했다. 그러고는 견상을 향해 달려나갔다.
“한단의 선우보가 간다!”
선우보는 앞으로 나아가고, 결사대는 조금씩 후퇴하며 적들의 전진을 지체시켰다.
하나둘씩 결사대 병사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지만 그만큼 선우은과 본대는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
크게 군대를 뒤로 물린 선우은은 상산군 본대를 크게 우회해온 조풍의 풍운대와 합류했다.
“상산의 조풍이올시다. 선우 장군, 풍운대가 앞장설 것이니 다시 공격합시다!”
“조 대협과 조 부의 고수들이 합류했으니 다시 싸워봄 직하오. 좋소이다!”
선우은은 큰 칼을 높이 치켜들고 사기를 진작시키려 소리쳤다.
“일당백의 고수들이 선봉에 설 것이니 단숨에 적진을 까부숴라!”
풍운대와 한단의 군세가 한 덩어리가 되어 다시 전진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상을 입고 선우보가 달려왔다. 그 하나뿐이었다. 그를 따라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일백 결사대는 그 자리에서 숨이 다했으리라.
“형님, 이제 후방으로 물러나시오. 상산의 고수들이 응원군으로 와주었으니 아무 걱정 말고…….”
생각 같아선 피투성이가 되어 도망쳐온 형을 돌봐주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다. 하나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 한단의 군세를 이끄는 입장에서 사적인 감정을 앞세울 수 없는 것이다.
* * *
“길을 터주어라!”
선우은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오를 이루던 병사들 사이사이로 길이 났다. 그러자 그 길을 따라 창을 비껴든 풍운대 고수들이 다시 한 번 싸움에 나섰다.
마치 강노가 강전을 연달아 쏘아내는 것처럼 풍운대 고수 하나하나가 강전이 되어 적진으로 날아가 틀어박혔다.
그 중에서도 조풍의 활약이 단연코 으뜸이었다.
퍽퍽퍽퍽!
길게 뻗은 창을 낮게 깔아 좌우로 휘둘러대는 통에 적병들이 다리를 맞고 나자빠졌다. 가히 그의 앞을 막을 자가 없을 정도.
상산의 다른 고수들도 자신들의 실력을 뽐내는데 여념이 없었다.
풍운대는 비록 소수이나 그들은 하나하나가 절륜한 고수. 병사 수십 정도를 상대하기에 어려움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인 이상 희생은 피할 수가 없었다.
멈추면 죽는다는 말은 지금 그들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풍운대 고수들 중 이미 을력이라는 십장 하나를 잃었다.
일백이 조금 넘는 고수들 중 다섯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수가 불어 지금은 총 열둘이나 쓰러지고 말았다.
그들의 희생은 값진 것이었다.
풍운대가 선봉을 맡아준 덕분에 뒤따라 온 선우군의 싸움은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는 수준이었다.
견가병이 정병이라고는 하지만 한단의 군세도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실력이 상당했다.
하북에 이름난 유협들을 모아놓은 군세이니 집단전에는 약해도 이럴 때 그들의 무예가 빛을 발할 수 있으리라.
이를 알 리 없는 견상은 갑작스레 승부가 기울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견가병이 이토록 쉽게 무너진단 말인가! 천하의 견가병이……?’
견 씨 가문의 사병들로만 이루어진 군세가 바로 견가병이다. 그들은 하북의 여러 호족들이 거느린 사병 군대 중에서 가장 강하다 자부하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승부가 기울어버리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이번에는 견상이 병마를 물릴 때였다.
“병마를 삼 마장 뒤로 물린다! 퇴각하라! 전군, 신속히 퇴각하라!”
견상은 이미 기울어버린 승부에 미련을 버렸다. 어렵게 양병한 군세를 하간왕을 위해 모두 지옥불에 던져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간왕에게 그런 의리를 지킬 사이도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물러난다고 해서 병력의 우위를 점한 하간왕군이 곧장 패퇴할 것도 아니다.
그 때문인지 마음이 그리 무겁지만은 않았다.
* * *
박릉성 성곽에서 불타는 성내를 보며 잔뜩 울상을 짓고 있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최 부의 주인인 최열이다.
“아이고, 아까워라. 저 아까운 것이 다 탄다! 내 집이 탄다! 이 일을 어찌할꼬. 망했다, 망했어. 박릉의 최 부가 알거지가 되어 노상에 나앉아야겠구나!”
탄식을 거듭한 끝에 다리에 힘이 풀려선 주저앉아 바닥을 쳐대는 모습이 측은하기 짝이 없었다.
그를 위로한 사람은 전풍이었다.
“최 공,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최열이 전풍을 쏘아보았다.
“이게 다 여포 때문이다! 여포 때문에 우리 집안이 망했다, 망했어!”
최열이 여포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자 전풍이 크게 노했다. 그는 장식이나 다름없는 패검을 뽑아들어 최열을 향해 겨누었다.
“내 주인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마시오! 더 이상 무례를 범했다가는 내 칼이 용서치 않을 것이오!”
“히익-!”
전풍도 자신이 검을 뽑아들고 남을 위협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하나 여포군의 책사인 이상 검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보다.
‘늘그막에 시작해도 될까?’
검을 쥐어보니 자신도 사내는 사내인 모양인지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게다가 자신이 검을 겨누자 최열이 놀라 겁먹은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생사여탈권을 쥔다는 것. 그것도 남의 권위를 빌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그런 권한을 얻었다는 것이 전풍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던 모양이다.
“사…… 살려주시오. 내 입이 촐싹 맞아 무례를 범하고 말았소. 이 입이 죄인이오.”
최열은 삼공의 하나인 태위의 자리까지 올랐던 명사이건만 칼 앞에서 옛 영광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구명하려 전풍에게 싹싹 빌었다.
전풍 자신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을 위인이다. 하나 남이 자신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은 사뭇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이런 기분을 즐기게 되면 포악무도한 자가 되는 것임을 알기에 스스로를 경계했다. 그는 패검을 갈무리하고는 위협 대신 유화책을 들고 나왔다.
“공께서 크게 잘못 알고 계시는 것이 있습니다. 최 부의 힘만으로 하간왕의 군세를 막아낼 수 있습니까?”
최열은 즉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 하간왕이 왜 박릉을 노렸는지는 알고 계십니까?”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전풍은 침을 튀겨가며 일장연설을 읊었다.
“박릉의 최 부가 지닌 부를 노리고 온 것입니다. 천하를 웅패하려면 창칼을 든 군대만 있어서는 안 되지요. 군대를 움직일 군자금이 필요하고, 병마를 먹일 군량을 사야하니 이 역시 군자금이 필요합니다. 최 부는 좋은 먹잇감이지요.”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최열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면 최 부의 재물을 여 장군께 바쳐야 하오?”
“우리 여 장군께서는 이미 하동을 얻으셨습니다. 최 부의 재산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하동의 소금보다 많습니까?”
최열은 다행이라는 듯 긴 한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자신의 재산을 어찌하면 지킬 수 있을까에 관한 것뿐이었다.
이를 알기에 전풍은 또 하나의 약속을 했다.
“최 부가 소생의 책략을 돕기 위해 손해를 입었으니 그 손해는 필히 배상할 것입니다. 집이 불에 탔으니 새 집을 지어줄 것이고, 최 부의 보화에 결코 눈독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고서와 고화도 부르는 게 값인데…….”
“백개 선생의 글씨로 집안을 도배해드리리다. 어떻습니까?”
전풍의 약속에 최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귀에 걸었다.
“그게 정말이오? 그 귀한 글로 도배를 해준다고……?”
“여 장군의 명성을 걸고 하는 말입니다. 허언은 결단코 없을 것이니 염려 마시고, 새로 지어질 최 부의 위용을 상상하며 지금을 버티십시오.”
고서와 고화가 아무리 값진 것이라고 하나 채옹이 몇 자 써주는 것만 못할 것이다. 이를 떠나 전풍은 최열이 이미 귀중품과 양식을 다른 곳으로 옮겨 두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이를 알면서도 장단을 맞춰준 것은 그보다 더 큰 것을 원하기 때문이었다.
‘백개 선생께서 글자 몇 첩 써주시면 최열의 벗들도 죄다 구워삶을 수 있으리라.’
끼리끼리 논다고 했던가?
최열의 벗은 최열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일 공산이 컸다. 최열의 벗이라 하면 최열처럼 재물이나 밝히는 자가 뻔한데 그런 자들이 여포에게 필요할까?
답은 ‘당연히 필요하다’였다.
최열의 벗이라고 천하가 공인한 자들이 있는데 하나같이 부와 명성, 그리고 고관에 올랐거나 아직도 고관으로서 조정의 녹을 먹는 자들이다.
그들의 이름을 어찌 천하가 아느냐 하면 공표비(孔彪碑) 때문이다.
공표비는 공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를 섬긴 열여덟 명의 관리들이 세운 공덕비다.
공표는 공자의 후손이며, 예주 영천 태수, 기주 박릉 태수를 역임한 명사였다.
박릉군은 영제 때 들어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황건 동란 후에는 태수조차 부임하지 않고 있는 땅이다.
중산부터, 안평, 하간의 일부 땅을 엮어 박릉군을 신설한 것인데 그 의미가 퇴색한 것이다.
왜 박릉군을 신설했는지는 공표비를 세운 열여덟 명의 관리들을 살펴보면 된다. 둘에 하나가 자(字)에 ‘자(子)’자를 쓰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 대부분이 부호라는 얘기다.
그들 중에 최열의 이름이 첫머리에 나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전풍은 이를 알고 있었기에 최열을 구워삶아 나머지 열일곱 명의 명사들을 모조리 여포 휘하에 두게 하려 했다.
* * *
“대인, 자제분들이 보이지 않는데 혹 고향에 있습니까?”
전풍의 말에 최열은 흠칫 놀랐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금세 얼굴을 바꾸었다. 시치미를 뚝 떼려는 것을 전풍이 어찌 눈치채지 못하랴. 하나 최열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유주 땅에 내 생가와 일가친척들이 살고는 있으나 그곳에 내 아들들은 없소. 큰 놈은 이미 내 슬하를 떠나 입신양명했고, 둘째는 멀리 형주까지 가서 수학하고 있소이다.”
장남은 최균.
그는 명문회의 일원이자 원 씨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자였다. 하나 지금은 관동군이라 할 수 있는 하간왕군이 박릉을 침범한 상황이니 최균의 얘기를 해봤자 득될 것이 없으리라.
차남은 최주평.
이름의 음차가 형 ‘균’과 같기에 성씨와 자를 합쳐 불렀다. 그는 형주의 명사 사마휘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있었다.
“한데 어찌 그걸 물으시오?”
“하간왕군이 최 부가 있는 박릉을 쳤다는 것은 곧 원가가 최 부와 척을 지려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야 그렇지. 이제 우리 최 부와 원 씨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것이올시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곳에서 최 부가 우리 군과 손을 잡고 하간왕군을 물리쳤다는 걸 알게 되면 무슨 일이 생기겠습니까?”
그러자 최열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설마 앙심을 품은 원소가 우리 최 부의 자손에게 화풀이를 하기라도 한단 말이오?”
“왜 아니겠습니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음이 있는 인사이지요.”
듣고 보니 그랬다.
스스로를 영웅호걸이라 일컫는 자들 중에 정말 영웅의 기상을 품고 있는 그릇을 가진 자가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원소가 겉으로는 배포가 큰 것처럼 대인행세를 하지만 조그마한 의심이 생겨 수하들을 몰아세우는 일이 흔했다.
실제로 진의록이 이를 이용해 동소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당기지 않았던가.
동소, 동방의 경우처럼 원소는 자신의 휘하와 경쟁자의 휘하에 혈연으로 묶인 자들이 있으면 이를 경계해 내쫓거나 제거했다.
최열 역시 이를 들어 알기에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던 것이리라.
“아이고! 내 큰 놈이 원소와 친하게 지내는데 이 일을 어쩐단 말이냐. 최 가의 장손이 원소의 칼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구나.”
최열이 크게 한탄하자 전풍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 일, 제게 맡겨주시면 해결해드리겠습니다.”
전풍이 이토록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진의록의 존재 때문이었다.
‘진 선생이 의양성에 있는데 무엇을 걱정하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