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805
804화 사관의 붓이 세상을 밝힌다.(史笔昭世) (1) >
서부위 서영에게 정병 2만과 함께 출격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조회가 끝났다.
그날 밤, 채옹의 집.
채옹은 노식의 밀서를 읽고는 이를 촛불로 가져갔다. 순식간에 얇은 재를 남기며 타들어가는 종잇장을 채옹은 슬픈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아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천창이 움직이더니 결국 하늘의 뜻은 하나 틀린 것이 없구나.’
채옹은 천창에 맺어진 사람이 서영이라 여겼다. 물론 어제까지만 해도 이를 알지 못했다. 아니, 서영이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본 바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 조정에서는 서부위 서영에게 출격 명령을 내려 여포를 도와 서융의 발호를 막도록 했다.
천창은 부월을 상징하고, 서영은 동탁 휘하에서 부월로는 당해 낼 자가 없는 맹장이다. 뭔가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졌으나 결국은 결과론적인 얘기다.
채옹은 계속해서 밤하늘을 살폈다. 천문을 살피는 것은 여포의 길흉화복을 점치기 위함이자 한조의 명운이 어디까지인지를 짐작하는데 그 까닭이 있었다.
‘자미성이 빛을 잃고, 태양수가 혈운에 휩싸였는데 천부가 움직이니 그때가 왔구나.’
채옹은 천문을 살펴 뭔가를 확인한 듯 더 이상 하늘을 올려 보지 않았다. 대신 하인들을 모두 불렀다. 기껏해야 여섯 명뿐이다.
한조에선 모르는 자가 없는 명사 중의 명사, 문호 중의 문호이며, 난대령사 관직에 올라 있을 뿐만 아니라 명문회의 장자방 노릇을 하는 그가 아닌가.
그런 자의 집에 하인들이 고작 여섯 명뿐이라니 놀랄 일이다.
“대인, 모두 모였습니다. 하명 하시지요.”
“내일부터 너희들은 하루에 한 사람씩 내 집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라. 총관에게 말해 많지는 않으나 은자를 조금씩 나누어 줄 것이니 여비를 하고도 남음이 있을 터.”
갑자기 채옹이 이런 말을 하자 하인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채옹이 이런 말을 할 까닭이 없었기 때문이다.
총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인, 어찌 저희들을 쫓아내려 하십니까? 저희가 대인께 죄를 지었습니까?”
“그런 것이 아니네.”
“혹시 동도에 큰 변란이라도 일어나게 됩니까?”
역시 대작의 하인들이기에 이런 눈치는 있었다. 하지만 채옹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대신 말 한마디로 논란을 잠재웠다.
“많이 알면 알수록 위태로워질 걸세.”
굳이 진실에 다가서려 하지 말라는 얘기다. 하인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굳어졌다. 분명 이 정도면 무슨 큰일이 날 거라는 걸 짐작하기 어렵지는 않으리라.
* * *
쿵쿵쿵!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하인들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주인이 역모에 엮이면 하인들의 처지도 곤란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재수 없으면 주인과 함께 목이 달아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총관이라는 자는 제법 의연하게 대처했다. 그가 직접 나가 대문 밖의 객을 맞이하기로 한 것이다.
문을 살짝 열어 고개만 빠끔히 내놓은 총관은 이내 깜짝 놀랐다. 문 밖에는 횃불을 든 병사들이 잔뜩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총관은 문을 닫고선 문에 기대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벌써 와 버렸단 말인가? 대체 대인께서 무슨 일에 휘말렸을까?’
총관은 채옹이 원망스러웠다. 이렇게 병사들이 오기 전에 자신들을 다 보내 주었다면 화를 피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이미 때는 늦었다. 담 너머에는 대낮을 방불케 하듯 횃불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이미 집 주위는 포위되었다는 얘기가 된다.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리라.
“어서 문을 열어라! 상국 대인 행차시다.”
총관은 어찌해야할 지를 정하지 못했다. 문을 열자니 병사들이 쳐들어올 것 같고, 안 열자니 저들의 화만 돋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채옹이 다가와 총관에게 턱짓을 했다. 그러자 총관은 하는 수 없이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 앞에는 동탁과 그의 호위대장 이몽이 함께 서 있었다.
“상국께서 어찌…….”
채옹은 일단 두 손을 모아 들기는 했다. 하지만 동탁이 어째서 자신의 집을 찾았는지 영문을 궁금해했다.
“백개 선생께 지모를 구할 일이 있어 약속도 없이 찾아왔소이다. 결례를 용서하시오.”
“결례랄 게 무엇이겠습니까? 다만 누추한 곳이라 귀인을 모시기에 부족하여 송구할 뿐입니다. 자, 안으로 드시지요.”
채옹은 안채를 향해 손을 뻗으며 동탁을 귀빈으로 대했다.
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하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꼼짝없이 이곳에서 죽거나 끌려갈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주인과 동탁의 대화를 들어 보니 동탁에게 적의는 없는 듯했다.
“뭣들 하느냐? 술상을 준비하도록 하라.”
총관은 하인들을 부려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곳을 떠나기 전까지는 채옹을 모시는 하인으로서의 직분을 다해야만 하는 것이다.
* * *
동탁은 소박한 술상을 사이에 두고 채옹과 마주 앉았다.
“상국, 어찌 이 야심한 밤에 소생을 찾으셨습니까?”
채옹이 묻자 동탁은 품속에서 동전 몇 개를 탁자 위에 쏟아 냈다.
채옹은 그중 하나를 집어 들어 살펴보았다. 아무리 봐도 흔히 볼 수 있는 사출오수였다.
“술값으로 오수전을 내놓으신 것은 아닐 테고…….”
“이것은 지금 시중에 돌고 있는 위폐올시다.”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군요. 이래서야 어디 위폐를 분간이나 하겠습니까?”
“그래서 선생을 찾아온 것이오.”
이에 채옹은 난색을 표했다.
“소생은 위폐를 감별해 낼 재주가 없는 자올시다.”
동탁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답했다.
“설마하니 그걸 물으러 이 야심한 밤에 선생을 찾아왔겠소이까? 이미 위폐를 감별할 방도를 찾았소.”
“경하드립니다. 드디어 방도를 찾으셨군요. 이제 시중에 위폐가 사라질 터이니 다시 저잣거리에도 활기가 돌겠습니다, 그려.”
“이번 한 번은 넘길 수 있지만 다음번에 또 위폐가 돌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소이다. 그래서 말인데…….”
동탁은 소매단에서 작은 가죽주머니 하나를 꺼내서는 그 속에 있는 것을 다시 탁자 위에 쏟아 냈다. 이번에는 그 양이 많지 않았다. 달랑 두 개. 하나는 작은 동전이고, 다른 하나는 화살촉이었다.
“이걸 어찌…….”
채옹은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동탁에게 사정했다.
“상국, 점을 치시려거든 태사국으로 가셔야지요. 어찌 소생의 집으로 오신단 말입니까?”
“이것은 점을 치는 도구가 아니올시다.”
동탁은 화살촉과 동전을 각기 한 손에 하나씩 쥐어 들어 보였다.
“선생, 소생이 새로운 화폐를 발행하고자 하오.”
“새 화폐라…….”
채옹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동탁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말했다.
“내 장자방, 문우 선생도 선생과 같은 표정을 지었소. 새 화폐를 내는 게 잘못이오?”
“혹 문우 선생께서 소생에게 가면 까닭을 알 수 있을 거라 하더이까?”
동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만 합니다. 문우 선생이 소생을 상국과 만나게 한 까닭은 지금껏 새 화폐로 물가와 위폐를 잡으려던 개혁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단 말이오?”
“역사상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채옹이 장담하자 동탁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선 분을 삭였다. 그리고 잠시 후. 흥분을 가라앉힌 동탁이 다시 작은 동전과 화살촉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선생, 이번에는 다를 거요.”
“여태껏 수많은 개혁가들이 상국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다를 거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한다.’ 하지만 단 한 사람도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동탁 역시 이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름 머리를 싸매고 몇 날 며칠이고 밤을 새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 고민 끝에 나온 것이 바로 이 작은 동전과 화살촉이다.
그는 먼저 화살촉을 흔들어 보였다.
“선생, 지금의 사출오수 대신 이 화살촉을 화폐로 쓰려 하오. 어디에서든 이 화살촉의 값어치만큼은 가치가 있을 거요. 본관은 이를 ‘촉전(鏃錢)’이라 명명했소.”
그러자 채옹은 동탁의 손에 들린 화살촉을 집어 들었다.
“화살촉으로의 가치가 있으려면…….”
채옹은 탁자 위를 굴러다니던 가짜 사출오수 하나를 집어 들어 흔들었다.
“이 사출오수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공보다 더 큰 공이 들어갑니다. 개당 생산하는 단가가 높아지는데 이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동탁은 반론을 펴려했으나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채옹은 그의 고집을 꺾기 위해 쐐기를 박았다.
“군문에서 쓰여야 할 화살촉이 고관대작들의 곳간에 가득 쌓이게 될 모습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
“도성 안으로 병장기의 반입을 막아 왔는데 이제는 재물을 들고 들어간다고 하면 아무도 못 막겠습니다, 그려. 허허허! 더해보리까?”
* * *
동탁은 촉전으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이번에는 작은 동전을 흔들어댔다.
“그럼 이건 어떻소? 사출오수보다 수공도 적고, 들어가는 동의 양도 적소. 위폐를 막을 방도도 준비해두었소. 어떻소이까? 이를 소전(小錢)이라 부르려는데…….”
채옹은 동전을 든 동탁의 손을 지그시 붙잡아 아래로 눌렀다.
“상국, 상국의 권세가 천년만년 이어질 것 같습니까?”
“기분이 나빠지려 하오. 선생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소이다. 아무리 우리가 조정에서 척을 지고 있다고는 하나 소생에게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음을 선생이 알아주실 줄 알았소.”
“소전을 주조하신다면 한 점 부끄러움이 생기실 것 같습니다만…….”
“새 화폐를 발행하려는 것에 이, 동 중영은 조금의 사심도 없소. 만약 조금이라도 사심을 품었다면 이 자리에서 벼락을 맞아 죽을 거요.”
채옹은 빙그레 미소지으며 허를 찔렀다.
“이곳은 집안이라 벼락이 떨어질 수 없습니다.”
“선생, 지금 말장난을 하려는 게 아니잖소?”
“소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상국과 농을 섞을 때가 아니지요.”
“그럼 왜 안 된다는 거요? 촉전은 그렇다치고, 왜 소전은 안 된다는 거요? 내 볼 때에는 아무 허점이 없는 것 같은데……?”
채옹은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 원망을 어찌 다 감당하시겠습니까?”
“원망이라니! 누가 무슨 원망을 한단 말이오, 선생?”
“소전을 무엇으로 만드시겠습니까? 동괴가 얼마나 필요할지는 생각해보셨습니까?”
오수전은 동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기야 금이나 은은 귀하고, 철은 무기부터 농기구까지 그 쓰임이 다양했다. 그렇다면 결국 여러 가지 사정상 동을 재료로 쓸 수밖에 없었다.
동탁이 반론을 펴지 못하자 채옹은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내 그를 궁지로 몰았다.
“성내의 온갖 동상들을 다 끌어 모으시겠지요. 종도 다 쓸어 가서 녹여도 부족합니다. 궁과 관부의 동조도 다 거둬들이고, 백성들의 것도 징발해야겠지요. 그래도 될까 말까입니다.”
동탁은 두 손을 들었다.
“졌소. 선생의 조언을 듣고 보니 내 크게 잘못 생각했던 것 같소.”
하지만 동탁은 이대로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개혁을 펼치겠다는 일념하나로 버텨온 세월이다. 화폐 개혁은 권신들의 영향력을 무력화시키는 개혁안의 핵심이다.
동탁은 소전을 바둑돌 놓듯 탁자에 내려놓으며 회심의 한마디를 풀어냈다.
“당백전은 어떻소?”
채옹은 동탁을 손님으로 맞아 예를 다하여 후대하였으나 이번만큼은 참지 못하고 고성을 높였다.
“상국! 지금 당백전이라 하셨소?”
동탁은 자기가 잘못한 게 없는데 채옹이 왜 이러나 싶어 어안이 벙벙했다.
“선생…… 대체 어찌 이러시오?”
“‘당백전’이야 말로 물가를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들고, 농민들이 농기구로 농사 일이 아니라 사람을 해치는데 쓰게 만들 것임을 정녕 모른단 말이오?”
동탁은 두 말 않고 일어나 채옹에게 깊이 읍했다.
“이, 동 중영이가 선비 중의 선비를 가까이 두고 알아보지 못했소이다.”
“상국, 소생이 결례를 범했는데 오히려 읍을 하시니 그 됨됨이를 알겠소. 상국을 위해 두 가지를 말씀드리리다.”
“경청하리다.”
“첫째, 개혁은 이제 포기하시오. 천하를 흥하게 하는 것은 천하 만민이 힘을 모아도 쉽지가 않소. 하나 천하를 망치는 것은 한 사람이면 족하오.”
동탁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채옹이 말하는 한 사람이란 천자를 말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탁은 아무런 말이 없었으나 채옹은 마저 말을 이었다.
“둘째, 상국은 지금 위험지경에 처해 있소이다. 이, 채 백개가 천문을 살펴보니 태양수가 혈운에 휩싸였소. 태양수 곁에 흉성이 뜨는 날, 상국에게 화가 닥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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