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97
96화 정원의 유산 (1)
————– 96/753 ————–
털썩!
정원은 짚단이 넘어가듯 쓰러져 피를 게워냈다.
“정 자사!”
여포가 급히 그의 상세를 살폈지만 이미 맥문을 깊이 베여 회생의 가능성이 없었다.
“이익! 윽! 윽!”
정원은 뭔가 말을 하려는 모양인지 연신 피거품을 게워냈다. 한 때나마 병주의 영웅으로 기억되던 그였기에 여포는 그의 유언을 들어주기로 했다.
“우읍! 보······ 봉선, 치숙!”
정원은 여포와 장양의 자를 부르며 그들이 다가오도록 만들었다.
“정 자사, 편히 가시오. 정 자사의 식솔들은 절대로 해치지 않으리다. 나, 장양이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소.”
장양은 정원이 편히 죽을 수 있도록 걱정을 덜어주려 했다.
하지만 정원은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목을 베였기 때문에 그 움직임은 가까이 있는 여포와 장양만이 간신히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내······ 내가 부······ 북사군을 내준 것은 잘못······ 한 일이나 후회하지······ 않는다. 단지 더 많은······ 사람을 구하려 했을 뿐······!”
그 말을 끝으로 정원이 눈을 부릅뜨더니 눈꼬리로 눈물이 흐르며 그렇게 눈도 감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마지막 말이 여포를 찝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전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선비병들이 아직도 수천이나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우두머리인 화련을 베었다고는 하나 여포는 선비병들이 무사히 퇴각하는 꼴을 볼 생각이 없었다.
“가 선생, 선비병 잔당들을 어찌 해야겠소?”
여포가 가후에게 물었다. 그러자 가후는 대답부터 하지 않고 오히려 여포의 얼굴부터 살폈다. 가후는 여포의 얼굴에 여포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군략을 말하기에 앞서 그의 얼굴을 살핀 것이다.
사실 이것이 가후의 최대 장점이었다. 군략에 주인의 뜻을 담으니 여포의 반발을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래의 역사에서도 가후는 모사 중에서 천수를 누리고 자손 대대로 무사 평온한 몇 안 되는 모사였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처세에 능하다는 얘기였다.
“병력을 산개하여 선비병들을 서북쪽으로 몰아붙인다면 말살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구려. 그리 합시다.”
그런 후에 여포는 곧장 장양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장양은 고개를 끄덕여 여포의 말에 동의했다.
여포와 장양과의 관계는 조금 미묘하다 할 수 있었다. 등고와 마찬가지로 여포에게 장양은 스승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등고가 지금의 채옹처럼 무거운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라면 장양은 친근한 형님처럼 여포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준 사람이었다.
여포가 지닌 무예의 기반도 장양에게서 배운 것들이었고, 머리가 나빠 많이 배우지는 못했으나 체득할 수 있도록 진행의 도를 가르친 것도 장양이었다.
여포가 영전을 거듭해 ‘병주목’의 자리까지 오르면서 그 관계가 꼬여버리고 말았다.
정원은 자신이 병주 자사의 자리에 있을 때 장양을 속관의 하나인 무맹종사에 임명했다. 그 말은 곧 여포가 병주목이 되면서 장양은 아무 벼슬이 없는 처지가 되었다는 얘기였다.
북대영의 총령을 자처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병주목 여포에 비해서는 몇 단계 아랫사람에 불과했다.
다행스럽게도 장양은 서열을 인정하는 말을 해왔다. 그는 여포에게 돌연 두 손을 모아들며 말했다.
“내게 선봉의 임무를 다오. 내 휘하의 일만 정병이 선비병의 피를 원하고 있다.”
선봉의 자리를 청하는 것은 장양이 스스로를 여포보다 아래로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장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읍에 있던 정원의 병사들 역시 앞다투어 여포에게 청했다.
“선비병과 싸우게 해주십시오.”
“선비놈들에게 아비가 죽임을 당하고 어미가 끌려갔습니다. 놈들을 베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 날의 기억을 잊으려 합니다. 싸우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여포가 소리높여 외쳤다.
“북대영의 장 총령은 중군을 맡아 공격을 시작하시오!”
“북대영의 총령 장양, 여 병주의 명을 받드오!”
여포의 관직이 ‘병주목’이기 때문에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상황이니 그의 성인 ‘여’와 그의 지배지인 ‘병주’를 붙여 부르는 것이다.
원래의 역사에서 유비가 ‘유 예주’로 불렸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저 선생!”
“예, 장군. 하명하십시오.”
“병주의 용사들을 나누어 좌, 우군으로 삼고 본대과 함께 선비의 패잔병들을 소탕하시오.”
“명을 받듭니다!”
저수는 여포의 명에 두 손을 모아 들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내 저수의 수완이 빛을 보았다. 지금껏 저수가 지휘했던 병력은 여포 휘하의 오천여 명이 최대였다. 그런데 여포 휘하의 병력에 삼만이 넘는 정원의 병사들을 더해 지휘하게 된 것이다.
갑작스레 몇 배가 넘는 병력을 지휘하게 되었는데도 그는 당황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정원의 병사들 역시 장양에 의해 훈련된 자들이기는 하나 저수는 단숨에 그들을 장악해 병력을 재배치 했다.
그 많은 병력을 운용하면서 저수는 호통 한 번 치지 않고 순식간에 배치를 끝내고 서북쪽으로 선비병을 몰아붙였다.
“장군, 분명 선비병들은 한 무리로 모여 돌파를 시도할 겁니다. 장군께선 선비병들이 병력을 집중시키면 그 때 출전해주십시오.”
“그리하겠소. 가자! 북대영의 군대와 함께 이동한다!”
여포는 저수의 청대로 무장들을 이끌고 장양의 중군과 함께 움직였다.
* * *
선비병 섬멸전은 예상보다 싱겁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궁지에 몰린 선비병들이 두 차례 결집해 돌파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를 예상한 저수의 안배대로 두 번 모두 여포가 장졸들을 이끌고 격파해 버린 것이다.
장양은 정공법으로 선비병들을 옥죄였다. 북대영의 병사들은 하나같이 정병들인데다가 선비병들은 전의를 상실한 지 오래였다.
저수가 지휘하는 좌우군이 장양과 함께 선비병들을 막다른 곳까지 몰아붙였다. 그러자 선비병들은 너도나도 살겠다고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거용관을 넘을 때는 일만의 대병이었다.
허나 이곳 마읍 땅에서만 수천이 고혼이 되었고, 수천이 포로가 되었다. 운 좋게 수백의 선비병들이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무시해도 좋을 숫자였다.
수천의 선비병들이 무릎 꿇려졌다. 여전히 여포는 정원의 유언에 찝찝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지금은 병사들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누려야 할 때임을 알고 있었다.
여포는 방천화극을 높이 치켜들며 소리쳤다.
“이겼다! 병주의 용사들이여, 승리의 함성을 질러라!”
“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
* * *
전투가 모두 끝이 난 듯했지만 가후는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자신의 군략이 모두 적중했는지를 확인해야만 했다.
가후는 성렴과 위월이라는 두 명의 효장을 거느리고 호련관으로 향했다. 호련관은 전략적 요충지로 여포군이 먼저 선점했었던 곳이다.
여포는 가후의 군략에 따라 호련관을 버렸고, 정원의 차지가 되었다. 정원이 여포를 쫓아 대군을 몰고 왔다고는 하나 분명 호련관에 병력을 남겨두었을 것이다.
호련관은 수백만 남겨두어도 수천수만의 군세를 붙잡아둘 수 있는 곳이다. 수만의 병력을 이끌던 정원이 고작 수백의 병사를 남겨두는 것을 아까워했을 리 없었다.
가후가 호련관 인근에 당도했을 때 이미 호련관에는 적기가 꽂혀 있었다. 붉은 깃발이 내걸린 호련관을 보며 가후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문을 열어라!”
호련관의 성벽 위에서 개문령을 내린 자는 뜻밖에도 고순이었다. 그는 여포군 팔건장의 수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선비병과의 교전 중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까닭은 호련관을 탈환하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고순은 망루에서 내려와 가후를 맞이했다.
“군사 어른, 어서 오십시오.”
고순은 축 늘어진 중년 사내 하나를 끌고 와 가후의 앞에 내던지고는 예를 다해 읍을 했다. 그러자 가후 역시 그에게 맞읍으로 화답했다.
“고순 장군, 수고가 많으셨소.”
“선생의 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과례는 비례라 했소이다. 수백으로 수천수만을 막을 수 있는 호련관을 불과 일백 병력으로 탈환하셨는데 어찌 그 공이 작다 하겠소. 장군이 아니면 불가한 일이외다.”
“과찬이십니다. 선생의 군략이 아니었다면 어찌 쉽게 탈환할 수 있었겠습니까?”
“칭찬은 고맙게 받겠소. 헌데 이 자는 누구요?”
“호련관을 지키던 자인데 무장은 아닌 듯합니다. 궁금하시면 알아보겠습니다.”
고순의 말에 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포로들을 데려와라!”
이내 십 수 명의 포로들이 끌려나와 무릎 꿇려졌다.
이들은 동료 병사들이 고순의 부대에게 순식간에 제압되는 걸 보며 재빨리 항복했던 현명한 자들이었다.
고순은 엉망진창으로 퉁퉁 부어있는 중년 사내의 머리채를 잡아 들어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한 후에 포로 중 한 명의 멱살을 잡았다.
고순은 자신에게 멱살을 잡힌 포로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며 내심 됐다 싶었다.
“이 자는 누구냐?”
“오······ 온 대인이십니다.”
고순에게 무참히 얻어터져 지금 이 꼴이 되어버린 중년 사내의 정체는 바로 온서였다. 그는 등고를 대신해 정원의 모사 노릇을 하던 자다.
정원이 여포를 쫓아 대군을 끌고 가며 이곳 호련관의 수비를 온서에게 맡겼던 것이다. 온서는 무장이 아니지만 정원은 그에게 호련관을 맡기며 걱정을 하지 않았다.
호련관은 그 지세만으로도 수백이 수천수만을 막을 수 있는 천혜의 요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게 고순에게 죽도록 얻어 터져서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흉측한 꼴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하라. 이 꼴이 되고 싶지 않으면 알고 있는 걸 죄다 털어놓아야 할 것이야.”
흡사 성난 곰을 대하는 듯 포로는 벌벌 떨며 눈알을 굴렸다. 고순이 온서를 박살내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기 때문에 두려움은 더 컸다.
지금 온서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할 만큼 고순은 잔인하게 두들겨 패버렸기 때문에 자신도 그리 되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유주 탁군 태수를 지내신 분으로 집안이 대대로 거부라고 합니다.”
“얼마나?”
“재산이 너무 많아서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곁에서 포로의 말을 듣고 있던 가후가 고순을 보며 물었다.
“정 자사의 후원자였던 것 같소.”
“그런 듯합니다.”
“아직 살아 있소?”
“손속에 사정을 두었으니 걱정 마십시오.”
고순의 말에 포로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온서가 두들겨 맞는 걸 봤는데 그게 손속에 사정을 둔 거라니······.
하지만 고순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더라면 무장도 아닌 온서가 어찌 지금까지 숨이 붙어 있을 수 있었겠는가.
“정 자사에게 제법 중요한 사람이었던 듯하니 치료해서 이것저것 알아봐야겠소.”
가후가 말을 맺자 고순이 턱짓으로 부하들을 부렸다. 고순은 그들에게 온서를 내주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째서 무장도 아닌 자가 이곳을 지킨단 말인가. 정 자사의 군대에는 그리 쓸 만한 장수가 없던가?”
* * *
여포군의 화공에 당해 다들 사지를 해매고 있을 무렵.
‘도주의 최강자’답게 유일한 활로를 찾아 줄행랑을 놓았던 학맹은 어느세 이천에 가까운 기병들의 선두에 있었다.
그는 역시 ‘도주의 최강자’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도망치는데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호련관이 어찌 함락될 걸 알고 호련관이 있는 남동쪽이 아닌 남서쪽 협곡을 이용해 퇴각하는 것이다.
그는 슬쩍 뒤를 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정신없이 도망쳐 온다고 몇이나 데려왔는지 몰랐지만 돌아보니 물경 기천이 넘었기 때문이다.
장수로서 패퇴는 치욕스러운 일이건만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아니면 누가 그 상황에서 이리 많은 병사들을 구해 나올 수 있었겠는가. 내가 아니었다면 주군의 군대는 그 씨가 마를 뻔했다.’
아직 그는 정원이 자결한 것을 알지 못했다. 사실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가 어찌되건 말건 중요한 것은 자신이 살아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소점?’
‘소점’이라면 정병 일만이 지키고 있는데다가 난공불락의 요새이며, 군량까지 산처럼 쌓여 있으니 버티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문제는 송익이 그곳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 이 놈, 학맹! 목숨을 던져서라도 주군을 지키는 것이 부하된 자의 도리이거늘 네 어찌 혼자 살아 도망쳐 와서 살기를 바라느냐? 내 검이 네놈을 용서치 않으리니!
마치 눈앞에서 송익이 호통 치는 것만 같은 상상이 머릿속에서 펼쳐지자
송익은 앞뒤가 꽉 막힌 자로 학맹이 주군인 정원을 버리고 왔다하면 불같이 화를 내며 자신을 죽이려 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역시 학소에게로 가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