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132
0135 / 0284 ———————————————-
17. 합비전
유비에 대한 증오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붉은 숯불처럼 나를 달구는 이 증오는 고질병이 되어 영영 나와 함께하겠지. 서주로 밀고 들어가 그의 목을 취한다 한들 이 증오가 해소될까. 무한한 증오의 씨앗을 심은 자여,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하리라. 장사 지낼 인력이 부족하여 들판에서 썩어가는 주검들이 널렸다. 배가 부른 까마귀들조차 오래된 시체에 시선 한번 주지 않았다. 주검의 수습은 건물의 재건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주춧돌이 다시 놓일 때 주검은 천천히 부패했다.
나는 합비의 어두컴컴한 지하에 설치된 감옥으로 향했다. 정치범을 수용하는 곳은 유독 습기가 진하고 쥐나 벌레가 들끓었다. 그곳에 하옥된 이는 거의 없었다. 이제 막 시작된 권력에 저항하는 이는 멍청이는 드물기 때문이다. 실은 그 한 명도 되도 않는 고집을 피우는 터에 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환재금의 수족노릇을 했다는 자다. 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일 정도로 젊은 녀석이었다. 하도 뻣뻣하게 굴어서 내가 감옥으로 뻥 차 넣었다. 그래도 마냥 그곳에 썩힐 수는 없어 이번에 혈혈단신으로 그를 찾아간 것이었다.
“이봐.”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는 내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그는 나를 보고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이 깊은 감옥까지 환호성이 스미더군. 그대가 큰 사람이 된 모양이지.”
“대장군이 되었다.”
“대장군이라, 허면 손책의 공세도 물리쳤겠군.”
“네 녀석 또한 환재금과 유비의 공작을 알고 있겠지.”
“봉추라는 재사가 계책을 꾸몄다고 했지. 제법 괜찮은 꾀였는데 용케 그 그물에서 도망치셨군.”
나는 그를 경멸했다.
“너는 불의의 편에 섰다.”
그는 나의 경멸에 동요하지 않았다.
“불의라고? 그것은 그대처럼 삼중사중의 가호를 받는 자나 지껄일 수 있는 말이다. 칼날이 항시 그대의 목을 겨누고 있다고 생각해라. 과연 불의 어쩌고 하는 말이 쉽게 나올까.”
“하찮은 논리. 그렇다고 죄과가 씻기지 않는다.”
“나는 의와 불의는 모른다. 나는 오로지 이득을 좇으며 살았다. 그리고 틀린 판단으로 몸 안에 벼룩을 기르고 있다. 나는 실패했고, 죽을 것이다. 그러면 그만이다.”
“하찮은 논리로 살다가 하찮은 최후를 맞으니 실로 하찮은 생이구나, 가련하다.”
내 말에 그는 푸 웃었다.
“내 최후는 하찮다. 그러나 그대의 최후가 나보다 나으리란 보장이 있는가? 잘난 체 하지 마라. 왕망(王莽, 전한을 무너뜨리고 신나라를 세운 인물)은 천하를 주물렀지만 일 만 개의 토막으로 찢겨 죽었다. 그의 혀는 잘려 백성들이 나누어먹었다. 그대의 생이 나보다 하찮을 수 있다.”
“나는 인의에 살았으니 왕망을 따를 까닭이 없다.”
“유비도 인의를 지껄이던데 그대의 인의가 그것과 다르긴 다른가? 두드러기 날 정도로 간지러운 말이군.”
나는 그의 일관된 까칠함에 피로를 느꼈다.
“대책 없는 싸가지네.”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화평을 거스를 것 같아 숨을 몇 차례 쉬고 그에게 말했다.
“네 녀석이 이득을 좇아 살았다고 했지. 내가 네 앞에 이득을 보여주겠다. 밖으로 나와서 나를 도와라.”
내 제안에 그는 나를 흘끗 올려다보더니 망설임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감옥의 창살 앞에 서서 의문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뭐해? 안 열어? 밖으로 나오라며.”
나는 끓는 화를 억누르며 대꾸했다.
“혀끝에 싸가지 장착해라.”
“……”
“셋 센다. 하나, 둘……”
“……”
“세에……”
“…열어주세요.”
나는 감옥의 간수로부터 열쇠를 넘겨받아 문을 열었다.
“착하군.”
그는 한숨을 팍 쉬며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나는 그의 목에 씌었던 칼을 풀어주었다. 목을 까딱거리는 그에게 내가 물었다.
“이름은?”
“주환(朱桓), 자는 휴목(休穆).”
나는 눈썹을 치떴다. 아는 이름이었다.
“대장군부의 장사(長史)로 삼겠다. 유감없지.”
“좋다.”
“야, 말 똑바로 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주환은 일찍이 손씨의 밑에서 종군한 무장이다. 훗날 삼국이 정립된 후, 위나라 최고의 명장인 조인의 대군을 맞아 소수의 병력으로 그를 손쉽게 격파해버린 장수이기도 했다. 전리품을 부하들에게 나누어주는 등 인망이 두터운 동시에, 말년에 병이 들어 황제 손권이 병문안을 오자 호랑이 수염을 만져 봐도 되겠냐는 구실로 황제의 수염을 더듬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지금 보니 그 정도 싸가지는 충분한 인물이다. 오군(吳郡, 나라이름이 아니라 현재 손책의 근거지인 고을)의 대표적인 호족 가문으로 네 곳이 있는데, 이른바 오의 사성(四姓)이다. 장온으로 대표되는 장씨(張氏)와 주환으로 대표되는 주씨(朱氏), 훗날 오의 승상이 되는 고옹으로 대표되는 고씨(顧氏), 육손으로 대표되는 육씨(陸氏)가 그들이다.
오의 명사 출신인 그가 어떤 경로로 환재금과 엮이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어떤 질곡이 있긴 있는 모양인데 저 싸가지랑은 서열이 정리될 때까지는 말 섞기 싫었다. 나는 주환을 휘하의 무장, 문사들에게 인사시켜주었다. 그는 환재금이 은닉한 재물과 각지의 점조직들을 불러들였다. 정보 쪽에 특화돼있다 보니 청금의 유엽과 손발을 맞추게 했다. 아무래도 저 싹은 좀 밟아줄 필요가 있는 것 같아 태위 여포하고 술자리를 좀 나누게 했다. 고성이 한동안 오가다가 여포의 일방적인 위압이 밤새도록 이어졌다는 후문이었다.
내가 대장군에 오르고 여포가 태위가 되었지만, 다른 관리들의 논공행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천자는 나에게 이러한 권한을 일임했으므로, 나는 별도의 상주 없이 논공행상을 진행했다. 나에게 논공행상이 주검의 수습보다 중요했다.
여남태수 후장군 장료를 예주자사에 임명했다. 예주라고 해봤자 달랑 반쪽짜리 여남군뿐이었지만, 엄연히 북녘 방위의 핵심이므로 중임이라고 할 만했다. 고순을 여남태수로 전임하여 북쪽에 주둔한 여포의 부곡을 통솔하게 했다. 장료의 부장인 학맹을 예주별가에 임명하고, 성렴을 예주치중에 임명했다.
노숙을 대장군부 좨주로 삼았다. 원술이 대장군에 있을 적, 양홍이 맡았던 벼슬로 대장군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요직 중의 요직이었다. 수더분한 성정의 노숙이 알맞았다.
대장군부의 밑에는 5부 교위를 둔다. 기령이 역임했던 중부교위를 필두로, 서부교위, 동부교위, 남부교위, 북부교위가 있다. 듣기에 지위가 퍽 높지 않다. 교위라고 하면 아무래도 장군의 끗발에는 못 미치는 것 같으니. 그러나 꼭 의전 서열이 권력의 서열은 아니다. 5부 교위는 대장군의 직속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벼슬이었다. 게다가 각부 교위의 관질(官秩, 품계와 유사)은 비(比) 이천 석으로, 상당한 고위직이었다. 관질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즈음의 관질 체계를 짚고 넘어갈 필요도 있겠다. 관질은 품계가 사용되기 전 관리의 등급을 나누는 잣대였다.
대장군과 삼공에 준하는 벼슬아치들은 녹봉으로 350곡(斛, 10말)을 받았다. 그 아래가 중이천석(中二千石)으로, 삼공의 바로 아래인 구경(九卿)이 중이천석이었다. 구경은 광록훈, 대사농, 대홍려, 위위, 집금오, 소부, 태복, 태상, 정위를 말한다. 녹봉은 180곡. 그 다음이 이천석(二千石)으로 일국의 상이나 일군의 태수가 이천석에 해당했다. 녹봉은 120곡. 그 다음이 비이천석(比二千石)이었다. 내가 운운했던 5부의 교위가 여기에 해당했다. 그 밑으로는 천석, 비천석, 육백석, 비육백석 등의 차례로 나아가 말단의 일백석과, 두식(斗食), 좌사(佐史)로 이어지니 좌사의 녹봉은 8곡에 불과했다.
나는 5부 교위에 내가 가장 신임하는 다섯 무장을 임명했다.
중부교위에는 영자를 임명했다. 그는 5부 교위의 필두에 있을 자격이 충분했다. 본래 토역장군으로 있었으니 의전 상으로는 승진은 아니었으나 권력의 크기만을 따졌을 때 가장 큰 수혜자가 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나를 대리할 수도 있으니.
남부교위에는 진도를 임명했다.
동부교위에는 허저를 임명했다.
서부교위에는 만지를 임명했다.
북부교위에는 왕수를 임명했다.
왕수는 문사지 무장이 아니지 않느냐고? 명색이 대장군부의 최고 간부들인데 근육덩어리들만 모셔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렇게라도 구색을 맞춰야지.
차라리 감녕을 넣지 진도를 넣었냐는 항변이 나올 수도 있겠다. 감녕은 화평교위의 직위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대장군부에 편입시켰다. 유엽도 마찬가지, 청금교위의 직위를 신설하고 정식으로 대장군부에 포함시켰다. 따라서 대장군부 최고 간부 7인은 중부교위 손관, 남부교위 진도, 동부교위 허저, 서부교위 만지, 북부교위 왕수, 화평교위 감녕, 청금교위 유엽이 되었다. 세간에서는 이들을 통틀어 합비7교위라고 했다.
나는 양주자사에서 스스로 퇴임했다. 내 관할 영역은 이미 양주를 넘어섰고, 대장군의 권위로 충분히 휘하를 다스릴 수 있으니 양주자사의 벼슬은 나에게 거추장스러웠다. 원술을 오래 섬겼고, 양주별가로서 나를 도와준 염상을 양주자사에 임명했다.
량이는 늠가연사에 임명했다. 직급은 낮지만 힘이 강한 자리였다. 염상이 양주치중에 임명하려는 것을 내가 억지로 늠가연사에 임명했다. 량이는 입술이 약간 튀어나왔다. 치중은 자사부의 삼인자였으니까. 늠가연사는 아무리 실권이 세다지만 아무래도 끗발이 서지 않는 자리다. 딴에는 모란이에게 뻐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노구가 내내 나와 동격이거나 나의 군령을 받는 신분이었으면 주저하지 않고 그를 중부교위로 놨을 터다. 그러나 그는 내내 내 상급자였다. 그 만한 대우를 해줘야만 했다. 나는 그에게 수춘후의 작위를 내리고 수춘을 비롯한 구강군과 단양군의 방비를 주문했다. 좌장군 단양태수의 벼슬은 그대로 유지했다.
나에게 협조하기로 결단한 교유, 장훈, 두 양주파의 거물들도 대우해줄 필요가 있었다. 교유는 부릉현후의 작위를, 장훈은 음릉현후의 작위를 내렸다. 부릉, 음릉. 그리고 그 대우를 삼공의 아래인 구경의 예에 맞게 했다. 대신 군사적·정치적 실권은 부여하지 않았다. 그들 또한 이 틈바구니에서 목소리를 키울 기회가 없을 것을 아는지 순순히 이 처우에 응했다. 교유와 장훈은 일대에서 뻐길 수 있는 막대한 부 위에 앉아 떵떵거리고 잘 먹고 잘 살았다.
“일단 대강 조각(組閣)을 하긴 했지만, 인재들이 조금 더 충원됐으면 좋겠는데.”
량이와 독대하면서 내가 이렇게 중얼거리자 량이가 말을 받았다.
“그러면 충원하면 되잖아요.”
—-
133화 덧)
qoewh 모든 삼국지 소설에서 이렇게 매끄럽고 감동적으로 제후된건 처음인거 같아요. 다른 소설은 제후될때 무조건 푹찍이거나 설설 기는데 여기서는 무슨 형제들이 서로 너 해라 그런 분위기…넘나 좋은것! (2016.07.21 20:15)
–> 감사드립니다 헤헤… 저는 살벌한 것보다는 그래도 좀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가 좋아서요. 그래서 주인공이 등신이라느니 하는 얘기를 많이 듣지만 천성이 그래서 어쩔 수 없습니다 ㅜㅜ qoewn님의 취향에는 맞으셨다니 기분이 좋습니다!
(134화 업로드 시점에 qoewn님의 댓글을 확인하지 못해 리코멘을 못해드렸습니다 ㅎㅎ 항상 장문의, 그리고 힘이 나는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