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224
“어서와요.”
연회가 끝나고 이차도 안하고 바로 집에 와서 그런지 이제 막 해가 지고 있었다.
청이가 웃으며 반기자 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왜요?”
“그냥. 예뻐서.”
“후후~”
청이가 손을 잡아주자 난 마당을 보았다.
마당에서는 유와 석이가 작은 목검을 들고 가볍게 휘두르고 있었다.
“이얍!”
“얍!”
목검이라기보다는 그냥 나뭇가지 같군.
둘이 쑥쑥 목검을 휘두르는 것을 보며 서황은 담담히 말했다.
“사중세.”
“얍!”
어설프기는 하지만 자세는 잘 따라한다.
한의 무관이라면 당연히 익히는 제국검법이다.
어렸을 때부터 주입시키려는 건가?
내가 말없이 바라보자 청이는 상냥히 웃었다.
“어렸을 때부터 조금씩 가르치는게 좋다고 하더라구요. 사나 소도 익혔고, 창이와 식이, 충이도 익혔던 거에요. 좀 크면 조가와 하후가의 훈련법도 해보려구요.”
“오금희만으로는 안되려나?”
“오금희도 좋지만 간단한 검법과 무술 정도는 익혀두는게 좋죠. 진가에는 가전의 무술이 없잖아요?”
“음… 그렇긴 하지.”
진가는 내 대에 와서 번성한 가문이다.
그러다보니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게 별로 없었다.
내가 자리에 앉아 지켜보자 아이들은 다시 검을 휙휙 휘둘렀다.
그렇게 한참 자세를 연습하던 아이들이 축 늘어지자 서황은 목검을 당겨 잡은 후 검을 내밀며 예를 갖췄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겨울인데도 땀에 흠뻑 젖은 유와 석이도 공손히 서황에게 예를 갖췄다.
귀여운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버지!”
“그래. 그래.”
훈련을 하는 동안 나를 보고 나에게 오고 싶었을 텐데.
벌써부터 인내심을 배우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대견했다.
“고생 많았다. 힘들었지?”
“헤헤~”
“재밌었어요!!”
유와 석이가 쪼르르 달려와 안긴다.
성이와 휘, 율이가 큰 이후로는 이런게 적었는데.
아직 젖내가 나는 아이들을 꽉 끌어안아 준 나는 통통한 볼을 콕콕 찔렀다.
“땀을 많이 흘렸구나. 어서 씻으렴. 그냥 있으면 고뿔에 걸려요.”
“예!!”
“청 어머니! 같이 씻어요!”
“후후. 그럴까? 여보. 그럼 저는…”
“어… 그래. 같이 씻고 와.”
“당신도 같이 씻으면 좋을텐데.”
내 귓가에 속삭인 청이가 요염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만약 나까지 같이하면 내가 청이를 절대 그냥 두지 않을거다.
나이를 먹어도 매일 훈련을 하는 터라 청이의 몸은 군살 하나 찾아 볼 수 없다.
나도 남자인데 당연히 그런 걸 보면 참기 힘들지.
“애들도 있는데 그러긴 좀…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조금 참아.”
“우… 알겠어요.”
살짝 시무룩해졌던 청이지만 그녀는 곧 기운을 찾았다.
그녀가 유와 석이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난 서황에게 물었다.
“어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무예에 대한 자질은 없습니다.”
너무 냉정하구만.
서황의 말에 내가 인상을 쓰자 그는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하지만 자질이 중요한 것이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진가가 무가도 아니고. 적어도 어디가서 맞고 다니지 않을 정도로는 훈련을 시켜드릴 생각입니다.”
“어디가서 맞고 다니지 않을 정도면 어느정도야?”
서황은 나에게도 훈련을 시키고, 무술을 가르쳤었다.
그의 기준에서 나는 그냥 검 잡을 줄 아는 정도인데.
내 질문에 서황은 웃었다.
“글쎄요. 적어도 흑귀대 다섯을 상대할 정도로는 끌어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정도면 남들 패고 다니지 않을까 걱정해야겠는데?
내가 떨떠름해하자 서황은 씩 웃었다.
“그래도 힘들텐데 잘 따라와주어서 고마울 뿐입니다. 가주님 아이 아니랄까봐 인내심이 아주 대단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인내심으로 따진다면…”
서황은 과거를 추억하는 듯 부드러운 표정이 되었다.
“성이, 휘, 율이… 뿐만 아니라. 가주님보다 훨씬 대단합니다.”
그거 좋네.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인내심인데.
서황은 은근히 돌려서 말하고 있었다.
유와 석이는 대기만성형 인재라고.
그의 말에 내가 웃자 서황도 히죽 웃었다.
훈련을 한 이후의 정리를 위해 나와 서황, 주령이 움직였다.
목검을 치우고, 허수아비를 옆으로 옮기고.
그 외에 다른 작업을 하던 나는 목검을 한쪽에 옮겨 놓은 후 물었다.
“혹시 운철로 된 무기 필요해?”
“갑자기 왠 운철입니까?”
“익주 갔다가 운철을 얻었거든. 그정도 운철이면 보검을 몇자루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서황도 오랫동안 내 밑에 있어주었다.
그렇다면 그 보답을 해주는 것이 맞다 생각해 물었지만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왜? 좋은 무기가 있으면…”
“무기에 구애 받아야 할 정도도 제가 무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고.”
서황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 후 주령을 가리켰다.
“굳이 주시고 싶으시다면 주 도위에게 한자루 주십시요. 주 도위는 앞으로도 더 강해져야 하니까.”
“필요해?”
“주신다면야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럼 주령 것만 챙겨주면 되려나?
장합과 다른 녀석들에게는 나중에 물어봐야겠군.
아내들과 저녁을 먹고 빈둥거렸다.
역시 사람은 놀아야 해.
안채의 따뜻한 방에서 영이가 만들어 준 다과를 먹으면서 희아의 안마를 받았다.
아.
좋다.
역시 집이 최고다.
“후후후. 시원하신가요?”
“응. 진짜 좋다…”
“여기가 많이 뭉쳤네요.”
요새 신경쓸 일이 많아서 그런지 목 뒤가 뻐근했었다.
이렇게 안마를 받으니 좀 풀린다.
“다른 애들은?”
“씻고, 애들 재우러 가셨어요.”
“너는?”
“음… 저는. 후후후~”
나 안마해주려고 남은 거구나?
희아가 방긋 웃자 난 몸을 돌렸다.
“이제 손 아플 텐데 그만해.”
“괜찮은데.”
“손 줘봐. 내가 주물러 줄테니까.”
난 희아의 하얀 손을 잡아 주물럭거렸다.
힘을 최대한 안 줬는데도 조금 아팠던 모양이다.
그녀가 예쁜 얼굴을 찌푸리자 난 얼른 손을 떼었다.
“어이쿠. 아팠어?”
“조금요. 힘 좋으시네요~”
“그럼. 이래뵈도 내가 겪은 전장만 몇인데.”
“정말 다행이에요.”
희아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이제 위험한 일은… 없겠죠?”
“어…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익주 정벌까지 끝난만큼 이제 승상부주인 내가 직접 움직여야 할 만한 전쟁은 거의 없었다.
있다면 부여나 고구려 같은 외국과의 전쟁인데.
그건 나보다는 새로 부임할 원정 사령관이 나서는 것이 맞았다.
“내부적으로 개편이 많이 일어나게 되면 좀… 아무튼 그래도 내가 움직일 일은 없겠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내부에서 일해야 한다.
전쟁으로 인해서 소모된 국력을 돌리고, 또 무역, 개간, 발전 등 내정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먹고살지.
그러려면 내가 업에서 벗어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희아는 안도한 후 방긋 웃었다.
“다행이에요.”
“응. 다행이지.”
이제는 잘도 웃는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기댔다.
희아의 손길이 내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그게 기분 좋아 눈을 감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어머? 당신 쉬고 있었어요?”
“응. 왜 너만 와?”
“애들이 너무 울어서 완이랑 청이가 보러갔네요. 희아야. 너도 어서 씻어.”
“네. 언니.”
내 머리를 쓰다듬던 희아는 작게 아쉬워했지만 영이의 말은 지엄했다.
그녀가 일어나 나가자 영이는 내 옆에 앉았다.
“향기 좋다~”
“그렇죠?”
“응.”
영이의 무릎을 베고 누운 나는 천천히 눈이 감기는 것을 느꼈다.
청이와 함께 있으면 신나고, 완이와 함께 있으면 즐겁고, 희와 함께 있으면 편안하다.
하지만 영이와 함께 있으면 그냥 당연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영이의 앞에서 가장 많이 늘어지는 것 같다.
“피곤한가봐요?”
“응. 조금 그러네.”
여독이 아직 풀리지도 않았는데 연회에서 이래저래 일이 많아서 그랬는지.
아직 늦은 시간도 아닌데 잠이 온다.
영이는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상냥히 말했다.
“그럼 자요.”
“어? 괜찮겠어?”
오늘밤은 하얗게 불사지르려고 했는데.
내 질문에 영이는 예쁜 미소를 지었다.
“피곤해하는 당신에게 억지로 하자고 할 정도로 못된 아이는 이 집에 없어요.”
“그래…”
“연사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진가의 안주인으로서 적당히 교육시켜야겠네요.”
영이의 말에 난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진가윤의 연구소에서 가열차게 연구를 하고 있을 보연사.
전쟁도 끝났으니 이제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할거다.
등청하면 보즐부터 만나서 얘기를 해야겠군.
전쟁 전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말은 해놨으니 아마 올 춘일에 정식으로 결혼을 하지 않을까 싶다.
“괜찮으려나…?”
“뭐가요?”
“연사와는 나이차이가 꽤 되잖아.”
이제 이십대 초반인 보연사와는 무려 열 다섯살 이상 차이가 난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연사가 과연 진가에 잘 녹아들지 의문이다.
내가 중얼거리자 영이는 내 코를 살짝 비틀었다.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말아요. 진가는 제가 지키니까.”
“하하. 멋지네.”
과연 진가의 안주인.
영이는 우쭐해하며 살짝 내 이마에 입맞췄다.
“그럼요. 아버님을 빼고 제가 제일 높은데.”
“후후. 알아모십지요. 마님.”
“그래. 알면 앞으로 잘 하려무나.”
영이가 키득거리며 내 얼굴을 만지작거린다.
그 손길에 마음이 놓인다.
“으음…”
“졸리면 자요.”
“응… 그래야겠다. 무릎은…”
“괜찮으니까.”
“저릴텐데?”
“이러고 있으면 당신 잠드는 걸 계속 볼 수 있으니까. 쓸데없는 소리하면 입술을 비틀어 버릴거야.”
“이이 이으오이아아.”
“이미 비틀고 있다구요? 아하하~ 내 입술인데 내 마음대로 하는데… 문제라도?”
입술이 잡혀서 발음이 샌다.
영이는 맑은 웃음을 터트리고 입술을 놓아주었다.
“아뇨. 문제같은게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군소리 말고 어서 자요.”
“네.”
내가 잠드는 동안 머리를 기대고 있으면 다리가 아플텐데도 영이는 상냥히 말해주었다.
그녀의 상냥함에 매번 기대기만 하는 것 같다.
내가 씁쓸해하자 영이는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요 몇달간 전장에서 쌓인 피로가 천천히 풀리는 느낌을 받으며 난 스르륵 잠에 빠졌다.
이유하의 시대의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즐거운 시간은 항상 빠르게 흘러가고 힘든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그걸 이렇게 체감하게 되다니.
하루의 꿀맛같은 휴가가 휙 날아가버렸다.
“…등청하기 싫다.”
내 옆에 내 팔을 베고 누워 있던 청이는 씩 웃었다.
“하지 마요.”
“그랬다간 아마 나 잡으러 올걸? 진가의 가주가 승상부의 무관들에게 포박되서 끌려가면 사람들이 아주 즐거워하겠네.”
오늘은 양 사형이 쉬는 날이다.
사형의 성격상 내가 오늘 무단결근을 하면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거다.
넓은 침상에서 뒹굴거리는 것을 즐겁게 바라보던 청이는 내 가슴을 만지작거렸다.
“청아. 아침부터 그러면 안돼.”
“왜요?”
“그거야…”
자꾸 유혹하면 내가 하고 싶어지니까.
네명이나 되는 부인들과 회포를 푸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환상적인 시간이었지.
이걸 보면 나도 종요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아직 죽지 않았다.
어떻게든 네명이나 되는 부인들을 만족시켜줬으니까.
“그래도 괜찮은데…”
“하하.”
내 위에 누워버린 청이가 입맞춰주자 난 그녀의 등을 감싸안았다.
“좋은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는 않아.”
“치.”
내 볼을 쭉쭉 늘려 준 청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아침햇살을 받는 탄력적인 몸이 아름답다.
그녀를 향해 웃으며 난 자리에서 일어나 욕탕으로 향했다.
따라 온 청이와 함께 아침 목욕을 즐긴 후 관복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예상 외의 인물이 마당에 서 있었다.
“어라?”
관평이다.
저 녀석 형주에 두고 왔는데.
언제 온거야?
“네가 왜 여기 있냐?”
“어… 제가 오면 안되는 겁니까?”
관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저 돌멩이같은 모습 때문에 차였나?
“아니 그게 아니라. 손가는?”
“논공행상을 할 때 업으로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냐.”
“예. 오늘은 제가 모시려고 합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안될거야 없지. 주령도 슬슬 서주로 가야 할테니까. 주령!!”
“예.”
“관평도 복귀했으니까 너는 이제 가봐도 될 것 같은데?”
“예. 아까 관 도위와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밤에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허… 이렇게 보내도 되려나 모르겠네. 괜찮겠어?”
“흐흐흐. 물론이지요. 제 걱정은 말아주십시요. 관 도위. 부디 가주님을 잘 부탁드리겠네.”
“예. 걱정 마십시요.”
주령은 무뚝뚝히 대답한 관평을 위 아래로 흝어 본 후 작게 웃었다.
“이제는 저보다 훨씬 강해진 녀석이니… 가주님을 잘 지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가주님. 대신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도련님은 제가 목숨을 걸고 지킬테니 걱정 말아주십시요.”
그의 인사에 난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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