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231
익주에서 복귀한지 한달이 지나고 겨울의 한기가 슬슬 줄어들 무렵.
보연사가 업으로 들어왔다.
“음… 어서 와라.”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승상부주. 이게 이번년도 연구성과입니다. 서주 연구소의 성과는 이 소장이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업에 오자마자 보가에 가는 것이 아닌 승상부로 찾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보연사의 직책이 진가윤 연구소장이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상급자인 나부터 찾는 것이 맞기는 했다.
양 사형이 벌떡 일어나 휙 나가버리자 난 한숨을 쉰 후 그녀를 보았다.
몇개월 사이 뭔 일이라도 있었는지.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살짝 뒤로 묶은 덕분인지 풋풋함이 살아나 있었다.
원래 나이보다 다섯살은 어려보이는군.
살포시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그녀를 향해 난 쓴웃음을 지었다.
마냥 환영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은 보가에서 머물 생각이지?”
“그렇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고… 연구소 쪽의 일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인수인계는 끝났습니다. 순 소장이 진가윤 연구소를 담당하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겁니다.”
“그래…? 그 녀석. 업에 올 생각은 없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휘를 데리고 왔으면 싶었는데.
“…흐음.”
이상하게 어색하구만.
다른 애들이랑은 안 이랬는데.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나도, 보연사도 아니었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관평이었다.
“승상부주. 이제 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어. 그래.”
“어디 가십니까?”
“요새 할 일이 많아서.”
“여전히 공사다망하시군요.”
“아… 그렇다기보다는… 아니. 그런게 맞지.”
“예?”
“별 것 아니야. 아무튼 일단 보가에 가 있도록 해. 춘일까지 이제 한달 반정도 남았으니까. 그때까지 준비가 가능하겠어?”
“혼인식에 대한 준비는 이미 끝난 상태라…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보연사와의 혼인은 몇차례나 미뤄왔다.
그런만큼 따로 준비를 위한 기간은 필요 없었다.
익주에 가기 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예물같은 것도 준비가 되었고 혼인식때 입을 혼례의상도 벌써 마련되었다.
남은 것은 보가에서 그녀가 배워야 하는 명가의 법도 정도에 불과했다.
희아가 그것을 제대로 가르친다고 하니 그나마도 걱정이 없다.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업에도 연구소를 만들 생각이다.”
“신혼 생활이 끝나면 업의 연구소로 등청하게 될 것 같군요. 무엇을 연구해야 하는 겁니까?”
“일단 기본은 농법이지. 농법 이후에는… 노숙이 남긴 자료를 해독하고 그것을 가지고 좀 더 추가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있나 확인해볼 생각이야.”
“그거 다행이로군요. 안 그래도 노 스승님의 자료를 해독하며 몇가지 추려낼 것이 있었는데. 시설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그것들을 연구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예쁘게 미소지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난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을 본 보연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승상부주. 여전히 망설이고 계시는 겁니까?”
“망설임이라기보다는 미안해서 그런다. 난 이제 마흔이 다 되어가는데. 넌 이십대 초반밖에 되지 않았으니. 앞길 창창한 꽃다운 처녀의 앞길을 막는 것 같아서 괜히 양심이 찔리는군.”
종요를 욕할게 못된다.
그가 장창포라는 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부럽다는 이야기와 함께 주책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거기에 장창포도 꽤나 욕을 먹었었고.
괜히 나와 혼인을 하게 되어 오히려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기우에 불과합니다.”
“그렇겠지… 아무튼 그럼 잘 배워두라고.”
“예. 잘 다녀오십시요.”
보연사가 마차에 올라 보가로 향하자 관평은 그녀가 멀어지는 것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 시선에 난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아니요. 명가의 여인들은 원래 저런 가 싶어서.”
“그러고보니 넌 손상향과 어떻게 됐냐? 연락은 하냐?”
“가끔식 전서가 오고 있기는 합니다만…”
“답장은 해주냐?”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문재가 없어서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에게 도움을 받고는 있습니다.”
뭔 연서 보내는데 문재까지 필요한가 싶다.
난 관평의 등을 가볍게 쳐 주었다.
“할 수 있으면 답장은 제대로 보내줘. 나중에 바가지 긁히기 싫다면.”
“바가지… 알겠습니다.”
“그럼 가자고.”
관평의 호위를 받으며 황궁 근처에 도착하니 진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난 그를 위 아래로 흝어보았다.
“요새는 어떤가?”
“딱히 좋지는 않습니다.”
“그래? 뭣하면 편제를 바꿔줄까?”
“괜찮습니다.”
씁쓸한 표정으로 그가 답하자 난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의 팔을 몇번 쳐준 후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많은 서원군들이 무장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을 이끄는 서원군의 수장인 조태는 나를 보자마자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형님. 오셨습니까.”
“그래. 가자고.”
조태와 나, 관평이 앞장서서 운현궁으로 들어간다.
운현궁을 지키고 있는 것은 서원군이었다.
조태를 보자마자 그들은 길을 내주었다.
“친위병들은?”
“홍농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소제가 머무르던 곳을 치우게 하고 그곳을 지키게 했으니…”
“저항은 없었나?”
“저항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이 어쩌겠습니까.”
황제를 호위하는 모든 친위병들을 전부 홍농으로 발령 보냈다.
그리고 궁녀들도, 내관들도.
전부 홍농으로 보내버렸다.
덕분에 황제는 고립되었다.
손수 식사 준비까지 하고, 일처리까지 보고.
거기에 역대 황제들을 모셔 둔 사당도 관리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밤낮으로 황제를 찾으며 압박을 했다.
그렇게 한달여.
결국 밤에 잠도 자지 못하게 된 황제는 항복선언을 해버렸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동안 나도, 양 사형도, 그리고 덤으로 가 사형까지. 제대로 쉬지도 못했으니까.
“폐하를 만나려는 이들은?”
“없었습니다.”
조태의 대답에 만족하며 난 운현궁의 문을 열었다.
책상에 앉아 있던 황제는 나를 보자마자 까득 이를 갈았다.
“또 왔나?”
“예. 시간이 되었습니다. 가시지요.”
황제는 탄식을 터트린 후 다시 어금니가 부서져라 이를 갈았다.
그의 눈에서 쏘아지는 살기.
그리고 나를 향한 적의.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나는 이미 골백번은 죽었을거다.
“모시겠습니다. 폐하.”
“…자네는 절대 곱게 죽지 못할걸세.”
“그런 이야기는 많이 듣고 있습니다.”
그의 저주에 난 그저 웃음만 보였다.
지금 황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나나 양 사형, 가 사형과 위국을 향한 저주 뿐이다.
그럼 그거라도 하게 해줘야지.
그마저도 못하게 했다가 복장터져서 죽으면 어떡하나.
황제가 몸을 일으키자 난 가볍게 손을 들었다.
“폐하를 호위하라.”
운현궁에 들어온 서원군이 황제를 호위한다.
황제가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나는 천천히 그의 뒤를 따랐다.
황제와 함께 도착한 곳은 바로 왕부였다.
왕부의 앞에 깔아 둔 돗자리를 보며 황제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나는 왕부의 입구를 보며 말했다.
“시작하시지요. 뭐 그리 망설이십니까?”
“…큭. 내가 하기 싫다고 하면 어쩔 생각인가?”
“그럼 하지 마십시요. 하지만 언제까지 버티실 수 있을지 의문이군요.”
다시 한번.
황제는 나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하지만 고작 그 시선에 내가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은가?
난 그를 무시했고 결국 황제는 천천히 돗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위왕은 들으시게!!”
황제는 공손히 예를 갖춘 후 외쳤다.
그의 외침에 주변에 있는 나를 포함한 모두가 부복한다.
왕부를 지키는 병사들도, 왕부에 있는 시녀나 낭관들도.
그들 모두가 엎드린 것을 본 황제는 다시 강하게 외쳤다.
“위왕은 들으시게!!”
하지만 여전히 왕부에서 반응은 없었다.
다시 한번.
그리고 또다시 한번.
총 아홉번을 외친 황제는 왕부에서 나오던 말든 신경쓰지 않고 본격적으로 외쳤다.
“과거 역적 동탁, 그리고 이각에게 황실은 농락당하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네! 그것을 구한 것은 다름아닌 조가!! 우리 유가는 조가의 덕에 이만큼 버티게 되었어!”
천천히 왕부에서 조앙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을 본 황제는 입을 다물었다.
조앙은 평소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 화려한 예복을 입고 관까지 쓰고 있었다.
그가 나와 공손히 엎드리자 황제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외쳤다.
“유가가 오랫동안 하지 못한 천하의 안정을 이루고! 천하 만민의 평화를 구해낸 조가에 우리 유가는 마음을 바치려 하네!!”
황제는 옥새를 들었다.
한 황실의 상징이며 보물인 전국옥새를 양 손에 들어 올린 황제는 엎드린 조앙에게 다가가 말했다.
“드디어 자네에게 말할 수 있구만.”
지금까지 조앙은 황제가 와서 이짓을 해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귀를 막고 골방에 틀어박힌 채 병을 핑계삼아 만나는 것을 거절했다.
황제가 직접 세번이나 오고 나서야 조앙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디 이것을 받아주게. 자네 아버지에게 주지 못한 것을 이제야 주게 되는군.”
조앙은 고개를 조아린 채 외쳤다.
“폐하!! 위왕 조앙이 말씀드리옵니다! 소신이 비록 성인과 같은 덕을 갖추지 못하고! 명군과 같은 기개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본분에 맞지 않는 것을 탐하지 않사옵니다!”
“본분에 맞지 않다니!”
“이것은 소신 뿐만 아니라 조가에 역적의 오명을 씌우는 것과 같습니다. 신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계속하여 폐하를 모시고, 한을 수호할 것을 약속합니다.”
“비록 우리가 군신의 관계라고 하지만 나는 자네를 친형제와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네. 사양치 말게나.”
“폐하. 이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아니되는 일이옵니다. 부디 거두어주소서.”
“자수! 이러긴가?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폐허가 된 낙양에서였지. 어쩌면 그날. 백파적들에게 해를 당할 뻔 했을 때 자네가 나를 구원해줬을 때부터…”
황제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작게 신음한 후 천천히 말했다.
“어쩌면 이 날을 기다렸을지도 모르겠어.”
“소신. 그것을 받을 수 없사옵니다. 부디 무례를 용서해주시옵소서.”
조앙은 자리에서 일어난 후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가자 황제는 무릎을 꿇고 외쳤다.
“위왕!! 나와주게!! 부디 나와주시게!!”
하지만 조앙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가 들어가자 왕부의 문이 굳게 닫혔다.
황제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절했다.
그의 옆에서 엎드려 있던 나는 황제를 향해 말했다.
“그리 하셔서야 어찌 위왕께서 마음을 움직이시겠습니까. 눈물이라도 흘리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큭… 차라리 나를 칼로 한번 찌르지 그러나?”
“어쩔 수 없군요. 이번에는 실패라 생각하고… 다음을 노려봅시다.”
황제가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지금 얼굴을 보면 피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데.
딱히 울지는 않는군.
좀 더 연기 연습을 시켜야 하나?
난 힐끔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폐하를 모셔라.”
“예!!”
관평과 조태가 힘없이 축 늘어진 황제를 데리고 황궁으로 돌아간다.
그것을 보며 난 씩 웃고 왕부 안으로 들어갔다.
왕부에 들어선 나는 곧장 조앙의 집무실로 향했다.
아까 전까지 보이던 진중한 모습은 완전히 사라진 채 조앙은 긴 의자에 널부러져 있었다.
“하아… 솔직히 좀 그렇군. 눈에 뻔히 보이는 짓을 해야하나.”
당연하겠지만 이건 다 연기다.
조앙이 거절을 해?
충신?
말이 되냐.
한을 끝장내려는 사람들 중 하나가 바로 조앙인데.
그런데도 조앙이 계속 거부를 하는 이유는 주변의 시선 때문이었다.
아무리 뻔히 보인다고 하더라도 눈가리고 아웅은 필요한 것이다.
특히나 이런 일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이렇게 몇번만 더하면 될 것 같습니다만.”
“쓸데없는 시간 낭비 같다만. 그냥 끝내는 것이 어떨까?”
“이상한 소리 말고 시키는대로 하십시요.”
황제가 선양을 한다고 넙죽 받아버리면 말 그대로 역적 소리 밖에 듣지 못한다.
그러니 최대한 거절을 한다.
정말 하기 싫지만.
진짜 받기 싫지만.
황제의 간절한 요청에 ‘어쩔 수 없이’ 황제의 자리를 받는다.
라는 것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그 동탁도 상국의 자리를 받을 때 몇번이나 거절을 했습니다. 하물며 황제의 자리인데 날름 받아야 쓰겠습니까. 아직 세번 밖에 안했습니다.”
“에휴. 그래.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그럼 일 한거나 주십시요.”
“…이거 준비하느라 못했는데?”
조앙의 말에 난 인상을 썼고 그는 뻘쭘한 미소를 지었다.
“지, 지금 하면 되잖아.”
“빨리 하십쇼. 빨리. 이제 봄이 다 되어가는데 어쩌려는 겁니까? 왕부 쪽에서 쥐고 있던 토지에 논농사 지으려면 그쪽 처리가 우선인데.”
“어우. 뭔 시어머니여. 그냥.”
내 갈굼을 들으며 조앙은 투덜거렸고 난 한숨을 쉬었다.
“나중 되면 이정도는 정말 약과라고 생각할 겁니다.”
황제가 되면 할 일이 얼마나 많을텐데.
“…나 슬슬 후회되는데.”
“이제와서 되돌리기는 늦었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마십시요.”
능구렁이같은 인간 같으니.
어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레뎁니당
아오 더워 ㅋㅋ
집으로 왔더니 더 덥네요
그나마 다음주는 좀 시원해진다니 그나마 다행…
으…
35도인데 시원해진다니 참나
ㅋㅋㅋ
다들 몸 조심하셔유.
대댓글 갑니당!
트릭스타 // 그러게요 참 제 자신을 칭찬합니당
10004귀찬 // and i also 시.공.조.아.
Dunkel // 예. 그 뭐시냐. 균형을 맞춰야… 악, 중립, 선… 그리고 다시 악 ㅋㅋㅋ
인핀 // 절대악까지는 아니네요 ㅋㅋ
윤하 // 한번 더 극대노 ㅋㅋㅋㅋ
새벽산책 // 근데 그게 매년 있잖아요 ㅠㅠ
땡굴이시 // 흐, 흐흥, 따, 딱히 고마워서 인사한건 아니라구!
Nesstor // 아 그렇군요. 그런거면 없겠네요 애초에 진유하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치형태가 철인정치라서…
실버스타 // 위국 만세!
룬카이스 // 오 ㅎ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얼마 안남았네요 ㅎ
허클베리fin // 동탁이나 이각마저도 안한 짓이죠 ㅎㅎ
으아…
그럼 내일 봅시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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