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7
00017 지키겠습니다. =========================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 어여쁜 여종과의 이런 것, 저런 것이 사라졌다는 것에 절망하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접니다.”
“들어와.”
요화의 목소리다.
더 할 얘기가 필요한가?
문을 열고 들어 온 요화의 옷차림은 평소에 입던 복장이 아닌 거지복 이었다.
“그래. 마음 정했냐?”
“네.”
“잘 됐네. 근데 옷은 왜 그걸 입고 있냐?”
“예?”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요화를 시큰둥히 바라보며 물었다.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요화는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좋은 옷 내버려두고 왜 그거 입고 있어?”
“그… 도련님을 떠나게 되는데 도련님이 주신 옷을 입는 것은…”
“야야. 그런 거 신경쓰지마. 우리가 남이가~!”
“남이 아니라고 하심은…”
“아니, 생각해보니 남이군.”
“…..”
“됐고. 옷은 그냥 그거 입어. 뭐 장 선생의 제자로 들어가는 건데 나중에 좋은 옷은 받겠지만 그래도 이제 조금만 있으면 날도 추워질텐데 가다가 고뿔이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냐.”
“도련님…”
“그거 가지고 좀 감동하지 마라. 부담스러워 죽겄네. 이거나 받아.”
아버지에게 받은 전낭과 비상시에 써먹으라고 챙겨 놓은 붕대, 그리고 꿀과 향초를 넣은 짐을 그에게 던졌다.
묵직한 짐을 받은 그가 그것을 풀어보고 눈물을 흘리려 한다.
“도련니임..”
“울지 좀 말라고. 좀.”
“흑…”
결국 눈물을 흘려버린 요화의 모습에 난 한숨을 내쉬었다.
얘는 진짜 감수성이 되게 예민한 애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살려고 그러나.
“헛짓 말고 잘 배우고 와. 이왕 배우는거 장 선생 정도는 꺽어봐야 되지 않겠냐?”
“흐흑…흑… 네.”
“거기가 살기 좋으면 굳이 내려 올 필요는 없고.”
“흑… 반드시 돌아 오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괜히 좀 배웠다고 나대지 마라.”
만약 삼국지대로 흘러간다면 몇년 안에 동탁이 득세하고 반 동탁 연합군이 만들어질 것이다.
한복도 반동탁 연합군에 참전하게 될텐데 장합에게 배웠다고 나대다가 전쟁터에 끌려갈까 걱정이다.
“네?”
“아니. 그냥 해보는 소리야. 아무튼 몸 조심해. 왠만하면 전쟁터 같은데는 가지 말고.”
그래도 함께 한 정이 있고 나름 날 지키려고 용을 썼던 녀석인데 이정도 주의는 해줘도 되겠지.
“전쟁터… 라뇨? 난은 끝났잖습니까.”
“말했잖아. 세상이 뒤숭숭하다고.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게 세상이야. 그러니까 괜히 까불지 말고 얌전히 배울거나 배워둬. 장 선생이 어떻게든 전쟁터에 데려가야겠다고 하면 그냥 내려와. 다 못배워도 괜찮으니까. 너 가르칠 사람이 장 선생 밖에 없겠냐.”
“…네.”
“내가 심폐소생술을 가르칠때 사람들에게 하는 말. 알지?”
“…죽는 것 보다는 낫다.”
“그래.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가끔은 도움이 되지. 괜히 위험한 길을 갈 필요는 없어. 전쟁터에서는 뛰어난 장군도 눈먼 화살을 맞고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들었어. 그러니까…”
“알겠습니다. 도련님.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음… 그리고 유모에게 말해뒀으니까 주방에서 음식 좀 받아가. 가는 길에 먹어. 장 선생 하는 꼴 보니 가다가 굶어죽지나 않으면 다행이겠다.”
아무리 비밀임무라지만 밥도 못 얻어먹고 다니는 것이 어이가 없을 정도다.
그렇게 돈 관리 못하는 인간이랑 같이 다니다가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굶어 죽는 꼴은 못본다.
“시장에서 처럼 멍청하게 금전 함부로 내놓지 마. 네가 장 선생 정도의 실력을 가졌다면 모를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도련님.”
“뭐.”
낮에 시장에서의 일을 떠올리면 한 일주일 정도 잡아두고 잔소리를 하고 싶다.
이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를 보내려니 은근히 걱정이 된다.
해줄 충고를 더 찾고 있는데 요화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조용히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뭐가. 또. 아. 진짜 울지 좀 마라. 넌 사내새끼가 왜 이렇게 잘 우냐?”
은근히 눈물이 많은 요화다.
덩치는 산만한 주제에 이렇게 잘 울어서 잘도 호위무사 해먹겠다.
“도련님.”
“왜.”
“늘 궁금했는데… 왜 저를 받아주신 겁니까? 왜 저에게 잘해주신 겁니까? 왜 이렇게까지 챙겨주시는 겁니까?”
“불만이냐? 그럼 내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챙겨 준 봇짐을 소중히 끌어안은 요화는 붕붕 고개를 저으며 당황스러워 했다.
그런 그를 뚱하니 쳐다보던 나는 의자의 등받이에 등을 기댄 후 천천히 말했다.
“특별히 의미는 없는데. 내가 너의 자질이나 충성심을 보고 널 데려 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해.”
“예? 그, 그런게 아니었어요?”
“야. 내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처음 보자마자 자질을 판단하겠냐? 장 선생이나 아버지 정도 되면 모를까. 나한테 그건 무리야.”
처음 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나는 물론이거니와 이유하의 경험에도 없는 것이다.
만약 있었다면 영업부가 아니라 인사부에 들어갔겠지.
“그런데 왜…”
“나도 몰라. 그냥 마음이 동했다.”
삼국지의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 난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대꾸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음이… 요?”
“그래. 아니, 그냥 마음에 든 사람 데리고 가는게 이유가 필요해?”
“….”
“너 악희 왜 좋아하냐? 뭔가 이유가 있어? 얼굴이 이뻐서? 불쌍해서? 그런 것은 하찮은 외적인 이유에 불과해. 결국은 악희가 네 마음에 들어갔다는 것 때문이잖아.”
“좋아하는 거 아니라니까요!”
“너 자꾸 아닌척 개수작 부리는데… 지금 인정 안하면 너 없는 사이에 악희 시집보낸다.”
“…..”
악희는 관청의 하녀이지만 아버지가 받아들인 하녀이기도 했다.
하녀가 어디에 시집갈지를 고를 권리는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만큼 내가 청하면 악희는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내가 원하는 곳에 시집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건 네가 악희랑 얘기해서 정할 일이고. 아무튼 그냥 마음이 끌려서 널 받아들인 것 뿐이니까.”
“도련니이임…”
“따, 딱히 네가 좋아서 받아들인게 아니니까 착각하지 말라고.”
마지막은 정석대로.
내가 말을 마치자 요화는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겨우 닦아내었다.
“그래. 됐냐? 이제?”
“네. 별다른 이유가 없이… 그래서 받아들이셨다구요.”
요화는 조금 홀가분해졌는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 됐나? 내가 입을 다물고 죽간으로 시선을 돌리자 요화는 한걸음 다가 온 후 무릎을 꿇었다.
“도련님.”
“왜. 왜.”
“…저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어떤 적이 나타나더라도…”
“….”
“도련님을 지키겠습니다.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도련님을 지키겠습니다.”
“장하다. 요화. 잘 배워서 내 앞을 막는 적을 물리쳐주렴.”
“네!”
“그럼 가라. 나 이제 잘거니까. 장 선생이 내일 새벽에 나간다고 하는데 배웅 안해도 되지?”
“물론입니다. 전 반드시 도련님께 돌아올 것이니까요.”
“그런 말은 악희한테나 해라.”
“…네.”
달아오른 얼굴로 뻘쭘히 고개를 끄덕인 요화는 다시 한번 내게 인사하고 나갔다.
“하아. 호위무사를 새로 고용해야 하나…”
그래도 요화가 있어서 잡일 처리하는데는 편했는데.
이제 민이 형도 없고 요화도 없으니 뭐하고 놀아야 하나.
난 한숨을 푹 내쉬고 침상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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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는 다 되었느냐.”
“네.”
새벽 닭이 울기도 전에 장 선생은 짐을 챙겼다.
이제부터는 그를 스승으로 받들어 모셔야 한다.
그의 모든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부담스럽다.”
“네…”
도련님도 그리 말씀하셨지.
내 눈이 부담스럽다고.
괜스레 눈물이 날 것 같다.
옷 소매로 쓱쓱 눈을 닦고 나서 장합의 뒤를 따랐다.
“잘 봐두거라.”
도련님을 모시게 되고 익숙해진 관아도 이제 당분간은 볼 수 없게 된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멀어지는 관아의 입구를 향해 시선이 돌아가는 것을 보다 못한 장 선생이 발걸음을 멈췄다.
“돌아 올 곳이 있다는 것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지. 네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네 마음을 다스리는 법이다.”
“예…”
“어제 내가 네 주인인 유하에게 재능이 없다고 말했지.”
“네.”
도련님에게 재능이 없다고 단언해버린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스승이 될, 아니 스승님이라 불러야 할 사람이다.
군사부일체라. 나에게 주인이신 도련님과 스승이신 장 선생님이 동급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도련님은 마음의 스승이시기도 하니 내게 있어서 장 선생이 도련님보다 높지는 않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 말대로다. 유하에게 무관으로서의 재능은 없어.”
“…네.”
똑같은 말을 두번이나 하다니. 내가 뚱한 얼굴로 답하자 장 선생은 빙긋 웃었다.
“허나 유하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뛰어난 재능이 있더구나.”
“그게… 뭡니까?”
“마음. 그것을 다스리는 재능은 내가 지금까지 본 이들 중에 유하가 최고더구나.”
“마음을 다스리는 재능…”
“그래. 그때 나는 너희들을 죽일 생각으로 살기를 뿌렸다. 그정도라면 유하 또래의 어린아이라면 울거나 기절을 하는 것이 당연할 정도겠지. 너도 그것을 느끼고 칼을 뽑지 않았더냐.”
“그렇…죠.”
식당에서의 일인가?
다시 생각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다.
그때 내가 어떻게 칼을 뽑았는지 기억도 안난다.
“그때 유하는 두려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웃었다. 나와서 보니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한데도 불구하고 공포를 이겨내고 오히려 웃었단 말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공포를 이겨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도련님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지?
무력만으로 따진다면 나는 커녕 동네 왈패 하나도 감당할 수 없는 도련님이 왜 장 선생의 그 살기 앞에서 웃을 수 있었던 걸까?
“아마 내가 진짜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든가, 아니면 죽음 앞에서도 웃을 수 있는 강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겠지.”
“…..”
“요화. 너도 반드시 그것을 배워야 한다.”
“도련님은…”
“음?”
“도련님은 죽음을 이겨내시는 분입니다. 소생술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래. 이 현에서는 유명하더구나. 유하가 그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쳤다지?”
“죽어가는, 누구나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을 살리려고 나선 분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살리기도 하셨구요.”
“흐음…”
“그런 도련님입니다. 죽음 앞에서 웃는 것도 당연하겠지요. 오히려 죽음 조차도 그분의 앞에서는 웃음거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반드시 도련님은 그러하실 것이다.
늘상 농담을 즐기시고 날 놀리시는 것을 좋아하시지만.
도련님이 그때 보여주신 모습은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죽음을 이겨내려고 하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난 그때 그 모습에 반했을지도 모른다.
“죽음을 앞에 두고 웃을 수 있는 자라. 무재만 있었더라면 천하제일인은 유하가 될 수도 있었겠군.”
“대단하신 분입니다.”
“그래. 대단한 녀석이지.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그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크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너는 유하를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울 것이 아주 많아.”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래?”
장 선생은 빙긋 웃은 후 몸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그를 놓칠새라 나 역시 발을 바삐 놀렸다.
“힘들다고 엄살을 부려봤자 봐줄 생각은 없다.”
“바라던 바입니다. 부디 저를 단련시켜주십시요.”
망설임은 없다.
도련님을 반드시 지키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고난도 이겨낼 것이다.
이런 말을 도련님께 건넨다면 도련님은 또다시 타박하겠지.
불과 몇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도련님과 함께했던 시간은 이미 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었다.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망설임을 날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번 더 관청을 보았다.
아마 도련님은 주무시고 계실 것이다.
내가 반드시 돌아올 것을 믿고.
그렇다면 그 믿음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난 최선을 다해 배워야 한다.
“제가 강해질 수 있겠습니까?”
“재능은 있으니 강해질 수 있겠지. 하지만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
“황건적의 난 때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의 강함을 보인 이들이 몇 있었다. 그들만큼은 힘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수준까지는 끌어 올려 볼 생각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돌아보지 마라. 돌아 올 곳에 미련을 가지는 것도 너에게는 사치다.”
“네.”
장 선생의 말에 난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강해지는 것만 생각해야 한다.
도련님을 위해서.
도련님을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도련님을 지키겠습니다.”
“글은 아느냐? 기주에 도착하면 곧장 유하에게 서신을 써서 걱정하지 않도록 하자꾸나.”
그래. 도련님이 날 걱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도련님 성격이라면 어떤 글귀를 보내는게 좋을까?
떠나기 전날에도 날 놀리던 도련님을 떠올리자마자 어떤 글을 써야 도련님이 가장 걱정하지 않을지 알 것 같았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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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음?”
요화가 떠난지 한달이 지났다.
전 군승님께 받은 식량을 다른 곡식으로 바꿔 구휼미로 나눠주고 남은 것으로 뭘 하는게 좋을까 구상하던 내게 유모가 서찰 하나를 들고 달려왔다.
“왜?”
“서신이 왔어요!”
“나한테? 누가?”
“요화가 보냈어요!”
“오호… 벌써 도착했나? 아니, 그런데 걔 글 모르지 않나?”
한달만에 서신을 보낸 것도 신기한데 글까지 배웠단 말야?
이야~ 장 선생이 아주 제대로 가르치고 있나본데?
유모가 준 죽간을 받아 그것을 펼쳐보고 난 피식 웃었다.
“글씨가 아주 그냥 개판이여. 이제 막 배웠나보네.”
“뭐라던가요? 잘 지내고 있답니까?”
난 죽간에 적혀 있는 엉망진창인 글씨를 보고 키득거렸다.
“잘 살고 있다네.”
서신에는 ‘살려주세요’ 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