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84
00184 필요와 불필요 =========================
“잘 못들었습니다만…”
주유의 당황한 얼굴을 보며 난 웃었다.
옥새.
있으면 좋지.
그런데 나한테는 정말이지 큰 의미가 없는 물건이다.
그거 가지고 있어봤자 뭘 하겠나.
어차피 황제는 조조가 차지할 것이다.
물론 조조가 황제를 차지하지 못할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옥새가 중요할지도 모르겠지만 사형이 꾸민 일이고 사마의가 지원했으며 조조가 진심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난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만약 실패한다면?
그럼 뭐 어쩔 수 없이 지루한 힘싸움만 하는거지.
내가 가지고 그걸 조조에게 가져다 주는 것보다는 나았다.
애초에 독립 세력을 꾸밀 거였으면 이미 했다.
지금 서주목이나 다름없는게 난데 뭐가 문제겠나.
난 이미 조조의 신뢰를 듬뿍 받고 있으니까.
신하가 옥새를 가지고 있다가 그것을 바쳤을 때 군주는 그 신하를 신뢰하고 중용한다.
하지만 이미 신뢰를 받고 중용되고 있는데 굳이 저것까지 바칠 필요가 있을까?
너무 많은 신뢰와 중용은 오히려 적을 부른다.
있으면 좋지만 딱히 주유와 거래를 해가면서까지 가져야 할 이유는 없기에 난 무덤덤히 말했다.
“그거 필요 없다고.”
“왜요!? 옥새입니다!! 한 황실의 상징인 옥새!! 갖고 싶지 않습니까!?”
당황스럽겠지.
나와 조조의 관계를 모르니까.
고작 저따위 옥으로 만든 도장에 뭔 가치를 부여하려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관점을 조금 바꾸면 저건 가지고 있어봐야 아무짝에 쓸모없는 짐덩이다.
주유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려 있는 것을 보며 난 입가의 미소를 지웠다.
“한 황실의 상징은 황제 폐하이시지 그깟 기물이 아니야.”
“…하.”
주유의 굳었던 얼굴이 풀린다.
그의 입가에 짜증을 감추려는 듯 억지로 그린 미소가 그려지자 난 마주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 기회. 손가와 거래를 하는 조건으로 뭘 걸겠나?”
“뭘 원하십니까?”
주유의 질문에 난 더욱 짙게 웃었다.
“너.”
“…저는 남자 취향이 아닙니다만.”
“나도 남자 취향 아니야. 솔직히 말하지. 이미 방통이 제안했을텐데?”
“…..”
내 질문에 주유는 입을 다물었다.
방통이 손책과 주유, 둘이 서주로 오는 것을 제안했었고 그들은 거절했었다.
그렇기에 방통은 그들을 죽이려 했고.
“내 주군이신 연주목도 그렇지만 나 역시 인재는 중시 여기고 있어. 그런만큼 너, 그리고 손가의 사람들만큼 나에게 있어서 정말 필요한 사람은 없지. 그러니 제안한다. 나에게 와라.”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만… 왜 접니까? 왜 저희입니까? 당신에게 있어서 저희는 그저 원술에게 기대어 살고 있는 작은 헛개비에 불과할텐데.”
“헛개비인지 반고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나야.”
주유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하자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유, 그리고 손책.
이들을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조조는 어렵지 않게 강남까지 정벌할 수 있게 될 것이고 파촉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조조의 세력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원소를 꺽을 수 있었을 때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옥새따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는 일.
그렇기에 난 주유에게 제안했고 주유는 어이없다는 듯 멍청히 날 바라보았다.
“……”
머리 돌아가는 소리 들린다.
난 웃으며 그를 보았고 주유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다문 채 생각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래뵈도 공사다망하신 분인지라.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어.”
“만약 제가 거절한다면 어찌 하실 생각이십니까?”
“뭘 어째.”
주유의 질문에 난 손을 들어 내 목을 톡톡 쳤다.
널 죽이겠다.
그 의미를 눈치챈 주유의 이마에 땀 한방울이 뚝 떨어졌을 때 그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이런 방법으로 등용한다 하여 제가 충심을 다할 것 같습니까?”
“충성따위 필요도 없고 기대도 안해.”
“그럼 왜…!”
“두려우니까.”
“…..”
“말해줘? 난 솔직히 말해서 겁쟁이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내 사람을 지키는 정도에 불과하고 하고 싶은 일이라고는 그저 내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정도라고. 작지?”
“그게 무슨…”
“방통에게 들었다. 손가의 뜻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손 장군의 의지를 품겠다고? 좋네. 그런 대의. 그런데 어쩌지? 나에게는 대의따위 없어. 관심도 없고 이루어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을거야. 그리고 그 대의는 내 주군이신 연주목께서 이루겠지. 그리고…”
주유를 마주하며 난 씩 웃었다.
“손가의 대의는 연주목께 방해다. 자. 대답해. 날 따르겠나? 아니면 손가의 그 멋진 의지를 따르겠나. 나와 함께 하자고. 대의? 그런게 뭐가 중요한데? 신의? 그따위 것 지켜서 뭐하려고? 내가 존경하는 어느분께서 이런 상황에 쓸 수 있는 좋은 말씀을 하셨는데 한번 들어볼텐가?”
난 이유하의 기억 속에 있는 명언을 떠올렸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할까. 화산의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할까. 우리도 이같이 하여 백년평화를 누리면 또 어떠할까.”
“…저에게 배신을 하라는 것입니까. 친우를, 존경하는 저의 영웅을 배신하라는 겁니까?”
하여가.
이방원이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해 지었다는 시를 읊었을 때 총명한 주유는 단박에 그 뜻을 깨닫고 이를 갈았다.
강렬한 적의를 마주하며 난 담담히 말했다.
“왜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그건.”
“묻겠다. 손견의 대의는 무엇인가.”
“백성을 사랑하며 나라를 발전시켜라! 많은 이들의 아픔을 기억하며 그들의 뜻을 살펴라! 백성의 뜻이 곧 천의이다!”
좋네.
말은 참 좋아.
예전 양양에 있을 때 상인들이나 손견을 따르다가 손견의 죽음 이후 상인들의 호위무사가 된 병사들에게 몇번 들었던 손가의 대의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래서… 그 대단한 대의를 갖추고 손가를 이끄신 손견께서는 그 대의를 위해 무엇을 실천하셨나?”
“그건…”
주유의 입술이 멈췄다.
그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난 웃으며 또다시 물었다.
“하비에 처음 오신 것 같은데… 하비를 처음 봤을 때 어떠셨나? 백성들의 삶이 고통스러워보였나? 발전이 없었나? 그들의 뜻을 하비에서 무시했나?”
당당하게 손가의 대의, 손견의 뜻을 말한 주유가 할 말을 잃고 머뭇거렸다.
쪽팔리겠지.
손견이 한 일보다 확실히 내가 한 일이 더 대단할테니까.
마마를 잡은 것은 둘째치고 주유는 하비를 보았다.
하비 백성들의 삶을 자신의 눈으로 보았다.
그 어떤 도시의 백성들보다 더욱 평화를, 삶을 누리고 있는 백성들을 보았다.
지금 천하의 어딜 가도 하비만큼 백성들이 살기 좋은 곳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세상에 어떤 백성들이 야밤에 나와서 축제를 즐기고 먹을 것을 사먹겠나.
세상에 어떤 도시에서 그들이 즐기는데 관아에서 비용을 내고 즐기게 해주겠나.
특별한 명절도 아닌데.
황가의 축일도 아닌데.
그저 정기적으로 달이 바뀔 때마다 한번씩 이렇게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곳이 어디 있겠나.
즐긴다는 것은 여유를 가진다는 말이다.
여유를 가진다는 것은 곧 그들의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말한다.
백성을 사랑하며 나라를 발전시켜라?
많은 이들의 아픔을 기억하며 그들의 뜻을 살펴라?
백성의 뜻이 곧 천의다?
그렇다면
“너도 알겠지? 아니… 이미 눈치챈 것 같은데?”
할 말을 잃은 주유를 비웃었다.
그가 잘난 듯 떠드는 그 손견의 대의가 그것이라면.
“내가 곧 손견의 대의다.”
“…..”
주유는 항변하고 싶었는지 입술을 달짝거렸지만 그는 결국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하얗게 질려있는 그를 마주하며 난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현명한 판단을 할 시간을 주지.”
“제가 돌아가지 않으면 원술이 분노할 것입니다. 원술과 싸우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뭐 굳이 싸울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은데.”
난 웃으며 그에게 말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과연 주유가 어떻게 받아들이려나…”
“뭐라디?”
“옥새 줄테니까 원술을 같이 공격하자더라. 나쁜 제안은 아니다만 더 좋은 제안이 있어서 그걸 시도했지.”
밖에서 기다리던 방통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주유에게는 대차게 말했지만 나나 방통이나. 아마 양 사형도 지금 원술과 싸우는 것은 득될 것 없다고 할 것이다.
“주유를 끌어들일 생각이냐? 이거 너무 모험 같은데.”
“어쩔 수 없지.”
“흐음…”
“왜?”
“아니. 받아들이는 건 좋은데 원술을 상대할 때 무리가 생길 것 같아서. 너도 알겠지만 주유는 손책의 절친한 친우이며 손가에서도 꽤나 유명한 사람이야. 그런 사람을 볼모로 잡아두고 있다면 손책이 오히려 힘을 얻지 않을까? 피눈물을 흘리며 원술에게 부탁을 한다면…”
“그걸 바라는 거다.”
“…응?”
“서주에 대한 공략을 위해서 하비를 염탐하러 온 주유를 포로로 잡았다. 그리고 죽기 직전까지 고문해서 원술의 정보를 캐내려 했다.”
“응. 그래서?”
“손책으로서는 열받을 수 밖에 없겠지. 또한 손가의 가신들 역시도 분노할거다. 그렇기에 손책은 목숨을 걸고 서주를 공략할 것을 천명한 후 원술에게 손가의 힘을 돌려받으려고 할거다.”
손책과 주유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주유가 손가를 위해서 현재 적대 관계인 나에게 거래를 하러 왔다.
그렇다는 것은 그가 손가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이고 손책은 손가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주유를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원술로서는 그것을 막을 명분이 없어. 아무리 자기가 되도 않는 명분을 이용한다지만 손책의 행동은 가족을 구하러 가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그것을 막았다간 그는 손책 뿐만 아니라 다른 부하들의 신뢰마저도 잃을 수 있다. 원술은 마땅히 댈 핑계가 없겠지. 손가의 사람을 손가의 사람이 구하러 가겠다는 것을 막았다간 오히려 자신에게 불리한 일만 생길테니까.”
“…..”
“그리고 그때 손가의 힘을 우루루 끌고 온 손책과 거래를 할 생각이야. 지금 주유와 협상을 해서 원술을 잡니 마니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결과적으로 병력의 손해는 극심해질테니까.”
난 웃으며 말했고 방통은 어깨를 으쓱였다.
“너무 위험한 방법 아닌가?”
“가끔씩은 모험을 해야할 때도 있는 법이야. 위험부담 없이 이득을 얻을 수 없다면 그 위험부담을 최소화시켜 이득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쓰는게 낫겠지. 주유를 잡고 그가 우리에게 호의를 가질 수 있게만 만들어 놓으면… 손책과의 협상에서 우리는 아주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거다. 예를 들면… 손책과 주유 뿐만 아니라 손가 전체를… 말이지.”
“그건 좀 너무 과하다~”
“물론 이건 협상이 잘 됐을 때 얘기고. 적어도 우리와 원술이 대놓고 치고박고 싸울 일은 없어지겠지. 우리 대신 손가가 원술과 싸워줄테니까.”
“진짜 맘도 약하네. 나같으면 일단 주유를 죽여놓고 시작하겠는데. 잘만하면 아예 주유가 그 머리를 손가를 위해 쓰지 못하게 할 수도 있을텐데 말이야.”
“뭐 임마? 내가 무슨 맘이 약해. 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거라고.”
살다살다 나보고 맘 약하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본다.
내가 짜증을 내자 방통은 피식 웃으며 내 등을 팡 후려쳤다.
“짜식. 내가 그래서 널 좋아한다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애들 불러서 교대로 주유를 감시하라고 해. 이상한 지하감옥에 쳐넣지 말고 귀빈 대접을 해야 해. 나중에 손책이 온다면 그때 그와 협상할 때 주유가 개판이면 그 인간이 협상이고 나발이고 다 엎어버릴테니까.”
“알았어.”
방통이 다른 병사들에게 이야기 하러 가자 난 창틀을 잡았다.
방통에게는 최선이라 말했지만 솔직히 망설여졌다.
주유를 죽이는 것에 대해서.
어쩌면 여기서 주유를 끝장내버리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손책이 주유의 도움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손가의 힘을 되찾는다 하더라도 얼마나 갈 수 있을까?
과연 삼국지대로 오라는 나라를 세울 수 있을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주유를 죽이는 것이 도움이 될까? 라는 질문에 난 확답을 내릴 수 없었다.
“…하아.”
주유를 죽이면 손책은 눈이 뒤집혀질 것이다.
당장 나만해도 방통이나 서복, 사저가 다른 누군가에게 죽는다면 조조의 명령이고 나발이고 다 제쳐두고 그 놈부터 찢어죽이러 갈테니까.
그리고 그것은 내 부하들 역시 마찬가지로 움직일거다.
지금의 손책과 나는 굉장히 비슷한 상황이다.
손책이 비록 원술의 명령을 받고 있지만 원술에게는 손가의 힘이 남아 있었다.
만약 내가 주유를 죽인다면 손책은 눈이 뒤집혀져서 손가의 사람들을 모두 끌어모을 것이다.
아직까지 원술의 세력 내에 ‘손가’ 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면 원술의 세력 밑에서 기회만 보고 있는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그들이 가만히 있을까?
탈영에 대한 죄를 받더라도 그들은 이를 갈며 무기를 들고 손책에게 합류할 것이다.
쥐도 새끼를 건드리면 고양이를 물어 뜯어 죽이려 한다.
하물며 호랑이의 새끼이고 삼국지에서 소패왕이라는 이명까지 얻은 손책이다.
그런 손책을 의미없이 자극하여 그와 철천지 원수가 되는 것은 나에게도, 그리고 서주에게도 좋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주유를 죽이는 것보다 이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손견의 대의.
그것이 백성에 대한 것이라면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
그의 대의가 도대체 뭔 소리를 하고 뭘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미 그 대의를 실천하고 있으니까.
하비에 들어온 주유라면 알 것이다.
백성들의 삶이 제대로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그로서는 나에 대한 사감은 제외하고 내가 옳다는 것을, 내 행동과 정치가 백성을 위함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손책과 협상이 가능하다.
주유를 잡고 있고, 또 그의 목숨을 빌미로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손책을 회유할 수 있다.
그것도 그냥 손책만 회유하는 것이 아니라 손가의 힘을 대부분 보유한 손책을 말이다.
“어차피 먹어야 하는 것이라면… 털 하나도 아까우니…”
통째로 삼켜버리자.
손가의 저력을.
손가의 힘을.
그리고 미래의 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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