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310
00310 역사를 마주하면 =========================
“쓸데없이 의심이 많구만. 이걸 어찌 해야하나.”
난감해하는 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이름을 이용해서 나와 조조의 관계를 틀어 놓을 수도 있으니 주의하자.
난 그를 말없이 바라보았고 정현은 어깨를 으쓱인 후 서랍장을 열었다.
“일전 공대에게 받은 서찰이 있다고 하더라도… 믿지 않겠지?”
“충분히 위조가 가능할 뿐더러 실제로 아버지에게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믿을 수는 없지요.”
“하하핫!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진동장군. 믿어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소. 다만 장군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니까. 장군도 병법을, 정치를 안다면 대화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알고 있지 않소?”
그의 말대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
모든 병법서, 정략서를 뒤져서 가장 좋은 승리법은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승리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상대와의 대화였다.
그런데 저렇게 나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뭔가 속셈이 있기 마련이지.
“날 믿지 않는 듯 하는군. 너무 그리 보지 마시오.”
“아.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기꾼이 나 사기꾼이요. 라고 말한 적이 있던가?
정현은 내가 믿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입맛을 다신 후 공대를 시작했다.
나보다 세배 이상 나이가 많고 사회적인 명성은 나는 물론이거니와 거의 사부님과 동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명사인 정현이 나에게 존대를 시작했지만 그것에 어색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럼 정 학사님. 왜 사직을 하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관직을 관두는 것은 도망치는 것이나 다름없소. 한 황실에 대한 의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사공이 두려웠으니. 거기에 내 제자의 하나뿐인 아이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었잖소. 이정도면 사직을 한 것에 대한 이유로 충분하지 않소?”
“개인의 두려움과 의리, 그리고 제자를 위하는 마음이 충돌한 결과라고 봐야 하는 것입니까?”
“뭐. 그렇소. 그리고 애초에 나는 당고의 금 이후로 관직은 체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나는 학문을 닦고 가르침을 원하는 사람이지 사리와 사욕을 위해 움직이는 이는 아니오. 내 자랑할 것이 없다 하나 이것 하나만큼은 자랑하고 싶소.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고, 또 뜻을 이루기 위한 정도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 되는 거요.”
“흐음…”
실제로도 정현의 방을 보면 그의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허름한 물건들이 태반이었다.
단적으로 정현이 쓰고 있는 벼루만 봐도 그렇다.
하비에 있으며 몇몇 명사들의 초대를 받아 그의 방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문사이며 학문을 닦는 이에게 있어서 문방구는 입고 있는 옷보다, 혹은 아이를 위한 물품보다 더욱 비싸고 귀한 것을 취하려고 했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붓과 먹, 벼루를 원하는 이들이 경쟁적으로 물건을 사던 것을 비웃은 적이 있는데 정현이 가지고 있는 것들은 내가 쓰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싸구려 물품에 불과했다.
“그런데 저를 왜 찾으셨습니까?”
“몇가지 물어보고, 또 몇가지 제안을 하고 싶었소.”
“무엇입니까?”
“한가지는 공대에 대해서였지만 그대가 믿지 않고 있다면 굳이 물을 필요는 없겠지. 다른 한가지는 수경 선생에 대한 것이오.”
“사부님과도 연이 있으십니까?”
아무리 명사들끼리 이름을 알고 뜻을 모은다고 하지만 사부님과도 연이 있다고?
사부님이 정현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적은 있었지만 그와 연이 닿았다는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다.
난 그가 사부님과 알고 있다는 말을 꺼내면 바로 사기꾼으로 매도할 준비를 했지만 그는 내 기대를 완전히 무너트려버렸다.
“아니오. 수경선생과는 한번도 만나 본 적이 없지. 그저 이름만을 듣고 흠모했을 뿐이라오.”
“그래서…? 사부님에 대한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수경원이 일전 불에 타 완전히 없어졌다 들었소만. 수경선생께서는 무사하시오? 아니면…”
“무사하십니다. 지금도 천하를 유람중이시지요.”
중달에게 듣기론 지금 쯤 한중에 가 있다고 하지만.
그것을 굳이 말할 필요는 느끼지 못했기에 난 정현을 향해 조심스레 대꾸했다.
어디에 있는 것 까지는 알 생각이 없었는지 그는 내 대답에 그저 안도할 뿐 이었다.
“그것 참 다행스러운 일이군. 수경선생께서 다치시기라도 했다간 큰 불행이었을테니 말이오. 혹여 건강상의 문제는 없으시겠지?”
“그러시지 않겠습니까?”
“하하핫! 수경선생께선 학문 뿐만 아니라 다른 기예들도 대단하시다고 하니 말이오. 그리고 한가지만 더 묻겠소.”
“말씀하시지요.”
그는 잠시 머뭇거린 후 작게 한숨을 토해낸 후 물었다.
“왜 유요를 죽인 것이오?”
“…..”
왔구나.
황족인 유요를 죽인 것에 대한 책망일까?
아니면 그저 궁금해서일까?
책망이겠지.
그의 시선에 담겨져 있는 원망과 지탄을 눈치챈 나는 차분히 말했다.
“그가 반역을 꾀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 대한?”
“황실에 대한 반역입니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넘어서 다른 곳까지 힘을 펼치려 했습니다. 황족으로서 허가받은 임지 외의 다른 곳을 차지하기 위해 군사를 움직이려 한다는 것은 곧 반역이나 다름없지요.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그를 제거했습니다.”
언젠가 이 문제에 대해서 누군가는 나를 탓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준비는 이미 모두 마쳤었다.
유요가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증거와 함께 원소와 손을 잡아 한 황실을 전복시키려 했다는 증거 정도는 이미 만들어 두었던 나는 정현의 질문에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하지만 그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명한 행동이 아니었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한 황실의 안녕과 천하의 안정을 위해서는…”
“지금 내가 황족 하나를 죽였다는 것 때문에 이러는 줄 아시나본데. 오해하지마시오. 이것은 그대와, 그리고 그대가 따르는 사공을 위해서 말하는 것이기도 하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시대가, 천하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시오?”
“글쎄요…”
“이 늙은이가 먼저 말해도 좋겠소? 천하는 지금 난세요. 황실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 하고 있지만 그 영광은 내가 보기엔 글쎄… 영원이라는 시간이 지난다 하여도 과거 고조께서, 무제께서 이루신 영광을 되찾는 것은 아무리 봐도 무리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소.”
“…..”
“허나 지금의 폐하께선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시지.”
예상 밖의 대답이 나온 것에 나와 조청은 당황했다.
정현은 충신이라 생각했는데 그는 지금 유협의 행동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유협 뿐만 아니라 황실을 따르는 신하들이 하고 있는 모든 일을 비난하고 있었다.
이미 난세로 흘러든 천하를 한 황실의 이름으로 안정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는 지금의 한 황실과 황제를 부정하고 있었다.
“대학자께서 하실 말씀은 아닌 듯 싶습니다만…”
예상하지 못한 발언이다.
난 떨떠름함을 감추지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내 직위는 진동장군.
즉 반란과 반역에 대한 조사가 가능했다.
아무리 대학자인 정현이라 할지라도 내가 그의 생각을 문제삼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현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실이 그러하니까. 그대 역시 그리 생각하지 않았소? 그래서 그를 죽인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라오.”
관직에서 물러났고 나에게 호의를 보이고 있는 사람이다.
물론 진짜 아버지의 스승인지 확인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를 빤히 바라보던 나는 쓴 입맛을 다신 후 물었다.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 상황에서는 그를 처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랬다 하더라도 유요는 죽여서는 곤란했소. 이것으로 그대가 쓸 수 있는 수가 줄어들어버렸으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궁금해하는 나와 조청을 번갈아 바라 본 그는 조청을 가리킨 후 말했다.
“이대로 가다간 조공께선 대역의 죄를 감당해야 할거요.”
“대역죄라니!”
흥분한 조청은 이를 드러내며 화를 냈지만 난 그녀를 잡아 말렸다.
정현이 저렇게 말하는 것도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침착하게 다음 말을 기다리자 정현은 빙긋 웃었다.
“제 아무리 사공이라고 하더라도 한가지만은 어쩔 수 없지.”
“황제 폐하에 대한 문제입니까?”
“그렇소.”
정현이 하고 싶은 말을 알 것 같았다.
지금 한 황실은 천하의 도전을 받고 있는 것과 같았다.
영제 때에는 십상시와 하진, 그리고 소제 때에는 동탁, 마지막으로 헌제 때에는 이각과 곽사, 마지막으로 조조.
신하들에 의해서 정사를 돌보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며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현 폐하는 굉장히 특수한 경우요. 진 장군도 그리 생각하지 않소?”
“…부정은 못하겠습니다.”
내 대답에 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사공께선 현 폐하에 대한 방향을 결정해야 할 것이오.”
“그렇겠지요.”
차라리 영제처럼 십상시나 하진에게 다 맡겨버리고 향락과 사치만 즐기는 자라면 괜찮다.
차라리 소제처럼 두려움에 떨며 동탁에게 주눅이 들어버리는 유약하고 나약한 자라면 괜찮다.
하지만 헌제는 달랐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든 싸웠고 괴로움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그것은 이각때에도 그렇지만 조조의 보호를 받으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한 황실을 부흥시킴과 동시에 과거의 영광을 찾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요를 죽인다… 유요는 그저 단순한 황족에 불과하지만 그를 죽임으로서 황가는 황가 나름대로의 당신과 조공에게 두려움에 빠질 수 밖에 없게 되어버리지. 그리 생각하지 않소?”
“……”
“물론 한 황실의 황족들은 얼마든지 있소. 그러나 사공께서, 그리고 진동장군께서 좀 더 길고 멀리 본다면, 역사에 남을 이가 되기 위해서는 그를 죽여서는 곤란했소. 결국 그대가 한 일은 황가를 압박하는 일이 될 터, 황제께선 그것으로 그대들에 대한 경계를 늘릴 것이고 그리 된다면 그대들은 황제폐하와 싸울 수 밖에 없게 되겠지. 그리고 그것은…”
역사에 있어서 반역자가 되어버린다.
제 아무리 구석을 받고 선양을 받는다 하더라도 결국은 한이라는 나라를 죽여버리는 일이 되어버린다.
정현은 그것을 언급하고 있었다.
“후우… 더할 나위 없이 유능한 충신이 될 수 있는 그대들이 이렇게 되어버린다는 것이…”
지금까지 나나 조조가 한 일들은 대부분 백성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것이었다.
비록 그들을 키우는 이유가 그들의 힘을 이용해서 우리의 힘을 불리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본다면 그들의 삶은 나아졌다.
병사는 강해지고 백성의 수는 증가한다.
흉작을 피하고 풍작이 연이을 뿐만 아니라 몇몇의 밭에서는 이모작이나 삼모작이 가능해져간다.
부국과 강병을 이루고 있었고 그것은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충신들이 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본질은?
나는 한 황실에 큰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조조는 한 황실의 무력함을 비웃으며 그저 꼭두각시로 밖에 쓰려고 하지 않고 있었다.
충심?
그딴 것은 없었다.
오로지 한 황실은 이용해먹기 좋은 장기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뿐 이었다.
그리고 그 장기말의 최후는, 필요 없어졌을 때 제거하는 것이다.
한 황제가 가지고 있는 명분 이상의 명분을 손에 넣게 된다면, 그리고 그 명분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막대한 힘을 가지게 된다면 황제는 우리의 앞날을 거슬리게 하는 걸림돌 밖에는 되지 못한다.
숨 죽이고 얌전히 살아도 살릴까 말까 고민할 만한 황제인데 지금의 황제인 헌제는 지나치게 의욕적이었다.
그렇다면 황제를 폐위시키고 다른 황제를 내세워야 하는데.
“유요를 죽임으로서 다른 황족들은 당신들을 경계할것이요.”
한이라는 나라의 껍데기.
그것을 탈피할 것인가 이어갈 것인가는 미래의 일이다.
“그렇군요…”
정현이 걱정하는 것은 나와 조조가 향후 한이라는 나라를 제거하는데 일조하여 결국은 역사에서 역적 중의 역적, 간신 중의 간신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었다.
십상시나 하진, 동탁과 같은 평가를 받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이해한 조청은 무거운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요.”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거요?”
정현이 의아해하며 물었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조청 역시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나보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