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309
00309 맥없는 기싸움 =========================
“물론이지. 자네가 원한다면…”
“하하하… 그거 아주 좋은 이야기군요.”
주준이 날 이렇게 생각하다니.
이것 역시 그들의 수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진심?
그의 눈을 마주했다.
“왜 그러나?”
한점의 의심없이 나를 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한 그를 조용히 바라보던 나는 히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좋은 말씀 들었습니다. 허나.”
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인들이나 시녀들이 나와 주준이 만나고 있는 것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리 알고 있겠네. 저녁 즈음이나 해서 내 집으로 찾아오게나.”
“알겠습니다.”
관청에는 조조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주준은 더 이상 말하는 대신 내 어깨를 툭툭 쳐 준 후 떠나갈 뿐 이었다.
그가 먼저 가고 나는 홀로 남은 채 피식 웃었다.
“나를 꼬드긴다라…”
두가지 수로 생각할 수 있었다.
첫번째는 진심으로 날 황제파로 끌어들이려는 것.
그리고 두번째는 나와 조조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것.
황제는 나를 대장군으로 올리려고까지 했었다.
비록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한 것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황제가 직접 입에 담은 것이다.
시녀들이나 궁녀들, 그리고 그 근처에 있던 이들 중 조조의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애초에 내가 조조에게 말하기도 했고.
황제가 나를 끌어올려 조조를 상대하기 위한 방패로 삼고자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나와 주준과의 만남은 반드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조조의 귀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었다.
“흠… 이거 일이 재밌게 흘러가고 있군.”
난 잠시 생각하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래저래 생각할 일은 많아졌군.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문제이지만…”
조조는 과연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일 것인가.
그리고 조조의 밑에 있는 세력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하하… 이거 참.”
뭔 놈의 나라가 이 모양인지.
절로 터져나오려는 비웃음을 숨긴 채 터덜터덜 밖으로 걸어나갔다.
관청의 정원으로 나오니 조청이 기다리고 있었다.
쟤는 왜 저기 있지?
둘의 표저은 심각하기 그지 없어보였다.
조인과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조청을 향해 다가갔을 때 조인은 씩 웃으며 가볍게 인사한 후 관청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오셨습니까?”
“응. 무슨 얘기들을 했길래 표정이 그래?”
날 봤을 때 항상 싱글거렸던 조청의 표정은 무겁기 그지 없었다.
괜히 머리 쓸 필요 없다 생각해 대놓고 물었고 그녀는 머뭇거렸다.
입술만 달짝거리며 말할까 말까 고민하던 그녀는 작은 한숨과 함께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후 숙부님이 오시면 숙부님을 지원해 줄 수 있냐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
“예. 조가를 지켜야 할 사람이 부족할 것 같다는 이야기 때문에…”
“우금을 부르면 되지 않을까? 정 안되면 청주에 있는 조순도 불러야지.”
조조가 심문을 시작한다는 것은 황제파의 신료들을 자극할 수도 있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조가를 지켜야 할 사람이 필요하긴 할 것이다.
“그런데 왜?”
“그게…”
머뭇거리던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장군께서는 복양으로 가신다고 하셨지요?”
“아.”
그러니까 날 지키고 싶은데 조가도 지켜야 한다는 것 때문에 이러는 건가?
속이 빤히 보이는 그녀의 말에 난 웃었다.
“나 때문에 그러는 건가?”
“네.”
역시 그랬나.
만약 날 지킬 사람이 있었다면 조청도 나름대로 안심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황제와 조조의 힘겨루기가 시작되려는 지금 나의 위치는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조청으로서는 걱정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서 도위나 감 도위, 장 도위라도 있다면 모를까. 아니, 요 도위라도…”
서황이나 감녕, 장합, 아니면 요화라도.
한명이라도 나를 도울 수 있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그런 것이 아니니 조청은 나를 무척이나 걱정하고 있었다.
“각지에 있는 이들을 데리고 온다면 모를까 그것이 힘드니까요.”
“뭐 그렇긴 하지.”
조앙이 홍농으로 가서 장안을 공략한다고는 했지만 어떻게 그만 가겠는가.
두기를 지원하고 있는 이들 중 누군가는 조앙을 도울 것이다.
낙양 인근도 사람이 없어서 난리인 상황인데 거기서 조앙을 돕는 이를 보낸다면 허도에 사람을 보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래저래 인력난에 허덕거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다가 조가를 지키려면 적어도 조인 수준의 무력과 지휘력을 가진 이가 필요했다.
“어쩔 수 없네. 조순을 보내달라고 하는 수 밖에.”
청주에 있는 조순이 호표기를 데리고 내려 온다면 괜찮겠지
서복이라면 충분히 버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내가 말하자 조청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너는 나랑 같이 동구항으로 가자고. 동구항에서도 할 일이 많으니까.”
“네!”
“숙부님께는 내가 말씀드리도록 하지.”
“알겠어요!”
너무 밝아져서 눈이 부실 정도다.
예쁜 얼굴에 가득 미소를 짓고 있는 조청과 함께 관청을 나섰을 때 마차 한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의 마차인지 확인할 새도 없었다.
“진 장군님이십니까?”
“그런데? 넌 누구지?”
“저는 정 학사님을 모시는 제자 단유라고 합니다. 정 학사님께서 장군님을 모시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장군님?”
조청은 내 팔을 꽉 잡았다.
조인에게 정현의 사직에 대해서 들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잡고 있었고 나는 그녀를 잠시 바라 본 후 단유에게 물었다.
“내 아내 될 사람이다. 같이 가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가자.”
“예.”
나와 함께 조청이 마차에 오르자 마차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창문을 통해 마차가 어디로 가는지 조청은 심각한 얼굴로 확인하고 있었다.
만약 엄한 곳으로 이동한다면, 그리고 주변의 기척이 이상하다면 마차 문을 부숴버리고 나갈 생각이었는지 무기를 꽉 쥐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마.”
“장군님을 지키는 것이 제 일이니까요.”
아니 마누라 될 사람이 날 왜 이렇게 지키려고 하는건지.
난 그녀의 단단한 의지에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정현이 그럴 것 같지는 않았는데.
마차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멈췄다.
창문을 통해 주변을 확인하던 조청은 이곳에 정현의 장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약간 안심한 듯 보였지만 완전히 마음을 놓지는 않았다.
“장군님. 도착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오가는 장원이었다.
은퇴한 이후 아이들에게 가르침을 내리면서 학사로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정현인 만큼 그의 장원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정현의 이름이라면 높은 신분을 가진 아이들을 가르칠 것이라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허름한 마의에 불과했다.
아이들이 손에 주먹밥을 들고 나오는 것을 보던 나는 단유에게 물었다.
“저건 뭐지?”
“스승님께 배운 아이들은 모두 이곳에서 주먹밥을 하나씩 받아갑니다.”
“왜?”
“일을 하는 시간 대신 공부를 하는 것이니까요.”
“…..”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딱히 좋은 현상은 아니었다.
가난하고 낮은 신분의 아이들을 가르친다?
개념적으로 본다면 무척이나 훌륭하다고 볼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게 어떤 일을 만들지, 어떤 상황이 만들어질지가 문제였다.
나는 지배자의 위치에 있고 높은 신분의 사람이다.
백성들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 지배를 받아야 할 이들이 현명해지는 것은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배우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하고 싶은 것이 많아진다.
그런 이들이 세상의 혹독함에 대해서 깨닫고, 느끼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조조가 황제를 데리고 있으며 세상이 점점 변해가고 있지만 아직은 멀었다.
무재로 추천받아 관직에 올랐지만 실제로는 까막눈인 사람도 있고 청렴하고 효심이 깊어 효렴으로 추천받은 이가 부모를 버리거나 때리는 이도 있었다.
실제로 관직에 오르고 공무를 하는 이들 중에 이런 이들인 아직까지 많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라면 그냥 그러려니 하겠지만 배우고, 알게 되며 세상을 눈에 담게 된 아이들이 과연 그것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까? 라는 의문에는 나로서도 이렇데 할 답을 내놓을 수는 없었다.
피지배자들이 지배자를 부정하고 무시할 수 있게 될지도 몰랐다.
자신보다 못한 이가 그저 집안을 잘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지배를 거절하고 힘을 얻기 위해 무기를 들지도 몰랐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정현의 방식에 마냥 찬사를 보낼 수도 없었다.
“들어가시지요.”
내 표정을 보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챘는지 단유는 쓰게 웃었지만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허름한 옷을 입은 이들이 정원에서 커다란 솥에 밥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와 조청을 본 그들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그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할 뿐 이었다.
“무관이 이곳에 들어오는 일은 드무니까요.”
나와 조청 모두 갑옷을 입고 있었다.
학사인 정현의 집에 이렇게 갑옷을 입고 오는 것을 보기는 힘들겠지.
단유의 설명을 듣고 장원의 안쪽에 있는, 약간 낡아보이는 건물 앞에 선 나와 조청은 단유가 안으로 들어가자 서로를 보며 말했다.
“매복은 없는 듯 합니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 무기가 있지. 그래도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라.”
“예.”
아버지와 아는 사이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함부로 정현을 대할 수 없었다.
내가 정현에게 무례를 저지르지 말라는 말을 하자 조청은 아쉬워하며 검자루에 올려 놓은 손을 떨어트렸다.
그녀 역시 정현의 방식에 위기감을 느낀 모양이다.
“장군님. 들어오시지요.”
조청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를 지나 묵향이 물씬 풍기는 문 앞에 선 단영은 문 밖에서 말했다.
“스승님. 진 장군을 데리고 왔습니다.”
“들어오거라.”
문이 열리고 나와 조청은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정현은 나와 조청의 인사를 받은 후 희미하게 웃었다.
“단유에게 들었단다. 네 내자 될 사람이라지?”
“예.”
“듣기로는 이미 내자가 있다던데?”
“예.”
“그것은 공대와 다르구나. 네 아비는 단 한명만을 평생 사랑했는데 말이지.”
어머니와도 아는 사이일까?
내가 그를 말없이 바라보자 정현은 껄껄 웃었다.
“하하하핫! 굉장히 궁금한게 많은 모양이구나. 앉거라.”
그가 권한 자리에 앉았다.
“그래. 가장 먼저 묻고 싶은 것이 있겠지?”
단유가 문을 닫자 난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나 있는 주름은 더더욱 깊어보였다.
“아버지와 무슨 관계이십니까?”
“무슨 관계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냐?”
“예.”
내 질문에 조청은 놀라며 나와 정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의 시선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무슨 관계냐라… 그것을 알면 네가 이렇게 내 앞에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을 수는 없을텐데.”
“…예?”
“나는 네 아비. 공대의 스승이니라.”
“…..”
정현이 아버지의 스승이라고?
하지만 아버지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었다.
아버지의 사문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던 내가 의심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자 정현은 껄껄 웃었다.
“공대의 아들 답게 사람 의심하는 것은 굉장하구나. 좋아. 어떻게 하면 믿을 수 있겠느냐?”
“아버지께 여쭤봐야겠지요.”
내가 의심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버지가 진짜 정현의 제자였다면 그 인맥과 이름값 때문이라도 아버지가 고작 동아현의 현장 정도 되는 직위에 있을리 없었다.
정현은 명사이며 대학자이기도 했다.
아버지 정도라면 충분히 정현의 제자 중에서도 실력이 넘칠 터.
그런데도 고작 현장 정도의 위치라는 것은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