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44
00044 너, 내 제자가 되라 =========================
요화가 그런 것을 봤을 줄이야.
온현까지만 해도 그정도는 아니었는데.
황건적이 출몰한 지역 부근이라 그런지 아직 그곳은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나저나 도련님. 여기는 뭘 키우는 곳인데 이런 냄새가 나는 거에요?”
“들어가서 봐봐.”
“…도련님.”
“왜.”
“여기… 누가 살고 있는 건 아니죠?”
“응.”
“도련님 말고 올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응.”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요화는 빠르게 검을 뽑았다.
시퍼런 칼날을 보이며 그가 검을 잡자 난 당황했다.
“뭐하냐?”
“안에 누가 있어요.”
“…..”
지렁이는 약재로도 쓰인다.
물론 봄이고 밭 어딜 가든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지렁이이니만큼 큰 값어치는 없겠지만 이 오두막에 있는 지렁이의 양이라면 그래도 은전 하나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잡아.”
“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요화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누구냐!”
“깜짝이야!”
안에 있는 것은 반백의 중년인이었다.
얼굴에 비해 흰 머리가 많은 낡은 옷의 중년인은 요화가 칼을 겨누자 두 손을 들며 당황하고 있었다.
“댁은 뉘신데 남의 양식장에 허락도 없이 들어온거요?”
“양식장? 이걸 키워서 뭘하게?”
내 말에 그는 더 놀란 듯 탁자 위의 나무 상자들을 가리켰다.
열개의 커다란 나무 상자 안을 전부 확인했나보다.
그가 어이없어하자 난 뒤통수를 긁적거린 후 요화에게 말했다.
“잡아.”
“네.”
“아니! 이놈이!?”
요화가 달려들자 중년인은 당황하며 물러나려 했지만 요화의 움직임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요화에게 잡혀 팔이 꺽인 중년인이 바닥에 주저앉자 난 그에게 다가가 떨떠름히 물었다.
“뉘신지요?”
“아야야! 팔 부러진다! 팔 부러져!”
“뉘신지 여쭙잖습니까. 어르신.”
“아이고!!”
“야. 좀 살살 잡아드려라.”
“위험한 자일 수도 있는데요.”
“그럼 난 좀 떨어져 있을테니까. 친절하게 대해드려. 넌 왜 좋은 칼 두고 주먹으로 그러냐?”
“아.”
내 말에 수긍한 요화는 고개를 끄덕이고 잡고 있던 중년인의 팔을 놓아 준 후 칼을 들어 중년인의 목에 겨눴다.
“헉!”
“이제부터 질문하겠습니다. 어르신. 뉘신지요? 외모만 보면 도둑놈 같지는 않은데.”
꽤나 잘 생긴 중년인이다.
짙은 눈썹과 깊은 눈.
약간 큰 듯한 코와 두툼한 입술.
남자답게 잘 생긴 그를 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 뭐라고 해야 하나…”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은 듯 중년인이 머뭇거리자 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범죄라도 저질렀습니까? 일단 잡아볼까? 요화. 기절시켜.”
“아냐! 아냐! 그런게 아니라… 끙. 어쩔 수 없나.”
요화의 검이 약간 주름진 목살에 다가가 꾹 누르자 중년인은 또다시 몇번이나 망설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와 친분이 있는 이들은 나를 호호선생이라 부르네.”
“전 어르신 친구가 아닙니다.”
“…..”
“호호선생이라고 하면 누가 압니까? 어르신. 부모님께 감사드리십쇼.”
“엥? 우리 부모님은 왜?”
“부모님이 어르신을 그렇게 잘 생기게 낳지만 않았어도 어르신은 지금쯤 말 한마디 못하고 두드려 맞아 옥에 갇혀 있을 테니까.”
“하…하하.”
외모지상주의라는게 참 무섭다.
만약 저 어르신의 외모가 저렇게 잘생기지만 않았어도 그냥 기절시키고 관아로 끌고 갔을 것이다.
당황하는 그를 빤히 바라보며 난 차분히 입을 열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뉘신지요. 성함. 나이. 주소까지 상세히.”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
“남의 양식장에 마음대로 들어와놓고 너무하긴 뭐가 너무합니까. 이야. 이거 말로 해선 안되겠네. 요화.”
“네.”
“잠깐! 잠깐! 남의? 여길 네가 만든 것이냐?”
“자꾸 개수작 부리면서 말 돌리는데.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옥에서…”
“잠깐!”
“…..”
“끙… 다른 이들은 나를 수경이라 부른다네.”
“수경?”
“…들어보지 못했던가?”
“수경이고 뭐고… 잠깐만.”
수경?
수경 선생?
“설마… 사마자에 휘라는 이름을 가지시고 자가 덕조이신 그 수경 선생?”
“하하. 그건 아는구만.”
“수경 선생… 사마휘… 하. 이거 참. 어디서 되도 않는 사기를.”
“뭣?!”
“아니 사기를 치려고 해도 유분수지. 신분 증명할 수 있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어디 감히 수경 선생의 이름을 팔아?”
“…내 옷 안에 패가 있네.”
“요화.”
“네.”
중년인이 헛짓거리 못하게 요화는 그의 품 안에 손을 넣은 후 꺼낸 것을 나에게 던졌다.
그것을 받은 나는 움찔 몸을 떨었다.
“아니… 그. 패는 수경 선생 것이 맞는데… 왜 여기…? 으음. 일단 확신할 수 없는데 누가 증명해 줄 사람이라도 있나요?”
절로 말투가 공손해진다.
아니 수경 선생이 왜 여기서 나와?
만약 여기가 현 주변의 마을이거나 다른 길가였다면 믿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양식장은 사람 없는 곳을 찾고 찾아 일부러 험한 산 초입에 만들어 둔 것이다.
길도 없는 이곳에 왜 수경 선생이 들어와 있냐고.
“동아현 현장이 날 알고 있으니 그곳으로 데려다주면 확인할 수 있을 걸세.”
“…아버지를 아세요?”
떨떠름한 얼굴로 내가 그를 바라보자 그는 고개를 갸웃거린 후 물었다.
“네가 유하냐?”
“…네. 절 아시는지…”
“원화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육초본기를 받았다면서?”
“….”
이거 어째 기분이 싸하다.
뭔가 엄청나게 실수를 한 기분인데.
내가 조심스레 답하자 중년인은 피식 웃었다.
“오호… 네가.”
“아하하…”
“일단 이것 좀 치워주지 않겠나?”
“어… 예. 야야. 치워.”
“네에…”
내가 당황하는 것에 놀란 요화가 슬그머니 검을 치우자 중년인은 쓱쓱 목을 만졌다.
그 모습에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천천히 다가가 히죽 웃었다.
“하하. 수경 선생께서 이 누추한 곳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일단 그건 네 아비와 만나고 나서 이야기하자꾸나. 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으니까.”
“…네에.”
“그나저나… 저 지렁이를 양식한다고 했지? 그건 왜?”
“…그거야…”
“진 현장이 아무리 청렴하다지만 지렁이를 먹을 정도로 가난하진 않을 것인데. 그렇다고 약방에 팔기에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고. 이걸 왜 기르는 거냐?”
“말씀드릴 수는 있는데요.”
“있는데?”
“그… 하하. 혹시 아버지와 많이 친하세요?”
“친하고 자시고 진궁이 내게 큰 빚을 졌지.”
“…아. 네. 그. 그러니까요. 그게.”
“할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하거라.”
“헤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아버지께 비밀로… 좀.”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자꾸나. 일단 내 질문에나 답해다오. 이건 왜 기르는 것이냐?”
“…하아. 그게요.”
만약 이 질문을 한게 그냥 동네 어르신이었으면 싶다.
그럼 남이야 지렁이를 기르든 말든 왠 참견이슈? 라고 해버리면 되는데.
하지만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무려 그 수경 선생 사마휘라는게 문제다.
거기에 아버지도 이 사람에게 빚이 있다니 함부로 대할 수가 없다.
어쩌지?
“그냥 취미생활로…”
“이런 웃기지도 않는 취미를 가졌다고 한다면 화를 낼 것이다. 그리고 네 아비에게 모두 말하겠다. 더불어 내 친우와 친지와 제자들에게도 다.”
“…..”
망할 영감탱이.
이름을 높여야 하는데 취미로 지렁이를 기른다는 것이 알려지면 이름이 높아지기는 하겠다.
나중에 별명이 토룡선생이라는게 붙겠지.
…이거 괜찮은데? 와룡과 더불어 토룡?
“빨리 말해주려무나.”
“아. 그게요. 진짜 취미생활은 아니구요. 사실은 그게.”
“혹시 농사를 위해서냐?”
“…….”
깜짝이야.
내가 놀라자 사마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특이한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 큰 성공을 거둘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으셨나요?”
“동아현에서. 꽤나 알고 있더구나. 철로 만든 농기구를 다른 곳의 소보다 훨씬 큰 소를 쓰고… 거기에 밭을 보니 신기한 방식으로 밭을 갈았더구나.”
이 여우같은 인간이?
다 알고 물어본 거였나 설마?
“하… 하하. 뭐 그런 겁니다.”
“그렇단 말이지…”
“….”
“그래. 알았다.”
“예?”
“알았다고.”
“그게 단가요?”
“그럼 뭘 더 말해야 하느냐?”
“아, 아뇨. 그럼 됐죠.”
“하려던 일이나 하려무나.”
근처에 있는 상자에 털썩 걸터 앉은 채 사마휘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눌려 난 요화가 들고 있던 짐을 풀어 음식물 찌꺼기를 상자 위에 나눠 뿌렸다.
“그걸로 지렁이의 먹이를 주는 것이냐?”
“네에.”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재밌는게 제 장점이죠.”
“그래. 어때. 잘 되고 있느냐?”
이게 뭔 상황이지?
왜 내 지렁이 양식장에 사마휘가 있고 난 그 사마휘가 보는 와중에 지렁이 밥을 줘야 하는 걸까.
하… 뭐가 뭔지 나도 모르겠다.
“나름 잘 되어가는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상자 세개 정도 밖에 안됐는데 지금은 이만큼 불려 놨으니까…”
“그래?”
“그런데 수경 선생님.”
“호호 선생이라 부르거라.”
“호호 선생님.”
“왜 그러느냐?”
이상하게 부드러운 말투가 무섭다.
“동아현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버지를 만나러 오신 것이라면…”
“아아. 네 아비를 만나는 것은 덤에 불과하다.”
“그럼요?”
“원화에게 재밌는 아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화타 어르신이요?”
“그래. 그래서 그 겸 해서 왔지.”
“아… 예.”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한 걸까?
기껏 좋은 얘기를 해놨는데 오늘 일로 점수 다 깍인 거 아냐?
지렁이 밥을 다 주고 적당히 흙을 비벼 음식물 찌꺼기를 섞어 준 후 챙겨 온 짐에서 비누를 꺼냈다.
“그게 뭐냐?”
“비누라고. 팥은 비린내가 너무 심해서 씻을 때 쓰는 겁니다. 요화. 물 좀 뿌려줘.”
“아. 네.”
나올때는 따뜻한 물이 여기까지 오며 다 식었다.
그래도 찬물은 아니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미지근한 물로 손을 씻는 것을 사마휘는 유심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거품이 많이 나는구나. 신기하게 생겼는데.”
“하하. 원하시면 하나 선물로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 그거 고맙구나.”
“별 말씀을.”
“그럼 작업은 다 한 것이냐?”
“네. 일단은…”
“그럼 가자꾸나.”
“어딜요?”
“동아현 관아에. 돌아갈 것 아니냐? 아니면 더 할 일이 남은 것이냐?”
“아니 할 일은 없습니다만…”
“그럼 어서 가자꾸나. 그리고 거기.”
“네!?”
내가 사마휘에게 쩔쩔매는 것을 보며 안절부절하던 요화는 사마휘가 말을 걸자 황급히 대답했다.
“미안하네만 내 짐 좀 들어 줄 수 있는가?”
한쪽 구석에 놓여져 있는 짐을 가리키며 사마휘가 말하자 요화는 후다닥 그것을 들었다.
요화의 움직임에 만족한 것인지 사마휘는 씩 웃으며 나를 보며 말했다.
“자. 가자꾸나.”
이 사람이 진짜 사마휘가 맞을까?
돌아오는 길에 생각을 해보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아버지가 사마휘와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힐끔거리며 사마휘와 함께 관아에 도착한 나는 집무실에서 나오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아버지! 손님이…”
“헉! 수경 선생! 어쩐 일이십니까!”
요화와 함께 서 있는 사마휘를 발견하자마자 아버지는 후다닥 달려가 그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전 군승님에게 하는 것보다 더 깊은 인사에 난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구나.
“오실 것이라면 연통이라도 주시지…”
아버지가 직접 차를 따라주는 것을 보며 난 얌전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설마 말하지는 않겠지?
차를 홀짝거리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사마휘는 아버지가 자리를 잡고 앉자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 아들인가?”
“네.”
“그렇단 말이지…”
“저기 아버지.”
“왜 그러느냐?”
“그… 호호 선생과는 무슨 관계신지 여쭤봐도…”
“호호 선생?”
“예? 아니… 그. 수경 선생께서 호호 선생이라고 부르라고 하시던데요?”
내 말에 아버지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헉. 이거 이렇게 부르면 안되는 건가?
내가 당황하자 사마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허락했다네. 그리 나무라지 말게나.”
“하지만…!”
“괜찮대두. 그보다 진궁.”
“네. 말씀하십시요. 수경 선생님.”
“자네가 나에게 진 빚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사마휘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아버지의 표정이 안좋아졌다.
도대체 무슨 빚을 진 것이길래 아버지가 저러시는 걸까?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빚을 받으러 왔네.”
“…알겠습니다. 무엇을 해드려야 합니까?”
아버지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자 사마휘는 씩 웃으며 내 어깨를 잡았다.
“이 녀석을 내게 주게.”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헉! 혹시 제 미모에 반해서!?”
어쩐지 처음부터 친근하게 구는게 이상하더니만!?
내가 당황하자 사마휘는 더 당황하며 필사적으로 부인했다.
“무슨 소리냐!”
“그럼 절 왜 가지려고 하시는 건데요!?”
내 질문에 사마휘는 한숨을 푹 내쉰 후 말했다.
“내 제자가 되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