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495
00495 아주 좋아 =========================
“하하하! 이거 참 능력도 좋아. 벌써 사처라.”
“저… 그건 어찌 아셨습니까?”
“어찌 알긴. 승상께서 말해주시더만. 지금 자네의 곁에 있는 교완… 이라는 처자였지? 양주 교가의 여식이라고 들었는데.”
“예.”
“그녀와도 결혼을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렇죠.”
“그렇다면 해야지.”
“예. 뭐 하긴 해야겠는데.”
내 표정을 즐겁게 보던 순욱은 웃으며 말했다.
“그녀와 결혼하려는 이유는 결국 강남쪽에 대한 안정 및 그곳에서의 세력의 지원을 받기 위함일텐데. 맞지?”
“네.”
“그럼 더욱 잘 됐군.”
자꾸 뭐가 잘됐다고 하는걸까?
난 순욱을 떨리는 눈으로 응시했다.
“저… 승상부주님? 좋으신 건 좋은데 저도 같이 좋았으면 하네요. 뭐가 그리 좋으십니까?”
“응? 하하. 별 것 아닐세.”
“….”
불안하다.
되게 불안하다.
순욱은 무척이나 즐겁게 웃으며 말했다.
“승상께서 취임하시고 첫번째 경사가 치뤄지겠구만.”
“지금 안 할 겁니다.”
“왜? 내가 알기로 그 처자의 나이도 꽤 되는 걸로 아는데. 남의 집 귀한 여식을 데려다가 노처녀로 만들 생각인가?”
나보다 한살 어린 교완이다.
요즘같은 시대에 늦어도 열 대여섯이면 결혼을 하는 것을 생각하면 꽤나 늦은 편이다.
“그건 그렇지만.”
“남의 집 귀한 딸을 데려다가 그렇게 잡아두기만 하고, 그러다가 교공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자네는 어떻게 책임지려고 하는건가?”
“무슨 일이 나겠습니까?”
“이 사람 생각없이 말하는 거 보소. 이보게. 지금 강남 연맹이 만들어지고 유표가 이렇게 적대적으로 나오는데. 자네의 밑에 있는 그 교 아가씨를 협박하기 위해서 교공을 해코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할 수 있나?”
틀린 말은 아니네.
하지만 아직 교완과 결혼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내 밑에 있는 부하 하나정도의 취급밖에 받지 않는 교완이다.
교공을 잡는다고 해서 뭐가 있을까?
내 심드렁한 표정을 마주하며 순욱은 손사레를 쳤다.
“그렇게 안이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이보게. 이건 단순하게 책략과 정략의 차원을 떠나서 도리의 문제야. 도리의 문제.”
아놔.
도리 가지고 얘기하니 할 말이 없네.
유표가 우리를 적대하기로 한 이상 그와 우리는 이제 적이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전쟁에서는 비겁한 것이 없다.
특히나 나 같은 경우는 지금까지 전쟁에서 딱 한번 의도적인 패배를 제외하고는 한번도 패배하지 않은 장수다.
그런 내가 움직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 교공을 가지고 협박을 한다면 나로서도 할 말이 없다.
으…
고민이 안될 수가 없구만.
“어차피 강남쪽으로 움직이기는 해야 해. 음.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떤가?”
“뭡니까?”
“자네 가족들을 전부 데리고 다니는…”
“거절합니다.”
내가 미쳤냐.
전쟁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성을 버리고 뒤로 물러나야 할 경우도 생긴다.
그런 상황에 내 가족들을 데리고 다니라고?
내가 거절하자 순욱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당장 제대로 움직여 줄 수 있는 사람은 자네 밖에 없어. 자네도 알지 않은가.”
“그렇긴 하지만…”
“당장 완에서 장수를 뺄까? 아니면 장안에서 빼? 어디서 빼든 결국 그 구멍을 메꿔줘야 해. 그렇다고 자네가 후방에서 지원만 할 생각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죠.”
“그리고 그곳이 안전하다는 보장 역시 없지. 그러니 차라리 자네가 남하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저희가 형주를 친다고 해서 강남 연맹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들이…”
“서주목에게 연락해두겠네. 우리가 움직이는 것에 맞추어 서주의 군이 움직이게 하지. 어떤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떻게든 이번 원정에서 빠져보고 싶지만 진짜 빠질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
사람이 없는 것도 사실이고 당장 움직이긴 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순욱의 말대로 지금 움직이기 가장 좋은 것이 바로 나다.
“원정을 위한 편제는 자네가 원하는대로 해주지.”
“그럼 승상부주께서 함께 가시렵니까?”
“그럴까? 그래. 그게 낫겠군. 안그래도 자네만 고생시키는게 미안했는데. 이번 기회에 나도 오래간만에 전장에 나가보기도 하고 말이야. 이거 너무 오랫동안 전장을 겪지 못해서 그런지 나도 좀이 쑤시네 그려.”
아.
이 인간도 원래는 전장에서 말타면서 지휘와 책략을 구사하는 인간이었지.
내가 시큰둥히 말하자 순욱은 오히려 반색한 후 대꾸했다.
괜히 데려가봤자 피곤하기만 할 사람이니 어떻게든 빼야겠다.
“아무튼 자네가 좀 해줬으면 해.”
“하아…”
“그렇게까지 싫다고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교완을 생각해서라도 한번 좋게 생각해보게나. 그녀도 은근히 바라고 있을거야.”
“그렇겠죠.”
저번에 견희와 먼저 결혼한 것 때문에 조금 실망한 눈치더만.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내가 대꾸하자 순욱은 빙긋 웃었다.
“정 싫다면 어쩔 수 없네만. 자네가 좀 해줬으면 해.”
“승상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신답니까?”
“승상께서도 자네는 좀 나중에 보내기를 원하시더군.”
“흠…”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욕심이라는 것은 알겠지? 지금 최선은 자네가 움직여 주는거야.”
틀린 말은 아니다.
틀린 말은.
공을 세워도 그 공에 대한 포상을 받지 않은 이유가 뭐겠는가.
조조에 대한 불만을 가진 이들을 잡아내기 위해서다.
그런 내가 군권을 얻게 되고 원정까지 가게 된다면 날 살살 꼬시려는 이들이 반드시 생길터.
어쩌면 유표가 날 꼬시려고 수를 쓸 수도 있었다.
그것을 이용한다면 어렵지 않게 승리를 얻어낼 수 있겠지만…
“일단 알겠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지요.”
“좋게 생각해주길 바라겠네.”
승상부에서 나온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원정이라.
형주를 공략하기 위한 발판으로는 두곳 전진기지를 차지해야 한다.
일단 여남과 완.
지금 완은 형주의 유표와 한중의 장로가 움직일 것을 대비해서 장수와 함께 허저가 대기하고 있었다.
병력만 해도 약 삼만 가량.
여남에는 전위와 이통, 그리고 여건과 전예가 있다.
“으음…”
어디로 가야하나.
그래도 전진기지 만들 필요는 없어서 편하겠다만.
“장군님!”
“음? 아아.”
진군이다.
급하게 뛰어왔는지 그는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얘기하다 말았지요? 여긴 무슨 일입니까?”
“하하하… 그게. 차나 한잔 하시죠.”
“그럽시다.”
진군과 함께 진동부로 향했다.
흑귀대원들이 팔자좋게 비석치기 하는 것을 보던 진군은 식은땀을 흘렸다.
“여, 여전히 자유로운 분위기군요.”
“그래도 싸울때도 자유롭지는 않으니까… 요화. 차 좀 가져다 줘.”
“예.”
진군과 함께 안에 들어갔다.
요화가 차를 가져오자 진군은 차를 홀짝거리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장군님.”
“오관중랑장을 따르니 마니 그런 소리할거면 때려치십쇼.”
“윽.”
진짜 그 얘기하러 온 건가?
진군은 움찔하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하…”
“아니 그보다 왜 조비와 관계를 맺은 겁니까? 이해를 할 수 없네.”
“그게…”
머뭇거리던 그는 볼을 긁적거렸다.
“한가지 정책을 시행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정책?”
“예.”
“혹시 새로운 등용제도나 품계 제도에 대해서 주장하시려고 합니까?”
“풉! 쿨럭! 쿨럭!”
놀라기는.
이유하도 알고 있는 진군의 업적 중 하나가 바로 구품관인법이다.
관직의 등급을 1품부터 9품까지 나눠서 관품에 대한 대우를 달리하는 제도가 바로 구품관인법이다.
이건 뭐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른 것이다.
구품관인법에 따르면 개인의 재덕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게 된다.
즉 지금까지는 유력 가문의 자제들을 추천에 맞추어 관직을 주지만 구품관인법을 시행하게 되면 승상부나 상서부에서 문제를 출제하고,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놓음으로써 개인의 능력을 실제로 확인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입가의 찻물을 닦지도 못한 채 진군은 당황하며 날 보았고 난 그를 향해 웃었다.
“뭐 뻔하지요. 이제 세력이 안정화되어가고 있으니 그런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 쯤은… 하지만 그게 실현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그게… 없지요.”
이게 무슨 이유하가 살던 사회도 아니고.
어느 가문에서 태어났는지조차 개인의 능력이라고 생각되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서 개인의 능력으로 관직을 가진다?
나는 뭐 그렇다고 치더라도 다른 가문에서 난리를 치다 못해 진군을 죽여버리겠다고 떠들어도 시원찮을 제도다.
“하지만…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황족이라 하더라도 결국 죄를 짓게 된다면 그들 역시 벌을 받지요. 그것을 생각한다면 좋은 가문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는 알겠지만 너무 이릅니다. 그거 했다가 진짜 난리날겁니다.”
나야 능력이 있으니 괜찮고, 또 내 자식들이 능력이 없다면 아예 관직을 주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목표로 하는 최종 관직은 태사다.
황제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엄청난 명예를 가진 직위가 바로 태사다.
무려 황제의 스승이라는 관직이니 말이다.
단순 명예직이지만 그 명예가 어마어마하니 어지간한 사람들은 차마 건드릴 수도 없다.
거기에 지금까지 내가 꾸준히 좋은 관계를 맺어 오는 사람들.
그들이 주요 관직을 차지하게 되면 어찌 되겠는가?
황제든 뭐든 절대로 진가를, 그리고 나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된다.
그런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내 자식들?
일 안해도 평생 놀고먹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능력이 안되면 하지 말아야지.
괜히 능력도 안되는데 정치판이든 관직이든 나섰다가 말아먹으면 오히려 걔들한테 손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인 만큼 구품관인법이든 과거제도든 상관없다지만 다른 가문들도 과연 그럴까?
“지금 당장 조가와 하후가의 사람들만 해도 그렇습니다. 지금 진 군수께서 제안하시는 구품관인법은 그들의 힘을 완전히 깍아먹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허나 가문이 좋지 않아 인정받지 못한 인재들을 대거 등용할 수 있습니다.”
“진 군수. 이건 쉽게 생각할 만한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보지요. 진 군수의 말씀대로 가문이 나쁘고 능력이 좋은 이들이 있다고 칩시다.”
“예.”
“같은 능력… 아니, 좋은 가문의 사람이 조금 안좋은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해서… 누가 더 중용될 것 같습니까?”
“그건 법으로…”
“그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명가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쉽게 법을 건드리려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죄를 무관들이…”
“무관들 역시 명가의 사람들입니다.”
“하아아…”
“현실적인 부분을 제외한다면 아주 좋은 제도입니다. 분명 나라의 힘을 강하게 할 수는 있겠지요.”
“….”
진군은 풀죽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 구품관인법이니 뭐니를 떠들어댔다간 기껏 안정화되어 있는 내부가 더 심란해질 것이다.
“너무 급진적입니다. 관직의 품계를 구품으로 나누는 것은 좋지만… 그런 식으로 등용을 그렇게 하면 오히려 혼란만 가속화 될 뿐입니다.”
“그렇지만!”
“천천히 하시지요. 천천히. 조금 더 유화적인 방법을 생각해오신다면 저도 진 군수의 손을 들어드리겠습니다. 진 군수의 방법은 어쨌든 관의 힘을 높이는 것이니까요.”
“정말이십니까?”
“예.”
“하하! 진동장군께서 그리 약조해주신다면…”
“그래서… 오관중랑장과는 계속 함께 하실 생각이십니까?”
“장군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저도 나름대로 생각을 해봐야겠군요.”
“조비는 뭐라고 했습니까?”
“아주 좋은 제도라고… 반드시 도입해야 될 제도라고 말했습니다.”
이게 제정신인가?
좋은 제도이기는 하지만 조가나 하후가에 있어서는 최악의 제도일텐데?
그의 말에 난 피식 웃었다.
이 자식.
진짜 야망은 무지하게 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