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597
“이 녀석은 늦게까지 자지도 않는구만.”
율이를 안은 채 조조는 싱글거렸다.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제 외할아버지라는 것을 알기나 할까?
조조의 수염을 고사리같은 손으로 잡으려 하는 것을 보며 난 쓰게 웃었다.
“요새 잠투정이 좀 심한 것 같습니다.”
“원래 아기는 그런 법이야.”
“그렇습니까?”
“그래. 어른의 사정과는 다르게 항상 아이들은 이렇게 자기 멋대로 나오지.”
율이를 가볍게 안아 들고 가슴에 얼굴을 비빈다.
그것이 재밌었던 걸까?
꺄르륵 맑게 웃은 율이가 조조의 볼에 입맞춰주었다.
“허허! 율이가 제 할애비를 알아보는구만.”
“여아치고는 낯가림이 없어서 오히려 걱정입니다.”
“청이도 그랬지. 아기때부터 사람들을 무척이나 좋아했어. 어떻게보면 앙이 녀석보다 더 대범하다고 할 수 있었을거야. 어이쿠. 이 녀석. 할애비의 수염은 네 장난감이 아니다.”
“이리 주십시요.”
“조금만 더 안고 있게 해주게. 율이의 재롱을 보니까 두통이 가라앉는 것 같아.”
훈훈하게 웃은 조조는 율이를 보듬아 안으며 싱글벙글 웃었다.
황제의 앞에 있을 때 웃던 것과는 다른 웃음이다.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듯한 그를 보던 나는 시녀가 포대기를 가져오자 그것을 들었다.
“이제 자야 할 시간입니다.”
“그런가? 그런데 그건 뭔가?”
“아… 이건 그냥 한번 만들었습니다. 성이와 율이가 잠투정이 심해서… 손을 많이 타서 안아주거나 업어주지 않으면 잠들지 않더군요. 그래서 만든 겁니다.”
이유하의 기억에 있던 물건이다.
포대기.
물론 이유하 역시 직접 사용해 본 적은 없던 것이지만 그가 일하던 시골에서는 노인들이 꽤나 쓰던 것들이었다.
조조의 도움을 받아 율이를 내 등에 업은 후 포대기를 감았다.
그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조조는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나도 해봐도 되나?”
“뭐 상관없습니다만… 좀 보기 그런데…”
“어디 줘보게.”
포대기를 풀은 후 조조에게 주었다.
어색하게 율이를 업은 조조는 포대기에 율이가 감싸지자 등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에 싱글거렸다.
“하하핫! 이거 참 재밌군. 편하기도 하고 말이야.”
“좀 크면 괜찮겠지만 이렇게 아기일때는 포대기를 쓰는게 도움이 됩니다.”
“그래. 그래.”
“아부우…”
“생각보다 잘 어울리시네요.”
“흐흐. 그런가?”
누가 저걸 이 나라의 최고 자리에 있는 승상이라고 보겠는가.
그냥 철없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이며 율이를 위한 장난감을 흔들던 조조는 버둥거리던 율이가 천천히 잠들자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잠도 빨리 들고. 참 착해. 역시 내 손녀 답다니까. 청이도 내가 업어주거나 안아주면 금방 잠들곤 했었지.”
“승상의 등이 마음에 들었나보군요.”
사실 율이는 누구 등에 업히든 시간 되면 잘 잔다.
하지만 저렇게 뿌듯해하는데 괜히 찬물 끼얹을 필요는 없지.
조조는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후 율이를 나에게 주었다.
축 늘어져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율이를 안은 내가 밖으로 나가 시녀에게 율이를 줬을 때 음식을 든 부인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탁자 위에 올려지기 시작한 음식들을 보며 조조는 감탄했다.
이제 막 만든 것으로 보이는 잉어찜에 장어구이, 달래무침, 산수유 무침.
그리고 술은 야관문주.
정력에 좋은 음식들 뿐이다.
그것을 보며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청이는 날 향해 묘한 미소를 보인 후 조조에게 말했다.
“영이 언니가 늦은 시간이라 찬이 별로 없다고…”
“이게 찬이 없는거야? 이야~ 사위는 집에서 먹을 때면 자네 부인들에게 엎드려 절을 해야겠어?”
그녀들이 들고 있는 음식이 탁자에 모두 놓여지자 조조는 머쓱해했다.
“이거 참. 미안하구만. 괜히 늦게 와서.”
“후후. 괜찮습니다.”
내 부인들을 대표하여 영이는 조조에게 인사를 하고 나에게 눈짓했다.
왜?
내가 다가가자 영이는 작게 속삭였다.
“오늘은 그럼 못하는거에요?”
“…그, 글쎄?”
“히잉…”
오늘은 영이와 청이랑 자는 날이다.
대놓고 이런 음식들을 준비했다는 것은 어떻게든 오늘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인데…
영이가 눈에 띄게 시무룩해하자 조조는 껄껄 웃었다.
“내 금방 갈테니 그렇게 미워하지 말게나. 하하하하! 결혼한지 꽤 되었는데 아직도 금술이 아주 좋은 것 같아 보기 좋구만.”
조조가 너털웃음을 터트리자 영이는 히죽 웃은 후 그에게 목례한 뒤 밖으로 나갔다.
여인들이 나가자 조조는 짖궃게 미소지으며 술잔을 들었다.
“자네 첫번째 처가 음식솜씨도 대단하지만… 점점 아름다워지는구만. 이러니 자네가 첩을 들이지 않으려 하는 것이군. 아, 물론 다른 부인들도 아름답기 그지 없어. 좋겠구만. 저런 미녀들을 하나도 아니고 넷이나 데리고 있다니.”
“밤이 무섭습니다.”
“그래도 남자라면 첩 하나 쯤은 있는게 좋지 않겠나? 내가 아는 몰락한 명가의 여인 중에…”
“그 무서운 대상 중에 청이도 있습니다.”
“하하하하!!”
저번에 두열과 왕이의 일 때문에 옆구리가 남아나지 않을 뻔 했다.
진짜 첩을 들인다고 하면 내 등짝도 남아나지 않겠지.
사실 지금은 네명을 감당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다.
만약 이당지가 보내 준 약과 유 의원이 준 야관문이 아니었다면 한 일년 쯤 요양을 했어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내가 나가는 부인들에게 인사해주고 자리에 앉자 조조는 탁자에 있는 음식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거 참. 빨리 가라고 시위를 하는 것 같구만.”
음식들의 대부분은 정력에 좋은 것 들 뿐 이었다.
전에 두기에게서 잉어와 하천의 수호신을 산 이후 영이는 아예 그와 전속계약을 맺어서 칠일에 한번씩 잉어, 그리고 장어를 납품받고 있었다.
악사로서의 재능도 대단하지만 낚시꾼으로서의 재능도 대단했는지 그 인간은 항상 씨알 굵은 놈으로만 보냈다.
덕분에 몸보신은 제대로 하고 있지만 그 몸보신을 해서 다 써버리는지라 좀 힘들다.
“너무 금술이 좋아서 조만간 넷째 소식도 보겠군.”
“예.”
“사처라… 참 대단해. 뭔가 따로 하는 것이 있는 것 같지 않은데 자네 처들이 투기같은 것은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 말야.”
“청이에게 들으셨습니까?”
“그래. 저번에 들었지. 자네 첫번째 처가 아주 대단하여 위계질서를 잘 잡고 있다면서?”
“영이가 좀 그렇죠.”
“어린데도 아주 대단하군. 그래. 그런 식으로 지켜나가야지… 어디보자. 음~ 아주 맛있군.”
잉어찜을 살짝 집어 입에 넣은 조조는 내가 술을 따라주자 한번에 들이마시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정말 맛있어. 음식은 이렇게 따뜻할때 먹어야 하는데 말이야.”
“하긴…”
승상 정도 되면 조가에서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었다.
언제 독살, 혹은 상한 음식일지도 모르니 기미를 해야 한다.
“이렇게 마음 편하게 따뜻한 음식을 먹은 것이 얼마만인지도 모르겠어.”
“자주 드시러 오십시요.”
“그럴수야 없지. 만약 그랬다간 자네 처들이 날 얼마나 원망할지 모르는데 말이야.”
장난스럽게 웃은 조조는 큼지막하게 잘려 구워진 장어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꽤 맛있게 먹는구만.
그가 먹는 것을 보며 나 역시 장어 구이를 입에 넣었다.
“맛있어. 아주 맛있군. 예전에는 이렇게 생각없이 밥을 먹을 수 있었는데 말이야.”
“흠…”
“이제는 그것도 힘들어지겠군. 더 찬 음식을 먹을 것이고, 더 행동에 제약이 생기겠지.”
조조 역시도 왕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는 것은 결국 이러한 것이다.
자신을 빼앗기고, 자신의 모든 것을 대의에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야만 살아남고 그 대의를 이룰 수 있게 된다.
가장 가까운 이마저도 쉽게 믿을 수 없게 되고 결국은 자신의 생활 전반에 제약이 걸리게 된다.
내가 미쳤다고 이짓을 하냐.
난 웃으며 차분히 말했다.
“승상이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적어도 저는 승상을 배신할 일이 없습니다. 또한 제 부인들 역시도. 언제든지 따뜻한 음식에 좋은 술을 드시고 싶으시다면 오십시요. 아니 와주십시요. 와서 저 좀 살려주십시요.”
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조조는 킬킬 웃고 술을 크게 들이마셨다.
야관문주의 쓴 맛이 꽤나 마음에 들었나보다.
한참동안이나 말 없이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던 그는 한마리의 잉어찜을 혼자 다 먹고 나서야 젓가락을 놓았다.
“아~ 배부르다.”
“많이 드시는군요. 저녁 식사를 못하신 겁니까?”
“저녁은 먹었지. 차갑게 식은 요리를. 하지만 그런 것을 먹어서야 기별이나 가겠나? 몇점 먹고 말았을 뿐이야. 또 생각도 없었고.”
“순 부주 때문입니까?”
“음… 뭐 그렇지. 높은 자리에 올라가니 점점 이러한 것이 걸리는구만.”
술을 홀짝이며 조조는 차분히 말했다.
“과거에는 이렇지 않았어. 과거에는… 내가 점점 높이 올라갈 수록 오히려 고립된다는 생각이 드는구만.”
“대의를 원하는 자가 가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지요.”
“그래서 내가 자네를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자네는 충분히 대의를 노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의를 고집하고 있어. 나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야.”
“하하하… 뭐 다 그렇지요. 사과 드시겠습니까?”
“좋지.”
방에 놓여져 있는 사과를 가져왔다.
빨갛게 잘 익은 사과를 이리저리 살피던 내가 단검을 들어 사과를 깍기 시작하자 조조는 날 가리켰다.
“보게! 그거!”
“예?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아니. 만약 다른 이들과 있을 때 그렇게 내 앞에서 칼을 들고 있으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이렇게 호위 한명 없이 말이야.”
“그야… 난리를 치겠지요.”
“맞아. 내 앞에서 과일 하나 제대로 깍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네. 오히려 구속에 불과하지. 그리고 깍아 온 사과도 먼저 먹지 못해. 결국 누군가가 기미를 한 음식을 먹을 수 밖에 없어. 개인의 행복은 전부 사라져간다는 거지.”
“흐흐흐. 그래서. 제가 이 칼로 승상을 찌르기라도 할 것이란 말입니까?”
내가 웃으며 칼날을 조조에게 겨누자 조조는 껄껄 웃었다.
“자네가 이렇게 나오는데도 내가 안심하고 웃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거야. 자네는 절대로 나를 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지.”
“그렇습니까?”
“그래. 내가 있음으로서 자네는 자네의 욕심을 차릴 수 있을테니까.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요.”
내가 조조를 믿고, 또 조조를 따르며 그가 높이 올라가게 하려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조조는 나를 믿어준다.
그리고 조조는 나를 믿는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욕심을 챙기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제는 거의 공생관계가 되어버린 조조와 나의 관계를 그도, 나도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이제는 나에게 이렇게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줄어만 가고 있지. 그리고 오늘…”
조조는 우울해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사람을 잃었는지도 모르겠군.”
역시 순욱의 일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보군.
내가 만들어 준 명분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결코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순 부주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살아가며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알아. 하지만… 바라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네.”
“그렇다고 순 부주를 쳐내실 생각이십니까? 친우끼리도, 형제끼리도, 부부끼리도. 보는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 자른 사과를 쟁반 위에 올려 놓았다.
그것을 씹어 먹으며 조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그렇긴 하지. 하지만 대의라는 것이 무엇인가. 함께 하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바로 그것일세.”
“그래서요?”
“글쎄… 나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
조조는 한숨을 내쉬며 깍아주는 사과를 씹었다.
그가 한알의 사과를 다 먹었을 때 난 다른 사과를 깍으며 말했다.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자신의 행동에 의문을 가질 때도 있고, 그 의문에서 나아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
“기회조차 빼앗는 것은 문제가 되지요. 제가 보기에 순 부주는 그저 잠깐 흔들린 것에 불과합니다. 저도 가끔씩 흔들릴 때가 있는데요.”
“…그게 정말인가?”
“예. 어여쁜 여인을 보면 마음이 동하기도 하지…”
“진짜?”
“사실 동하지 않습니다. 제 아내들은 최고니까요.”
조조는 싱글거렸고 난 정색하며 말을 바꿨다.
저 인간.
내가 다른 여자를 보며 마음이 동한다는 말을 하면 냅다 영이와 청이, 완이와 견희에게 말할 인간이다.
내가 인상을 왕창 찌푸리며 투덜거리자 조조는 껄껄 웃었다.
“아무튼. 견물생심입니다. 자신이 뜻하는 것을 위해 사람이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결과가 중요하지요. 결과가.”
“흐음…”
“오늘 제가 한 일이 그저 순 부주를 살리려고 한 줄 아십니까? 승상을 위해서이기도 했습니다. 승상께서 위로 올라가시며 힘들어 하실때 잠깐 내려와 쉴 수 있는 자리 정도는 마련해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승상이 위에서 버티고자 할 때 그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지요.”
“….”
“사람은 간사합니다. 그 어떤 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흔들림에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제가 보기에 승상께선 순 부주를 사람이 아닌 존재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신뢰를 하기에 그러신 것이겠지요. 그러지 마십시요. 그 역시 사람입니다. 자신의 욕심이 있습니다.”
“흐음…”
“제가 드릴 말씀은 단 하나. 부디 승상께서 현명하게 판단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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