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79
00079 자네의 생각은 어떠한가? =========================
가후.
삼국지에 등장한 모든 책사들을 따져도 가장 끝이 원만했던 처세술의 대가.
조조를 죽일 뻔 하고 그의 아들인 조앙과 조카인 조안민을 죽였으며 조조가 신뢰하던 무장인 전위마저도 죽이는 희대의 계책을 세운자.
자신이 모시는 주인의 숙모마저도 제물로 바쳐 조조를 잡을 뻔 했던 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상황판단과 세력의 구분을 통해 조조의 밑으로 들어가 오히려 조조의 신뢰를 받았던 자.
조조 사후에도 조비에게 인정받아 삼공의 자리에 올랐던 자.
그가 내 눈 앞에서 허리를 숙이고 있는 것에 난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야. 뭐하냐?”
인사를 받고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것에 의아해하며 방통이 옆구리를 찔렀다.
그제서야 상념에서 벗어난 나는 황급히 그보다 더욱 깊게 허리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산양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수경원의 진유하라고 합니다. 아직 많이 어리고 모자르니 어르신들의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그렇게 낮출 필요 없네. 자네라면 금방 높은 관직에 오를 것 같으니.”
빙긋 웃은 순유는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순유가 온 것도 놀랍지만 나는 공손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가후에게 더욱 신경이 쓰였다.
저자가 왜 온 것일까.
저자가 무슨 속셈으로 이곳에 온 것일까.
무엇을 원해서?
나는 긴장감에 부르르 떨며 천천히 몸을 원래대로 돌렸다.
“진 사제.”
“네. 사저.”
“괜찮다면 방을 마련해 줄 수 있을까? 급하게 오느라…”
사저가 웃으며 말하자 난 고개를 끄덕이고 방통을 보았다.
그가 순유와 장수를 데리고 가는 것을 본 나는 가후가 짐을 옮기려 하자 황급히 그를 말렸다.
“토로교위께서도 쉬시지요. 여독이 쌓이셨을텐데.”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관아의 하인들에게 말하면 됩니다. 부디 편히 쉬어주시길 바랍니다.”
“하하하… 말씀 높이지 마십시요. 고작해야 미관말직에 있는 한가한 이에 불과하니.”
가후가 웃으며 말하자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자는 반드시 잡아야 할 자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같은 편이 되어야 할 사람이기에 나는 그에게 더욱 공손히 대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오히려 저에게 폐가 됩니다. 저희 진가는 손님을 받을 때 그 관직이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디 저희 진가의 체면을 봐서라도…”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어쩔 수 없군요. 진 도련님의 호의를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 관직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경력이나 연배를 보아도 가 교위께서 더욱 높으신데 그리 높여주시면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청컨데 말을 낮추어 어린 후배를 대하듯 말씀해주십시요.”
허리를 숙여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손함을 보였다.
그가 말을 꺼낼때까지 허리를 일으키지 않았고 가후는 한참동안이나 입을 다문 채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자네의 호의를 받을 수 밖에 없겠군. 조금 실례이기는 하지만… 그럼 부탁하겠네.”
“감사합니다. 가 교위 어르신.”
“하하하! 이 사람. 날 너무 높여주는구만.”
그 가후를 높이지 않으면 누굴 높이겠냐.
가후가 쓰게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치고 관아로 돌아가자 난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서방님?”
“…응.”
“땀 좀 봐… 왜 그래요?”
“응?”
조조를 눈 앞에 두고 그와 거래를 할 때조차 등에서 밖에 식은땀이 흐르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마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손이 아직도 떨린다.
“저 사람… 아는 사람인가요?”
휘적휘적 걸어 하인들과 함께 들어가는 그를 보며 사마영이 조심스레 물었지만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가후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것은 완성에서 조조를 격퇴했을 때다.
지금은 그의 말대로 고작 토로교위에 불과한 한직 종사자에 불과하겠지.
“아는 사람이랄까…”
사마영의 질문을 받으며 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주의해야 할 사람이겠지.”
“도대체 왜…”
“하하하. 이유는 나중에 말해줄게. 그럼 들어갈까?”
하인들이 마차의 짐을 빼서 옮기는 것을 보며 사마영과 함께 돌아갔다.
아까 내가 가후를 보고 너무 놀란 것 때문에 걱정하던 그녀를 안심시키고 관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소개시켜주었다.
유모는 사마영을 보며 펑펑 울었고 요화는 그녀에게도 충성을 맹세했다.
서성과 흑귀대 역시도 아담한데다가 예쁜 사마영이 좋았는지 그녀에게 친절한 모습을 보였다.
“다들 좋은 사람 같네요.”
“그렇지?”
“네. 서방님의 옆에 이런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된답니다.”
“나도 그래.”
사마영이 웃으며 내 손을 꼭 잡자 난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합방을 하면 좋을텐데.
하지만 아버지의 엄명이 있으니 혼인식 전에는 합방을 할 수 없다.
내가 아쉬워하는 것을 눈치 챈 사마영은 내 손을 꼭 잡고 손등에 입맞추어주었다.
“서방님과 같이 자지 못하는 것은 아쉽네요. 하지만 아버님의 말씀을 어길 수는 없죠.”
“그럼 아버지 걱정하시니까 몰래 할까?”
“후훗. 그러다가 아버님께 혼날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오늘은 이만…”
사마영은 내 손등에 연신 입맞추더니 손을 쭉 내밀었다.
안아달라는 듯한 그녀의 태도에 웃으며 꼭 끌어안아주었다.
작고 아담한 사마영이 품에 안기자 향기가 느껴진다.
“그럼 오늘은 아쉽지만 여기까지네요. 내일 다시 뵈어요.”
“알았어. 그럼 편히 쉬어. 아. 그리고 네 호위는 당분간 서황에게 맡길 생각이야. 사마가의 충직한 병사들이 있으니 혼인식 전까지는 그들이 널 호위할건데… 괜찮겠지?”
“그렇긴 하지만… 서황의 무를 생각하면 서방님께서 따로 쓰시는 것이 좋지 않나요? 요화에게 부탁하고 싶은데…”
“괜찮겠어?”
전에도 그랬지만 정이를 살린 이후부터 요화의 충성심은 더욱 강해졌다.
그렇다면 그에게 호위를 맡겨도 괜찮겠지.
“물론이죠. 서방님께서 서황을 달라고 하신 이유 쯤은 저도 간파할 수 있답니다.”
“아이고 이뻐라~”
생글거리며 고개를 끄덕인 사마영을 다시 끌어안아주었다.
그것만으로도 기뻐한 사마영의 입술에 입맞춰 준 후 난 뒤로 물러났다.
“그럼 진짜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네. 잘자.”
“네. 좋은 밤 되시길 빌게요.”
사마영과 인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나는 사마가의 병사들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요화를 불러오라 말했다.
그들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을 찬 요화가 오자 그에게 사마영의 호위를 맡겼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내 마누라 지켜달라는 건데 뭐가 감사하냐?”
“도련님께 아가씨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저에게 맡기신다는 것 아닙니까. 목숨을 바쳐서라도 아가씨를 지키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짜식. 너만 믿는다.”
“맡겨만 주세요.”
히죽 웃은 요화가 의자를 끌고와 자리에 앉자 난 어깨를 으쓱이고 내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는 이미 방통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뭐하냐?”
“야.”
“왜.”
“채 사저한테 들었어.”
“뭘 들어?”
“그게… 근데 넌 뭐하냐?”
“만날 사람이 있어서.”
“누굴?”
아까까지 입고 있던 편한 옷을 벗고 최대한 예를 갖출 수 있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평소에는 불편해서 입지 않던 옷을 입는 걸 본 방통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난 피식 웃었다.
“있어. 근데 사저가 뭐.”
“오늘 온 토로교위인 가후라는 사람 있지.”
“응.”
“그 사람이 그 사람이랜다. 수경원의 전설적인 존재. 가씨 성을 가진 남자.”
“…뭐? 누가 뭐라고?”
“토로교위 가후. 가 문화가 수경원의 전설. 가씨 성을 가진 남자라고 하더라.”
그의 말에 난 주먹을 꽉 쥐었다.
*****
“재밌는 녀석이군.”
하인이 마련해 준 방은 장안에 있는 집보다 훨씬 좋은 방이었다.
물품 하나하나가 고급으로 보이는 방의 침상에 앉은 가후는 쓴웃음을 지었다.
“보통 놈은 아닌 듯 싶었지만 설마 눈치 챈 건가.”
수경원을 졸업하며 일부러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수경원을 졸업한 사실을 감췄다.
때를 기다리기 위해서.
수경원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움직임을 방해받기 싫어서.
그렇게 십수년이라는 시간동안 완벽하게 자신을 감추고 살았고 지금까지 그 누구도 자신에 대해서 저렇게 대한 이가 없었다.
“후후후…”
작게 키득거린 가후는 진유하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을 보자마자 엄청나게 충격을 받고 허둥거리던 모습을 보니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문화. 안에 있는가?”
“네. 있습니다. 들어오시지요.”
짐을 푼지 얼마나 됐다고 순유가 자신의 방을 찾아오자 가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반겼다.
빙긋 웃은 그가 다가오자 가후는 허리를 숙였고 순유는 그의 팔을 꽉 잡아주며 말했다.
“고맙네. 자네 덕분에 장안을 탈출할 수 있었어.”
“별 말씀을. 황문시랑 어르신께서 그간 상서령 어르신과 잘 지내신 덕분이지요. 만약 그것이 아니었다면 저라고 해도 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동탁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았는데… 하하.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나?”
한때 동탁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꾸몄다가 그것이 탄로나 사형에 처해질 뻔 했는데 그때 꾀를 내어 자신을 도와 준 것이 가후다.
그때부터 연을 맺고 있었던 순유는 동탁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 준 가후가 고마워 웃으며 물었고 가후는 그의 질문에 그저 선선히 웃을 뿐 이었다.
“자네는 정말 대단하군. 어떤가? 자네도 함께 가지 않겠는가?”
“연주목에게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 숙부께서 그와 함께 있다고 하더군. 자네가 같이 간다면 큰 도움이 될걸세. 그리고 자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고. 언제까지 그런 미관말직에만 있을 생각인가? 내가 보기에 자네는 그런 한직에 있을 사람이 아니네.”
순유의 웃음을 마주하며 가후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저 같은 사람이 연주목 같은 분께 가면 외려 연주목께서 욕을 먹습니다. 또한 저를 소개해주신 황문시랑께도 폐가 되고… 게다가 저는 조금 할 일이 있습니다.”
“허나 이렇게 도움을 받았는데…”
“굳이 저에게 보답을 해주시고 싶으시다면 차후 황문시랑께서 큰 일을 하실 때 과거 가후라는 자가 있었구나. 라고 한번 생각해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자신의 공과 자세를 낮추며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가후가 마음에 들었지만 그는 돌려서 거절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더는 권할 수 없었기에 순유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내 조카에게 연통을 보내보니 연주목은 모르겠으나 연주목의 아들은 이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다고 하더군. 운이 좋다면 연주목도 만날 수 있겠어.”
“그렇게 된다면 아주 다행이겠지요.”
빙그레 웃으며 가후는 고개를 끄덕였고 순유는 다시 한번 그를 치하해준 후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자 가후는 순유가 나간 방문을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저 역시 황문시랑께 도움을 받은 몸입니다. 황문시랑이 아니었으면 저도 나오지 못했을테니…”
왕윤이라는 건방진 미꾸라지가 대계를 무너트려놨으니 그 대가를 치루게 해줘야 할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반드시 장안 밖으로 나올 필요가 있었던 가후가 이를 드러내었을 때 또다시 그의 방을 누군가가 찾았다.
“들어오십시요.”
“가 선생.”
“아. 오셨군요.”
동행한 장수가 안으로 들어오며 웃자 가후는 고개를 끄덕이고 품에서 꺼낸 서찰을 보였다.
그것을 받은 장수는 주변의 인기척을 살핀 후 조심스레 물었다.
“하지만 괜찮겠나? 잘못하면…”
“괜찮습니다. 장 어르신께서 말씀하신다면 이각과 곽사, 번주 역시 동의할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겁이 많은 소인배입니다. 자신의 보위를 위해서라면 충분히 움직일 이들이니 심려치 마시고 장 어르신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장 어르신께서 말씀하신다면 그들은 천천히 준비를 하겠지요. 여포에 의해 동탁이 죽게 된다면 왕윤은 필시 동탁의 부하들을 모두 제거하려 할 것입니다. 그것을 언급한다면 그들로서는…”
“하지만 그렇다면 왕윤을 잡으면 되는 것 아닌가?”
“어떻게요?”
“…그건. 자네가 머리를 좀 쓰면 되는 것 아닌가?”
“가능하기는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고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또한 왕윤이 죽는다 하더라도 이미 동탁과 여포의 사이는 틀어진 바. 그들이 함께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습니다.”
위험한 길을 걷고 싶지 않았던 장수는 가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지금까지 가후의 말대로 해서 잘못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가 자신이 준 서찰을 받고 밖으로 나가자 가후는 의자에 앉으며 히죽 웃었다.
“물론 막고자 하면 막을 수 있겠지만 이미 내 계책은 무너졌고… 그렇다면 미꾸라지가 만들어 놓은 흙탕물 속에서 한바탕 낚시질이나 해봐야겠군. 뭐가 낚일지가 정말 궁금하네. 과연 뭐가 낚일 것인가… 천하가 낚일 것인가. 아니면 황제가 낚일 것인가.”
나지막히 중얼거린 그는 등불을 지켜보았다.
시간은 이미 늦었다.
오늘은 오지 않을 것인가?
“흙탕물의 낚시도 낚시인데… 기다리는 이는 오늘 오지 않을 것 같군. 뭐 시간은 많으니 오늘은 이만하고 자도록 할까…”
쓴웃음을 지으며 침상으로 걸어간 그가 누우려던 찰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가후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들어오십시요.”
문이 열린다.
등불에 비춰진 입구에는 정갈한 예복을 입은 소년이 공손히 고개를 숙인 채 기다리고 있었다.
“이 늦은 시간에 왠일이냐? 들어오거라. 유하.”
“감사합니다.”
“감사라니. 너의 집인데.”
과할 정도로 예를 갖추는 그를 보며 가후는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고 의자에 앉았다.
“앉거라.”
“네.”
자신이 자리를 권할 때까지 앉지 않는 그를 보며 가후는 더더욱 진하게 웃었다.
“그래… 왜 날 찾았느냐? 무언가 할말이라도 있는 것 같구나.”
부드러운 어조로 그가 말하자 진유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수경원의 진유하. 사형께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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