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888
———
관청에 돌아와 곧장 안으로 향했다.
좌풍익에서는 아무래도 치렁치렁한 관복을 입고 있기 힘들다.
갑옷, 혹은 작업복.
대부분이 움직이기 편한 옷차림 일 뿐이다.
그런데 오래간만에 관복을 제대로 차려입은 이들을 보니 되려 신선하다.
“경조윤. 처음 뵙겠습니다.”
나를 기다리던 젊은 사내가 허리를 숙였다.
그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 준 후 난 자리에 앉았다.
“그래… 허도에서 오셨다고?”
“예.”
“이야기나 들어볼까?”
그는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관리에게 두루마리를 받았다.
그것을 양 손으로 공손히 들고 나에게 바친다.
“어디보자.”
두루마리를 펼쳐 읽었다.
이래저래 장황하게 쓰여져 있었지만 내용은 간단했다.
전쟁이 끝났다는 내용이다.
“중달이 결국은 해냈군.”
서량의 역적인 한수와 북궁가야, 그리고 이육의 목을 벤 후 서량 정벌에 성공했다.
그 뿐만 아니라 새로운 양주목을 추대하여 그와 문흠, 그리고 조창이 양주에 대한 점령작업을 실시한다고 한다.
“훌륭하네.”
두루마리를 접어 옆에 놓았다.
아직 한가지 더 있는 듯 하다.
“그건 위왕께서 보내신 것인가?”
방금 내가 읽은 것은 상서령인 종요가 보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명령서겠지.
대충 내용은 예상이 간다.
허도로 오라는 것일 거다.
난 마음의 준비를 한 후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경조윤 진유하는 위왕의 전서를 받으라!”
“경조윤 진유하. 위왕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내가 부복하고 고개를 숙이자 그는 붉은색 고급비단을 펼쳤다.
“경조윤 진유하는 이달 말까지 허도로 복귀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역시 예상대로군.
다른 말 따위는 없었다.
익주군을 막아낸 것에 대한 것, 그리고 좌풍익을 발전시킨 것에 대한 포상은 아마 허도에 돌아가게 되면 받게 될 것이다.
그가 두루마리를 공손히 접어 비단에 감싸자 내 자리로 돌아갔다.
“가는 건 좋은데 말이지.”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댁도 오면서 봤을 것 아닌가?”
상규하를 이용해서 적을 막음으로써 망가진 논과 밭, 수로를 다시 복구하고 수문을 만들어야 한다.
이게 저수지 만드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물 퍼서 저수지를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이거 하려면 또 여기저기 물길 빼오고 다른 곳의 물을 넣고.
상당히 복잡한 일이다.
“지금 임진현에는 문관이 별로 없어서. 통제를 해 줄 사람이 부족하거든.”
그때야 학소도 있고, 마량도 있고, 장합과 서황 뿐만 아니라 곽준도 있었다.
거기에 사마의도 가끔씩 내려와 상황을 보며 치수에 도움을 주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당장 저 처리를 못하면 내년 농사가 망할텐데. 이미 올해 농사도 꽤나 망한 상황에서 이년이나 망하게 하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젊은 낭관은 아주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했다.
“상서령께 명령서를 받았습니다. 좌풍익까지 오는 길에 들러 좌풍익과 경조를 도울 사람을 같이 보내라고.”
“오호.”
“장 우부풍, 그리고 관 별가에게 요청했습니다. 그쪽의 급한 일만 마무리 지으면 바로 좌풍익으로 올 것입니다.”
눈치도 빠르고 행동력도 좋다.
우부풍으로 가 있는 장제와 관녕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경조 쪽은?”
“하동군에서 지원해주기로 했습니다.”
하동군수인 두기가 나선다면 크게 도움이 될거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빙긋 웃었다.
“또 필요하신 일은 없으십니까?”
“아니. 그정도면 된 것 같군… 그보다. 허도에서 왔다고?”
“예.”
“상서부 소속?”
“예. 상서령 휘하에 있는 낭중입니다.”
“그렇구만… 서량의 일은 끝났다고 볼 수 있는 건가?”
“일단 허도에서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허도의 분위기는 어땠지?”
내 질문에 그는 막힘없이 말했다.
“전장군의 탁월한 지휘와 경조윤, 좌풍익 덕분에 위기를 벗어났다며 축제 분위기 입니다.”
“그런가… 그거 다행이네.”
별다른 일은 없는 듯 하다.
그럼 맘 편히 허도에 가도 되겠군.
“그래도 걱정이야. 이거 좌풍익을 두고 그냥 가기는 좀 그런데.”
“늘 백성을 아끼시고 솔선수범하시는 경조윤 답군요.”
“쓸데없는 아부는 관둬.”
“이번에 허도에 가시면 분명 관직이 오르실 터. 경조윤께서 어디까지 가실 수 있으실지 기대가 됩니다.”
서량의 정벌을 성공, 그리고 익주군을 훌륭히 물리쳤다.
그런만큼 전공에 대한 포상은 있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이번 전쟁이 조앙을 위한 전쟁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사마의와 내가 조앙의 사람이니 그에게 공을 돌린다고 하더라도.
백성들의 충성심을 올리고 문무 백관들의 사기를 올려주기 위해서는 전공 수여식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등위가 오르든, 아니면 봉지가 하사되든 하겠지.
어쨌든 내가 가서 이번 논공행상에 참가하는 것이 옳다.
다른 문제들도 있으니 말이다.
“이번달 말이면… 오늘 내일 안에 출발을 해야겠네 아. 궁금한게 있는데 허도에 아직 아버지가 계신지 모르겠어. 혹시 아나?”
“산양군수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직 허도에 계십니다. 순 승상과 함께 백관들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시는 분으로 유명하지요.”
그렇다면 그냥 혼자 휙 갔다 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단 석이와 유도 보여드려야 했다.
그리고 다른 가족들도 보고 싶으실 것이다.
“좋아. 가족들을 데리고 잠시 허도에 유람이나 갔다온다고 생각해야겠군.”
사람이 없어서 영이도, 청이도, 그리고 완이도 일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나 혼자 갈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내가 웃으며 말하자 그는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출발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까?”
“그게 낫겠지? 정리만 좀 할테니까 기다리라고. 아. 먼길 오느라 피곤했을텐데 목욕탕을 내어테니 푹 쉬게나.”
“감사합니다.”
“그런데… 자네 꽤나 머리 잘 굴리는 것 같은데. 이름이 뭔가?”
내 질문에 그는 기뻐하며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보니 인사만 드리고 제 소개를 하지 않았군요. 저는 상서부 소속의 낭중 무습입니다. 그리고 서주 태학 출신입니다.”
서주 태학?
오… 이거 엄청난 인잰데?
서주 태학 출신이라는 것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는 듯 그는 뿌듯해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태학에서는 성현의 말씀 뿐만 아니라 군사학, 그리고 농법까지 가르친다.
관직에 오르면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농사를 장려하며 농법에 대해 모르는 이들을 계도한다.
무관이 된다 하더라도 둔전 때문에 농법에 대해 알아야 했다.
그 농법에는 당연히 치수에 대한 지식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실무의 중요성도 생각하기에 각 지방에서 실무까지 경험한 인재들이다.
“그래? 앞으로 잘 지내보세.”
“예? 아. 예. 앞으로라니. 하하… 경조윤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군요.”
주변의 시샘이나 견제야 어쨌든 나는 지금 위국에서 하나의 세력을 구성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파벌의 중심이다.
당장 좌풍익인 사마의도 그렇지만 북부의 서복, 형주목인 방통, 거기에 서주에 있는 이들도 내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상서령인 종요와는 막역지우이고 승상인 순욱과도 좋은 관계다.
나중에 잘하면 사돈관계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 외에 장군부나 교사원, 그리고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병주목인 가 사형도 쉽게 볼 수 없다.
그런만큼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일개 낭중에 불과한 무습으로서는 무척이나 기쁠 것이다.
잘만하면 상서부든, 아니면 승상부든.
그게 아니면 다른 좋은 부서로 빠르게 진급할 수 있을테니까.
아무리 실력제로 관직에 임관할 수 있게 한다고 한들 인맥과 파벌은 무시 못하는 거다.
나의 줄을 잡으면 어디든지 임관하고, 또 근무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그가 기뻐하자 난 여유롭게 웃었다.
“그래.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지?”
“당연한 말씀을. 많은 신료들이 경조윤과 함께 일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래. 그거 잘됐네.”
말했겠다?
“그럼 내가 올때까지 이곳에서 좌풍익을 도와 일을 해줄 것이라고 믿네.”
“…예?”
“걱정 말게나. 종 상서령과 내 막역한 사이이니 자네의 공백에 대한 문제는 내가 해결해주지. 아무런 걱정 말고 풍요로운 좌풍익에서 좀 쉬었다가 가게. 소일거리 삼아 복구를 좀 돕고.”
물론 소일거리 치고는 좀 많겠지만.
당장 영이의 공백을 메우기는 힘들겠지만 그건 마량을 불러서 시키도록 하자.
아무리 못해도 완이 수준은 할 수 있겠지.
진짜 잘하면 영이의 공백도 메꿀 수 있을 것이고.
“어? 어어?”
문관이 부족한 좌풍익이다.
비록 낭중이라고 하지만 꽤 눈치도 빨라보이고 머리도 좋아보이는데다가 태학 출신이라면 그냥 보낼 수 없지.
무척이나 당황하는 무습을 향해 난 웃으며 말했고 그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시무룩히 고개를 숙였다.
“며, 명을 따르겠습니다…”
“아주 훌륭해! 그야말로 나라의 동량이라고 할 수 있겠어!”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어깨를 가볍게 쳐 주었다.
“그럼 바로 옷 갈아입고 공사현장으로 가게나. 그 좋은 관복은 나중에 입도록 해. 좌풍익에서는 관복 안 입어도 되니까 말이야.”
“예에…”
관직에 오르는 젊은 친구들에게 있어서 관복은 임관복 이상의 상징을 가지고 있다.
이 관복을 입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알고 있다.
근데 그거 다 아무 의미없더라.
관복을 입으면 일하는 것도, 밥 먹는 것도 불편하기만 할 뿐이다.
“그리고 거기. 자네들도.”
“엑?”
낭중을 보필하기 위한 낭관들, 그리고 그를 호위하기 위한 하급 무관들.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들이 개구리 터지는 소리를 내자 난 웃었다.
“자네들의 임무는 여기 무 낭중을 호위하고 보좌하기 위함이 아닌가? 무 낭중이 좌풍익을 위해 남는 것인데 자네들도 남아야지.”
“하, 하지만 저희는 그 뭐시냐. 경조윤을 보필하여 허도로…”
“그건 걱정말게나. 역전의 용사들이 있으니까. 흑귀대와 백귀대가 나를 호위할 것이니 아무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결국 그들은 울상을 지으며 내가 부른 하인들과 함께 움직였다.
좋은 관복은 벗고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채 일하러 가야 하는 자신들의 숙명을 알고 있을 것이다.
공사현장으로 그들을 보내고 난 바로 안채로 향했다.
안채의 뜰에 들어가니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을 하고 있는 휘가 보였다.
“휘야.”
“아버님.”
어린 시절의 영이를 쏙 빼닮은 휘가 베시시 웃었다.
그녀가 일어나 나에게 달려오자 난 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슨 생각이라도 하고 있었니?”
“아뇨. 그냥 마음을 좀 비우고 있었답니다.”
“그래…”
얘가 도에 관심이 있나.
내가 걱정스레 바라보자 휘는 고개를 저었다.
“아버님께서 걱정하시는 그런 건 아니에요.”
“내가 뭘 걱정하는 줄 알고?”
“제가 도인이 되기 위해서 출가할까 걱정하시는 것 아닌가요?”
“…어, 어떻게 알았니?”
“아버지의 얼굴에 다 쓰여져 있는걸요?”
“하하하… 그래. 휘야.”
“예.”
“이번에 허도에 갈 것이다.”
“그렇군요.”
허도행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이 없어보인다.
그런 휘를 안아준 후 깨끗한 이마에 입맞췄다.
“혹시 성이가 장래를 약속한 여인이 있다는 것은 아니?”
“예. 모현이라고 하던가요? 수레장인의 딸과 잘 어울려 다니더니 그런 약속을 했다고 하더군요.”
나만 몰랐구나.
휘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난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간 김에 그 모현이라는 아이를 만나 볼 생각이다.”
“성이를 결혼시키시려구요?”
“일단 만나봐야겠지만… 성이가 저리 원하니 긍정적으로는 생각해봐야지. 그리고…”
“제 문제도 있군요.”
어떻게 안거냐.
청이 빼고 내 진가의 여인네들은 내 얼굴만 보면 속을 알 수 있는 능력이라도 있나보다.
휘가 무덤덤히 말하자 난 쓴웃음을 지었다.
“만약 네가 싫다면 하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약속한 것이니 만큼… 한번 만나보는 것이 낫지 않겠지?”
“순 승상의 아드님… 장남과 차남은 이미 결혼을 했고 삼남인 순선이 미혼에 나이도 저와 비슷하니, 그 인가요?”
“…나이가 비슷하다기보다는 좀 많지 않니? 내가 알기로 열 다섯인가 열 여섯인가 그랬던 것 같은데.”
“아주 귀여운 사람이에요.”
“…어어. 그, 그러니?”
언제 만나본거지?
내가 당황하자 휘는 베시시 웃었다.
“예전에 관 오라버니와 하후 오라버니를 데리고 허도에서 나들이를 갔을 때 만났었죠… 후후후… 그때 물에 빠졌을 때의 얼빠진 표정이라니. 쿡쿡쿡… 저와 결혼하게 된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기뻐할지 생각만해도 즐겁네요~”
난 마음 속으로 순선에게 애도를 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