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197
197화
진등은 투석기의 측면에 죄인들을 배치하였다. 그들의 발에는 나무로 된 족쇄가 채워져 있고, 손에는 조잡해 보이는 창이 들려 있었다.
이들은 연신 주변을 둘러보며 두려운 듯 몸을 떨어 댔다. 하지만 바닥에 박힌 쇠못과 사슬이 족쇄를 단단히 묶고 있어 도망은 꿈도 꾸지 못하였다.
장제는 겁에 질려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들을 잠시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저들을 저리 묶어 두면, 과연 투석기를 지키려 하겠습니까?”
그러나 진등은 밀이(蜜餌, 기장쌀을 꿀에 섞어 구운 것)를 씹으며 태연스레 답하였다.
“애당초 투석기를 지킬 요량이었으면 저런 놈들을 쓰지는 않았겠지. 그냥 구색을 갖추기 위한 용도일 뿐이네. 그래야 멀리서 봤을 때 그럴듯해 보이지 않겠나. 그리고 죽을 자리에 멀쩡한 애들을 집어넣는 것도 좋은 방도는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진등의 말에 장제는 새삼 아깝다는 심정으로 투석기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이미 검증이 끝난 상등품의 물건이었다.
그런데 수춘의 한정된 공간에서만 만들어진 투석기를 이렇게 쉽게 버린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 귀한 걸 정말 버려도 되겠습니까?”
“자네가 무슨 마음인지는 알겠으나, 전혀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네. 어차피 투석기란 성을 부술 때나 사용하는 물건인데, 대어를 낚으면 성 자체가 의미 없는 땅에 불과할 뿐이지. 그리고 전에도 말해지 않았는가, 저것들은 어차피 못쓴다네. 불량품이거든.”
“흠, 마치 실험을 해 본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순간, 진등은 뜨끔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으응, 그게 사실은… 해 봤다네. 원래 주공으로부터 받은 투석기 중에 큰놈이 두 대, 작은놈이 스무 대, 그리고 차노(車弩)가 서른 대가 넘었지. 그런데 지금은… 자네도 알다시피 이게 전부라네.”
“혹시 도강해서 써 보셨습니까?”
진등은 그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었다. 이 물건들을 강 건너에서 능히 쓸 수 있는지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그냥 이래저래 한번 써 보았네. 차노는 그럭저럭 버티던데, 투석기는 영 안 되더군. 물안개가 매우 치명적이더라고.”
진등은 지난 며칠간 강 주변에서 투석기와 차노들을 운용해 보았다. 실전에서 얼마나 유용한지 알아보기 위한 작업이었지만, 그 결과는 꽤 참혹하였다.
쇠와 나무로 구성된 투석기는 이리저리 비틀려 운용병들만 죽어 나가고, 차노도 사정거리의 수정이 필요한 문제들이 나타났다.
“음, 장인들이 주의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에 진등은 처음 이 물건들을 받았을 때를 떠올리며 이마를 문질렀다.
당시, 위월이 정비병들을 데려가라는 제안을 하자, 자신은 아주 위풍당당하게 필요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니 이제 와서 무슨 염치로 사람을 요청하겠는가.
“당연히 주의를 받았지. 관리인이 붙어 철저히 관리만 한다면 도강은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그래서 난 자신 있게 맡기라고 했는데, 그 관리란 게 좀 다른 것 같더군. 하기야 주공께서 아무런 비책 없이 이런 물건을 내려주었을 리 만무하지.”
“그럼 차라리 그냥 주공께 상신드려서 관리할 수 있는 장인을 데려오면 되는 일 아닙니까?”
진등은 밀이를 입안에 욱여넣으며 말했다.
“흥, 그것은 절대 안 될 일이네.”
진등은 자신이 깔보고 무시하던 위월에게 고개를 숙이는 일을 생각하기도 싫었다.
‘공을 세워서 주공께 상을 받으면 그만이지.’
* * *
늦은 밤.
여일이 웃음을 흘리며 다가가자 병사들 역시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겼다.
“많이 힘드실 텐데, 술 좀 드시고 하시지요.”
“아이고, 우리 주동(酒童)께서 나왔구먼.”
여일은 병사들에게 술 한 잔씩을 따라 주며 말했다.
“주인께서 내리신 술입니다. 늦게까지 이리 고생하는 병사분들께 술을 돌리라는 명이십니다.”
그 말에 병사들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하하, 그게 아니라는 거 잘 아네. 오후께서 병사들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혼을 낸 적은 있어도 술을 내린 적은 없었으니 말이야. 그러고 보면 선주께서는 자주 술을 내리셨는데 말이야.”
병사들의 너스레에 여일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제가 말씀을 드리긴 하였으나, 이 술은 정말 오후께서 내리신 것이 맞습니다.”
“흠, 그런가. 뭐,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우리도 오후의 은혜에 감사드리네.”
병사들은 호탕하게 술잔을 비우고는 조금 미련이 남은 듯한 눈빛으로 여일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여일은 왠지 어정쩡하게 서서 난감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 기색을 알아차린 병사 하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말했다.
“또 그 비렁뱅이를 도우려는 것인가?”
여일이 멋쩍게 웃어 보이자 병사들은 혀를 찼다. 그러고 나서 어쩔 도리가 없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젓자, 여일은 조심히 병사들을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쯧쯧, 자기나 챙길 것이지, 그 비렁뱅이 놈까지 챙기려 하니.”
“그래도 저 시동 덕분에 우리가 이 달콤한 술을 마실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때, 무리 중 가장 어려 보이는 병사가 물었다.
“혹여 간자는 아니겠습니까? 여일 저자의 말투를 들어 보니 강동인도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딱 봐도 강북 사람 말투 아닙니까?”
“아서라. 윗분들이 저놈 뒤를 안 캐 봤겠느냐? 그리고 비렁뱅이 놈 역시 쥐뿔도 없는 놈이었다. 나름 몸은 탄탄한 것 같은데, 영 아니었어.”
“네? 그럼 혹시 그자가…….”
“어허, 네놈은 지금까지 대체 뭘 들은 것이냐. 하여간 어린놈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세작들이 뭐 그렇게 흔한 줄 아느냐? 그리고 네놈이 의심할 정도로 어설프지도 않다. 그 비렁뱅이 같은 덩치가 큰 놈은 눈에 확 띄어서 세작으로 쓰일 수가 없단 말이다. 내 말, 알겠느냐?”
“그렇습니까?”
“그래. 저런 놈보다는 차라리 평범한 인물이 더 무서운 법이다.”
“그렇군요. 정말 좋은 걸 배웠습니다.”
“크흠, 내가 병사 생활만 십 년이 넘었다. 어지간한 일들을 모두 겪었다, 이 말이야.”
어린 병사는 새삼 존경스럽다는 눈빛으로 노병을 바라보았다. 그에 기세가 오른 노병은 한껏 콧대가 솟았다.
비록 허풍이 섞이긴 하였으나, 전장에서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간에 대단한 일이니, 노병의 말도 아주 많이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저것 봐라, 어기적어기적하는 꼴을. 아마도 과거 원술의 휘하에서 아장 노릇 정도는 하던 인물이었겠지. 저 시동도 원술 휘하에 있던 놈 아니었겠느냐.”
“하기야 미친 원술이 망하면서 이곳으로 강북 놈들이 많이 흘러오기는 했습니다.”
“그 조가 놈이 수춘을 차지했다고는 하는데, 어린놈이 뭘 알겠느냐? 자고로 권력을 쥔 놈들은 저들밖에 몰라서…….”
병사들의 잡담이 한참 이어져 가는 동안 여일은 주먹밥 몇 개를 꺼내 사내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열 개입니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전해주시지요.”
“으어어어어.”
마치 감사를 표하는 것 같은 모습에 여일은 그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으아아어아어!”
다시금 크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병사들이 소리쳤다.
“거, 벙어리가 목청 한번 좋네. 근데 야밤에 그렇게 소리를 질러 대면 어떡해?”
그에 여일이 급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귀가 안 좋으셔서…….”
“그래? 벙어리에 귀까지 먹었으면, 대체 왜 살아? 그냥 죽어 버리지. 하하하하!”
병사들의 비웃는 말에 여일은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래도 제가 이분께 목숨 빚이 있으니, 잘해드려야지요.”
“거, 그럴 거면 아예 안으로 들이지그래?”
병사들은 놀림에도 여일은 꿋꿋하게 주먹밥을 건넸다. 비렁뱅이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더니, 이내 멀어져 갔다.
용무를 마친 여일이 다시 돌아가려 하자, 병사 중 한 명이 물었다.
“그런데 자네는 무슨 목숨 빚을 지었는가? 그것도 저런 비렁뱅이에게 말이야.”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저분이 없었으면 제가 여기까지 오지는 못했을 테니 말입니다.”
병사들은 시시껄렁하게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 그랬겠지. 뭐, 나중에 또 보자고.”
잠시 후, 병사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비렁뱅이는 뒤집어쓴 거적 더미를 벗어 버렸다. 그러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주먹밥을 집어삼켰다.
그러던 중 갑자기 입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비렁뱅이. 침으로 범벅된 나무토막에는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작게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모월 모일, 물고기가 그물로 움직인다]내용을 확인한 비렁뱅이는 나무토막을 조심스레 함에 넣고는 주변 나무 위에 슬쩍 걸어두었다.
그 순간, 달빛이 비렁뱅이의 얼굴을 비추었다. 놀랍게도 그는 양주에서 사라진 기령이었다.
* * *
며칠 후.
손권의 은밀한 진군과 함께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누선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병력이 거의 없는 누선들은 무척이나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누선들이 미끼가 되어 강을 나아갈 때, 손권이 이끄는 병사들이 마침내 투석기가 설치된 곳까지 다가갔다.
거대한 투석기의 모습을 확인한 병사들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무기를 빼 들고 달려들었다. 그러자 투석기 주변의 병사들이 무기도 내던진 채 사방으로 도망쳤다.
그 모습을 지켜본 손권은 의기양양해져 크게 외쳤다.
“투석기를 모조리 부숴 다시는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어라!”
손권은 투석기 옆에서 우물쭈물하는 병사들을 보고는 직접 패도를 들고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무자비하게 검을 휘둘러 참살했다.
너무도 손쉽게 투석기 한 대를 제압한 손권은 남은 투석기를 쭉 둘러보며 새삼 욕심이 생겨났다. 손권의 눈에 그 모든 게 돈으로 보인 것이다.
이내 판단을 내린 손권이 크게 외쳤다.
“그만 부수어라! 남은 것은 전리품으로 삼아 배에 싣고 갈 것이다!”
그러자 부장들이 손권을 말리며 말했다.
“주공, 아직 적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으니, 그냥 파괴한 후에 누선으로 복귀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렇사옵니다. 저 큰 물건들을 옮기려 한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눈이 돌아간 손권의 귀에 들릴 리 만무했다.
“걱정하지 마라. 저들의 원군이 오려면 오래 걸릴 것이다. 이것을 가져가 살핀다면, 우리도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강동의 유능한 인재들이 더더욱 발전시킬 것이니, 반드시 가져가야 할 것이다.”
딴에는 맞는 말이었다. 이런 물건들을 온전히 가져갈 수만 있다면, 수하들에게도 충분히 생색을 낼 수 있으리라.
손권은 직접 투석기를 살피면서 병사들을 독려했다.
“이것부터 옮기어라. 이게 상태가 제일 좋구나. 일이 끝난 후에는 내 반드시 포상을 내려주겠다.”
드드드득.
바로 그때, 언덕 너머에서 둔중한 소음과 함께 차노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그들 사이에 진등이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진짜 쥐가 걸려들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