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The Unfinished Lord RAW novel - Chapter 285
285화
모조리 쓸어버린다는 장료의 말에 보즐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지금 저들에게 달려간단 말입니까?”
장료는 고개를 돌려 보즐을 빤히 바라보았다. 장료의 표정은 마치 오줌을 지릴 정도로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보즐도 그런 말을 한 이유가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그저 길을 확인하고 나아가기 위한 소수의 병력이 전부였다. 물론 장료와 조운, 염행에 곽원까지 있으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너무도 장비가 부실했다. 제대로 된 갑주는커녕 투구조차 없으니 자칫 화살이라도 맞았다가는 그대로 저승행이 되고 말 것이다.
‘제아무리 무예가 뛰어나다고 한들 이런 상황에서 어찌 수많은 적을 상대할 수 있겠는가. 내 이들을 진정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이족들은 활을 쏘는 것에 일가견이 있으니, 지금 상황에서 답돈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장군, 상황을 면밀히 따져 보십시오. 지금 저들은 철저하게 무장을 갖추고 수 또한 적은 수가 아닙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다짜고짜 들이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말에 상산병 한 명이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게 뭐 궁금합니까. 당연히 놈들과 치고받고 싸우게 되겠지요.”
보즐은 너무도 빤한 병사의 말에 순간 열이 뻗쳤다. 마치 자신을 무시한는 느낌이 다분히 묻어난 탓이었다. 결국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조운이 나서서 병사를 말렸다.
물론 병사로서는 당연한 생각이겠으나, 보즐이 무례하다 받아들이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었다. 혹여 이 자리에서 칼을 뽑아 참하겠다며 설쳐 대기라도 한다면, 골치가 아프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보즐은 병사의 행동에 화를 내기보다는 장료 등을 말리는 것에 우선순위를 둔 듯했다.
“한낱 병졸 따위가 끼어들 일이 아니다. 장군, 정녕 이 자리에서 일을 벌이려 하십니까?”
보즐이 거듭 우려를 드러내며 반발하자, 장료가 얼핏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더한 모욕감을 주지는 않으려는 듯 최대한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죽음이 두렵다면 그대는 빠져라. 절대 탓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대로 저놈을 두고 넘길 수는 없다. 언제 또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니까.”
장료의 말은 분명 틀리지 않았다. 비록 저들의 숫자와 장비가 더 우위에 있다고는 하나, 분명 제대로 된 군세는 아니었으니. 게다가 답돈은 이곳에 적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듯 방심하고 있었다.
“장군,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무장이 너무 빈약합니다. 이대로 저들을 들이친다면 분명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재고해 주시지요.”
장료는 계속해서 발을 빼려 하는 보즐의 행동에 슬슬 짜증이 치밀었다. 지금껏 봐 온 바에 따르면, 보즐은 권력을 좇는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물론 나름의 능력과 안목이 있으니 그걸 마냥 나쁘다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좁은 세상에 갇혀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믿는,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만약 상대가 자신보다 지위가 낮다면 전혀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장료가 할 것은 오직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권위로 찍어 누르는 것. 설득이나 설명 따위는 필요 없었다.
“이보게, 내가 그대를 설득시켜야 하는가?”
너무도 당연한 지적에에 보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분명 자신의 역할은 군을 사무를 담당하는 것이었다. 물론 보즐 스스로는 마치 대단한 임무를 받아 이들을 감시한다고 착각하고 있으나, 엄연한 현실은 그저 일개 문관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선을 넘게 되면, 그 순간 자신이 어떻게 될지 보즐은 너무도 잘 알았다.
게다가 지금껏 옆에서 승태를 지켜봐 온 보즐은 자신이 장료나 고순, 조운, 창희와는 절대 견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이들은 과거부터 승태와 고락을 함께 해 왔으며,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서 많은 공을 세웠으니, 승태가 얼마나 아끼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한데 자신이 만약 이들을 무시하고 불화를 일으킨다면, 승태가 누구 손을 들어 줄지는 보지 않아도 빤하였다.
‘주군께서는 아마 승패와 상관없이 저들을 감싸 안아 주실 테지.’
장료 또한 그러한 승태의 진심을 알기 때문에 이처럼 당당하게 나올 수 있는 것이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보즐은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태와 처음 악연으로 얽힌 자신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으니까. 비록 과거를 뉘우치고 중책까지 얻어 이 자리까지 왔지만, 그럼에도 승태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냉정하기만 했다.
이는 같은 문관이라 할 수 있는 노숙 등을 바라볼 때와는 전혀 달랐다. 그들을 바라보는 승태의 시선은 언제나 따뜻한 온기가 담겨 있었으니.
‘그렇다면… 저들의 옆에 서야 한다. 그래야 주군께서도 나를, 내 노력을 알아주실 테니.’
이해타산을 따지는 보즐의 이성이 결정을 종용했다. 이 자리에서 물러난다면 더 이상 권력을 얻기는 불가능에 가까워질 테니, 위험에 맞서 당당히 나아가라 소리치고 있었다.
“아닙니다, 장군. 저는 다만 장군이나 다른 병사들이 피해를 입을까 걱정되어 말씀드린 것일 뿐입니다. 주군께서 아끼시는 장군이 이런 자리에서 몸을 상하기라도 한다면, 그 또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장료는 백팔십도 태도를 바꾼 보즐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무기와 말을 챙기며 말했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네. 자네는 그저 인부들을 잘 이끌게. 혹여나 겁을 먹은 인부들이 내빼기라도 한다면, 일이 복잡해질 테니 말이야.”
한마디로 전투에서 빠지라는 말이었다. 물론 이는 보즐에게 마냥 좋은 일은 아니었다. 목숨을 온전히 보전할 수는 있겠으나, 전공을 나누어 줄 생각이 아예 없다는 것을 못 박는 것이었으니까.
게다가 장료가 지시한 일도 마냥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병사들이 대거 빠져 동요하는 인부들을 관리하는 것은 물론, 만약 적이 이쪽으로 달아오기라도 한다면 길을 막아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몸을 뺄 수 없다 판단한 보즐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태연하게 예를 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 * *
한편, 답돈은 장료가 자신을 노리고 은밀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험난한 이곳에 적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누가 봐도 터무니없다 여길 것이 분명했다.
답돈을 따라 움직이는 장수나 병사들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그들은 그저 백랑산에 올라 길을 확인하고, 어디에 병사들을 주둔시킬지에 대한 것이 중요했다. 물론 각부를 이끄는 대인들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이 아니었지만.
그들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답돈에게 일신의 안전에 대해 약조를 받아 내는 것이었다. 물론 입으로 떠드는 약속이 반드시 지켜지리라 믿을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많은 이들 앞에서 약조를 받는다면 체면 때문에라도 무시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결국 답둔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각 부의 대인들은 술과 고기를 아낌없이 돌렸다. 뿐만 아니라 온갖 진귀한 선물들을 답돈의 앞에 차곡차곡 쌓으며 생색을 내려 애를 썼다.
답돈은 빤히 들여다보이는 그 모습에 기꺼운 웃음을 지으며 대인들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하하하! 대인들께서 이리도 나를 귀하게 여겨 주시니 참으로 기쁘오. 많은 이들이 나에게 등을 돌리며 문전박대를 했는데 말이오. 그런데 가만 보니…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대다수가 눈치를 살피느라 나의 부름에 따르지 않은 분들이로군.”
답돈의 차가운 말에 대인들은 화들짝 놀라며 입으로 죄를 청하엿다. 그러면서 더 많은 재산을 내놓을 테니, 부디 자비를 내려 달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답돈은 흐뭇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명에 따르지 않은 것은 괘씸한 일이지만, 그나마 이런 이들이 있기에 재기를 생각할 수 있었다.
특히 흉노를 노리기 위해서는 군자금부터 말, 병사, 군량 등이 넉넉히 필요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약간만 협박하면 마치 마르지 않는 화수분처럼 물자가 튀어 나올 테니 말이다.
답돈은 크게 웃음을 지으며 각 대인들 사이를 휘휘 걸어 다니며 일일이 그들과 눈을 맞추었다. 마치 복종을 강요하는 듯한 사나운 눈빛에 대인들은 더욱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숙였고, 마침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은 답돈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얼마나 내놓을 수 있겠는가?”
그에 대인들은 놀란 눈으로 답돈을 바라보았다. 설마 대뜸 이런 말을 꺼내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한 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답돈은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숙적인 흉노의 선우가 작금 장성 이남에서 한족의 개가 되어 놈들의 발가락을 핥고 있소. 그러니 우리 오환이 그들의 빈 자리를 빼앗아 장성 이북을 다스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 일을 하려면 마땅히 말과 병사들이 필요한 법. 위대한 여정의 첫걸음에 그대들 또한 힘을 보태야 하지 않겠느냔 말이오. 우리 오환이 초원의 지배자는 순간, 그대들 역시 찬란하게 이름을 빛내게 될 것이오”
순간, 오환의 대인들은 흥분과 함께 가슴이 달아올랐다. 흉노를 짓밟고 초원의 지배자가 된다는 것은 오랜 세월 그들이 품어 온 꿈이었다.
동호 시절까지만 해도 흉노의 노예로서 비참하게 삶을 연명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그들을 지배할 수 있다 생각하니 어찌 흥분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 말을 꺼낸 이는 다름 아닌 답돈이었다. 묵돌과 비견되는 오환의 대영웅. 만약 장성 이북에서 대초원의 지배자가 된다면, 과거 흉노가 그런 것처럼 한을 노리는 거대한 세를 구축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선우의 뜻에 함께하겠소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말이오!”
답돈은 대인들의 눈에 서린 욕망을 마주하고는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제 오환의 왕국을 세우는 데 저들이 먼저 나서서 길을 닦으려 할 것이다. 자신들의 피와 땀을 바쳐, 욕망이 스스로를 잡아먹는다는 현실도 모르고 말이다.
‘하늘이 나의 길을 비춰 주는구나. 하하하하!’
* * *
그런 가운데 장료와 조운, 그리고 염행을 비롯한 병사들은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있는 힘을 다해 말을 타고 들이쳤는데, 화살이 쏟아질 예상과 달리 저들은 그냥 아무렇지 않게 아군인 양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설마 적이 이곳에 나타날까 하는 방심과 대인(大人)들이 돌린 술이 빚은 비극이라 할 수 있었다.
“운 좋게 길이 열렸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반드시 답돈을 잡아야 한다.”
장료가 굳은 표정으로 명령을 내리자, 염행과 조운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후, 순식간에 방책을 넘어 답돈의 진영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