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itional Healer became a surgeon RAW novel - Chapter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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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웅아, 복부 쪽은 네가 한번 마무리해 볼래?”
흉부쪽을 마무리하고 있던 이민호의 갑작스런 제안에 변희웅이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마무리? 내가?”
“요즘 연습을 많이 하는 것 같던데, 원장님. 희웅이에게 마무리 한번 맡겨 보세요.”
“흐음, 그럴까. 하긴 이민호 선생의 동기면 예사 실력이 아닐 텐데. 내가 그걸 간과하고 있었군. 배액관은 연결했으니 복막부터 닫으면 될 거야.”
심 원장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자 변희웅은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원장님, 저는 민호처럼 괴물이 아닙니다. 아마 제가 마무리하는 것을 보면 많이 실망하실 겁니다.”
“실망할지 안 할지는 봐야 아는 거지. 이민호 선생이 부탁을 했더라도 내 성에 차지 않으면 언제든 아웃시킬 테니까 한번 해 봐.”
심 원장이 뒤로 물러난 채 가만히 기다리고 있자 변희웅은 잠시 고심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마무리를 해 보겠습니다.”
변희웅이 집도의의 자리에 서자 심 원장은 맞은편으로 가서 어시스트를 설 준비를 했다. 그리고 고 과장이 이민호의 어시스트 설 자리로 이동했다.
“그동안 연습 많이 했으니까 잘할 거야.”
이민호가 옆에서 한마디를 보태자 변희웅은 포셉으로 복막을 잡으며 물었다.
“내가 연습 많이 한 것은 어떻게 안 거야?”
사실 변희웅은 이민호와 자신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따라잡으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악착같이 연습을 했었다.
자신이 그렇게 연습한 것은 같이 연습을 하고 있는 신현수밖에 모를 텐데 어떻게 이민호가 알고 있는 것일까?
“네 손을 보면 알지. 현수 형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최근 많이 좋아졌어.”
“나와 현수 형의 손을 보고 추측했다고? 혹시 신이라도 들렸냐? 손을 보고 그게 가능해?”
“나도 그렇게 연습을 해 봤으니까 알지. 그리고 홍아남 선생님하고 신희철 선생님도 최근 너와 현수 형 손이 좋아졌다고 했어.”
“거참, 이제 보니 현수 형하고 내가 몰래 연습하는 것을 우리만 빼고 다 눈치채고 있었구나.”
변희웅이 머쓱하게 웃자 이민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손이 좋아지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모를 거라 생각하는 것이 이상한 거지.”
이민호와 변희웅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눈과 손은 부지런히 움직여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 변희웅의 마무리를 어시스트 하고 있던 심 원장이 흡족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이민호 선생의 말대로 노력한 흔적이 술기에 보이는구먼. 확실히 레지던트 일 년 차의 손놀림 치고는 아주 좋아.”
“이 정도면 돼지 수십 마리는 잡았겠는데요. 아, 참. 우리 때는 돼지로 연습했는데 요즘은 다른 동물로 하나?”
고 과장까지 칭찬을 하자 변희웅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저희도 거의 돼지로 합니다.”
“그렇지. 확실히 돼지를 많이 잡으면 잡을수록 실력이 늘 수밖에 없어. 원장님, 이 정도면 변희웅 선생에게 마무리를 맡겨도 될 것 같은데요.”
“이미 마무리를 맡기고 있지 않은가. 사실 이민호 선생이 워낙 잘해서 그렇지 변희웅 선생도 이 정도면 손이 꽤나 좋은 편이야.”
“레지던트 일 년 차면 곧 쉬운 수술부터 받기 시작할 텐데, 장태주 교수님이 수술을 줬다가 손을 보고 놀라겠습니다.”
변희웅은 자신이 복막 봉합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이 칭찬을 하자 왠지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 어깨가 으쓱거렸다.
그러다 슬쩍 고개를 돌려 이민호가 마무리하는 것을 보았다.
‘젠장! 내가 지금 뭘 기뻐했던 거지? 바로 옆에 괴물이 있는데.’
* * *
곽 원장의 병원에서 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이민호는 이삿짐을 다 정리했음에도 휑한 거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예전 원룸에 살 때는 풀옵션이라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같은 가전제품이 다 있었는데, 새로 이사 온 아파트에는 그런 것이 없어 새로 사야 했다.
문제는 가전제품을 새로 살 시간이 없어 아직 구입하지 못했다는 거다.
설사 가전제품을 인터넷으로 구입한다고 해도 설치 기사들이 자신이 오프인 저녁에는 일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아직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가스레인지도 아직 설치하지 못했기에 라면도 휴대용 버너에 끓여 먹어야 했다.
“에휴, 이건 뭐 병원 의국이 차라리 낫네. 거긴 냉장고라도 있는데.”
냉장고가 없으니 원룸에 살 때 가져왔던 밑반찬은 다 못 먹게 되어 버렸다.
“꼭 문명 세계에 살다가 갑자기 원시인이 되어 버린 기분이야.”
라면을 한 젓가락 먹으니 또 다시 쓴웃음이 지어진다.
김치 없는 것은 둘째 치고 TV도 없으니 창밖에 차가 지나다니는 것밖에 볼 것이 없었다.
이민호는 라면을 다 먹은 후 조금 전에 하고 온 수술을 복기해 봤다.
원룸에 있었다면 머리도 식힐 겸 TV 보다 잠들었을 텐데, 볼 게 없으니 생각이 자연스럽게 수술 쪽으로 이어진다.
잠시 수술을 복기해 보던 중에 문득 가슴의 곳곳에 퍼져 있는 림프관과 림프절들이 떠올랐다.
‘식도에서 전이된 암세포들이 퍼져 있다고 예상되는 림프절들은 다른 림프절보다 더 많이 부어 있었지.’
림프관, 림프절, 림프.
흉부의 림프를 생각하니 가장 관련이 많은 울화병이 떠오른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울화병이 생긴 사람들도 비슷하게 가슴 부위의 림프절들이 부어 있다.
암세포가 전이되어도 림프절이 붓고, 울화병에도 림프절이 붓는다.
식도암의 경우는 병이 림프를 통해 퍼져 나간 것이고, 울화병은 림프에 먼저 병이 생겨 림프와 연관된 장기가 병들게 되는 것이다.
특히 가슴 쪽은 심장과 폐의 림프들이 많아 울화병이 심장과 폐 그리고 혈관질환인 뇌졸중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았다.
‘울화병의 치료를 위해 항우울증제를 처방하지만, 부작용도 많고 또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재발하지.’
림프의 기능을 현대의학은 매우 단순하게 정의한다.
소화관에서 영양성분을 운반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며 정맥계에 합쳐져 혈액 내로 림프구를 공급하는 정도.
림프구는 조직액에 침투한 세균과 같은 이물질 및 종양 등을 방어하는 작용을 한다.
매우 단순하게 정의하고 있는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과연 단순하다 할 수 있을까? 몸 전체에 나무의 잔뿌리처럼 뻗어있는 림프. 결국 암세포를 제거하는 것도 림프가 하는 일이지 않은가?
어쩌면 현대의학은 림프에 대한 연구를 너무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기공치료를 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는 병증들이 림프절의 순환을 촉진시켜 줌으로 인해 비슷한 효과를 보였었지.”
스미스 교수에게 가르쳐 줬던 치료법들이 떠오르며 림프에 관한 것들이 새롭게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화타 때 침과 탕약과 추나요법과 기공치료술로 병을 다스렸던 것과 현대의 여러 치료법들이 묘하게 연관성이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연관성의 중심에는 림프가 있었다.
갑자기 뭔가가 손에 잡힐 듯 말 듯 간질거린다.
이민호는 생각이 점점 깊어짐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묵상을 시작했다.
묵상은 화타 때부터 깊은 몰입을 통해 답을 얻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하던 거였다.
림프가 과연 어떤 신비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인가?
인체 곳곳에 수천 개의 림프절이 있고 그 림프절들이 림프관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장기와 신경과 혈관에 영향을 끼친다.
그렇게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면 어쩌면 혈관만큼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띠리리리릭…….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아!’
이민호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아른거리고 있던 림프의 실체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점점 구체화되고 있던 림프의 실체가 안개처럼 흩어지더니 순식간에 ‘누가 전화하는 거지?’라는 궁금증으로 바뀌어 버렸다.
억지로 생각을 이어가 보려 했지만 더 이상은 몰입이 되지 않고 생각이 겉돌기 시작했다.
이민호는 긴 한숨을 내쉬며 가부좌를 풀고 핸드폰의 발신자를 확인했다.
발신자는 스미스 교수.
그제야 스미스 교수에게 오늘은 오프 때 출장 수술이 잡혀 있어 용건이 있을 경우 저녁 12시 넘어 전화하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핸드폰 시계를 보니 12시 5분이다.
전화하기 위해 잠을 자지 않고 시간이 되길 기다린 건가?
“네, 스미스 교수님.”
탄식을 감추며 전화를 받았다.
―닥터 리. 수술은 끝났습니까?
“네? 아, 네. 수술 잘 끝내고 조금 전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식도위절제수술과 결장간치수술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어려운 수술인데, 역시 닥터 리라 빨리 끝났군요.
“세 시간이 넘게 걸린 수술이라 빨리 끝난 것도 아닙니다.”
―그 정도 수술은 우리나라의 뛰어난 흉부외과의사들도 네 시간이 넘게 걸리는 수술입니다.
“아, 그래요. 제가 조금 손이 빠른 편이란 말을 듣기는 합니다.”
―기공술을 익히고 계시는 닥터 리라 보통 사람보다 신체 능력이 더 뛰어난 것 같습니다.
“아, 네. 뭐. 약간 그런 면은 있지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를 하신 겁니까?”
이민호는 얼른 통화를 끝내고 다시 림프에 대한 묵상을 이어 가고 싶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스미스 교수를 재촉했다.
―아, 사실은 다름이 아니고 연축 사경(spasmodic torticollis: 근육의 긴장성 수축이나 간헐적 연축으로 인하여 턱이 어깨 쪽으로 잡아당겨져 목이 기울게 되는 병) 환자를 이틀 전부터 치료하고 있어 닥터 리에게 자료를 메일로 보냈는데 아직도 확인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서요.
“제게 메일을 보내셨어요? 메일을 보내셨으면 보냈다는 문자를 보내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아! 문자를 보내면 재촉하는 것 같아서 닥터 리가 시간 날 때 메일을 확인하다 제가 보낸 메일도 발견할 줄 알았습니다.
“제가 요즘 인턴들 때문에 바빠서 메일을 열어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마침 전화 받았으니 통화 끝나고 열어 보겠습니다.”
―그러면 메일 확인하시고 제게 전화를 좀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이민호는 전화를 끊은 후 핸드폰으로 메일을 확인했다. 병원에 노트북을 가져다 놨기에 집에선 핸드폰의 작은 화면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만에 메일을 확인한 것이기에 많은 메일이 와 있었지만, 대부분이 스팸 메일이었고 정작 읽어야 할 메일은 몇 개 없었다.
“이게 스미스 교수님이 보낸 메일이네. 연축 사경은 스미스 교수님 정도의 실력이면 굳이 나에게 자문을 구할 필요가 없을 텐데 얼마나 심각하기에 메일까지 보낸 거지?”
첨부파일을 열자 환자의 차트가 가장 먼저 떴고 뒤를 넘기자 CT 사진들이 보였다.
먼저 차트를 확인했다.
이름 아경옥. 나이 31세. 여자.
설 명절 때 시골 시댁을 다녀온 이후 고개가 왼쪽으로 돌아가 한 달이 넘게 치료를 받고 있지만 호전되지 않고 있음.
“흐음, 근육이완제를 주사했는데도 호전되지 않았다니. 어쩌면 중증일 수도 있겠는데.”
CT 사진들을 보니 경추만 한쪽으로 돌아가 있을 뿐 흉추나 요추 쪽은 바른 편에 속했다.
이민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타 때도 연축 사경 환자를 많이 치료해 봤기에 그런 환자들 대부분이 목뼈만 틀어진 것이 아니라 등뼈와 허리뼈까지 틀어져 있는 경우를 보았다. 당연히 이 환자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목뼈만 틀어져 있었다.
‘CT상으론 연축 사경의 원인을 등이나 허리에서 찾을 수가 없네. 감염의 흔적도 없고…… 설마 이것도 림프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 건가?’
스미스 교수는 필라델피아에서 알아주는 카이로프랙터이기에 연축 사경의 원인이 흉추나 요추였다면 자신에게 자문을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카이로프랙터가 고치지 못하는 연축 사경.
자꾸 림프와 연관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너무 림프에 집중하고 있어 혹시 이 환자도 림프에서 답을 찾으려는 건가? 에휴, 안 되겠다. 환자를 직접 촉진해 봐야 확신할 수 있지 차트만 봐서는 모르겠다.”
이민호는 핸드폰으로 보던 메일을 닫은 후 스미스 교수에게 전화해서 다음 오프 때 환자를 직접 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