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itional Healer became a surgeon RAW novel - Chapter 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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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호텔은 토요일이 되면 수십 건의 결혼식이 열리고 하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이 북적거린다. 하지만 이민호와 박수진이 결혼하는 오늘은 오직 두 사람의 결혼식만 열렸다.
“요즘 농번기라 한창 바쁠 텐데…… 와 줘서 고맙다!”
결혼식장 입구에 이민호의 부모님이 서서 들어오는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네 아들이 결혼한다는데 아무리 바빠도 와야지. 오래간만에 서울 구경도 하고 좋네. 제수씨, 서울에선 살 만해요?”
“돈 있으면 서울만큼 살기 좋은 곳도 없는 것 같아요.”
“하하, 돈이 있으면 어디서나 살기 좋습니다. 그나저나 신랑은 어디 간 겁니까? 보통 이럴 때는 여기 서서 하객들 맞이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버님이 버스를 하루 빌려서 마을 사람들을 초대했는데, 이장님이 멀미를 심하게 했다고 해서 잠깐 봐주러 갔어요.”
“아! 안 그래도 아침에 회관에서 마을 사람들이 버스 타는 거 봤습니다.”
“진숙아, 아들 결혼 축하해.”
신진숙은 이민호 어머니의 이름이었다.
“응, 혜숙아.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
“수호야, 아들 결혼 축하한다.”
“어! 너 사업 때문에 외국 나갔다더니 언제 들어왔냐?”
“외국 갔다 온 지가 언젠데…….”
하객들이 줄줄이 인사를 하자 이민호 부모님은 정신없이 바빠졌다.
한창 그렇게 바쁘게 웃는 얼굴로 하객들을 맞이하던 이수호와 신진숙은 갑자기 나타난 형님 내외와 조카인 이인석을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
“혀, 형님. 형수님. 오셨습니까?”
“민호 결혼 축하한다.”
“아, 네.”
“안녕하세요.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
“으, 응. 저번에 형님에게 커피숍 한단 말은 들었다. 어떻게 잘 되고 있느냐?”
“아, 네. 미희만큼은 안 되지만 밥벌이는 하고 있어요.”
“그래, 언제 시간 내서 한번 들르마.”
“네.”
“아버지는 어디 가셨어?”
“버스 빌려서 마을 사람들 올라오셨다는 말 듣고 그쪽으로 가셨어.”
“그래, 그럼 이따 뵈면 되겠군. 수고해라. 우린 들어가 보마. 제수씨도 수고하세요.”
“네.”
형님 내외와 조카가 들어가자 두 사람은 다시 환하게 웃으며 하객들을 맞이했다.
* * *
“쳇, 민호가 재벌가의 사위가 되니 별의별 하객들이 다 보이는군.”
부인과 함께 시큰둥한 표정으로 앉아 하객들의 면면을 살피고 있던 이민호의 큰아버지 이영한은 TV에서나 보던 재벌가의 사람들을 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어! 영한이 형님.”
그때 누군가가 이영한을 알아보고 반가운 척을 했다.
“응? 형섭이! 형섭이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제가 모시는 장관님께서 결혼식에 참석하셔서 수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장관님께서 결혼식에 참석하셨다고? 아무리 재벌가의 결혼식이라지만…… 회장의 자식도 아니고 조카 결혼식인데?”
이영한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조형섭 보좌관이 피식 웃었다.
“결혼식을 축하하러 국빈들이 방한하셨기에 장관님이 참석하신 겁니다. 뭐 겸사겸사 신랑 신부 결혼도 축하해 주고요.”
“응? 국빈들이 방한했다고? 어디에?”
“국빈들이 여기로 오면 한바탕 난리가 날 거라 신부 측에서 따로 자리를 마련했기에, 그쪽에 모여 계십니다.”
“아! 어쩐지 회장이나 전대 회장 같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했다. 따로 자릴 마련했구나.”
“네.”
“그런데 장관님이 맞이해야 할 정도의 국빈이면 굉장한 사람들일 텐데…… 도대체 누가 온 거냐?”
“그게…… 사실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되는 사람들인데…… 형님이라면 뭐 문제 될 일은 없을 것 같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부다비의 왕자도 와 있고 중국 공산당 서열 10위 안에 들어가는 최고위 간부도 와 있습니다.”
순간 이영한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런 사람들이 와 있다고? HS그룹이 그런 국빈들이 결혼식을 축하해 주러 올 만큼 영향력이 있는 기업이었냐?”
“형님도 참. 그들이 HS그룹 보고 왔겠습니까? HS그룹의 사위 보고 왔죠.”
“응? 사, 사위? 혹시 오늘 결혼하는 신랑?”
“네.”
“아니, 그런 사람들이 신랑과 무슨 연관이 있어서?”
이영한이 황당한 표정으로 묻자 조형섭이 목소릴 낮춰 이야길 했다.
“신랑이 굉장히 실력이 좋은 의사인데 국빈들의 가족이나 당사자가 그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서 축하해 주러 온 거예요.”
이영한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의사에게 치료받았다고 외국에서 여기까지 결혼 축하해 주러 온다고? 아니 요즘은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가 아니면 축의금도 계좌로 송금하는 시대인데…… 도통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의사의 실력이 세계적인 권위자로 알려진 의사마저도 와서 배우고 갈 정도로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치료할 수 없다거나 수술 후 후유증이 심각한 병도 오늘 결혼식의 신랑인 이민호라는 의사가 치료하면 남다른 결과를 낸답니다.”
“민호가 그렇게나 실력이 좋은 의사라고?”
“어? 민호라고 부르는 걸 보니 형님이 의사를 잘 아는 모양이네요. 아 참, 그런데 형님은 여기 누구의 하객으로 오신 겁니까?”
“신랑의 하객으로 왔지. 민호가 내 조카야.”
순간 조형섭 보좌관의 눈이 동그래졌다.
“신랑이 형님의 조카라고요? 정말요?”
“내가 거짓말할 이유가 있어? 내 동생의 아들이 민호야.”
“형님 친동생의 아들이요?”
“응.”
“허어! 세상이 이렇게나 좁네요. 신랑이 형님의 조카인 줄 알았으면 진작 형님에게 부탁했을 텐데요!”
“응? 부탁? 무슨 부탁?”
“형님도 아시다시피 국빈이 우리나라를 방한하면 언론에 보도할 만한 그럴싸한 성과를 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야 국민이 이번 정부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뭐, 그렇긴 하지.”
“그런데 그 그럴싸한 성과가 사실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우리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받는 일종의 거래 아닙니까?”
“그렇지. 국빈이라고 해도 우리나라에 일방적으로 퍼 주러 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그 국빈들이 형님의 조카에게 굉장한 호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HS건설이 아부다비 유전 공사의 50퍼센트를 수주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형님 조카의 덕이고요.”
“그, 그 정도로 민호의 영향력이 크다고?”
“형님은 어떻게 친조카인데, 조카가 얼마나 대단한 의사인지를 모르셨던 겁니까?”
“민호가 실력이 뛰어난 의사란 말은 들었지만, 국빈들이 그 정도 호의를 보이는 의사일 줄은 몰랐지.”
“아무튼, 형님이 조카에게 말 좀 잘해 주실 수 있습니까? 만약 형님 덕에 장관님이 언론에 보도할 만한 그럴싸한 성과를 낸다면…… 저도 형님에게 그만한 보답을 하겠습니다.”
“보답? 크흠, 내가 만약 공직에 있었다면 조카에게 아쉬운 소릴 했겠지만 정년퇴직한 지 몇 년이 지난 내게 자네가 해 줄 수 있는 보답이 뭐가 있겠는가?”
이영한이 입맛을 다시긴 했지만, 거절의 뜻을 내비치자 조형섭 보좌관이 순간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형님, 아무리 공직에서 떠난 지 오래라지만 정말 장관님이 밀어주면 어떤 요직을 꿰찰 수 있는지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산하 기관과 연관이 있는 민간 단체에 한 자리 만들어 주는 정도?”
“하하, 아시면서 그러시네요. 그런 자리가 얼마나 먹을 거 많고 챙길 거 많은 땡보직입니까?”
“쯧, 이봐. 형섭이. 자네는 내가 조카에게 아쉬운 소리 해 가며 고작 그런 자리나 탐내는 사람으로 보였는가?”
“네? 혀, 형님. 왜 이러십니까? 제가 형님을 안 세월이 몇 년인데 청렴결백했던 공직자인 것처럼 말씀하십니까?”
“공직에서 아등바등할 때야 퇴임할 때 한 자리 차지하고 나가는 것이 대단해 보였지. 지금은 골프 치러 다니며 세월을 즐기는 것이 좋아. 그러니 내게 괜한 기대 갖지 말게.”
“허 참, 형님이 그동안 많이 변하셨네요. 조카에게 말 몇 마디 해 주면 편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생기는 건데 그걸 마다하시다니. 뭐 어쨌든 알겠습니다. 전 바빠서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그래, 가서 일 봐.”
잠시 후 조형섭 보좌관이 약간 기분 나쁜 듯 ‘휑’하니 가 버리자 이영한은 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자신이 이민호와 사이가 좋았다면 조형섭 보좌관의 제의를 넙죽 받아들였겠지만, 지금은 남보다 못한 사이였다.
‘젠장! 삼대가 덕을 쌓아야 얻을 수 있다는 말뚝 철밥통인데…….’
* * *
이미희는 어려서부터 같은 마을에서 자란 가장 친한 친구 두 명과 수다를 떨면서 하객들의 축의금 봉투를 받고 있었다.
“민호 오빠, 예전엔 멸치라 남자다운 매력이 1도 없었는데…… 오늘 보니 완전 잘생겨졌더라. 이렇게 잘생겨질 줄 알았으면 꾸준히 연락 좀 하고 살 걸 그랬어.”
“야! 너는 예전부터 꼭 친구 오빠들 결혼식장만 가면 비슷한 소릴 하더라. 그리고 우리 오빠가 비록 예전에 멸치긴 했지만 나름 봐줄 만했어.”
“에이, 그건 아니지. 예전에 생각 안 나? 네가 공부 잘하는 민호 오빠 소개해 준다고 하니까 우리가 다 의절하겠다고 한 거.”
“그때 너희 소개 안 시켜 준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지금 봐봐. 어엿한 재벌가의 사위가 됐잖아. 만약 그때 너희 중 누구와 잘됐으면 방앗간집 사위가 됐거나 과수원집 사위가 됐을 거 아니야.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야, 오빠가 장가 잘 갔다고 우리 무시하냐?”
“응, 무시해.”
“이런 씨, 우리 의절하자!”
“그래 하자. 해.”
“쳇, 이제는 의절하자는 말도 안 먹히는구나.”
“그놈의 의절. 만날 때마다 열 번씩은 하는 것 같다.”
“미희야, 그나저나 재벌 회장님들은 결혼식 축의금을 얼마나 할까?”
“엄청 많이 하겠지. 왜? 궁금해?”
“응. 아까 몇몇 회장님들이 봉투를 했잖아. 너무 궁금한데 한 번만 열어 보면 안 될까?”
친구의 말을 들은 이미희는 슬쩍 주변을 살펴봤다.
거의 모든 하객들이 다 온 듯했기에 특별히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은 나도 재벌들이 축의금을 얼마나 하는지 궁금하긴 했어.”
이미희는 LH그룹의 비서실장이 류영석 회장의 이름으로 넣은 봉투를 열어 수표를 꺼내 봤다.
수표 한 장.
“일십백천만…… 허억! 억!”
“미, 미쳤다. 무슨 축의금을 일억이나 해!”
“우와! 애들아, 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일억짜리 수표 처음 봐!”
세 사람은 일억짜리 수표를 보고 한동안 넋을 잃었다.
이미희는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군자그룹 비서실장이 도선용 회장의 이름으로 넣은 봉투도 열어 봤다.
“설마, 여기도 일억이 들어 있지는 않겠지?”
“그렇겠지. 군자그룹은 LH그룹에 비하면 조금 작은 편이니까.”
“일십백천만…… 미쳤다. 여기도 일억이야!”
“뭐! 어디 봐봐. 허어! 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일억짜리 수표 두 번째로 봐.”
“아무리 재벌이라지만 무슨 축의금을 이렇게 많이 하는 거야?”
“그러게.”
“재벌이 달리 재벌이겠어. 우리에겐 눈 돌아가게 큰돈이지만 재벌에겐 축의금으로 낼 수 있는 정도의 돈인 거지.”
“오우! 지금까지 민호 오빠가 재벌가의 사위가 됐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는데 이 봉투들을 보니 실감이 난다.”
“오늘 들어온 축의금으로 서울에 아파트 한 채는 거뜬히 사겠다.”
“이제는 우리 오빠가 너희랑 인연이 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 일인 줄 알겠지?”
“그, 그래. 민호 오빠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이 틀림없어. 나나 미숙이와 결혼했으면 거의 모든 축의금이 오만 원 아니면 십만 원이었을 거야.”
“미희야, 혹시 네 새언니 친구 중에 결혼 안 한 남자 없을까?”
“미숙아, 새언니 친구면 재벌 2세나 3세일 텐데…… 그런 사람이 시골 방앗간집 딸인 너와 결혼을 하겠냐? 헛물 들이켜지 말고 정신 차려라.”
“나 정도 마스크면 먹히지 않을까?”
“너는 우리 오빠도 못생겨서 싫다고 했었어.”
“이런 씨! 우리 의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