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ditional Healer became a surgeon RAW novel - Chapter 355
(355)
이민호가 황갑수 환자의 CT 영상을 보며 어떻게 수술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방원익 과장이 다가왔다.
“뭘 그렇게 고민해? 흉강경으로 오른허파동맥의 혈전이 쌓여 있는 부분을 절개해서 제거하고 중간엽과 아래엽 동맥에는 스텐트 시술해야지.”
“저도 스텐트 시술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그렇게 되면 환자가 앞으로 항혈소판제를 계속 복용해야 하잖아요.”
이민호의 말을 들은 방원익 과장은 자신도 모르게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항혈소판제를 복용하면 혈액을 응고시키는 혈소판이 줄어들기에 출혈이 잘 멈추지 않게 되는 부작용이 있었다.
그런 부작용은 선천적으로 혈관이 약한 데다 오른팔을 겨드랑이부터 통으로 잘라 낸 환자에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스텐트 시술 말고는 방법이 없잖아?”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민호의 말을 들은 방원익 과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법이 있다고? 무슨 방법?”
“유도 철사를 넣어 폐혈관에 쌓인 혈전들을 하나하나 찾아 제거하는 겁니다.”
이민호의 말을 들은 방원익 과장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유도 철사를 혈전이 쌓여 있는 곳까지 밀어 넣은 다음 뾰족한 침으로 구멍을 뚫고 혈전을 흡입해서 제거하는 방법은 스텐트 시술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린다.
“혈전을 그렇게 일일이 제거하고 있는 동안 환자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수술을 2시간 이내로 끝낸다면 환자가 버틸 수 있지 않을까요?”
“뭐어? 2시간? 그게 말이 돼? 개흉 수술도 아니고 흉강경 수술인데?”
“최선을 다하면 될 것 같은데요.”
“만약 스텐트 시술과 병행한다면 그래도 손이 좋은 이민호 선생이니 2시간 이내에 가능할 것 같지만…… 유도 철사로 뚫어 혈관 내 혈전을 직접 제거하는 수술은 도저히 2시간 이내에 불가능할 것 같은데.”
방원익 과장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이민호는 조금 전에 보고 있었던 환자의 CT 영상 모니터를 그가 볼 수 있도록 돌린 후 입을 열었다.
“흉강경으로 가장 먼저 오른허파동맥에 쌓여 있는 혈전을 제거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때 혈관을 혈액이 흐르는 방향으로 절제한 후 혈전을 제거하고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한 부위에 유도 철사를 넣어 중간엽동맥과 아래엽동맥을 막고 있는 혈전을 제거하면 될 것 같은데요.”
이민호의 설명을 듣고 있던 방원익 과장은 놀란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감탄했다.
“호오! 그렇게 하면 시간이 대폭 단축되겠군. 하지만 그러려면 유도 철사를 흉강경 기구로 조정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
“유도 철사를 복장뼈와 재건해 놓은 갈비뼈 사이에 구멍을 뚫고 넣으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면 손으로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민호가 입체적인 모형을 들어 방향을 제시하자 방원익 과장은 잠시간 곰곰이 생각했다.
“재건해 놓은 갈비뼈 사이에 구멍을 뚫고 유도 철사를 폐동맥의 절제한 부위까지 넣는다라…… 확실히 손으로 유도 철사를 조절할 수 있겠군. 그러면 2시간 이내에 혈전들을 제거하는 게 가능하겠군! 허어! 기발하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가?”
“저도 오전 내내 고민하다 떠오른 방법입니다.”
“일반적으론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지만, 조각난 갈비뼈를 재건해 놓은 환자이니 가능한 방법이군.”
“그렇죠. 갈비뼈가 이미 조각나 있지 않은 환자에게는 쓸 수 없는 방법이죠.”
“다시 봐도 기발하군. 기존의 방식에서 답을 찾으려 했던 나는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발상이야.”
“어떻게 해서든 수술 시간을 줄이려다 보니 퍼뜩 떠오른 겁니다.”
“이 방법대로 수술하면 황갑수 환자 살릴 수 있겠어.”
이민호는 방원익 과장도 확신하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존에 없던 수술 방식이기에 약간이나마 우려의 마음도 있었는데, 그게 사라졌다.
* * *
외래 환자를 진료하는 동안 소용철 교수의 머릿속에는 이민호가 수술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아무리 이민호 선생이라고 해도 일반적인 수술법으로는 절대 2시간 이내에 수술을 끝낼 수 없는데, 무슨 수가 있기에 수술을 한다고 한 걸까?’
“교수님, 다음 환자 들어오라고 할까요?”
“네.”
간호사의 물음에 대답하며 힐끔 시계를 보니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 지금쯤이면 오른허파동맥의 혈전을 제거하고 있겠구나! 그다음은 스텐트 시술일 텐데…….’
이번 수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부분이다.
딱 30분만 자릴 비웠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곽상도 펠로우의 고향 사람 순서가 아직 아니었다.
띠링.
그때 대기자 순번에 드디어 곽상도 펠로우가 신경 쓰는 고향 사람 이름이 떴다.
“이 선생님.”
“네, 교수님.”
“17번 허필성 환자의 진료를 먼저 할 테니까 이번 환자분 진료 끝나면 허필성 환자분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진료를 도와주던 간호사는 소용철 교수의 말을 듣고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 후 허필성 환자의 순서를 2번으로 바꿨다.
잠시 후 다음 환자가 들어와 진료받고 나가고 간호사의 부름을 받은 허필성 환자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네, 이쪽으로 앉으세요. 곽상도 선생님을 통해 완도 쪽 병원에서 진료받은 기록은 보았습니다. 왼쪽 폐에 있는 종양의 조직 검사 결과…….”
소용철 교수는 허필성 환자에게 여러 가지 검사를 추가로 받은 후 결과를 보고 수술 여부를 결정하자는 말을 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선생님, 잠깐 중환자실에 갔다 올 테니까, 다음 환자 딜레이 좀 시켜 줘요.”
“네에? 외래 중이신데 갑자기 중환자실은 왜?”
“콜이 들어와서 그래요. 콜.”
“콜이 들어왔다고요? 아, 알겠습니다.”
소용철 교수는 간호사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알았지만, 못 본 척하며 밖으로 나가 이민호가 수술하고 있을 수술실로 달려갔다.
수술실에 도착하니 이민호와 방원익 과장이 수술실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 안녕하세요, 교수님.”
“으, 응! 과장님, 안녕하십니까?”
“응, 그런데 소 교수가 여긴 어쩐 일이야? 지금 외래 보고 있을 시간 아니야?”
“아! 잠깐 이민호 선생의 수술을 보고 가려고요. 그런데 왜 수술실에서 나오시는 겁니까?”
“수술이 끝났으니 나오지.”
순간 소용철 교수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에? 벌써 수술이 끝났다고요? 혹시 1시부터 수술하지 않았나요?”
“아, 수술을 한 10분 일찍 시작했어.”
소용철 교수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2시 30분이었다.
“10분 일찍 시작했다고 해도 수술이 너무 빨리 끝난 것 같은데요?”
“이민호 선생이 손이 좋아서 수술이 예상 시간보다 더 빨리 끝났어.”
“아무리 손이 좋아도 벌써 끝날 수 있는 수술이 아닐 텐데요.”
“손도 좋고 환자의 상황에 맞는 최선의 시간 단축법도 고안해 내서 아주 빨리 끝날 수 있었어.”
“아니, 도대체 어떻게 수술했기에?”
“궁금하면 영상실에 요청해서 어떻게 수술하는지 봐. 아마 보면 소 교수의 고정관념이 깨질 테니까.”
“제 고정관념이 깨진다고요? 그렇게 말하니 더 궁금하네요. 물론 이 선생의 수술 영상을 보긴 할 건데, 그래도 대략적으로 어떻게 수술했는지만 좀 알려 주십시오.”
“내가 여기서 알려 주면 이민호 선생이 얼마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는지 알아가는 재미가 없잖아. 그러니 극적인 감동을 위해서라도 그냥 영상을 봐.”
“아니, 그냥 알려 주시면 안 됩니까? 이 선생, 어떻게 수술한 거야?”
“환자 맞춤형으로 했어요. 궁금하면 영상실에 자료 요청해서 영상을 보세요.”
“뭐야? 이 선생까지 왜 그래?”
“결과를 알고 보는 재방송 축구 경기는 재미없잖아요.”
이민호가 싱긋 웃자 소용철 교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
“그리고 교수님, 지금은 어서 돌아가셔서 외래 진료 보고 계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제 수술이 궁금하다고 해도 이렇게 중간에 나오시는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에휴, 알았어. 간다고. 가. 거참 팍팍하기는.”
소용철 교수가 현실을 깨닫고 부리나케 사라지자 이민호는 피식 웃었다.
“소 교수님을 보면 열정이 참 대단하신 것 같아요.”
“열정이 대단한 것은 좋은데, 저렇게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지. 만약 외래 진료 환자들이 소 교수가 이 선생의 수술을 보기 위해 중간에 나왔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되겠어?”
“아마 외래 오신 환자분들 중 성질 급한 분들이 발끈하겠죠.”
“그렇지. 그러니 아무리 궁금해도 제 자리에서 할 일은 해야지.”
* * *
딸칵 딸칵…….
외래 진료가 끝난 후 영상실에 요청해 이민호의 수술 장면을 보기 시작한 소용철 교수는 복장뼈와 갈비뼈 사이 갈비연골 부위로 유도 철사가 들어갈 구멍을 뚫는 것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폐, 식도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교수이기에 왜 저 부위에 구멍을 뚫는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허어! 저런 수를 냈구나! 왜 환자 맞춤형이라고 했는지 이제 알겠군!”
만약 갈비뼈가 멀쩡한 환자를 스텐트 시술한답시고 저렇게 구멍을 뚫으면 난리가 날 것이다. 하지만 저 환자는 저렇게 할 수가 있었다.
이제야 수술 시간이 2시간도 안 걸린 이유를 깨달았다.
소용철 교수는 다음 장면을 빠르게 재생시켜 폐동맥들의 혈전을 제거하는 과정까지 지켜봤다.
혈관이 보통 사람에 비해 약한 환자이기에 자칫 유도 철사가 혈관을 찢어 버릴 수도 있는데, 마치 유도 철사 스스로가 생명체라도 되는 양 혈관 벽을 건드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 혈전이 쌓여 있는 부분에 이르고 있었다.
“어? 어떻게 유도 철사를 저 속도로 밀어 넣는데 혈관 벽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는 거지?”
정말 조심해서 서서히 밀어 넣어야 가능한 일인데, 속도가 자신이 하는 것보다 두 배 이상은 빠른 것 같았다.
소용철 교수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가 이내 자신이 재생 속도를 1.5배 정도 빠르게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어쩐지 이상하더라. 깜짝 놀랐네.”
서둘러 재생 속도를 정상으로 놓고 보니 그제야 터무니없는 빠름이 조금 느려졌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하는 것보다는 훨씬 빨랐다.
“정말 손 하나는 타고났어!”
잠시 자신이 저 자리에서 이민호 대신 집도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 봤다.
이민호의 수술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자신이 했다면 아무리 빨라도 2시간 이상은 걸렸을 것 같았다.
2시간 이상이면 환자의 컨디션으로 위험해지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만약 이민호 선생이 고안한 저 방법을 떠올렸다고 해도 간당간당한 수술이었겠군.”
폐동맥들에 쌓여 있는 모든 혈전들을 제거하고 유도 철사를 뺀 후 오른허파동맥을 봉합한 다음 결찰해 뒀던 부분을 푸니 오른쪽 폐로 혈액이 정상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다음 장면부터는 마무리이기에 굳이 더 볼 필요가 없었다.
소용철 교수는 동영상을 끈 후 가만히 눈을 감고 조금 전에 보았던 것을 자신에 비추어 되새김질했다.
그러자 방원익 과장의 말했던 것처럼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 깨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폐동맥 색전증 환자는 대부분 스텐트 시술을 하고 평생 항혈전제를 복용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론 저렇게 직접 혈전들을 제거하는 방법도 염두에 두게 될 것이다.
“역시, 이민호 선생이야.”
자신을 불과 몇 달 만에 식도암 수술의 세계적인 권위자가 될 수 있게 만들어 준 사람이 바로 그였다. 물론 권위자로 인정받은 것은 이민호에게 수술법을 배운 후 1년 정도가 지나서였다.
“저 정도면 내년에 전문의 달고 펠로우 과정 건너뛰고 바로 임용해서 교수 달아 줘도 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