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 틀어진 운명(1)
강릉에 위치한 데무가데 던전.
데무가데 던전은 인적이 드문 마을 해변가 근처에서 생성되었다.
길게 늘어진 새하얀 백사장과 몰아치는 파도.
우우우우웅.
그곳에 홀로 게이트 하나가 일렁이고 있었다.
10성 몬스터, 데무가데가 출현하는 던전이자, 현재 의성(醫星)이 갇혀 있는 던전이었다.
“가시죠.”
서준은 가장 먼저 앞장 서 게이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런 서준의 뒤로 검성(劍星)이 따라왔고,
다시 그런 검성의 뒤로 칼리아가 주춤주춤, 따라왔다.
영성(靈星)은 함께 하지 않았다.
팀원들과 정지민이 있기는 했지만 혹시 모를 일은 존재하는 법이었으니까.
그렇게 서준, 검성(劍星) 그리고 칼리아.
이 기묘하기 짝이 없는 조합이 완성될 수 있었다.
대격변의 영웅, 검성.
순결의 사도 후계자, 칼리아.
그리고 현재 추정조차 불가능한 드림팀의 마스터, 서준.
이 세 명은 말없이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다다른 게이트 앞.
서준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뒤따라온 칼리아에게 말했다.
“먼저 들어가시죠.”
그런 서준의 말에 칼리아는 표정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선뜻,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 게이트를 넘어서면 현실과 단절이 된다.
누가 다치든.
누가 죽든.
저 게이트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알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게이트에 들어간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던전에서 무슨 사고가 벌어지든 살아남은 당사자들이 입을 맞추면 그만이었다.
누가 사고로 죽었는지.
몬스터한테 뜯겨 죽었는지.
그도 아니면 살해 당했는지.
그 사실들은 살아남은 당사자들이 조작해서 증언하면 그만이었다.
살아남은 당사자들이 없다면 영원히 미궁 속으로 빠질 뿐이었다.
던전에서는 어떤 사고든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진리회가 자주 사용해오던 수법이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그걸 그대로 자신이 돌려받게 생겼다.
칼리아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찌해야할지 갈피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칼리아는 잠시 시선을 돌려 그 ‘당사자’가 될 인물들을 바라봤다.
서준과 검성(劍星).
솔직한 심정으로 칼리아는 저 둘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검성(劍星) 한 명만으로도 버거웠다.
하지만 서준까지 가세한 전력을 칼리아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차라리 검성만 두 명이었다면 어찌해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칼리아는 슬쩍, 곁눈질로 서준을 바라봤다.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듯한 분위기의 사내.
겉으로만 보기에는 정말 별 볼일 없는 사내였다.
‘······’
하지만 칼리아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류진철을 보호하기 위해 개입했을 때, 잠시나마 서준의 힘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 오랜 기억을 끄집어 내어 칼리아를 외통수에 빠지게 한 판단력.
압도적인 무력 뿐만 아니라, 상황을 꿰뚫는 냉철한 통찰력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 도저히 가늠이 안돼.’
칼리아는 서준의 수준을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서준이라는 사람 자체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칼리아는 지금 도저히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저 게이트를 넘어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대강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칼리아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동물 마냥,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채 머뭇거릴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움직이지 않는 칼리아의 모습에 검성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안 들어가고 뭐하는 거지? 설마 진리의 맹세를 어길 셈인가?”
“······”
그야 말로 ‘끌려간다.’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했다.
이윽고 칼리아는 짙은 한숨을 내뱉으며 게이트 안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우우우우웅.
기이한 소리가 들려오며 칼리아의 모습이 게이트 안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칼리아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칼리아를 더 이상 압박할 수는 없어요. 알고 계시죠?”
서준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그런 서준의 말에 검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칼리아는 어디까지나 순결의 사도 후계자. 행여 칼리아가 잘못된다면 진리회가 가만 보고 있지 않겠지.”
이에 서준이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서준과 검성(劍星).
이 둘이라면 던전 안에서 칼리아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제압 정도가 아니라 처리까지도 가능했다.
그리고 던전 사고로 위장해 그 사실을 감출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칼리아는 순결의 사도 후계자로서 진리회 내부에서도 그 입지가 꽤나 높은 인물이었다.
다음 순결의 사도로서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언급이 될 정도이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한 마디로 칼리아의 뒷 배경이 진리회라는 뜻이었다.
칼리아가 잘못되면 진리회는 전면적으로 나설 명분이 생긴다.
그리고 서준과 검성, 칼리아가 의성을 구하기 위해 같은 던전으로 향했다는 사실은 조금만 조사하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아니, 굳이 조사까지 할 필요도 없었다.
서준이 흑룡 길드를 단신으로 쳐들간 사실이 벌써 기사화 되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만일 칼리아가 죽는다면 그 범인을 서준과 검성으로 지목하면 그만이었다.
설령 그게 사실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세상을 구원한 종교 단체, 진리회.
진리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가히 맹목적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서준이 떠오르는 초신성이자, 검성이 대격변의 영웅이라 할지라도 진리회에 미치지는 못한다.
되려 역풍을 맞을 수 있는 위험 요소가 다분했다.
“반대로 칼리아가 같이 들어간 이상 진리회가 수작질은 부릴 수 없겠죠.”
그리고 그건 진리회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그래도 다음 순결의 사도로 유력한 인물을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준과 검성의 입장에서는 행여 진리회가 수작질을 부리면 그대로 칼리아를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아마 기존에 계획했던 일들도 칼리아가 같이 오면서 전부 취소했을 터.
결국 칼리아는 일종의 인질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칼리아는 분명한 위헙을 느낄 겁니다. 그러니 협박해서 의성님을 빨리 찾도록 하죠.”
서준은 어깨를 한 번 으쓱여 보였다.
“······”
그런 서준의 모습에 검성은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저 그런 놈팽이인 줄로 알았건만.
지금 눈앞에 있는 서준은 자신이 알던 그 놈팽이와 완전 딴판이었다.
대격변의 영웅에 근접한 류진철을 압도한 것은 물론이고.
자신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을 이용해 이렇게 판 자체를 뒤집어버릴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손녀 딸의 마음을···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들려오는 서준의 말에 검성은 상념을 털어내었다.
“아니다. 빨리 들어가지.”
그러면서 검성은 먼저 게이트 안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는 검성.
어째, 어딘가 평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서준은 고개를 한 번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검성을 따라 게이트를 주저없이 몸을 밀어넣었다.
우우우우우웅.
기이한 소리와 함께 시야가 반전했다.
조금의 시간이 울창한 숲의 지형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어 검을 뽑아든 검성의 모습과 함께.
“이, 이, 이제 뭐, 뭐하시려는 거죠?”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칼리아가 보였다.
살며시 방패를 치켜든 모습이 이어질 전투에 대비하는 것 같았다.
서준은 그런 칼리아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하긴요.”
이어 서준은 키비시스에서 궁니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칼리아가 있는 방향을 향해 궁니르를 던졌다.
쐐애애애애액!
서준의 손에서 떠나간 궁니르가 소름끼치는 파공음을 흩뿌리며 쏘아져나갔다.
찰(扎)의 묘리를 섞어 던진 궁니르.
느껴지는 그 끔찍한 힘의 파동은 모든 것을 꿰뚫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 이건···!’
칼리아는 이를 까득, 깨물며 잡은 방패에 힘을 주었다.
막을 수 있을까.
막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은?
칼리아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분이었다.
찰나의 고민과 동시에 궁니르가 칼리아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쐐애애애액!
어째서인지 궁니르는 그대로 칼리아를 스쳐지나가버렸다.
당황스러운 것도 잠시.
“키에에에에에에엑!!!”
쿠우우웅!
칼리아의 뒤로 귀가 먹먹해지는 괴성이 터져나오며 대지가 크게 울려왔다.
칼리아는 얼떨떨한 심정에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거대한 지네, 데무가데가 머리가 터져나간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사이로 서준이 터벅, 칼리아의 옆으로 다가왔다.
“당연히 의성님을 찾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칼리아는 그런 서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얼핏 보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서준의 말이었다.
그런데 허튼 수작을 부리면 저 데무가데로 만들어주겠다는 말처럼 들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래서 의성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죠?”
“······”
칼리아는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
10성 몬스터, 데무가데.
거대한 지네형의 몬스터로서 단단한 껍질과 날카로운 이빨로 무장한 강인한 몬스터였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자면 어디하나 버릴 것 없는 몬스터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아주 가끔. 정말 아주 가끔.
간혹 내단(內丹)을 품은 데무가데가 발견되곤 했었다.
내단은 강력한 마나를 품고 있는 일종의 결정체로서, 내단을 품은 데무가데는 다른 데무가데들에 비해 압도적인 강함을 자랑했다.
그리고 헌터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떠돌았다.
그 데무가데를 처리하고 내단을 얻을 수만 있다면 인생이 뒤바뀐다.
강력한 마나를 품고 있는 내단(內丹).
헌터들이 복용하면 한단계 수준이 상승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이 복용하면 만병통치약으로 평생 잔병치레를 하지 않게 된다.
하여 데무가데의 내단은 비단 헌터들 뿐만 아니라, 성공한 기업인 혹은 대기업의 회장 등.
수많은 부자들에게도 뛰어난 값어치를 지녀 경매장에 팔아도 어마어마한 가격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 내단의 가치는 어느 쪽으로 활용하든 상상을 초월했다.
그런 엄청난 가치와 가능성을 데무가데였지만, 그럼에도 데무가데를 사냥하려는 헌터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었으나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데무가데를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적인 데무가데조차 무려 10성 몬스터였다.
10성부터는 S급 헌터의 영역이었다.
프로 헌터들이 도달할 수 있는 사실상의 정점, S급 헌터.
애초에 데무가데를 처리할 수 있는 헌터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거기에 내단을 품은 데무가데는 일반적인 데무가데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데무가데의 내단은 그림의 떡으로만 여겨질 뿐이었다.
하지만.
“키에에에에에에엑!!”
쿠우우우웅!
여기 모인 이들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아니었다.
괴성과 함께 쓰러지는 데무가데 사이로 검성이 터벅, 걸어나왔다.
불과 몇 초도 채 걸리지 않았던 전투.
그 전투라고 부를 수도 없는 전투 끝에 데무가데는 몸이 반으로 갈려버렸다.
반면에 검성은 흙먼지만 살짝 묻어있을 뿐 아무런 이상이 없어보였다.
검성은 청룡검(靑龍劍)에 묻은 체액을 털어내었다.
“의성님이 데무가데의 내단을 구하러 이곳에 들어오신 거군요.”
그러자 문득 들려오는 서준의 목소리.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엔 서준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서준의 뒤로 수 마리의 데무가데들이 처참하게 널브러져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이 놈들을 전부 처리했다라···’
물론 그런 서준의 옆으로 칼리아의 모습이 비쳐보이긴 했다.
그리고 칼리아는 대격변의 영웅과 엇비슷한 수준의 실력자.
하지만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는 칼리아를 보고 있자니, 솔직히 말해 썩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검성은 천천히 다가오는 서준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아마도 그럴거다. 마성을 치료하겠다고 말한 뒤 이곳에 왔으니 분명 그럴거다.”
“그렇군요.”
서준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단을 품은 데무가데가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내단을 품든 데무가데는 그 존재 자체부터가 희귀했다.
데무가데 던전에서 반드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가끔.
정말 아주 가끔 발견되는 것이 데무가데 내단이었다.
그렇기에 의성을 구한다 한들 내단을 구하지 못한다면, 마성을 치료할 수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런데 검성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마 의성 놈이라면 내단을 추출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네? 내단을 추출한다고요?”
검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나도 자세한 건 모른다. 하지만 의성이라고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터. 그럼에도 치료할 방법이 있다며 이 던전에 들어왔다는 것은 나름의 방법이 있을 것일테지.”
그런 검성의 말에 서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의성(醫星)은 검성(劍星)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대격변의 다섯 영웅이었다.
단순한 무력만이 아닌 의학적 실력으로 대격변의 영웅에 반열에 올랐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러니 의성 놈을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 한다. 마성에게 시간이 없는 것도 없는 것이지만. 의성이 어떤 상황인지를 모르니까.”
검성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하늘을 찌르듯 솟아있는 나무들이 빽빽하다 못해 울창하게 뒤덮여 있는 숲.
“문제는 어떻게 찾느냐인데···”
이 넓은 던전을 일일이 수색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걸렸다.
그런 검성의 말에 서준은 옆으로 고개를 돌려 칼리아를 바라봤다.
그런 서준의 시선에 칼리아가 몸을 흠칫, 떨어보이더니 입을 열었다.
순결의 사도 후계자가 보일만한 태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칼리아는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자신의 편이 아무도 없는 고립된 던전.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한들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물론 칼리아 또한 서준과 검성이 섣불리 자신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자신을 건드리면 진리회가 나설테니까.
하지만 ‘섣불리’가 ‘절대로’라는 뜻은 아니었다.
여차하면 죽는 건 매한가지였다.
무엇보다 방금 데무가데랑 싸우는 서준의 모습이 기억에서 잊혀지지가 않았다.
“저, 저도 이제 모르는 일이에요.”
칼리아는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칼리아 본인이 이곳에 온 순간부터 모든 것이 틀어져버렸다.
의성의 행방같은 건 칼리아는 전혀 알지 못했다.
서준은 그런 칼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분명 칼리아는 이 던전에 수작질을 부려놨다.
그리고 아마 오기 전에 그 계획을 전부 취소했겠지.
같이 죽을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하여 서준은 그 계획이 무엇이었는지 이번 기회에 캐볼 생각이었다.
당연히 서준은 칼리아를 이대로 보낼 생각이 없었다.
‘일단 의성님부터 찾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의성도 시간이 없고, 마성도 시간이 없는 상황.
느긋하게 칼리아를 털어낼 여유가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의성을 찾아 마성을 치료해야했다.
칼리아를 털어보는 건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는다.
물론 칼리아가 순순히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시간을 두고 천천히 캐볼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죽이지만 않으면 그만이지 않은가?
서준은 아무런 내색도 없이 칼리아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런 서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후우···”
칼리아에게서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서준은 그런 칼리아를 뒤로 한채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울창한 숲.
검성의 말처럼 이 넓은 숲을 일일이 수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빽빽한 나무들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어 더했다.
서준은 두리번두리번, 둘러보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음··· 이쯤이면 되려나.”
“방법이 있나?”
서준의 중얼거림에 검성이 물어왔다.
서준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있기는 한데··· 저도 확실하지가 않아서요. 잠시만요.”
서준은 가만히 눈을 감아 기감을 확장시켰다.
케이론의 강의를 수료하면서 얻은 환골탈태(換骨脫胎).
그 초감각의 영역을 서준은 확장시키고 또 확장시켰다.
그렇게 모든 자극을 차단하고 감각에만 집중하자 평소와는 다른 뚜렷한 감각이 인지되었다.
흥미롭게 서준을 바라보는 검성.
식은 땀을 흘리는 칼리아.
서준 주변의 모든 것들이 보다 뚜렷하게 인식되었다.
하지만 의성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케이론의 감각이라 하더라도 이 넓은 던전의 의성을 찾아내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서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확장시키고 확장시킨 초감각에 발력(發力)의 묘리를 곁들었다.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한의 위력을 사출하는 방법, 발력(發力).
서준은 그 묘리를 응용해 케이론의 감각에 적용시켰다.
그러자 확장된 감각이 예리하게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듯.
퍼져나간 감각들이 첨예하게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눈이 내리고 있다면 그 결정마저 인지할 정도의 감각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의성의 기척은 여전히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서준 또한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서준은 여기서 삼단전(三丹田)의 마력을 터트렸다.
쿠콰콰콰콰콰콰콰콰콰!!!
“······!!”
“······!!”
서준의 전신으로 터져나오는 초월의 힘에 검성과 칼리아가 동시에 두 눈을 부릅 떠보였다.
저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준을 바라봤으나 서준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그 마력을 감각에 투영할 뿐이었다.
그러자 끝없이 감각이 마력의 힘을 받아 증폭에 증폭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하늘 높이 올라 모든 것을 관망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꿈틀.
서준의 감각을 간지럽히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데무가데와는 확연히 다른 감각.
필시 의성일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정말 잡힐듯 말듯.
희미하다는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집중에 집중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
그렇기에 서준은 그 방향과 위치를 확신할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그냥 느껴질 뿐, 지금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냥 아직 살아있다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서준은 그 감각에 더욱더 집중했다.
그리고는 키비시스에서 궁니르를 꺼내들었다.
필중(必中)의 창 궁니르.
서준은 그 느껴지는 감각을 특정하고 있는 힘껏 궁니르를 던졌다.
쉬이이이익!!
그러자 매서운 기세를 내뿜으며 궁니르가 서준의 손을 떠나갔다.
그런데 타겟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쉬이이이이···이익?
쏘아지던 궁니르가 갑자기 그 움직임을 멈추며 멈칫거렸다.
그리고는 마치 고개를 돌리듯이 서준 쪽으로 창두를 돌렸다.
그 모습이 마치 ‘뭔데?’ 라고 묻는 것만 같았다.
서준은 더욱더 감각에 집중하며 소리쳤다.
“이거! 이거 찾아가봐!”
그러자 궁니르가 한참을 방황하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궁니르가 한 방향으로 슬그머니 창두를 고정시키더니.
쐐애애애애애액!
어마어마한 속도로 쏘아져나가기 시작했다.
서준은 집중했던 감각을 일시에 흩어버렸다.
그리고는 여전히 눈을 부릅, 뜨고 있는 검성에게 소리쳤다.
“그럼 먼저 가볼테니 천천히 따라오세요!”
번쩍!
이어 환한 빛무리가 터져나오며 일순간 서준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
“······”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그리고 그 사이로.
-궁니르가 의성님을 꿰뚫기 전에 제가 막아야하거든요!
서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