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ension Academy RAW novel - Chapter 230
230화 – EX등급(1)
시공간이 뒤틀리고 붕괴되는 괴이한 현상은 이내 잠잠해졌다.
그 끝에 하늘의 시야를 가득 메우던 유성은 흔적도 없이 소멸해버렸다.
“아···?”
서준의 고개가 저도 모르게 기울어졌다.
그것도 모자라 눈을 비비적, 시야를 바로하며 앞을 바라봤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건 청명한 하늘 뿐이었다.
“어···? 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인과의 제약이 걸려있지 않은,
온전한 상태에서의 제천대성은 초월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그런 제천대성이 온힘을 담아 천월유성봉을 시전했다.
그것도 식(式)이 아닌 1형(形), 유성낙하(流星落下)를 말이다.
그렇기에 지금 서준이 서있는 공간은 개박살이 나야만 했다.
개박살이 나다 못해 공간 자체가 소멸했어야 했다.
그런데 사라져버렸다.
세상을 으스러뜨릴 것만 같던 유성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서준은 시선을 돌려 이리나를 바라봤다.
이리나는 달뜬 호흡조차 내뱉지 않고 있었다.
태연하게 태양빛을 닮은 금색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고 있었다.
방금 그 광경을 연출해낸 존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서준은 얼떨떨한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가, 감각을··· 가르쳐주신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그러자 이리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이게 감각입니다만?〕
“······”
서준은 뭐라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대체 저게 어딜 봐서 감각이란 말인가.
저건 감각이 아니었다.
아니, 감각이라 말해서는 안 되었다!
서준은 그때서야 언젠가 멘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름 아닌 서준이 초월자 학원의 원장에 대해 처음 질문했을 때.
그에 대한 멘토의 답변이었다.
‘음, 만일 경지를 물으시는 거라면··· 질문이 무의미한 수준입니다. 두 번째 초월자··· 정도로만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당시엔 무슨 소리인가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알 수 있었다.
정확히는 ‘질문이 무의미하다.’ 라는 멘토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판단 불가.
비교할 자가 없으니, 범접할 자가 없으니.
그 경지의 수준을 가늠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경지를 논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현존하는 최강의 초월자.
그나마 이리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이 정도뿐이었다.
서준은 멍하니 이리나를 바라봤다.
바라본 이리나의 모습은 미(美)의 여신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미모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그 안에 담긴 존재는 그야말로 괴물이나 다름 없었다.
아니, 괴물이라는 말로도 차마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
그 어마어마한 괴리감에 서준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어··· 갑자기 왜 그렇게 보시는 거죠?〕
그런 서준의 모습에 이리나가 되려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배 째라며 별 해괴망측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왜긴 왜겠어. EX등급의 위력을 보고 화들짝! 놀라버린거지. 뭐,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만.]제천대성이 키득키득, 웃어보였다.
그런 제천대성의 말에 서준은 퍼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 EX등급이요? 그런 등급이 초월자 학원에 존재했나요?”
서준이 초월자 학원에서 본 가장 높은 등급은 SSS등급.
석가모니의 부동심(不動心)이었다.
그리고 다른 SSS등급을 본 적이 없었다.
한 마디로 초월자 학원에 존재하는 가장 높은 등급은 SSS등급이었다.
그런데 EX등급이라니?
그건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등급이었다.
제천대성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니. EX등급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네?”
서준은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방금 이리나가 보인 것이 EX등급이라면서,
이제는 EX등급이 존재하지 않는다니?
그에 대한 답변은 제천대성이 아닌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인과의 기록으로도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규정 외라는 뜻이다.」
문득 들려온 소리에 서준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그곳엔 따오기 머리를 한 존재.
다름 아닌 아까 전,
학원 입구에서 만났던 지혜의 신 토트가 서있었다.
〔아, 오셨어요 토트씨.〕
[여! 반가워 새 대가리!]이리나와 제천대성이 각자 토트에게 인사를 건넸다.
토트의 시선이 일견 제천대성을 향했다.
어딘가 언짢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 경박한 입은 여전하군 원숭이.」
[또 또 저런다! 새 대가리가 뭐 어때서! 틀린 말은 아니잖아.]「네게 원숭이 대가리라고 하면 좋나?」
제천대성은 뭐가 문제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서준과 이리나를 손가락으로 번갈아 가리키며 소리쳤다.
[얘는 인간 대가리! 원장은 엘프 대가리! 그리고···.]제천대성은 다시 토트를 가리켰다.
[너는 새 대가리!]「······ 쯧.」
토트는 상대도 하기 싫다는 듯.
혀를 차보이며 매몰차게 고개를 돌렸다.
지혜의 신이면서 새 대가리라는 것이 어째 콤플렉스인 것 같았다.
더하여 제천대성과 말을 섞어봤자 자신만 손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토트는 제천대성 쪽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이리나에게 말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른 거지, 이리나? 토트의 서는 또 왜 가지고 오라고 한거고?」
〔김서준님에게 감각을 가르쳐드리려면, 아무래도 시스템 인과 등록이 필요해서요.〕
「······?」
들려온 이리나의 답에 토트의 표정이 괴상망측하게 일그러졌다.
이윽고 토트가 고민을 하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따라 새 다가리에 달린 부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는데···.
그 모습이 꽤나 우스꽝스러워 서준은 웃음을 꾹, 눌러 참아야만 했다.
토트는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귀에 꽂힌 음성이 소리라는 개념이 맞는건지.
아니면 자신의 귀에 이상이 있는 건지.
그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말해주겠나. 아무래도 과로를 해서 인지 몸 상태가 영 말이 아니군.」
토트는 결국 자신의 귀가 잘못되었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제가 김서준님을 가르치려면 토트의 서에 인과 등록을 해야해서요.〕
「······」
이어진 이리나의 말에 토트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누가··· 가르친다고?」
〔제가요.〕
「누구를?」
〔여기 김서준님이요.〕
토트의 시선이 서준을 향했다.
「내가 알기로 저 자는 초시생으로 알고 있는데. 아니었나?」
〔맞아요.〕
토트가 다시 이리나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이리나, 네가 초시생을 가르친다는 건가?」
〔네.〕
「······ 그렇군.」
토트는 고개를 한 번 주억거렸다.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 건지 충분히 이해한 표정이기는 개뿔!
「뭐가 그렇군인가! 이 뭔 개같은···! 이리나, 네가 초시생을 가르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몰라서 그러는 건가!」
〔아, 거기엔 조금 특별한 사정들이 얽혀 있어서요.〕
「사정? 대체 뭔 놈의 사정? 아니, 들을 필요도 없다! 무슨 사정이든 가능한 일이 아니지 않나!! 관조자가 인과를 대신 부담해준다는 말 같지도 않은 사정이 아닌 이상에야─.」
〔그거예요.〕
토트는 순간 말문이 턱, 하고 막혀버렸다.
동시에 토트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푸하하하하! 저 새 대가리 표정좀 봐! 푸하하하!]제천대성은 그런 토트의 모습이 웃겨 죽겠다는 듯 바닥을 나뒹굴기 시작했다.
하지만 토트는 그런 제천대성을 신경쓸 수가 없었다.
「뭐, 뭐라고? 지금 뭐라고···?」
뒤이어 들려온 멘토의 목소리.
멘토는 토트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상황 설명이 끝나고.
「미친···!!」
토트의 새 대가리에 달린 부리가 쩌억, 하고 벌어졌다.
동시에 따오기의 두 눈이 순식간에 부엉이가 되어버렸다.
마치 상상할 수도 없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어떤 심연의 무언가를 마주한 듯한 표정이었다.
[푸하, 푸하하하하하!!]그런 토트의 모습에 제천대성은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버둥버둥거렸다.
하지만 토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서준을 멍하니 바라볼 뿐.
초월자도 아닌 한낱 초시생.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듯한 어벙한 분위기.
토트의 머릿속으로 온갖 복잡한 생각들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내뱉어진 한 마디.
「혹시 강의 찍을 생각 없나?」
“네, 네?”
갑작스러운 토트의 말에 서준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서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떻게 생각하나, 이리나.」
〔저도 생각 안 해본 건 아닌데, 아무래도 초시생이라 제약이 있더라고요. 혹시 방법이 있나요 토트씨?〕
「한 번 알아보겠다. 아니, 반드시 방법을 찾아보겠다.」
서준을 바라보는 토트의 눈빛이 영 심상치 않았다.
〔일단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이것부터 처리하죠.〕
이리나의 말이 있고 난 다음에야 토트는 시선을 거두었다.
이윽고 토트는 손에 들고 있던 책 하나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세상의 모든 비밀이 수록되어 있다 알려진 기록서, 토트의 서.
우리에게 흔히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라 알려진 초차원의 정보 집합체였다.
차라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토트의 서가 펼쳐졌다.
이어 토트의 서에서 환한 빛무리가 터져나왔다.
토트는 살며시 눈을 감고는 빛무리를 향해 손을 뻗어보였다.
서준은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물었다.
“뭐하시는 건가요?”
그러자 이리나가 작은 미소와 함께 답을 해왔다.
〔방금 제가 보여드렸던 기술을 인과율에 등록하는 거예요. 아직 초월하시지 못한 김서준님은 인과의 제약이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제 기술을 인과율에 등록해야 김서준님이 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권한이 생기는 거죠.〕
“어···.”
〔초월자 학원의 시스템에 제 기술을 등록하는 거라 생각하시면 돼요.〕
“아하.”
서준은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지금의 학원 시스템을 만든 것도 토트씨에요. 예전 주먹구구식이었던 시스템을 싹 갈아 엎는다고 토트씨가 꽤 고생하셨죠.〕
“오···.”
서준은 새삼 토트가 다시 보였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한 가지 의문.
“그런데 인과 등록이요? 그건 관조자밖에 할 수 없는 것 아니었나요?”
이번에는 이리나가 아닌 토트에게서 답변이 들려왔다.
「관조자가 작성한 기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하는 것 뿐이다. 관조자처럼 새로운 것을 작성할 수는 없어. 그건 네 말처럼 관조자밖에 할 수 없으니. 사실 등록은 아닌 셈이다.」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이 등록조차 불가능하다. 비록 재구성이긴 하나 이 또한 인과가 필요하기 때문이지. 특히나 이리나의 것이라면 그 인과는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토트는 뒷말을 맺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뒷말이 무엇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멘토의 얼이 빠진 목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토트의 서에서 터져나오던 빛이 잠잠해졌다.
띠링!
이윽고 서준의 스마트폰으로 알림음이 들려왔다.
《감각(感覺)》
화면에 보인 건 간단하다 못해 단조로운 두 글자였다.
감각, 그 자체를 정의내린 듯한 느낌.
“다 된 건가요?”
서준은 천천히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하지만 딱히 달라진 점은 느낄 수가 없었다.
뒤이어 토트와 이리나의 답이 동시에 들려왔다.
「등록을 한다 했지만 완전한 것은 아니다. 말했다시피 이리나의 것은 인과라는 언어로 전부 기록할 수 없는 규정 외의 무엇. 관조자조차 기록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건 말 그대로 김서준님이 배울 수 있는 권한일 뿐이에요. 그러니···.〕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이리나의 기세가 일변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방금 전 느꼈던 기묘한 감각이 치솟기 시작했다.
마치 지금 서있는 공간이 대적이 되어있는 것만 같은 착각.
발을 내딛는 움직임조차,
숨을 쉬는 그 행동조차.
서준의 의지대로 할 수가 없었다.
공포라는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힘.
〔이제 직접 배워가셔야죠?〕
귓가로 이리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어째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자, 잠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빠르게 개념과 이론을 알려드릴게요.〕
이리나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몸으로요.〕
꽈드드드드득!
“커허헉···!”
서준은 이리나의 기술이 왜 인과로 기록될 수가 없었는지.
그 이유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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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한 이름 모를 장소.
그것에 어떤 한 사내가 서있었다.
사내의 주위로는 기이한 마법진들이 잔뜩 새겨져있었다.
마법진들은 형형색색 빛을 발아하며 끔찍한 마력을 터트렸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아, 이게 악마 놈들이 만들었다던 칠죄종의 지옥이라는 거구나.”
마법진에 서있던 한 사내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인간이, 같은 인간을 두려워하는 공포의 결정체.
“진짜 엄청 나잖아···!”
사내는 다름 아닌 서준에게서 도망친 뒤틀린 존재였다.
뒤틀린 존재는 전신으로 느껴지는 초월적인 힘에 전율을 금치 못했다.
신(神)이 되고자 했던 인간의 교만(Superbia).
아직 완전히 개화하지 않음에도,
전신으로 느껴지는 힘은 그야 말로 초월적이었다.
뒤틀린 존재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기이한 마력들과 마법진들로 가득찬 공간.
그 한 쪽에는 긴 로브를 뒤집어 쓴 정체 불명의 존재가 서있었다.
여기 차원의 인간들이 위대한 목소리라 부르는 존재였다
뒤틀린 존재는 가만히 시선을 들어 위대한 목소리를 바라봤다.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데도 전혀 가늠이 안된다라···.’
뒤틀린 존재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초월의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 또한 들지 않는다.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완전히 개화한다면 조금은 다르려나.
‘글쎄···.’
뒤틀린 존재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뒤틀린 존재는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뒤틀린 존재의 뜬금없는 물음에 위대한 목소리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보였다.
정면으로 바라보는 터라 얼굴이 보일 법 하건만.
어째서인지 후드 안에는 어둠으로 가득 차있었다.
위대한 목소리는 아무 말 없이 뒤틀린 존재를 바라봤다.
뒤틀린 존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왜 네 차원을 멸망시키려고 하는거야?”
위대한 목소리는 역시나 아무런 의지를 내뱉지 않았다.
그렇게 이번에도 답을 하지 않겠구나 싶은 그때.
【너는】
문득 위대한 목소리의 의지가 들려왔다.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이지.】
위대한 목소리의 표정은 알 수가 없었다.
애초에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뒤틀린 존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했다.
“으음··· 그런 복잡한 건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굳이 말하자면 그냥 살아있으니까? 살아있으니까 살아가는거지. 인간들은 죽지 못해 살아간다고 하잖아? 나도 비슷한거지.”
위대한 목소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위대한 목소리의 모습에 뒤틀린 존재가 다시 물었다.
“살아가는데 꼭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지 않나?”
【필요하지 않다.】
위대한 목소리가 의지를 이었다.
【이유가 없이 살아가는 삶. 그 또한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삶의 이유는 왜 물어?”
위대한 목소리는 답을 하지 않았다.
마치 어떤 고민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서야,
위대한 목소리의 의지가 들려왔다.
【허나··· 그것조차 의미를 갖지 못한다면. 네가 이유가 없이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아니었다면. 그래도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그게··· 무슨 말이야?”
뒤틀린 존재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네게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이해할 수 있다고 하여 내 행동이 선(善)이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위대한 목소리는 등을 돌렸다.
등 너머로 다시금 의지가 들려왔다.
【우리는 거래를 했을 뿐. 난 네게 힘을 주었고, 넌 이 차원을 멸망시켜 차원의 모든 인과를 가져가면 된다. 그 이상의 이유가 필요한가.】
“뭐, 그렇긴 하지.”
뒤틀린 존재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이제 내가 뭘 하면 돼?”
위대한 목소리는 등을 돌린 자세 그대로 의지를 내뱉었다.
【시간을 두고 네 힘을 완전히 개화하려 했지만··· 관조자가 아닌 이리나가 움직일 줄이야.】
“관조자? 이리나? 그게 대체 누군데?”
위대한 목소리는 뒤틀린 존재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다.
【지금의 네 힘으로도 놈을 상대하기엔 충분하다. 되려 시간을 끌면 우리 쪽에서 좋을 것이 없겠지.】
위대한 목소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니 곧바로 시작하지.】
마지막 종말의 무대를.
위대한 목소리는 그렇게 시야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