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31
두 사람의 목덜미 솜털이 일어선다.
* * *
“으아아아아악! 오늘은 어째서 간식 고구마가 하나밖에 없는 것이오!”
“조용히 하십시오, 한명회 동지! 외출 시간 제한 걸리고 싶소?”
“사람이 고구마만 먹고 살 순 없지! 오늘따라 체중 감량이 땡기는구려!”
‘그 탄광’이란 이런 것이다.
* * *
아무튼 두 사람의 애원과, 이만큼 오래 부려 먹어 경력이 쌓였으면 둘의 대체재도 없다는 주위의 만류에, 트로츠키는 겨우 그들의 해임안 제출을 참아 냈다.
“당장 수습하시오.
지금 동지들이 벌려 놓은 탄광들, 그리고 저 많은 선박들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 그리고 그걸 다 모아서 어떻게 유럽으로 보낼 건지 머리에서 피가 날 정도로 고민하라는 말이오!”
“아, 알겠습니다. 트로츠키 동지! 목숨을 걸고 반드시 해결을 해내겠….”
“길게 답할 여유가 있으면 1초라도 더 고민에 쓰시오! 이제 동지는 인간이 아니라 계산기요!
따라하시오! 나는 계산기다!”
“나, 나는 계산기다!”
“그래! 이 빌어먹을 고장난 계산기 선생! 빨리 가서 싸지른 거나 치우시오!”
“끄아아악!”
하지만 갈굼은 참지 않았다.
그렇게 어디서도 들어 본 적 없는 창의적 욕설과 독설을 듣고 다시 의기투합한 상공국과 산업인민위원회. 조선과 원산의 한 줌 산업 전문가들.
이들이 다시 모여서 밤낮을 토론한 결과,
“이건… 대강 우리가 이미 확보한 기술로도 가능할 듯합니다.”
“그래야지. 몽골이 갑자기 유조선을 굴리지 않는 한에야 이 수밖에 없소.”
이번에 나온 결론은 석탄 액화 사업이었다.
만주에서 채굴한 갈탄과 유연탄에 수소를 첨가해서 저품질의 석유를 만든다. 효율은 나쁠지 몰라도 어차피 만주의 탄광 개발이 활성화되니 그를 충당하기에 나쁘지 않다.
더하여 기존의 선박 일부에서 석탄 보일러를 들어내고 대신 중유 보일러를 새롭게 탑재한다.
그러면 일단 보일러실의 노동력 문제도 해결되고, 덩달아 거대한 증기선들이 석탄을 급여받기 힘들어하던 문제도 해소된다.
예를 들어 SS게르마닉 호만 하더라도 그 규모에 맞게 잘 정비된 항만이 아니라면 석탄을 채우는 게 불가능하며, 조건을 맞추더라도 그 불편이 크다.
허나 그를 석유로 대체하면 펌프로 연결해서 급유할 수 있다.
이런저런 측면에서 경제성을 따져 봐도 ‘생각보다 괜찮다’는 결론이 나온다.
게다가 김칫국 먹는 꼴이지만 작금에 석유의 수요란 등 밝히는 고급유 정도일 뿐이니 중동의 인구 희박한 곳에 땅을 사 대규모 석유 채굴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그렇게 다시 이어지는 인프라의 대개조.
중화학 공업 콤비나트 사이에, 제철제강소와 화학비료 공장, 유지 공장 옆에 석탄 액화 공장이라는 새로운 이웃이 자리 잡는다.
더하여 중유 보일러 역시 대강의 산업 기반은 마련되어 있으니 생산 라인을 구축한다. 무수한 선박들이 개조되고 재개장된다.
결국 1년이라는 시간을 소모한 끝에….
“드디어!”
“아아, 해내고 말았소이다!”
마이어와 이명민, 두 사람뿐 아니라 조선과 원산의 뭇 관원들이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모두들 지난 수개월간 ‘퇴근(退勤)’이라는 말의 의미를 잊어버릴 만큼 혹독한 철야를 겪었다.
이제 해방이다.
물론 축하의 의미로 반주를 가져온 트로츠키의 모습에 다들 잠시 얼굴이 썩어 들어갔으나 사소한 해프닝이었을 뿐.
기나긴 기적 소리를 울리며 수평선을 떠나는 기선의 모습에 모두가 환호하였다.
돌아가는 듯 보였으나 결국 나아간다.
조선소와 시설들의 생산력을 흡수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들이 만들어졌고, 새로운 물건들을 만들어 낸다.
선박들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급유받으며, 노동 환경은 개선된다. 쓸모없는 과잉으로 보이던 생산 시설들은 곧바로 새로 도입된 액화 석유 기술에 연결되어 재조직된다.
내연 기관 연구 또한 한편에서는 진행되고 있다. 몇 년 안 있으면 증기선 자체가 조금씩 도태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으리라.
생산력이 기술 발전을 낳고, 다시 기술 발전이 사회의 신경 말단부터 움직여 낸다.
발전이다.
안정의 결과 (1)
1469년 3월 12일.
아직 석유로 가동하는 증기선이 진수되기까지 1년이 남았고, 트로츠키는 카라코룸에 있을 때.
한 소년이 선왕(先王)이 되었다가 다시 보위로 오른 지 벌써 15년이 지나던 때.
천하의 주인이란 말과 글 위에 존재하는 것이라, 그는 그리 죽은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니 15살인 것과도 같으리라. 그는 스스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년은, 청년은, 조선 국왕 이홍위는 침소에서 일어난다.
세숫대야가 들어오니 얼굴을 비벼 닦았고, 욕탕에서 땀과 기름기를 닦아 낸 뒤 나와서 향수를 뿌린다.
향기를 입힌 옥체 위에 겹겹의 옷이 감싸자 허여멀건 청년의 몸은 붉은 실, 금실에 둘러싸인 옥체가 된다.
한때 이 모든 과정들이 족쇄 같았던 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잠을 자고, 기침(起枕)하고, 세신(洗身)하였을 숙부가 떠올라 증오에 잠겼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나인들에게 일일이 감사의 뜻을 표하며 왕은 침소를 나선다. 시선과 몸가짐에는 단 한 번의 흐트러짐도 없다.
이 궁궐과, 나인들의 움직임과, 각종 기물들 속에서 그는 그 모든 작동(作動)의 목적이자 매개가 된다.
이홍위는 왕이다.
더 이상 소년이 아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직 독신이다.
* * *
이홍위가 기침한 지 얼마 안 되어 이어지는 조회 시간.
부친상을 마무리한 김종직이 상복을 벗고 돌아와 이홍위의 앞에 배례하자마자 논의는 진행된다.
이번에 졸(卒)한 김숙자를 문묘(文廟)에 배식(配食)하는 논의였다.
“김숙자는 조강지처를 버려 심행이 바르지 못하다 하여 세묘조(世廟朝, 세종대왕의 치세)에 사유록(師儒錄)에서 삭제되었던 바 있습니다.
아뢰옵건대 그의 신위(神位)를 문선왕(文宣王, 공자)의 것과 더불어 뫼시자는 상소는 부당하오니 윤허하지 마소서.”
“예판의 말이 옳사옵니다.”
친소파의 거두 신숙주가 친히 김숙자의 배식에 반대하니, 박팽년이 슬며시 거기에 말을 얹는다.
블레어는 그 모습에 걱정스레 김종직을 내다보고, 김종직은 미간을 찌푸리다 고개 숙일 뿐이다.
막후 협의가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이리 공격이 들어오니 김종직으로서는 머리가 아플 터이다.
그의 아버지를 정몽주, 권근과 더불어 문묘에 올린다는 안은 이미 세 파벌의 수장이 만나 합의한 바이거늘, 조정에서 말을 바꿈은 친소파와 대신파가 인민주의 세력에 압박을 가하겠다는 의미리라.
이홍위는 잠시 엎드린 제신(諸臣)들의 모습을 보며 그 저변의 정략들을 읽어 나간다.
“경들은 들으라.”
긴장된 공기 속에 이홍위가 입을 열자 근정전에 모인 신하들은 다시 머리를 숙인다.
“동방의 이학(理學, 성리학)은 길재가 정몽주에게 배우고, 김숙자가 길재에게 배워 그 원류가 이어졌으니 그 학문에 대해서는 더 이를 바가 없다.
더하여 난적(亂賊) 유(瑈, 수양대군의 휘)와 용(瑢, 안평대군의 휘)이 병화(兵禍)를 일으킬 때 홀연히 서울을 떠나 충절을 지키니 이 또한 뭇 선비의 모범이라.”
그리 말하며 이홍위는 실룩거리는 신숙주의 눈썹을 흘겨보고, 들썩이는 김종직의 어깨를 살핀다.
인민주의자 파벌이 요사이 약세를 보이니 띄워 줄 필요가 있다.
“또한 그 아들 종직이 과학적 사회주의의 학풍을 크게 일으키니 그 아비 된 자로서 솔선하여 협동조합을 조직하고 후기 마르크스의 알려지지 않은 저작들을 동방에 많이 소개하였다.
이에 과학적 판단을 토대로 실농하던 백성들에게 항산(恒産)을 주었고, 그 자신은 선산의 조합장으로서 제 자산을 스스로 조합에 기부하니 그 덕(德)이 널리 알려진 바다.
전일에 김숙자에게 문녕공(文寧公)의 시호를 내렸으니 이번에는 선성(先聖)들과 함께 배향할 만하다. 선산을 비롯한 영남 향민계원들의 상소는 가납하겠으니 이에 대하여 더 논하지 말라.“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조정의 인민주의자들이 일제히 외치며 고개를 더욱 낮춘다. 주상이 직접 구원 투수로 나와 주니 감사함이 그지없으리라.
“또한 항간의 토론에서 아직도 향민계의 강령을 더러 이단이라 말하는 이들이 있다 들었다.”
인민주의자를 제외한 나머지 파벌들의 고개가 숙여진다. 저들을 꼬집는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알았으리라.
김숙자의 배향은 이미 김숙자가 나이 들어 바깥을 거닐지 못하게 될 때부터 나왔던 이야기다. 헌데 지금 신숙주와 박팽년이 논쟁으로 끄집고 나온 데는 이유가 있다.
“전하, 하오나 향민계원들은 협동조합 농장이 아조의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한 미봉책이 아니라 농업 발전의 최종형이라 운운하옵니다.
그리하여 농업공장과 사설농장을 점진적으로 폐하기를 논하는 이들도 있으니 이 어찌 과학적 사회주의의 교의에 어긋나지 않는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해 향민계 조직 차원에서의 대응이 없으니 그 저의가 의심스럽사옵니다.”
이번에 말을 꺼내는 것은 성삼문이다. 그리고 반박이 이어질세라 이명민이 재빨리 말을 잇는다.”
“그렇사옵니다. 마르크스는 분명 농업 노동자를 고용하여 농장을 일구는 자본주의적 경영의 도입이 농업 발전의 귀결이라 하였습니다.
이를 부정함은 일부일처제적 가족의 재생산을 옹호하는 소부르주아지적 오류이오니 청컨대 성상께옵서 사학과 정학의 시비를 가려 주소서.”
그렇다. 결국 농업공장과 농장주의 이권 문제가 얽혀 있는 것이다.
슬슬 농업 생산량이 증대되면서 농업공장들이 자리하던 자리에 공업 시설들이 들어선다.
이때 인근의 농민 소비에트들이 노동자 소비에트들로 재조직되면서 친소파의 기반에 흔들림이 있었다.
그리고 그 농업공장의 빈자리를 협동조합 농장이 매섭게 채워 가며 목소리를 높이니, 불안할 수밖에.
게다가 대신파 또한 본격적으로 대중 조직을 마련하면서 신흥 지주들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니 협동조합을 축소하고 사영 농장을 대거 확충하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해동 유물론과 과학적 인식의 거두는 그들뿐만이 아니다.
“경들은 어찌 선철(先哲)이 남긴 자구 하나하나에 편벽되이 구는가? 작금의 조선 또한 정통적인 역사 발전의 궤도를 걷고 있다 하기에는 어려울 터.
변증법적인 세계 인식에 있어 정사(正邪)를 나누어 다툼은 교조주의와 분파주의의 씨알일지니, 그대들은 차야노프의 소농 이론도 접하지 아니하였는가?”
이홍위가 지금껏 집필한 논문과 교재는 방 하나를 꽉 채우고도 남는다.
개중 ‘조선사회구성체논쟁: 중세 봉건 사회와 아시아적 사회 사이에서’는 모든 향민청 교육시설과 소비에트 노동자 클럽에 보급되어 수년이 지나도록 해동 사회주의의 근간을 집약했다 평가받는 명저였다.
주상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 스스로 한 학파를 꾸릴 수 있을 만한 성과를 이룬 것이다.
“알렉산드르 차야노프가 이미 1920년대부터 경작 방식에 따라 농업 경영의 최적 규모는 달라진다고 지적하지 않았던가?
또한 그를 기반으로 가족적 소농 경영이 자본주의적 경영보다 가지는 우위에 대하여서도 차야노프 동지가 이미 논증한 바가 있지 않은가?
이를 미루어 보면, 과학 하는 이들이 고전적 연구 결과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터이다.
농업 정책은 큰 문제가 없다면 작금의 것을 유지할 것이니 망령되이 이야기 말라.”
이홍위의 일갈에 친소파와 대신파 인사들은 더 대꾸도 못하고 입을 닫는다.
아무리 조정의 균형이 이루어졌다 한들, 각 세력 간에는 갈등이 자연히 일어나며 그 와중에 균형추가 이리저리 오감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힘과 명분이 어느 한 곳으로 쏠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다. 셋으로 갈라진 머리가 해답을 보지 못할 때 결단을 내린다.
대략 15년 동안 이홍위가 맡아 온 직분이었다.
언제는 즐겁기도 하고, 언제는 지루하기도 하지만, 확실히 항상 부담되는 직분이기도 하였다.
임금은 그러한 부담을 공부로 풀었다.
경연을 열어 ‘맹자(孟子)’나 ‘강목(綱目)’, ‘자본(Das Kapital)’ 등 성현들의 말씀을 강독하는 시간을 즐겼고, 트로츠키를 불러 이런저런 사안을 놓고 토론하기를 즐겼다.
…허나 그 외의 인간적 교분은 즐기지 않았다.
이홍위 자신은 프로이트를 조금 훑고, 인간관계에 대한 제 거부감이 트라우마에서 오는 것이리라 짐작하였다.
수양과 안평의 배신, 그리고 그로 인한 고초가 그의 가슴속에 들어앉은 인간 불신에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하였다. 어릴 적 생각하고 바라던 독재적 권력 또한 그 때문인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무려 대규모 내전이라는 60년 종사 이래 전무한 사건이 터졌으니 그를 수습하는 데는 10년이 넘게 걸려도 모자라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반가(班家)가 역적에 가담한 것으로 찍혀 각지에 쥐 죽은 듯 틀어박힌 상황이다.
그런 혼란스러운 정국을 수습하는 데 주축이 될 그 자신이 흔들려서는 아니되었다.
평란(平亂)의 공신은 곧 후대의 권신이니. 신숙주든, 박팽년이든, 혹여나 왕권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의심 속에서 예의주시하였고, 원산의 내정 개입에 관하여 적정선을 유지하는 것도 그의 일이었다.
그런 일만 10여 년 만지작거리다 보면 사람이 곧 장기 말이나 경쟁자 둘 중 하나로만 보이는 순간이 온다. 이홍위는 그 순간이 조금 어렸을 때 도래했을 뿐이다.
허나, 이제 왕권을 위협할 이 없다.
정국은 안정하여 정난이나 반란을 걱정할 일이 없다.
그저 가끔씩 헛도는 회전축을 교체하고 삐걱이는 관절에 기름칠하듯, 조선이라는 기계 장치는 가끔의 수리와 점검이면 훌륭히 돌아갈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
김숙자의 배향 논쟁과 이단 논쟁을 정리한 뒤, 조용해진 근정전.
“…이전의 논의들은 잊으시오. 내 경들과 이야기할 바가 있소.”
이홍위는 고민 끝에 입을 연다. 말투는 하오하며 조신들을 높여 부른다.
“국혼을 논의할 때가 된 것 같소.”
주상이 태어난 지 스물일곱 해가 넘게 지나고, 드디어 나라에 들려온 희소식이었다.
* * *
건국 이래 종친부는 나라의 큰 중심 중 하나였다.
허나 태종대왕대에 이르러 그 세가 크게 죽었고, 마침내 10여년 전의 반란에 의하여 그 영향력이 지리멸렬해졌다.
많은 종친들이 안평에게, 또는 수양에게 가담하여 싸웠다. 전자는 대부분 수양의 손에 의해 참살당했고, 양녕대군 등 나머지는 난이 평정된 뒤에 하나씩 죽어 나갔다.
종친 자체의 인원수가 급감하였고, 세종대왕대의 왕자 중 살아남은 이보다 죽은 이가 더 많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그나마 살아남은 이들은 금성의 편을 들거나 한양에서 겨우 사태를 관망하던 이들뿐.
“전하께옵서 국혼을 결심하시다니 이 어찌 경사가 아니겠는가?”
“그렇습니다! 전하께서 왕통(王統)을 끊으시고 공화정을 세우려 한다는 헛소문 또한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습니까?”
…물론 이홍위 본인에게 그런 의도 또한 없지 않았으니 돌았던 소문이겠으나, 아무튼 일이 좋게 돌아간 판에 그를 지적하여 좋을 것 없으니 다들 기뻐할 뿐이었다.
“금성대군께옵서도 이제 주상께서 직접 서울로 불러들이시니 이제야 우리 종친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역적이되 역적이 아닌 애매한 위치로 살아 있던 금성대군도 이제 상경에 대한 금제가 풀려 거의 사면되다시피 하였다.
이징옥이나 김종서 등 전란의 핵심에 서 있었다 할 만한 인사들도 사면되어 가는 추세였다.
“이는 우리 종친부에 대해 주상 전하께옵서도 신경을 써 주시겠다는 말이 아니오?”
“…드디어, 숨만 붙어서 조용히 살아가던 나날이 끝나겠구려, 흑.”
이러한 기대감은 옛 금성대군 일파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원산이 이리 변하였다는 말인가? 상전벽해가 한낱 옛말이 아니구나.”
“예, 나으리. 원산 인구가 수십 만이 된 지도 꽤나 되었습니다.”
수많은 주택들, 별장들, 공장들, 정원들.
고작 속현에 불과하던 원산이, 이징옥이 살아생전에 어느 나라의 왕도보다도 번성하는 어엿한 소련의 도읍이 되었다.
오랜만에 한양 땅을 밟기 위하여 머무르던 영천에서 경주로, 경주에서 다시 원산으로 왔다.
완공되었다던 경원선을 구경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배를 타고 철도를 타서 고작 이틀만에 상경한다니. 허, 무슨 패관(稗官)에 나올 법한 얘기 같구나….”
이 변화와 힘에 취하여 뭇 선비들이 하나둘씩 전향하였다.
지금은 작고하여 문녕공(文寧公)이 되었다지만, 해동 이학의 정통을 잇는다던 김숙자는 열렬한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자신이 소작 부리던 땅을 협동조합에 붙이고 농업공장에 팔아 경제적으로 살아남은 이들은 많았다. 당장 그 또한 양산 협동조합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죄인 된 몸으로서 담장 밖을 쳐다도 보지 않고 칩거하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꼴을 알지 못하여 그저 뭇 사류의 전향을 배반이라 여기고만 있었다.
허나 눈앞에서 웬 쇳덩이가 바다를 가르며 땅을 내달린다면 어찌 눈이 뒤집어지지 않을까?
벽돌과 시멘트를 섞어 번듯하게 지어진 원산역에서 기차에 오른 이징옥은, 곧 천지가 유리 바깥으로 길게 늘어나는 풍경을 보며 다시금 전율하였다.
찰나의 장난처럼 산과 들과 고을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가 알던 세상 또한 그렇게 사라진다.
이징옥은 그제야 한양의 모습이 얼마나 달라졌을까를 생각하게 되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