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56
“분명 아까 박정남 동지께서 이야기하기로는 이번에 국빈(國賓)을 수행하는 중책을 맡았었다 하였소. 맞소?”
“그저 운 좋게 말레어를 조금 할 줄 알아 맡은 일일 뿐입니다.”
“그 또한 그대의 실력을 인정받아 맡게 된 직책이니 스스로를 낮출 필요 없소. 그대에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구려. 여기, 고기 한 점 들겠소?”
“아, 감사합니다.”
그가 옆에 있던 식탁에서 몸소 스테이크를 썰어 내게 넘겨주니 나는 황송하게 입에 넣었다. 부드럽고 기름진 맛이 잘 구워진 소고기인 듯했다. 약간 맛이 다른 것은 변질되어서거나 숙성되어서인 듯했다. 아니면 동아프리카 근방의 품종에서 나는 독특한 풍미일지도.
“맛이 훌륭하군요. 본토에서도 귀한 쇠고기를 여기서 이리 먹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이는 받아 온 것이 아니라 이징옥 동지께서 직접 사냥하신 물건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소총 사격법을 익히신다며 휘하 장교들을 데리고 사냥을 나가시는데 백발백중이라 참으로 장관이랍니다! 내일 선생을 초대해도 괜찮겠습니까?”
여기 소가 살 리가 없는데.
“…혹시 이 고기의 종류를 물어볼 수 있겠습니까?”
나는 답을 알면서도 물어봤다.
이징옥은 이아구가 추켜세우니 쑥스러운 듯 그를 말리면서도, 한껏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름도 생소한 동물이던데 소련에서 준 사전을 보고 나서야 겨우 종을 알았소.
아마, 듀공이라 하더군.”
맙소사.
바빌로프 선생님께 속으로 끝없는 사죄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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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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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남양항로 1만 리 (6)
내가 방금 입에 넣으며 훌륭한 맛이 난다 극찬하던 것이 바빌로프 선생님께서 애정을 가득 담아 언급하신 “커다랗고, 굼뜨고, 평화로운 생물들”이었다. 어쩐지 조선반도에서 이 머나먼 섬까지 운송한 것 치고는 육고기가 말도 안 되게 신선하고 질이 좋았더라는 생각이 뒤늦게야 들었다.
독자 제현들께서도 이때 내가 느꼈을 감정을 알아 두시기를 바란다. 그때 내가 그 고기를 씹어 넘기기를 마치 인육을 가지고 그러하듯 힘들어했으며, 나의 마음은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를 듯한 공황 상태였음을.
“물론 몸집이 커다란 놈들이니 머리를 맞지 않는다면 소총으로 단번에 죽지는 않소. 머리를 빗나가 살아남은 놈들은 맞은 직후부터 움찔거리며 수면 아래로 도망치는데, 그 피 흘리며 도망가는 궤적을 보고서 위치를 추론하여 다시 작살 총으로 쏜다오.”
“그때도 이징옥 동지의 총은 빗나가는 법이 없습니다! 대부분은 처음에 머리를 맞아 쓰러뜨릴 정도지요. 그 이후에 다시 작살 총으로 쏘실 때도 항상 들어맞으니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붙잡힙니다! 작살에 연결된 끈을 잡아당겨 끌어 올리면 그게 그날 저녁의 특식이지요!”
흥이 난 이징옥과 이아구가 자세하게 묘사할수록 입안에 있는 ‘그것’을 씹기가 점점 힘들어져 간다. 눈앞에 바빌로프 선생님의 영상과 함께 그분의 말씀들이 스쳐 지나간다. “위니? 자네는 참 성실한 학생이야.”, “자네가 이번에도 내 부탁을 훌륭하게 들어주리라 믿네.” 등등. 허나 어리석은 제자는 스승의 염려 위에서 미식을 즐겼다.
나는 선생님께 꺼낼 반성과 변명의 말들을 수백 마디 정도 생각하다가 두 사람의 말을 순간 놓치고 말았다. 수상한 육고기를 덥석 받아먹고 맛을 먼저 언급해 버린 것이 첫 번째 실수였다면, 이때의 부주의가 나의 두 번째 중대한 실수였다.
“…그래서 그때 그놈이 얼마나 드세게 버티던지. 아, 이렇게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보여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내일의 사냥에 한 자리 끼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그렇기야 하군. 이리 재미있게 묘사해 놓고 초대하지 않는다면 그 무슨 고역이겠소?”
“저 또한 참석할 수 있겠습니까?”
“선장께서도 물론 와 주시면 좋지 않겠습니까? 이징옥 동지와 제가 평소에 쓰던 여분의 작살 총이 있으니 박정남 동지께 그거라도 빌려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저는 일발 명중이 힘들 것이라 보시는군요? 이래 봬도 원산의 민간 선원들도 모두 사격 훈련을 받습니다. 평소에 바닷새를 잡는 것이 취미인지라 제 실력도 만만찮을 겁니다.”
“그게 아니라 이징옥 동지의 솜씨가 너무도 훌륭하여 그렇습니다. 범인(凡人)은 소총은커녕 작살 총으로조차 쏘아 맞추기도 힘들어할 터인데 전문 어부도 아니고 잠시 사용법만 익히신 이징옥 동지께서 놈들을 쏘는 족족 맞추시지 않덥니까?
아마 이징옥 동지께서 잡은 개체 수만 수십에서 수백 마리 정도는 될 듯합니다!”
수십에서… 수백 마리를, 저 사람 혼자서 잡았다라.
이 근방 듀공들의 씨가 마르기에 너무도 충분한 숫자가 아닌가?
듀공이라는 생명체의 형태와 생활 양태를 설명하면서 내가 여러분께 미처 설명해 드리지 못한 부분이 있다. 바로 그들의 수명과 번식의 양상이다.
듀공은 아주 수명이 긴 동물 중 하나로서 평균 70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가니, 한날한시에 함께 태어난 인간 아이와 같이 나이 들어 가다가 동시에 늙어 죽는 일 또한 가능한 몇 안 되는 종이다.
이들의 성적인 성숙기 역시 인간과 유사하게 분포되어 있는데, 태어나고 약 8년에서 18년 정도가 지나면 번식 가능한 나이대가 된다. 아이를 가질 정도로 성숙한 수컷 개체들은 엄니가 길어지니 그를 보고 암컷들은 짝짓기할 상대를 선택한다.
보통 2, 3년에서 7년에 한 번씩 새끼를 치며, 새끼는 한 번에 한 마리씩만 밴다. 그리고 아까 말했듯 이들이 충분히 성숙하려면 10년은 기다려야 한다. 아무리 자주 새끼를 치더라도 늙으면 생식 능력을 잃게 되니 그 수가 보통 많아야 대여섯을 넘지 못한다. 게다가 듀공은 새끼를 보살피는 데 그 공력을 많이 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제한이 많다.
물론 듀공은 다양한 지역에 걸쳐, 그것도 연안에서 생활하는 종이다 보니 알려진 역사 속에서만 수천 년 동안 인간에게 포획돼 왔다. 흔히 반은 사람에 반은 물고기인 존재, 인어 전설의 모태라고 지적되는 것도 듀공이다. 한두 마리 정도의 사냥은 큰 문제가 없을지 모른다.
“하루에 보통 한두 마리씩은 잡소. 한 놈만 잡더라도 그 무게가 수백 근은 너끈히 넘기니 나와 이아구 동지, 그리고 수하들을 먹이고도 충분히 남소. 여남은 고기는 수병들에게 나눠 주기도 하고 오늘처럼 손님이 왔을 때를 대비해 비축해 놓기도 하오.”
“요사이에는 킬로그램을 쓴답니다, 이징옥 동지. 써 버릇하셔야 입에 익지요.”
“크흠, 미안하오. 수백 킬로그램이라 하겠소.”
…1년에 한두 마리, 아니면 최소한 1달에 한두 마리 말이다.
“아… 아하하하!”
“역시 기대가 되시나 봅니다! 옆에 있는 소년은 혹시 조수입니까? 자네도 끼지 않겠나?”
“아, 저는 그….”
“부끄러워할 것 없네. 이름이 뭔가?”
“올리비에 르루아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바빌로프 선생님께서….”
“바빌로프 선생님께서 맡기신 일이 있어 사냥에 참여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번 시간이 가능할지 살펴보고 다시 말씀드릴 수 있을까요”
나는 올리비에가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게 말을 잘랐다. 이징옥 동지와 이아구 동지 두 분이 성심껏 초대를 보내왔는데 이를 거절한다면 무례가 된다. 게다가 내가 앞서 듀공의 고기를 맛보고 극찬했던지라 ‘바빌로프 선생께서 맡기신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언급했다가는 큰 망신이었다.
“아! 바빌로프 선생이라면, 그 전 연방 농업인민위원 바빌로프 동지 말이오?”
“예, 맞습니다. 그분이 맞으십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존함을 언급한 것이 어쩌면 역효과를 낳았는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지고 눈빛이 달라진 것이다. 특히 아까까지만 해도 담담히 듀공의 사냥 과정을 묘사하던 이징옥 동지가 저리 흥분하여 홍조를 띤 것은 의외였다.
“내 그분의 존함을 듣고도 한 번도 만나 뵙지 못한 것이 큰 한이었소. 선비로서 아조의 백성들의 주린 배를 채우고 그들을 애정으로 먹인 이에 대하여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겠소?
실로 바빌로프 동지께서는 백곡(百穀)을 심어 백성의 먹을 것으로 바꾸고 숱한 생령을 살렸으니 해동의 신농씨(神農氏)와 같소.”
“맞습니다! 저희 만주국에도 친히 오셔서 각지의 농장들을 살피시고 기후에 맞는 종자들을 추천하셨으니 그 덕에 숱한 냉해를 견디고 만주인들이 먹고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직접 바빌로프 선생님을 마주쳤던 경험을 상기하는 듯 이아구는 멀리를 바라보다가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린 뒤 물었다.
“제가 알기로는 원산에 박물학자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습니다. 모두 합해 봐야 수십 명을 넘지 않을 듯하군요.”
“그렇다면 박물학을 수학하실 때 바빌로프 동지께 학문을 사사한 적은 없으셨습니까?”
“있습니다. 사실, 바빌로프 선생님께서 직접 제게 박물학 전반을 가르치셨지요.”
“과연! 그렇다면 바빌로프 선생께 저희가 듀공의 표본을 선물해 드린다면 크게 기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비상사태였다.
나는 겨우 웃는 얼굴을 굳히고는, 목덜미를 타고 등줄기를 훑어 내려가는 식은 땀 줄기를 두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기만을 빌었다.
“좋은 생각이오, 이아구 동지. 정직하게 땅에 뿌리 박고 흙을 파먹던 백성들이 바빌로프 동지 덕에 잘살게 되었는데 선비로서 무엇 하나 보답해 드린 것이 없으니 항상 마음에 걸렸소. 이 기회에 동지께서 좋아하실 선물을 보내면 되겠구려.”
“조선에서는 결코 구할 수 없는 표본일 테니 분명 까무러치게 좋아하실 겁니다!”
좋아하실지는 모르겠으나 까무러치실 것은 확실했기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당신의 믿음직한 제자를 보내시어 듀공을 보호하라 하였는데 바로 그 제자로부터 산 채로 막 잡은 듀공이 단단히 박제되어 돌아온다면 선생님의 반응 또한 상당히 극적이리라.
허나, 그들의 기대감 어린 눈빛을 보고 나는 인제 초대의 거절은 그른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여기서 거절하면 저 두 사람은 물론이고 나의 소중한 은사님에 대한 실례이기도 하다. 나 일신의 세평이 나빠지는 바야 감당할 수 있더라도 스승의 이름을 더럽힐 수는 없는 법이다.
“…좋습니다. 내일 뵙지요.”
“다행입니다! 그러면 내일 아침에 사령부 뒤편의 해안에서 뵙시다! 하하하하!”
그렇게 세 사람을 떠나보내자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나는 바로 인근의 벤치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올리비에가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걱정… 않아도 된단다. 나는 충분히 멀쩡하단다.”
물론 구태여 언급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지만, 멀쩡한 사람은 스스로가 멀쩡하다고 주장할 필요가 없다. 누구도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에게 걱정에 찬 한마디를 건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때 스스로를 지탱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 자신이라도 내가 멀쩡하다고 믿어야만 했다.
그 뒤로 올리비에의 만류에도 불구, 나는 바람이라도 쐬어야겠다는 명목으로 연회장을 나섰다. 내가 더 즐기고 오라고 권했는데도 올리비에는 한사코 충직하게 내 뒤를 따랐다. 어쩌면 올리비에가 충직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한눈에 보기에도 초췌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그와 함께 궤도 마차를 타고 돌아오니 시계로는 오전 3시. 나는 디에고 가르시아의 시차에 맞게 손목시계를 자정으로 조정했다.
완연한 밤이 오자 세상은 지독하리만치 짙은 검은색이었고, 어둠 사이로 마치 이 바다의 얼어붙은 소금 알갱이들처럼 별과 달이 아련하게 빛났다. 당장 하늘을 혀로 핥으면 그 짭짤하고 씁쓸한 맛이 입안으로 배어 들어올 듯이.
일단 아직 별을 베어 물지도 않았는데 입안에 쓴맛이 감돌기는 했다.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그동안 먹은 기름진 음식을 소화한 나는 내가 삼킨 듀공의 고기와, 오랜 스승님의 마음씨 좋은 얼굴과, 그리고 마찬가지로 선의로 가득 차 있던 이징옥과 이아구를 상기시켰다.
“정말, 내일 나가실 생각이신가요, 교수님?”
“그래, 차라리 나가서 뭐든 해 보는 것이 내 신상에 이로울 듯하구나. 어떻게 말려 보든 뭘 이야기하든 일단 만나기라도 해 봐야지.”
일단은 최대한 낙관주의적으로 생각해 보려 하였다. 어쩌면 내일의 사냥 이전에 말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하필 내일 사냥은 두 사람이 허탕을 치는 것이다. 아무리 쏘다녀도 듀공이 보이질 않고, 나는 잠시 실망한 표정을 가장하다가 이징옥이 머쓱한 표정으로 사과를 하면 애써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이다.
그때 이아구 동지가 “요사이 듀공이 많이 보이지를 않는군요.”라고 말하면 내가 거기서 자연스레 “포획량이 급격히 늘어나면 개체 수 회복이 참 어려운 종이죠.”라는 식으로 답한다. 나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거기에 뭔가 깨달은 바가 있어 그 뒤로 이 일대에서 듀공 사냥을 제한하리라.
실로 완벽한 계획이었다. 매끄럽기도 하고. 두 사람의 자존심이나 나나 선생님의 정신 건강 어느 쪽도 해치지 않으면서 깔끔히 사태를 마무리할 몇 안 되는 길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훌륭한 계획에는 단 한 가지 사소한 문제점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하필 다음 날에 지난날까지 잘만 잡히던 듀공이 잡히지 않을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고 애써 세웠던 계획들, 섬세하게 꾸며진 대본들이 사상누각처럼 무너짐을 깨닫자 다시 나는 다소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비슷한 수많은 계획을 세웠으나 앞서 이야기한 것보다 현실성이 없거나, 지나치게 우연에 기대는 등의 문제가 컸다.
불행히도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내가 침대에 누운 채로 궁리에 빠져든 지 약 8시간이 지난 뒤였다는 것이다. 시간을 보니 아침 8시 13분이었고, 약속 시각은 9시였다.
나는 별수 없이 옆방에 누워 자고 있던 올리비에를 깨운 뒤, 마차 승강장을 향해 떠났다.
선로 위로 말이 투레질하고, 대변을 누느라 멈추고, 마차가 마구 흔들거리는 난리 속에서도, 나는 잘 잤다.
그 1시간이 내가 그날 제대로 잠이 든 마지막 시간이었다. 잠에서 깬 나의 앞에는 해맑게 웃는 이아구가 그 티 없는 미소에 맞지 않게 우악스러운 크기의 작살을 들고 서 있었다. 설레어서 잠도 자지 못한 거냐는 이아구의 놀림에 나는 군침을 삼켰다.
내가 걱정하는 스승님과 듀공의 문제가 기실 앞으로 닥쳐올 문제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정도로 사소했다는 사실을 아직 몰랐다. 그때 나는 얼마나 태평하고 안온했던가! 만나 보지도 못한 어느 한 마리 바다 동물의 삶 하나를 걱정하며 밤을 지새울 정도로, 얼마나 여유로웠던가!
그 뒤로 겪을 모험을 미리 알고만 있었다면, 나는 그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숙면을 취하려 했으리라. 그리고 물론 그 시도는 뒤에 펼쳐질 사건에 대한 두려움과 떨림으로 인하여 실패했으리라.
그 모험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쉬었다가 다음 장에서 계속하겠다.
우선 나는 듀공의 사냥에 나선다.
외전―남양항로 1만 리 (7)
궤도 마차의 승강장에 서 있던 이아구는 졸음을 졸던 나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어 깨운 뒤 명랑하게 외쳤다.
“일어나십시오, 동지! 혁명과 듀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올리비에는 무얼 하고 있나 보았더니 그 역시 나의 왼 어깨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이아구는 올리비에 역시 마저 일으킨 뒤에 우리를 약속 장소로 이끌었다.
이아구는 오늘의 아름답게 개인 하늘이 얼마나 낚시와 사냥에 적합한지, 새벽에 내린 스콜 덕분에 더위가 잠시 가셔서 얼마나 쾌적한지 등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다. 나 역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기분만 아니었으면 그의 푸른색으로 빛나는 미소에 함께 동조하여 옷음을 터뜨렸으리라.
“자, 여기입니다. 저기 모두가 기다리고 있군요.”
이아구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니 그곳에는 WRS 프리드리히 엥겔스 호의 선장 박정남 동지와 지난번에 만났던 1등 항해사 김민혁 동지, 이징옥 동지, 그리고 디에고 가르시아의 수병과 장교들로 보이는 이들이 두 명 모여 있었다.
거기에 우리 둘괴 이아구 동지를 합치면 총 여덟 명이었고 그들이 마련해 놓은 작살 총과 소총의 개수도 역시 각각 8정씩이었다. 이제 내가 저것들을 쥐고서 듀공을 좇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실감이 들자 새삼 착잡해졌다.
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곳은 디에고 가르시아의 내해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령부 건물의 뒤편, 그러니까 디에고 가르시아 바깥의 무한한 바다를 향해 있는 작달막한 잔교 위였다. 잔교는 야트막한 모래사장 위에 강철 말뚝을 박아 놓아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잔교 옆에는 역시나 하얗게 칠해진 보트가 잔잔한 파도에 따라 어린아이의 심장 박동처럼 평화로이 들썩이고 있었다. 그 위에 놓인 무시무시한 작살 총과 소총들, 그리고 옆에 선 험상궂은 이징옥만 빼놓는다면 그저 목가적인 풍경화 같았을 것이다.
“로밀리 동지, 르루아 동지! 이제 곧 사냥의 시간인데 준비되었습니까?”
박정남 동지가 쾌활하게 외치니 어색한 미소로 화답할 수밖에 없었다. “쑥스러워하시긴!”이라며 웃음을 터뜨리는 선장의 태도에 나는 더더욱 수그러들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달리 해석하였는지 이징옥 동지가 다가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한다.
“걱정하지 마시오. 그대가 어디까지나 책상 위에서 일하는 학자이며 우리처럼 평소 몸을 단련하지 않는 직분에 종사함은 모두들 참작하고 있소. 그대가 제아무리 사냥에 미숙하더라도 이 중에 그대를 비웃거나 농담거리 삼을 만한 소인은 결코 없을 것이오.”
나는 그의 배려에 몹시 감사하였다. 물론 어릴 적부터 나는 다소 집착적으로 내게 귀족적인 취미를 붙여 주려 하시던 아버지에게 여우 사냥과 승마를 배웠다. 그렇기에 내가 사냥에 미숙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으나, 적어도 이 자리에서 적당히 서툰 척만 하면 이 손으로 피를 묻힐 일은 없는 것이다.
나와 올리비에가 보트의 고물에 자리를 잡자 이징옥과 이아구, 선장 역시 우리 곁에 앉았다. 나머지는 배의 뒷전에 앉았고 조타수가 키를 잡자 우리는 노를 움직였다. 잔교의 강철 말뚝에 매여 있던 밧줄이 스륵 풀리며 작다란 보트는 8명의 생목숨, 8정의 소총과 작살 총을 나른 채 바다로 온전히 그 몸을 내맡겼다.
우리는 한참 동안 지구의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듯 천천히 부유하였다. 노를 저어도 무한의 가장자리에서 그 중심을 향해 헤엄치는 것처럼 바다는 끝이 나지 않았다. 나는 잠시 우리가 살육이 아니라 이 드넓음 속에서 인간 존재의 사소함과 그에 따라 갖춰야 할 겸손함을 배우기 위한 여정을 위해 떠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넓은 하늘, 그리고 다시 그 상을 그대로 반사해 내는 마찬가지로 드넓은 바다. 어느 프랑스의 시인이 말했듯 진정 바다는 무한이었다. 그것도 살아 있는 무한이었다.
하늘과 함께 몸을 섞으려 손짓하는 바다의 움직임은 하얀 포말이 되어 부서졌고, 그 흐름에 따라서 무수한 고기 떼가 동쪽으로, 서쪽으로 몰려다녔다.
마치 조용한 명상실에 있는 것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순간 툰 페락과 함께 참여했던, 그 고요한 중얼거림으로 가득하던 마극종의 기도회를 떠올렸다. 그런 상상들이 나로 하여금 앞으로 이어질 유혈극에 대한 고통스러운 전망을 잊어버리도록 만들어 주었다.
“저기, 듀공이다!”
물론 그 아름다운 침묵은 희열에 찬 어느 선원의 외침으로 마침표가 찍혔다. 선원이 손짓하는 방향은 태양과 디에고 가르시아의 위치를 비교해 보았을 때 아마 서북향, 한 50미터쯤 떨어져 있을까 싶은 암초 위로 듀공 한 마리가 평화로이 누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그 순진한 얼굴! 그 행복한 게으름! 나는 듀공의 독특하게 생긴 아가리가 귀엽게 흐느적거리는 것을 바라보며 죄악감을 느꼈다. 아마 녀석은 꿈속에서 맛 좋은 해초나 작은 어류들을 마음껏 포식하는 즐거운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평화는 곧 우리에 의해 무참히 깨질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초심자에게 첫 발을 맡기는 것이 좋겠지. 르루아 동지?”
“아, 넵! 이아구 동지!”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기, 저 듀공이 보이십니까? 커다랗고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는 아이 말입니다.”
“아… 네, 보입니다.”
“저쪽을 향해 작살 총을 한번 쏴 보십시오. 당신에게 첫 번째 사격의 영광을 드려야겠습니다.”
올리비에는 불안하게 두리번거리다 마치 둥지에서 떨어진 아기 새처럼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기운 내게!”라고 큰 소리로 외쳤고, 귀엣말로는 “적당히만 놓쳐 주게.”라고 말했다.
올리비에는 맨손으로 해적을 때려잡은 용맹한 소년답지 않게 거의 반쯤 울먹이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의 떨리는 손이 가늠쇠와 가늠자의 위치를 맞추었다. 그래도 소련의 선원으로서, 예비 수병으로서 훈련받은 그의 자세는 얼추 그럴듯했다.
곧 그는 “으앗!” 하고 소리를 내지르며 방아쇠를 당겼고, 당연히 작살은 듀공이 앉은 암초로부터 오른쪽으로 한참을 빗나가서 수면을 때렸다. 그 소리에 놀란 듀공이 흠칫 낮잠에서 깨어 빠르게 물속으로 잠수했다. 첫 표적을 완연히 놓치게 되자 나머지 일행들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거, 배로 돌아가면 당장 선원들 사격 훈련에 힘써야겠군요!”
“하하하하핫!”
“하, 하하하….”
나를 위해 체면을 구겨 준 올리비에에게 나는 눈짓으로 감사 인사를 보냈다. 그는 긴장감으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나의 눈인사를 보고 나서야 마음이 안정된 듯 한숨을 몰아쉬었다.
다시 두번째 듀공을 마주친 것은 그 뒤로 북쪽을 향해 방향을 틀어 5분 정도 더 항해한 이후였다. 첫째처럼 암초 위에서 배를 까뒤집고 몸을 말리며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기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동지가 한번 쏴 보시겠소? 작살 총 쏘는 법은 대강 알고 계시오?”
“아… 혹시 가르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야 나의 즐거움이니 사양치 마시오.”
나는 이징옥 동지에게 작살 총의 사용법을 부러 물어본 뒤 시간을 끌었다. 그는 성심성의껏 내게 공기 충전식 작살 총의 작동 원리와 그 운용에 있어서 소소하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을 알려 주었다. 그가 내 양손을 잡고 조준을 도우니 나는 심히 긴장하였다.
이징옥 동지가 너무 친절하게, ‘사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위해서 정말 훌륭하게 듀공 사냥에 대해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닌가? 그의 지도가 너무도 섬세한 나머지 이제 내가 바보가 아니라면 방아쇠만 당겨도 듀공을 맞출 수 있을 경지에 이르렀다.
게다가 시간을 끄는 동안 듀공과의 거리는 70미터 즈음에서 이제 30미터, 20미터까지 가까워지고 말았다. 이징옥이 나의 어깨를 잡고 자세를 교정해 주니 이미 나는 고정 포탑이요, 이징옥이 나의 조종자가 되어 있었다.
“자, 이제 장전하고 당기시면 되오.”
“뭐, 뭘 말입니까?”
“당연히 방아쇠가 아니겠소? 오늘 잡은 듀공은 내 특별히 동지의 이름으로 박제사에게 맡겨 원산으로 돌아가는 배편에 부치리다.”
제발, 제발, 제발 맞지 말아라… 무슨 벼락이라도 떨어져서 나의 시야를 가리고 내 총이 향한 방향을 바꿔 놓기를….
그리고 나의 염원이 이뤄졌다. 비록 그 단초가 벼락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저, 저기 배가 보입니다!”
“뭐라고?”
그렇게 나의 어깨를 잡고 있던 이징옥이 몸을 틀자 역시 적확하게 듀공을 향하고 있던 나의 몸 역시 자연스레 정자세를 벗어났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방아쇠를 당겨 그 옆의 암초를 노렸다. 너무 멀어서 듀공을 깨우지 못할 정도는 아니고, 또 너무 가까워서 듀공을 다치게 할 정도도 아니도록.
나의 의도는 적중하여 작살이 암초를 때리는 깡, 소리와 함께 놀란 듀공이 몸을 부르르 떨다 저 멀리 바다로 헤엄쳐 갔다. 사격 실력을 키워 준 아버지께 감사를.
그렇게 내가 안도한 채, 고개를 돌려 이징옥에게 참 아쉽다는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려 할 때였다.
이징옥의 표정이 어딘지 이상했다.
다른 이들 역시 내가 쏜 총이 듀공을 맞췄나 못 맞췄나 따위는 신경 쓸 생각조차 못하고 엉뚱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굳은 표정들이었기에 나 역시 급변한 분위기를 직감하고 그들과 시선의 방향을 함께했다.
“으아아아! #@$*(%! 으아아아아!”
“아으아아악! %$#@! %$#!!!”
사람의 것 같지 않은 비명. 정확히는 사람이기를 포기해 갈 정도로 절박하던 자가 외치는 비명이 나의 귀를 서늘하게 찔렀다.
‘그것’을 처음 목격한 선원은 ‘배’라고 했지만, 그것은 보트나 뗏목이라 부르기도 부끄러운 무언가였다.
널빤지 몇 개를 조잡하게 이어 만든 바다 위의 폐허에, 우리가 탄 보트만큼 작은 잔해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서로 달라붙어 처절하게 목숨을 구하고 있었다. 수면 아래 저 깊은 곳의 차가운 죽음으로 빠져들기를 거부하기 위해서.
“구, 구조하게! 저들에게 로프를 던져!”
이징옥은 지휘관다운 위엄으로 즉시 선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발 빠르게 그 뗏목 비슷한 무언가에 로프를 던졌다. 생존자들은 그를 자신들의 비참한 부표에 급히 묶었다. 그 뒤로 우리는 온 힘을 다해 노를 저어 그들을 디에고 가르시아로 이끌었다.
30분이 넘는 분투 끝에, 우리는 해안에 닿을 수 있었다.
세어 보니 약 마흔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뭍에 닿자마자 커다란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 속의 슬픔과 원한의 깊이는 저 인도양의 푸르름보다도 깊었다.
나는 목덜미에 소름이 돋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 * *
“난파자들은 모두 비어 있는 관사들에 나누어 수용했습니다. 대부분 저체온증과 영양실조가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송장으로 만났을 겁니다.”
“수고했네, 주민진 동지.”
보트에 탔던 8명의 인원 그대로 인도양 사령관에 집무실에 모여들어 회의에 참가했다. 그 중의 이징옥의 부관으로 보이던 여성이 경례와 함께 보고를 마치자 이징옥은 머리를 감싸 쥐며 간단히 답했다.
나 역시 난파자들을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넝마와 유목(流木) 사이에서 하얗게 불어 경직된 시체로 마주쳤을 경우를 상상하자 얼굴의 핏기가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