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62
지금 왕통을 이을 원자(元子) 생산이 급한데, 내려져야 할 ‘성은’이 저런 게 아닐 텐데, 대체 이 어린 부부는 지금껏 동침하러 와서 무슨 헛짓거리만 하고 간다.
바깥에서 이 꼴을 보고 있는 내관과 궁녀들은 대체 군왕과 왕비가 뭔 작당 모의를 하는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른다.
그리고 젊은 남녀 두 사람은 그런 걱정 따위 사뿐히 무시한 채 자신들의 새로운 저작에 대해 열띤 토론을 나눌 뿐이다.
그렇게 밤이 깊어 간다.
그 많던 사회주의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5)
한때 젊은 신진 사류였던 김종직의 턱에도 이제는 수염이 길게 뻗었고, 귀 위로는 점차 재와 서리가 앉아 가고 있다. 관복과 사모(紗帽)가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던 시절은 이제 상상할 수 없다.
그런 그가 야심한 밤, 내관에 이끌려 경복궁으로 향하니 어느 수문장이 막아서겠는가? 필시 전하의 부르심이 있었으리라 짐작하고 비켜들 섰다.
복잡하게 얽힌 조선식, 원산식 건물들 사이 골목골목을 지나니 이곳은 또 평소 김종직이 오던 구역이 아닌지라 몇 번을 헤맸다. 아마 내관의 안내가 아니었더라면 홀로 거대한 궁에서 길을 잃었으리라.
김종직도 출사한 지 10년 정도이니 이제야 중견 인사가 될 나이다.
허나 전란 이후 물갈이 된 조정에서는 막 불혹을 넘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원로 대신의 역할을 맡아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지금 이렇게 주상 전하의 명을 받잡아 옛 집현전 자리에 불려 오는 것처럼.
금상(今上)의 개인적인 연구 공간이자 다양한 학술회의들이 열리는 곳인지라, 전란에 불탄 집현전과의 연속성이 있다 하여 제신들 역시 건설에 동의한 5층짜리 벽돌 건물.
헌데 전하의 서재가 점차 커지면서, 이 도서관 겸 연구 동이 증축에 증축을 거쳐 벽돌로 된 괴물처럼 경복궁의 여유 공간을 파먹어 들어가고 있다.
특히 전하께옵서 연회를 즐기시지 않는지라 이미 경회루의 연못 일부가 메워진 뒤 저 도서관에 침범당해 있었다.
무시무시한 고층 건물에 일조권을 침해당하니, 경회루에는 이제 햇빛도 들지 않는다.
미래주의적 조각을 새겨 넣은 창호를 열자 1층 회의실에 마련된 의자에 익숙한 얼굴들이 앉아 있다.
“박팽년 동지, 신숙주 동지?”
“점필재(佔畢齋), 자네도 왔는가?”
세 파벌의 머리가 모두 이곳에 모였다? 대체 전하께서 무슨….
“향민청 제조 김종직은 들라 하십니다.”
그러나 의문을 가질 새도 없었다. 세 사람이 도착하자마자 곧 내관들이 나머지 두 사람은 바깥에 앉혀 놓고 김종직만을 불렀다.
의아한 마음을 품고 조심스레 열리는 문 너머로 들어가 보니, 집무실 책상 너머로 앉아 계신 분은 역시 주상 전하다.
헌데 그 옆으로는 이상한 거울 비스무리한 것과 렌즈 달린 기계, 한편에 함께 앉은 왕비 전하와 다른 양장(洋裝)을 걸친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것이 보인다.
뭔가 싶어 멀뚱히 앉아 있는데, 전하께서 문득 질문해 오셨다.
“지금은 몇 시인가?”
급히 시계를 확인하나 자신을 향한 질문이 아니다.
“9시 47분입니다.”
“좋네. 오후 9시 47분, 내 향민청 제조 김종직에 대한 면접을 진행하겠다.”
재빨리 종이들이 넘어가고 속기사로 보이는 이의 손이 타자기 위에서 널뛰기 시작한다. 이윽고 왕비 전하의 입이 움직인다.
“…본 면접은 총 3회에 걸쳐 진행되며….”
“저, 전하, 제가 미처 듣지를 못하여….”
“…면접 내용은 피면접자의 개인 정보들이 소거… 되지는 않지만, 순수 연구 목적을 위해서만 활용될 것이오.”
“예?”
“동의하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왕비 전하….”
“이보시게, 제조 영감.”
이홍위가 눈에 힘을 주고 말한다.
“동의, 못 하겠나?”
“…무엇이든 말씀만 하소서.”
“중전, 동의하였다 표기하시오.”
연구 윤리라는 사소한 문제는 이렇듯 쉬이 해결되었다.
“속기사는 적으라. 양력 1472년 7월 13일, 오후 9시 47… 8분, 장소는 경복궁 홍문관, 면접자 이홍위, 피면접자 김종직.”
“저, 전하, 피휘는?”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모두 원산의 학회로 발송할 것이다.”
이름 모를 어느 속기사의 손이 바쁘게 돌아가며 툭탁툭탁 타자기를 두드린다.
―‘근대적 정당 제도와 그에 대응하는 아시아적 관료들의 대응 양식 – 심층 면접 결과를 중심으로.
면접 1회차’
* * *
거의 20년이 되어 가도록 그의 지위는 한결같았다.
향민청 부제조.
아, 이제 ‘부’는 떼고 그냥 제조이기는 하다. 영의정이 겸직하던 제조 직위가 도제조로 바뀌면서 김종직의 직위도 이름만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제조 대감’이라는 호칭도 신물이 나서 의정부 참찬직이나 한번 찔러볼까 하였더니,
“그대의 공로가 크고 또 향민청의 중요성이 날로 더해 가는바, 향민청 제조의 품계를 정2품으로 올리겠다.”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채셨는지 주상 전하께옵서는 인자한 미소로서 화답하셨다.
향민청에 뼈를 묻으라고.
이 나라에 당상관이라고는 100명 정도밖에 없으며, 게다가 이제 대신파의 개혁으로 분야별 전문화가 이뤄진지라 이전처럼 공조에서 형조로, 다시 호조로 마구 옮겨 다니는 일도 어려웠다.
그러니 검증된 인사들을 검증된 분야에 올려다 계속 붙박아 놓는 것이 근래 조선 고위 관료의 운용 방식이었다.
가자(加資)를 받고 이리저리 직위를 옮겨 다니더라도, 주상께옵서는 고만고만한 블레어 외의 다른 정승을 두어 왕권을 제약할 생각이 없으시니 삼정승의 자리는 이제 없는 거나 다름이 없고.
신숙주가 좌의정으로 올라갈 듯 보였으나 대신 소련 연방 인민 위원 자리를 꿰차면서 그 또한 흐지부지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더 올라갈 데도, 옮겨 갈 데도 없는 육판서의 자리는 여전히 복벽 때의 그 사람들이 채우고 있었다. 아마 그들이 은퇴하거나 죽지 않는 한 이 구도는 변치 않으리라.
즉, 20년째 대신급에서는 인사 적체가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김종직은 출사 때부터 영상 대감 블레어 동지의 최측근으로 들어와 곧바로 당상관 자리에 안착했으니만큼 그 정도가 더욱 심각했다.
거의 2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정치적 위상과 권위는 쌓여 가고 나름 한 파벌의 (실질적) 수장이라는 자부심도 생겼다.
마음씨 좋은 블레어 동지는 이제 은퇴하시고 이 김종직이가 영의정을 맡아도 되지 않을까 싶은 자신감도 붙었다. 더 높은 자리의 소임도 너끈히 해낼 관록과 지혜가 생겼다.
…는 것보다도 심각한 사실.
“제조 영감, 여기 오늘자 보고서입니다.”
“휴, 오늘은 양이 좀 적군요.”
“예! 그렇습니다! 오늘은 230장만 검토하면 됩니다!”
업무 폭탄.
분명 대신파의 개혁에 의해 충원되는 관료의 수는 늘었다. 전문성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관료의 수요가 폭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았다. 당장, 전국 곳곳에 철도가 깔리고 자원이 몇 배로 팽창하며 토지 소유권이 휙휙 이전되니 이전의 10배를 뽑아도 인력이 모자랄 것만 같다.
그 상황에서 향민청의 조직 체계도 문제였다.
곳곳에 흩어진 향민계와, 그 향민계가 세운 협동조합을 관리하는 것이 향민청이라는 관서의 직무다.
본래 평등한 ‘계’이던 무수한 향민계들 위에 상부 조직 하나를 얹어 놓고 관리하는 셈인데, 처음에는 향민계의 수나 협동조합의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았으니 괜찮았다.
하지만 농업공장들이 하나둘씩 협동조합 농장으로 대체되어 간다. 향민계 역시 급격히 전국으로 팽창하며 그 비중을 늘려 간다.
또한 해당 마을들에서 점차 수령의 권위는 빛을 잃고 향민계가 득세하다 보니 그 각각의 향민계에서 오는 업무마다 양이 폭증한다.
그렇다 보니 수백 곳의 농장들에서, 공동체에서 올라오는 보고와 분쟁과 요청과 토론 내용을 중앙으로 취합해 정리하고, 보고하고, 다시 그에 따른 대책과 반응을 준비하는 인원이 단 수십 명.
“정확히는 얼마나 되는가?”
“…서른두 명입니다.
”만일 모든 고을마다 향민계가 있다고 한다면 사람당 고을 열 개씩을 다스리는 게 아닌가?”
“맞습니다.”
“그러면 향민계의 총 인원은?”
“…420,783명입니다. 작월 기준입니다. 여기에 협동조합 농장에서 경작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한, 열 배는 넘을 것입니다.”
400만 명, 그렇다면 실상 나라의 절반이다.
“…그렇다면 그대가 정당 제도 도입 이후로 가장 걱정하는 바는?”
“정당 조직은 국가 관청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어햐 한다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럼, 향민계와 향민청은 어떻게 되는가?
* * *
처음에 박팽년은 신이 났다. 박팽년뿐 아니라 대신파의 모두가 그랬다.
“이보게들! 정당 설립이 결국 허가가 났다고 하지 않나?”
하위지가 희희낙락하며 이야기를 꺼내자, 박팽년과 술값 내기 블랙잭을 하고 있던 성삼문, 이개까지 모두가 기뻐하였다.
물론 소련처럼 무슨 의회를 만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공무원을 선출직으로 뽑는 일도 아직 없다.
허나 드디어 ‘당’이라는 조직이 공식적으로 서서 공론을 형성하고 세력을 키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드디어 볕들 날이 오기야 하는구만 그래!”
“일단 민련 지방 지부들에 전부 연락 돌리게나. 당장 당원 신청서나 작성해 놓으라고 말이야!”
‘이긴다! 이길 수밖에 없다!’
대신파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물론 이념적으로는 다소 부족한 감이 있고 의제 역시 뚜렷이 제시하는 바는 없다.
하지만 순수하게 세력 싸움으로 접어든다면 저 인민주의나 소련식 사회주의에 몰두하는 이들의 머릿수가 얼마나 되겠는가?
“어르신, 작금에 미혹된 이야기들이 저자를 떠돌고 무부무군한 이들이 부끄러움을 잃어 갑니다. 근세(近勢)에 저희를 밀어주셔야 정학(正學)이 바로 서지 않겠습니까?”
“그대들 역시 레닌인가 뭔가를 인용하는 바는 저들과 똑같지 않은가?”
“아닙니다. 이 또한 아조를 지킨다는 마음으로 살을 주고 뼈를 취하듯 약간의 변화를 주어 종사의 안전을 얻어 내는 일일 뿐입니다!”
“흐음… 알겠네. 내 자네들에게 투자하지.”
결국 쪽수로 다툰다면 지방의 보수주의자들을 상당 부분 흡수한 민련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리라.
더하여 김종서 일파가 사면되고 나니, 그 숨어 있던 각지의 유지들 또한 서서히 지역 사회에 대해 다시금 영향력을 떨치기 시작한다. 그들에게는 ‘그나마’ 말이 통하는 상대들이 이 나라 조정에 대신파밖에 없었으니 그들이 새로 소속될 정당 또한 뻔했다.
물론 조선에서 선거를 할 것도 아니다. 선출직 공무원을 뽑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각 파벌 지지자의 숫자가 공식화되어 모두가 알게 된다면, 누가 조용했던 주류 세력인지 똑똑히 보여 줄 수 있으리라.
“어르신, 저희가 또 찾아뵙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민족자주연맹으로 입당을 해 주셨으면 하여….”
“입당이라면 이미 하였네.”
“아, 훌륭하십니다! 한번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마음껏 보게.”
그렇게 대신파 4인방은 기대감에 입당 신청서를 펼쳤고, 그 위에는….
―‘입당하고자 하는 정당: 인민당’
“…어르신, 저희 정당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는 모르네. 인민… 뭐시기 아니었나?”
“아닙니다. 그쪽은 인민주의자들로 협동조합을….”
“협동조합이 그, 선비들이 모여 향촌에서 대동 사회를 이루려 하는 계가 아닌가?”
…뭔가 이상하다.
그제야 네 사람은 전국 각지의 조직 계통들을 살펴보고 그 활동 내역과 인원의 면면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한다.
“그대들 혹시 알고 계시오? 아조(我朝)가 수천 년 전부터 아틀란티스나 레무리아, 핀란드 같은 대제국들과 싸워온 위대한 나라의 후예라오!”
“아, 아니 이럴 수가! 한때 중국 전체가 우리 조선인의 강역이었다니!”
“마땅히 되찾아야 하오!”
뭔가 이상한 놈들부터,
“사회주의 같은 흉참한 말을 꺼내는 놈들 때문에 나라가 도탄에 빠졌도다! 모조리 그 목을 베고 나라를 구하자!”
“우와아아아아아!”
“지금부터 트로츠키와 신숙주를 향하여 ‘2분간 증오’의 시간을 가져 보겠소!”
뭔가 언제 터질지 모르겠는 반동들,
“협동조합… 향민계…?”
“그게 뭔지는 잘 몰라도 이 동리의 선비들은 모두 가입했다 하지 않나? 선비들끼리의 계 모임 비슷한 것 같으네.”
잘 모르고, 관심도 없는 양반들. 사는 지역의 대부분이 향민계에 가입하니 따라서 가입한 이들.
…생각보다 개판이다.
이 정신 나간 반동들은 나중에 무슨 짓을 할까? 만약 테러라도 벌인다면 우리가 책임져야 하나? 어쩌지?
향민계에 가입해 있는 양반들은 정당들이 공식화되면 민족자주연맹에 가입할까? 아니면 인민당에 가입할까?
그리고 뭔가 ‘우리 민족 참역사’ 같은 이상한 책을 써 와서 자기들끼리 돌려 보는 저놈들은 정체가 뭐지? 우리가 저런 걸 키웠던가?
“한양이나 도시권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원래 반수 이상이 향민계에 가입한다고 하더군.”
“그 수가 얼마쯤 될 것 같은가?”
“한… 300만?”
“젠장.”
머릿속에서 백만 대군을 이끌고 자신들을 도륙하는 김종직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압도하기는커녕 숫자만으로도 압사당하기 딱 좋을 규모.
그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 * *
“전하께옵서도 잘 아시겠사오나 저희는 공식적으로 아예 조직이 없는 유일한 계파입니다.”
그렇다. 조선 각지에 흩어진 소비에트들은 공식적인 행정 조직이 아니라 원산인들이 공장을 짓고 운영하면서 각각의 공장마다 조직해 놓은 것들이니까.
신숙주 등이 그러한 세력 기반을 이어받아 활용하고 있을 뿐, 전국적으로 체계화된 조직이라 보기는 어렵다.
“허나 지역 콤소몰이 있지 않습니까?”
“왕비 전하, 그 말씀도 옳사오나 그는 보편된 대중 조직이 아니지 않습니까? 또한 거기서 비롯하는 경제적, 정치적 기반 역시 초라하니 콤소몰을 가지고 저희가 제대로 된 조직을 이루었다 보기는 어렵습니다.”
윤순비가 묻자 신숙주는 당연하다는 듯 답한다.
“허나 친소파는 소련, 원산의 지원을 받으니 더욱 기반이 튼튼할 터인데 어찌?”
“전하, 트로츠키 의장 동지는 조선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를 극히 꺼립니다. 저희라고 하여 특별히 더 많은 지원을 받지는 않습니다.
애초에 친소파의 유일한 구심점은 어느 현량한 선비가 아니겠습니까?”
자기 얘기다.
그의 겸양에 윤순비가 혀를 내두르느라 말을 더 이어 가지 못하니, 대신 이홍위가 면접을 이어 간다.
“그렇다면 장차 어찌하려 하는가?”
“소신이 보건대 저희 당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허리가 없음에 있습니다.”
“허리라?”
조선에 막 사회주의 사상이 상륙해 왔을 때, 처음으로 유행을 일으킨 것은 블레어와 김종직의 인민주의적 노선이었다. 그때 젊은이들이 향민계로 쭉 흡수되면서 친소파는 몇몇 도시들과 상공업 중심지에서 맹위를 떨칠 뿐 전체적으로 약세였다.
“허나 근래에 소련이 성립됨으로 하여 젊은이들이 연맹에 대해 자부심을 품게 되니 지역 콤소몰들을 꾸려 나갈 수 있었습니다.”
즉, 아주 젊고 열성적인 다수의 추종자들과, 그 이전부터 근근이 이어져 오던 도시 노동자 중심의 지지세. 조선에서 도시 노동자가 많아 봤자 인구의 1할, 2할은 넘겠는가?
어찌 되었건 초창기에 끌어모은 원로 지지자들과 최근에 모인 젊은이들 외에 중간 관리직을 맡고 세대 간 소통과 인수인계를 맡을 이들이 부족하다.
“가장 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세대들이 모두 향민계를 지지하게 되니 이 어찌 걱정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신숙주의 얼굴에 걱정하는 기색은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