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192
“대공 전하 만세! 대공 전하 만세!”
마침내 아샤야카틀이 보위에 착좌하고, 그의 양손에 왕홀과 보주가 들리우니.
신대륙의 지배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
그 뒤로 이어진 것은 연회였다.
곳곳에서 활발히 정복 사업을 벌이던 재규어 ‘기사’들이 영웅담을 자랑하고(당연히 강철 검과 기병 돌격에 쓸려나가는 적병들의 이야기다.), 메시카에 찾아온 카스티야의 뭇 귀족들이 신대륙의 귀족들과 뒤엉켜 술과 요리로 소일하는 시끄러운 시간.
게다가 이곳의 연회는 유럽의 소소하고 조촐한 연회보다 훨씬 성대하고 길게 이어진다.
미개의 땅 유럽에는 없던 각성제가 둘이나 있으니까.
“연초들 안 피우시겠습니까?”
“나는 괜찮소.”
“저도 사양하겠습니다.”
포르투갈 식민지에서 쏟아지는 설탕을 들이부은 초콜릿과 담배.
그 두 가지로 들던 잠도 확 달아난 15세기의 유럽인들은, 고양감에 방방 뛰며 신세계의 위대함을 찬양했다.
“하아… 이건… 신의 음료입니다. 3일 밤낮을 깨어 있어도 사람이 멀쩡하다니….”
그런 이들 중에는 토르케마다도 있었다.
분명 2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흥청망청하는 연회라니…”라고 읊조리던 것 같은데, 거부하기엔 너무도 달콤했던 모양이다.
“여러분들의 땅에서는 이런 작물들이 나지 않습니까?”
“불행히도, 그렇습니다. 포르투갈로부터 전량 수입하는 실정이죠.”
“저런!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카페인에 취한 토르케마다는 슬슬 이징옥과 로밀리를 비롯한 소련인들에게 말을 붙여 왔다.
특히 소련에도 기독교가 있는지 물어보았고, 로밀리는 원산에 몇몇 교인들이 있으며 소련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답했다. 토르케마다는 그 말에 흡족한 듯 초콜릿을 한 잔 더 들이켰다.
“여러분들이 포르투갈과 교역을 터놓으셨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너그러운 조건에 뭇 기독교인들이 놀랐습니다. 패전국에 대해서 그리 관대하다니 분명 조선… 소련은 대국입니다.”
“아닙니다. 흑인 노예의 거래를 금지하였으니 포르투갈로서도 크게 양보한 바가 있지요.”
“맙소사, 여러분은 정말 훌륭한 분들이십니다.”
토르케마다의 환심을 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이미 그는 틀라카엘렐을 따라 들어온 유럽인들로부터 본토의 정세를 어느 정도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포르투갈에 관대한 처분을 행했을 뿐 아니라, 그 왕자를 돕고 노예 무역까지 금지했다 하니. 그는 빠르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이미 인생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그러한 승승장구에 시기와 방해를 보낼 이도 없으니 사람이 선해지는 모양이었다.
“제가 이렇게 주교좌에 착좌하는 모습을 삼촌께서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몹시 자랑스러워하셨을 텐데, 틀라카엘렐 공작 전하께서 찾아가 보니 이미 무덤뿐이었다더군요.”
“저런, 안타깝습니다.”
그러다 보니, 슬슬 내밀한 이야기들도 오가기 시작한다.
“이사벨 전하께서도 참 무심하십니다. 제 삼촌께서 돌아가실 때 별 관심을 두지 않으셨다는 이야기도 들렸고, 여러분이 떠난 직후에 국왕 전하께서 승하하셨다 들었는데 후아나 공작 각하께 편지 한 통 없다니요….”
명백하게도, 선왕과 연이 닿던 이들과 관계를 끊고 있다.
토르케마다가 그리 푸념을 몇 마디 던지고, 곧 실례했다며 자리를 비키자 이징옥이 로밀리에게 속삭였다.
“이상하군.”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아까부터 그들에게 접근하던 현지 귀족들의 반응이 심상찮다.
너무 열광적이다.
그들을 둘러싸고 모여들었다 흩어졌다 하는 귀족들은 슬며시 소련 측의 정보를 캐내려 애쓰거나, 어떻게든 교분을 쌓아 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조금만 길게 대화를 나눈 귀족은, 잠시 후에 하나같이 대공의 곁으로 다가가 이것저것을 속삭인다.
무언가를 보고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특별히 정세의 변화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네. 달라진 거라고는 주군뿐이지.”
“말씀 잘하셨습니다. 토르케마다의 이야기도 그렇고, 이들은 유럽의 정세를 이야기할 때마다 분위기가 어두워집니다.”
특히, 선왕의 죽음과 이사벨의 즉위를 이야기할 때면.
방금도 대공의 제안을 따라 세번째로 엔리케 4세의 죽음을 기리며 건배하지 않았던가?
그를 위한 대리석 석상을 세우겠다느니, 새로 얻어지는 정복지의 이름을 ‘레이 미시오네로(Rey Misionero, 선교사 왕)’로 개명하겠다느니 하는 주제로 한참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다.
“일단은… 저희 둘로서는 판단이 잘 서지 않는군요.
본국에 보고를 해야 합니다. 어쩌면 이들과 접촉할 여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내일이면 연회도 마무리가 되니, 떠날 채비를 하고 일주일쯤 뒤에 베라크루스로 돌아가지.”
“아! 여기 동방 멀리서 오신 손님분들이시군요. 틀라카엘렐 각하와 함께 돌아오셨다 들었는데….”
그러나 두 사람의 이야기도 거기까지였다.
곧 다시금 몰려든 귀족들이 둘끼리 대화를 나눌 틈도 주지 않고 아는 척을 해 왔기 때문이다.
한참을 시달리고 밤이 늦은 뒤에야 두 사람은 아샤야카틀의 궁전을 떠나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소련 일행은 성대한 환송과 함께 베라크루스로부터 떠나갔다.
그새 정이 들었는지 후아나가 로밀리와 올리비에에게 울고불며 가지 말아 달라고 하였고, 아샤야카틀의 대리인으로서 틀라카엘렐이 직접 나와 그들을 배웅하였다.
진귀한 광경을 구경하러 온 부두의 수많은 인파를 뒤로한 채, 광제호는 다시금 대서양의 흐름 속에 몸을 맡겼다.
목적지는 포르투갈로부터 조차받은 피게이라 다 포스.
고작 몇 달만에 다시 마주하는데도 벌써 항구의 꼴을 갖춰가고 있었다.
두 사람이 도착하자 항만에 나온 현지 총독이 가볍게 목례하였다.
“두 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두 분 동지를 찾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흠…? 우리를 찾는다 하였소?”
“예, 이쪽으로 오시죠.”
총독이 이끄는 대로 조선식 관저에 도착한 그들은, 곧 익숙한 얼굴을 마주한다.
“카리브해는 어땠나?”
“…인민 위원장 동지?”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다니, 기본 예의가 영 안 되어 있군.”
트로츠키.
* * *
신숙주가 권유한 바와 같이, 트로츠키는 한가로이 소련이 건설한 항구 도시들 사이를 징검다리처럼 떠다녔다.
―“여러분, 드막은 한때 착취자와 찬탈자의 고장이었으나 이제 해방된 농민들이 제 땅을 일구며 평화로이 살아가는 곳이 되었습니다. 한때 이징옥 동지를 제국주의자라 음해하던 이들은 모두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지금 처음으로, 무선 통신을 통해 조선으로 메세지를 보내니 지금의 이야기들은 역사에 남아….”
―“잔지바르에서는 옛 노예와 노예주가 이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아갑니다. 이아구 동지의 환대는 따뜻하였습니다. 지금 이아구 동지는 잔지바르를 중심으로 범(汎)아프리카주의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대의는 전 세계를 향합니다.”
―“세인트헬레나! 황제 나폴레옹이 최후를 맞이한 섬입니다. 그의 쿠데타로 혁명이 좌절되고, 다시 그의 패배로 복고주의적 메테르니히 체제가 들어섰으니 이곳은 어떻게 보면 혁명의 무덤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곳은 대서양에 혁명의 불씨를 틔우는 시발점이자 요람이 되어….”
이렇듯 통신 장비가 설치될 때마다 첫 개시도 할 겸 본국으로 이빨도 털어 주니, 꽤나 괜찮은 유람 생활이었다.
그 여정의 끝이 바로….
“르네, 받아 적을 준비 끝났나?”
“예, 다 준비됐습니다.”
“아주 좋아.
여러분, 이곳은 우리가 유럽에 걸친 첫 번째 발자국입니다. 처음으로 바다가 아닌 대륙을 향하여, 망망대해가 아닌 제국들의 각축을 살피기 위하여 마련된 해외 영토입니다.
우리가 결국 이베리아에 닿았습니다. 스페인 내전보다 461년은 이르게 말입니다. 아직, 우리가 도와줄 공화파는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이곳에서도 새 시대의 향내를 느끼니….
이곳은 피게이라 다 포스입니다.”
이제 러시아에서도 차츰 육로를 통하여 통신 설비를 받아 와 마련하고 있으니, 몇 주만 기다리면 소련의 모든 영토가 무선 전신으로 연결된다.
가느다란 전기 신호의 선이 바다와 대륙을 건너 소련이라는 세계적 공동체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꿰메어 모으는 것이다.
이제야 ‘세계 혁명’이란 것을 하고 있다는 실감이 난다. 아아, 트로츠키! 장하다!
그렇게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포르투갈에 온 뒤, 트로츠키는…
아무것도 안 했다.
시작부터 ‘잠시 해외에 나가 있다 돌아오면 다 정리될 거다’라는 뭔가 수배 걸린 조직범죄자 같은 이유로 이루어진 순방이다.
이징옥 동지나 로밀리 동지가 이곳에 있었다면 뭐라도 했을지 모르겠지만, 저들은 이미 멀리 아메리카로 떠나 있는 상태.
트로츠키에게는 평화로운 휴가를 보낼 시간이었다.
―“이탈리아 내 상인 공화국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교황에 대한 여론이 좋지는 않은 듯합니다.”
―“이사벨 1세가 현재 카스티야의 국왕입니다. 원래와 같이 내전을 통해 집권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신성로마제국에서 몽골 전선에 대해 세운 대책은….”
“르네, 여기 와 보게나. 이놈들 정신이 나갔군.”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어디… 현재 황제인 프리드리히 3세는 몽골 전선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예를 참고하여… 맙소사, 어디서 이런 미친 놈들이 튀어나왔지?”
“내 말이 그 말일세.”
물론, 유럽의 상황을 틈틈히 주시하는 바도 잊지 않았다.
소련의 등장과 함께 세계 어디랄 것 없이 크게들 역사가 뒤틀려, 원역사를 생각하고 대유럽 정책을 편다면 큰 코 다칠 테니. 이런 정보 파악 역시 중요했다.
그렇게 몇 주를 평화롭고 따분하게 보내고, 그가 산책하고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엿들은 포르투갈인들 사이에서 ‘동방에서 온 유대인 귀족’의 소문이 조금씩 돌 무렵에,
“카리브해는 어땠나?”
“…인민 위원장 동지?”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다니, 기본 예의가 영 안 되어 있군.”
이징옥과 로밀리가 돌아온다.
* * *
이징옥과 로밀리는, 일단 상관인 트로츠키에게 보고서를 만들어다 바친다.
“그래서… 모르겠다?”
“예, 저들이 소련에 관심을 가질 만한 이유가 크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습니다.”
“이징옥 동지, 수고하셨소. 그리고 로밀리 동지?”
“예.”
트로츠키는 의자 등받이에 드러눕듯 기댄 뒤 입을 연다.
“메시카의 봉신화는 엔리케 4세의 업적이 아닌가?”
“네, 그렇습니다.”
“지금 왕은 이사벨이고.”
“맞습니다만….”
“그러면 지금처럼 카스티야가 별다른 이익 없이 메시카에 이것저것 퍼 줄 이유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이사벨 역시 신실하기로 유명하고, 또한 메시카 역시 중요 식민지가 아닙니까?”
“아닐세.”
트로츠키는 그리 말한 뒤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낸다. 손톱만 한 불꽃으로 담뱃불을 붙인 뒤 말을 이었다.
“자네는 직접 보았으면서, 이미 아는 것에 가로막혀 자신이 본 것을 믿지 않는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들에게서 카스티야는 무슨 이익을 얻던가?
“그건….”
카카오? 아니다. 아직 카카오의 대부분은 메시카 국내에서 소비되고 카스티야에 그 물량이 조금 넘어갈 정도로 적게 생산된다.
담배 역시도, 포르투갈의 아폰시아 같은 플랜테이션 농장은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재래식 소규모 밭들뿐이다.
바나나, 밀, 클로버, 보리, 사탕수수 등 다양한 작물들이 도입되었지만 모두 현지의 인구 부양과 사치 문화에 영향을 미칠 뿐….
“…없습니다.”
“그래, 저들은 식민지가 아닐세. 차라리… 그래, 조공국에 가깝겠군.
자네의 보고에 따르면 메시카는 급속하게 정복과 개발을 이어 가고 있네. 그 원동력이 무엇인가? 말과 소, 화약과 철기일세.
당장은 유럽에 의존해야 하는 물자와 기술일세. 모두 엔리케가 준 것이지.”
실상 엔리케는 저들에게 막대한 자원을 주고, 그만한 권위를 되사 왔다.
그런데 이사벨은?
“이사벨은 굳이 정적의 업적을 치장해 줄 필요가 없네. 협조에 더 깐깐해지겠지.”
“이사벨이 메시카를 견제하겠군요.”
“그래. 그런데, 그보다 훨씬 우월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제3의 세력이 나타나면 관심을 가지지 않겠나? 당연히 대놓고 말은 못 하지 않겠나? 종주국에 대한 무례이니.”
트로츠키는 다시 몸을 일으킨다. 얼굴은 싱글싱글 기분이 좋은 듯 웃고 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크군. 스피리도노바 동지가 칭찬하기에 봤더니만 역시 아직 무르익지 못한 젊은이구먼. 하하하하!”
…지금 스피리도노바 계파라고 슬쩍 돌려 까고 있다.
사내 정치에서 줄 잘못 대서 고생하는 부하 직원의 기분을 느끼던 로밀리는, 구원을 찾아 이징옥을 돌아본다.
그리고 고맙게도 이징옥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 준다.
“크흠… 인민 위원장 동지, 허면 이제 어찌하여야 좋겠소이까? 지금 당장 메시카로 돌아가야 하겠소?”
“아니오, 이징옥 동지. 뭐 하러 그리하겠소?”
이징옥의 말에 트로츠키는 답했다.
“저들이 몸이 달 때까지 기다려야지.”
즉 이사벨이 본격적으로 메시카에 제재를 걸 무렵까지.
시간은 소련의 편이다.
서방견문록 (3)
“마침내, 트로츠키 동지에게 전신을 보낼 수 있다 이 말입니까?”
“그렇소. 이제 우마차 끌고 사절에게 몽골 사막을 넘으라 할 필요 없이 직접 통신할 수 있소!”
에드워즈와 권람, 두 사람은 흥분 속에서 레닌그라드에 건설된 송신탑을 내다보았다.
본래 등대 목적으로 건설되었던 탑을 송수신 목적에 걸맞게 개조하여 만들어 낸 위대한 건축물이다.
그리웁던 고향, 조국과 그들을 직접 연결해 줄 단 하나의 수단.
“역사적인 러시아의 첫 번째 무선 서한은 뭐라 쓰시겠소?”
“그거야 당연히….”
그렇게 에드워즈는 권람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트로츠키에게 보내는 최초의 메시지를 이렇게 썼다.
―“트로츠키는… 개자식이다. 15년 동안 여기… 박혀 있었다. 인민 위원 자리… 내놓으라.”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무시하게. 아직 헛소리할 기운이 있는 걸 보니 팔팔하군. 10년은 더 썩혀 놔야겠어.”
트로츠키는 그 첫 줄을 가볍게 넘겼다.
“이징옥 동지, 로밀리 동지, 와 보시오.”
“예, 인민 위원장 동지.”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유럽의 상황은 기이하다 못해 기괴하게 흘러가고 있소.”
1475년은, 몽골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사이의 전쟁이 마무리되어 가는 해였다.
“에드워즈 동지가 이야기하는 바에 따르면, 이제 전쟁은 슬슬 끝물이오. 에센이 루스를 침공하고 카지미에시가 간간이 약탈할 때부터 전선이 10년은 넘게 지속되었지 않았소?”
몽골의 루스 정벌이 1460년, 그리고 카지미에시가 본격적으로 몽골을 향해 도발을 걸어올 시기가 1465년 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