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212
로렌초라는 순교자가 로마의 손에 죽었고, 사보나롤라의 정통성 역시 로렌초와 메디치로부터 나오는 바.
로렌초를 죽인 로마에 대한 성전은 불가피하다.
“지금 여기서 나는 위대한 공화국의 이름으로 추기경 프란체스코 델라 로베레를 파문하겠소! 그 외에 교황을 암살한 모두를 파문하겠소! 그들은 결코 영원한 구원에 들지 못하리라!
여기서 저 적그리스도 무리를 향하여, 자유의 십자군을 선포하는 바요!”
“피렌체 만세!”
대평의회에 첫 번째 안건.
전쟁.
단 한 사람의 의원도 찬성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 * *
전쟁의 명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애국주의적 명분.
―로렌초는 조국의 수호자였다.
―그는 죽었다. 살해당했다.
―고로 복수해야 한다.
마치 간단한 수학 공식처럼 군더더기 없고 명확한 논리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가 부족했다.
바로 도덕적 정당성이었다.
단순한 복수의 이름으로는 끌어들일 수 있는 세력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동원된 두 번째 명문은 종교적인 부분을 건드렸다.
―찬탈자들의 휘하에서 교회는 타락하고 있다.
―교회를 구원하고 개혁해야 한다.
―그 수단은 민주주의적 공화정이고, 목표는 초기 교회적 단순성이다.
“오직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자유와 평등을 전파할 겁니다.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이 옛 고전 시대의 자유를 다시 시민들에게 허락할 때까지.”
“아… 그렇군요. 훌륭한 일입니다.”
“많은 특권들이 폐지되었고, 이제 노동자들은 계약을 통하여 자유로이 움직이며 귀족들의 대농장은 해체되었습니다. 옛 그라쿠스 형제와 같이 우리는 행합니다.
모두 그대의 조국과 고대의 영웅들이 영감을 준 바대로입니다.”
사보나롤라가 졸음을 쫓기 위하여 차를 홀짝인다. 눈밑의 그늘이 선명하다.
하기사, 반메디치 세력 잔당과의 무력 충돌을 지휘하고,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며, 도시 곳곳을 나돌아 다니면서 연설했으니, 그동안은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처럼 움직였으리라.
“하지만 이런 감사 인사를 통해서는, 오직 과거에 관해서만 언급하게 되는 법이지요. 우리는 한가로이 회상에 빠질 상황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보나롤라는 아직 중요한 할 일이 남아 있는 사람처럼 말한다.
“저희는 앞으로 나아갈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전쟁은 임박했고, 우리는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말해 주십시오. 어째서 저를 부르셨습니까?”
“아, 이제야 물어봐 주시는군요.”
로밀리는 사보나롤라를 바라보다가, 잠시 긴장감에 고개를 흔든다.
괜찮다. 본국의 재가를 받은 작전이다.
사보나롤라의 약한 지점을 헤아린다. 그리고 로밀리는 거기서부터 대화의 물꼬를 터 본다.
“지금, 공화당의 정치 자금이 빠르게 동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군요. 금시초문입니다.”
사보나롤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모르쇠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마 우리의 적대자들이 퍼뜨린 헛소문을 믿으시나 봅니다. 로렌초 일 마니피코께서는 저희에게 충분한 유산을 남기셨습니다. 공화당은 여전히 굳건합니다.”
“저희에게도 믿을 만한 귀가 있습니다.”
“저희에게는 믿을 만한 입이 부족했나 봅니다. 이런 헛소문이 퍼지는 것을 방기하다니. 그것도 외국에서 온 손님께까지.”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사보나롤라는 약점을 노출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 자금의 부족은 당연한 귀결이다. 메디치가가 부유하다고 한들 공화당에서 그 재산을 마구 집어다 사용할 순 없다.
루크레치아도 가문의 재건을 위해 써야 할 자금이 있을 테고, 공화당으로서는 함부러 그 일가의 자산에 손을 댔다가 ‘로렌초의 가족을 핍박한다’라는 부담을 질 수 있으니.
그러나 로렌초의 기부금에 의존하던 조직이니만큼, 급히 새로운 자금원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당장 그 점을 파고들어 사보나롤라를 끝장내려는 세력들이 피렌체에는 아주 많다. 아직도 은닉처에 숨어 몇몇 살아남았다 여겨지는 파치 가문의 잔당이라든가.
그리고 역시나 로밀리가 파고들 것도 그 지점이다.
“일 마니피코께서는 도시의 상공업이 쇠퇴해 가실 때 서지중해의 ‘무역 상단’을 크게 후원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이끄는 해적 무리의 뒷배 노릇을 해 줬다 이 말이다.
“그거야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요. 침체해 가던 도시의 경제를 그렇게 되살리려 하셨으니….”
“그러면 그 ‘무역업자’들이… 아니, 해적들이 어디서 자금을 끌어 오는지도 아실 테지요.“
로렌초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고, 이제 시 정부의 수반인 만큼 모를 리가 없다. 사보나롤라는 고개를 잠시 돌려 눈을 피한다.
“부끄럽지만 스파냐(Spagna, 스페인) 공화국과 그 연맹에서 포르투갈 국왕에게 지불한 바를 약탈한다 들었습니다. 귀국의 부를 빼앗아 우리의 주린 배를 채웠으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부끄러움보다야 자산 반환 요구에 대한 공포심에 가까워 보이지만.
로밀리는 그런 사보나롤라를 향해 웃어 보인다.
그리고 어디선가 ‘병 속의 배(The―Ships―Bottles)’ 모형을 가져와서 내민다.
“선물입니다.”
“이게 무슨….”
15세기의 전형적인 카락(Carrack, 15세기에 등장해 삼각형 모양의 돛을 단 범선), 돛에 당당하게 새겨진 피렌체와 메디치 각각의 문장.
“베스푸치 선장이 타고 다니는 배입니다.”
잠시 그 의미를 골똘히 생각하던 사보나롤라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배의 형태까지 파악하고 있다고?
그런 사보나롤라에게 결정타를 먹이기 위하여 로밀리는 한마디를 더 던진다.
“어항을 다뤄 보신 적 있으십니까?”
“…몇 번 물고기를 기르는 귀족들을 본 적은 있습니다.”
“그 비슷한 겁니다. 저희는 먹이를 주고, 관상어 대신 해적들이 자라죠.”
“….”
사보나롤라는 무언가 불가사의한 것을 보듯이 로밀리를 바라본다.
아니, 자신의 재산이, 또는 준(準)동맹 관계인 포르투갈의 재산이 그렇게 대량으로 약탈당하게 내버려둔다니? 그 이유가 대체….
“저희가 피렌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피렌체를 위하여 던져 주는 빵 부스러기인 셈이죠.”
“대체… 용건이 무엇입니까?”
“그 빵 부스러기를 공화당에 드리겠습니다.”
사보나롤라는 눈을 꿈뻑꿈뻑 움직이다, 이내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공화당이라는 조직은 앞으로 국가를 운영할 만큼 커질 텐데, 단기간에 안정적인 자금원을 얻으려면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대가는 무엇입니까?”
“별건 없습니다.”
로밀리는 어깨를 으쓱인다. 창밖을 슬쩍 보니 아르노강을 오가는 곤돌라의 사공들이 목청껏 노래 부른다.
“승리.”
로마에 대한 압도적인 승리.
유럽을 한번 휘저어 놓을 만한.
무장한 예언자 (3)
이탈리아 왕국은 500년도 더 전, 신성 로마 제국을 성립시킨 오토 1세 때부터 손에 넣은 영토다. 더 나가자면 서로마의 제관을 받은 카롤루스 대제의 때부터 이탈리아는 제국의 것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이탈리아는 세계 제국의 발상지, 제관을 쓴 이들이 그를 탐내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이탈리아에 대한 제국의 영향력은 축소되었지만, 모든 황제가 이탈리아를 다시 ‘명목상’ 영토가 아닌 진정한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을 품었다.
이는 현재의 황제 프리드리히 3세도 마찬가지였으니.
교황이 쓰러지고 분열된 이탈리아가 다시금 제국의 아래로 들어올 듯 말 듯 하는 게 아닌가?
결국, 그는 제국의 오랜 염원을 위하여 노름판에 뛰어들었다.
* * *
노름을 할 때, 1부터 6까지 나오는 주사위를 굴린다고 해 보자.
주사위 숫자에 따라 말을 움직인다면, 적어도 1칸에서 6칸까지는 전진할 수 있으리라.
당신은 주사위를 굴렸다.
그리고 -255가 나왔다. 뭐지 버근가?
이게 단순한 노름이라면 “주사위가 왜 이따위지?”라는 푸념과 함께 손을 털고 나올 수 있다. 아니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장난질을 벌인 누군가와 옥신각신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라면… 그냥 눈 뜨고 코 베이는 수밖에.
그게 황제와 교황령이 동시에 겪은 상황이었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이탈리아에서의 상황이 전달되었을 때, 황제의 머릿속을 지배한 생각은 그러하였다.
교황령은 피렌체와 밀라노를 향해 주사위를 던졌다. 아니, 주사위보다는 ‘성공’과 ‘실패’로 나뉘는 동전에 가까우리라.
황제 입장에서 최선의 수는, 밀라노에서만 교황령이 사주한 쿠데타가 진압되고 피렌체는 교황령의 것이 되는 상황이다.
밀라노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이탈리아에 입성해서, 피렌체와 로마까지 싹 다 밀어 버리고 이탈리아를 장악할 명분이 생기니.
밀라노와 피렌체가 둘 다 교황령의 손에 떨어진다면? 아… 최상은 아니지만 역시 나쁘지 않다. 교황의 암살자들이 장악한 밀라노와 피렌체를 모조리 침공해 버리면 그만이다.
만약에 두 곳 모두에서 쿠데타가 실패한다면? 아니면 밀라노에서만 실패한다면?
최악은 아니다. 일단 로마는 힘을 상실했으니, 감히 황제의 봉신국에 반란을 사주한 교황령의 찬탈자들을 쓸어버릴 수 있으리라.
어떤 결과가 나오든 황제는 이익을 얻어 낼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피렌체에 신정 민주 공화국이 건설되었습니다. 신생 정부가 모든 시민을 참정권자로 선언했습니다.”
―“그보다도 신정부가 피렌체를 중심으로 가톨릭 교회를 갈아엎겠다고 선언합니다. 사태가 악화되기 전에 막아야 합니다!”
동전을 던져서 옆면도 나오나?
밀라노는 정변이 애매하게 이뤄져서 허구한 날 쿠데타가 꼬리를 물게 되었고, 피렌체는 듣도 보도 못한 기묘한 공화국이 건국되어 가고 있다.
심지어 그 공화국이 로마를 향해서 사생결단으로 전쟁을 준비한다.
로마의 머저리들 같으니!
바보들이 온 사방에 도발과 시비를 걸고 다니다가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을 저질러 버리고 말았다.
다른 것보다도….
“사보나롤라 정부에 보낸 사절은 어떻게 되었는가?”
“일단 여전히 체류 중입니다. 피렌체 공화국이 제국에 대한 충성을 놓지 않겠다는 공식 답변을 보내오기는 하였습니다.”
“후속 소식도 들어오는 대로 전달하게.”
“예, 폐하.”
피렌체에서는 웬 예언자 나부랭이가 집권을 했는데, 그 꼴을 보아하니 로마의 추기경들이 피렌체인들에게 뼈째로 씹어 먹힐 만큼 공분을 산 모양이다.
사보나롤라와 그 공화국이 로마를 향해 전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심지어 명분도 ‘교회 정화’에 가까우니.
황제는 서서히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교황령과 피렌체가 강렬하게 맞부딪힌다.
로마가 이긴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피렌체가 이기면…?
저 젊은 수도사가 교황령을 먹으면 뭐가 어떻게 굴러갈 것인가?
예측할 수가 없다.
그리고 보통은 예측 불가능한 결론이 가장 끔찍한 법이다.
물론… 피렌체가 패배할 확률도 높다.
그렇다면 황제로서는 교회를 개혁하고자 한 피렌체 시민들의 숭고한 의지에 눈물지으며, 전쟁으로 힘을 소진한 피렌체와 로마를 둘 다 사뿐히 지르밟아 주면 된다.
교황령의 머저리들은 전부 거열형에 처해 버리고. 생각만 해도 속 시원한 결말이다.
그런데, 피렌체가 승리한다면?
…맙소사.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만 생각해 두자.
피렌체가 로마를 치기 전에 이탈리아에 손을 써야 한다.
황제는 집무실의 의자를 책상으로 당긴 채 무언가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몽골과 폴란드 국경 방면의 군세를 일부 물린다.”
그렇게 한 줄.
고민이 잠시 이어지다,
―“밀라노에 대한 침공을 준비하라.”
다시 또 한 줄.
이탈리아는 누구에게도 넘길 수 없다.
* * *
흥얼흥얼, 선원들은 지난밤 동료 선원이 술에 취해 어떻게 선장의 머리 위에 오줌을 갈겼는지에 대한 대서사시를 담은 뱃노래를 부르고 있다.
한때의 도망자들, 빚쟁이들, 파산자들은 이제 조국의 뿌리이자 기둥이 되어 당당히 지중해로 돌아온다.
“머저리들아! 지금은 국상(國喪) 기간이다! 당장 노래 그만 부르고 조기(弔旗)로 바꿔 달아!”
물론 아무리 ‘무역업자’라고 금칠을 해 봐야 근본이 해적 떼들인 만큼 그들을 통제하느라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애를 먹고 있었다.
오랜만에 조국 피렌체와 해적 조합의 가맹국들이 보호해 주는 안전한 지중해로 들어오다 보니, 추격의 위험이 없어 선원들은 평상시보다 더 풀어져 있다.
멍청한 놈들, 지금 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괜히 옷매무새를 다시 가다듬으며 자신을 쥐어박던 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얼굴을 떠올린다.
후원자이자 주군이었던 이의 죽음을 생각하며, 베스푸치는 잠시 모자를 벗는다.
곧 피사의 시내가 들여다보일 정도로 해안에 가까워지고, 선원들도 드디어 모습을 단정히 가꾸기 시작한다.
다행이었다. 지금은 해적들이 신정부와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이다.
특히나 독실한 수도사가 새로운 곤팔로니에레로 선출되었다 들었으니 최대한 깍듯하고 절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새로운 정권하에서 이런 사업이 계속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는….
“단장님! 저기 피렌체 정부기가 보입니다!”
“그래. 마중을 나왔나 보군. 그런데, 저 옆의 깃발은 뭐지?”
“멀리서 보니 잘 안 보이….”
순간 아메리고 베스푸치와 그를 부르던 선원 모두의 입이 다물린다.
저 깃발이… 여깄으면 안 되는데?
잠복 수사인가?
적색, 노란색, 보라색.
스페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깃발이, 붉은 백합의 피렌체 깃발과 함께 내걸려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