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217
“피렌체 시민군의 규모가 대단하다던데.”
“약 3만 명은 된다고 하더군. 놀라운 수치일세. 거기에 용병 5천 명을 더해서 3만 5천여 명.”
“그렇게까지 동원 가능하다니! 우리가 뽑아낸 병력이 얼마나 되지? 동맹국들을 제하고서 말일세.”
“…약 4천 명 정도? 그보다 조금 못 미칠지도 모르겠네.”
“맙소사. 이거,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대재앙이었겠군.”
“그러고도 병력적 열세는 여전하네.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게.”
카스티야와 아라곤이 끌고 온 대군세가 약 2만 2천 명. 거기에 교황령이 소집하고 고용한 4천여 명. 마지막으로 나폴리의 3천 명까지.
모두 합쳐 2만 9천여 명.
피렌체가 동원한 3만 5천 명의 대군세와 비등비등하면서 어느 정도 겨뤄 볼 만한 수치가 되었다.
“그리고… 약 500명 정도의 사병들이 시에나에서 출발한다는군.”
“하느님 맙소사, 감사합니다. 500명 정도라면 훌륭하군.”
500명이라면, 시에나만 한 국가에서 국운을 걸며 보내기에는 조금 부족하고, 또 아예 없는 수준이라 말하기에는 꽤 많은 숫자다.
이 애매한 지원군의 수효는 무엇인가.
시에나 공화국 정부는 분명 중립을 선언했다.
피렌체와 교황령 사이에서 한편을 들었다 도시를 멸망케 할지 모를 위험에 처하지 않기 위해서 내린 안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안전하고’, ‘합리적인’ 선택에 만족하지는 않는 법이다.
시에나 공화국의 의회는 한동안 시끌벅적하였고, 길거리에서도 전쟁에 관하여 의논하는 시민들의 목청소리가 꽤 오랜 시간 와글거렸다.
시에나의 주전론자들은 이렇게 주장하였다.
―“이건 미친 짓이오! 생각이란 걸 좀 해보시오. 피렌체가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그리하여 로마를 손에 넣는다면? 그러면 우리는 피렌체의 앞마당에 포위된 작고 위태로운 공화국이 되겠지. 이걸 피렌체가 가만히 놔둘 것 같소?”
일견 타당한 논리.
피렌체가 득세하면 그 인접한 약소국인 시에나는 잡아먹힌다. 자주와 독립을 위해서라도 로마를 위하여 싸워야 한다.
그러나 중립을 선언한 시에나 정부 인사들 이에 반박할 말이 없지 않았다.
―“미쳤군. 그래서, 자 로마에 붙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패배했다고! 이제 피렌체가 우리 조국을 잘도 가만히 놔두겠소. 우리도 저 피사처럼 피렌체에게 정복되어 공화당과 미치광이 예언자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하겠지!”
즉 한순간에 모든 걸 잃을지 모를 도박이냐, 천천하고 확실히 안정적인 죽음이냐.
분명 전자의 대안은 시에나인들의 투쟁심과 독립에 대한 열망을 자극하기는 했으나, 정부는 국운을 가지고 도박을 걸 수는 없었다.
그들은 사세에 굴복하였다. 도시의 멸망에 비하면 반역자라는 비난은 감수할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굴종에 분노한 귀족 가문과 명망가들은, 자신들의 사병과 고용한 용병들을 보내어 로마에 힘을 실었다.
그렇게, 500명. 수적 열세에 놓인 교황령에는 이마저도 훌륭한 지원군이었다.
시에나, 나폴리, 그리고 저 멀리 카스티야와 아라곤에서까지 끌어모은 군세들.
결국 여기까지 오고야 말았다.
누군가는 피렌체인들이 진군하자마자 도망치려는 계획을 짜 놓았고, 누구는 피렌체인들과 내통하여 제 목숨을 건지려던 시도도 해 보았으나, 결국 모두들 포기하고 결사 항전으로 의견을 모았다.
로마에서 도망치면? 결국 그들은 주님께서도 가차 없이 버리실 교황 살해자이자 타락한 위정자, 부패한 주교, 반역자로 낙인찍혀 어디에도 갈 수 없다.
배신하여 제 목숨만 겨우 건져 본다? 피렌체인들 입장에서는 내통자를 찝찝하게 살려 두기보다야 살인멸구하는 것이 보다 나은 선택지 아니겠는가?
게다가 아예 이렇게 이베리아와 남부 이탈리아에서 대규모 지원군을 끌어왔으니 패배란 있을 수 없다. 이제 승패는 단지 명예와 치욕의 문제가 아니다.
“패배는 곧 죽음으로 이어질 뿐.”
프란체스코 델라 로베레가 엄숙히 선언하자 모두가 성호를 긋는다.
“저들은 교회의 개혁과 교황의 복수, 로렌초 데 메디치의 보복을 외치며 달려오고 있소.
배신을 생각하는 이들은 이를 똑똑히 기억해 두시오! 저들은 그대를 살려 둘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패배는 죽음, 분열도 죽음, 배신도 죽음.
오직 승리만이 살아남을 길이다. 도망치더라도 패배 이후 나폴리로 피신하여 항전을 이어 가지 않는다면 희망은 없으리라.
“저들을, 반드시 저지해야만 하오.”
추기경과 귀족들은 델라 로베레의 이런 말에 모두들 앙다문 입속으로 기도문을 중얼거린다.
교만하여 교황을 죽이고도 제 권세가 유지될 줄 알았으며, 베풂에 인색하여 평민들을 굶주리게 하였다.
질투로서 교황의 권세를 시기하였으며, 분노로 말미암아 암살이라는 큰 죄를 저질렀다.
모두들 음욕과 탐욕은 빼놓을 수 없이 부패한 이들이다. 성직에도 나태했을 것이 당연하다.
이 일곱 분야에 걸친 죄과를 모조리 쌓아 놓은 이들이, 반성하는 마음 없이도 이토록 간절히 주님의 이름을 부르짖는다. 승리를 염원하며 기도한다.
과연 주님께서 이들의 기도에 응답하실지, 저 북쪽에서 진군해 오는 사보나롤라의 기도에 응답하실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기도하며 염원하는 자들의 성실함을 변덕스러운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는 가벼운 비웃음과 함께 지나쳐 가리니.
누구도 승리와 패배를 확신할 수 없었다.
이탈리아의 향후 수백 년을 좌우할지도 모르는 전투임에도. 누구도,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이토록 짙은 안개 속에, 미래는 안치되어 있었다.
깃발 아래서 (1)
로마에는 많은 공원들이 있다.
호사스러운 삶을 추구하던 추기경들은 시 외곽에 훌륭한 미감의 빌라(Villa)들을 여럿 건설하였고, 보통 그들의 사후에 가족들은 가문의 인기를 위해 남은 빌라를 시민들에게 기부하였다.
그렇게 환락의 저택들은 거닐기 좋은 공공건물이 되었고, 그 정원은 산책을 위한 녹지로 변했다.
한때 이 벽돌담에는 권모와 영화가 층층이 얽혀 있었으나 세월의 흐름에 과거는 풍화된 것이다.
이제는 평화롭기만 한 장소들.
허나 이곳은 지금 기묘하게도 삼엄한 경계가 펼쳐져 있다. 정기적으로 하인과 물자들이 오가기는 하나, 담장 자락마다 의심 어린 시선들이 겹쳐져 감시망을 이룬다.
그 속에는 유폐된 자들이 있다.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은 이들, 당장의 자존심과 위권보다도 훗날을 위한 기회와 신변의 안전이 중요함을 알았던 이들.
“…요사이 바깥세상이 시끄러운 것 같던데.”
“피렌체와 전쟁이 났다더군.”
전 교황, 바오로 2세의 측근들이었다.
정확히는 그 측근들의 측근, 가족, 정부, 사생아들까지 죄다 몰아넣고서 감시하는 참이니 셀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이곳에 갇혀 있었다.
다행히 이 빌라를 건설한 추기경이 꽤 부유했는지, 수십에서 수백 명쯤은 너끈히 수용해 낼 만큼 빌라는 넓다. 살아가는 데 불편함은 없다.
저 멀리서는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지만, 그래도 지금 교황령의 지배자들이 이 고결한 이들에게 아기 속옷 갈아입히는 고역을 겪게 하지는 않았다. 유모와 온갖 잡부들이 매일 아침부터 이곳에 찾아와 머무르며 이런저런 일을 처리해 주었으니.
결국 이곳에는 바오로 2세 성하께서 쓰러지신 뒤, 적당히 암살자들에게 항복한 자들뿐이다. 난리가 진정되는 동안 신변의 자유를 구속받았을 뿐 죽임당하거나 모욕받지는 않았다.
지금도 이렇게 한가로이, 차와 한담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전쟁? 그런 건 또 어떻게 알아냈나?”
“경비병들이 교대할 때면 주머니가 두둑해져 있지. 그 금화를 누가 던져 줬을 거라 생각하나?”
“하! 이 여우 같은 인간. 여기서도 장난질인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정보와 물자를 산 것일세. 장난질이라니 그런 폄훼로 벗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게나.”
그리 말하며 사십 줄을 넘긴 어느 추기경은 부싯돌에 철편을 부딪친다. 불꽃이 조금씩 피어오르다, 결국 담배 끝에 옮겨붙으며 잘 마른 이파리 타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 연기를 행복하게 빨아들인 추기경은, 마주 앉은 벗에게 한 개비를 권한다. 벗은 고개를 내저으며 거절하였다.
“그래, 어찌 되었건 아까 하던 이야기나 계속하지. 전쟁이라고?”
“바보들이 피렌체라는 벌집을 들쑤셨는데. 꿀이 나올 줄 알았더니 말벌들이 튀어나온 모양일세. 머저리들이 꿀벌과 말벌의 벌집이 어떻게 다르게 생겼는지도 몰랐던 게 아닌가?”
“쉽게 설명하게, 이 친구야. 배배 꼬지 않는다고 무시하는 사람 따위 이곳에 없으니.”
“미친 예언자가 나와서 공화국을 세워 버렸네. 주님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면서 교회 개혁을 주장한다더군. 지금은 ‘공화정의 수호자’ 로렌초의 원수를 갚겠다며 난리를 치고 있고.”
“…뭐?”
“보게나! 알아듣게 이야기하면 다들 이런 반응이니.”
담배를 문 추기경은 실실 웃으며 다시 한번 숨을 흡, 들이켜 연초 끝이 타들어 가는 꼴을 내려다본다.
슬슬 그 불길의 뜨거움이 입술에 닿을락 말락 할 때쯤에야 그는 재떨이에 꽁초를 비볐다.
공들여 매수한 경비병을 심부름시켜야 들어오는 물자였으니, 아껴서 피우는 건 당연했다.
“전황에 대해 더 자세히는 말 못 해 주네. 거기부터는 나도 많이 듣지 못했으니. 아무튼 간에 다른 얘기로 넘어가자면 그 사보나롤라라는 작자가 주장하는 게….”
“로드리고 추기경 예하? 지금 유모가 찾고 계십니다.”
“알겠네. 미안하군, 벗이여. 이야기는 다음번에 이어 가지.”
하인 한 사람의 부름에 추기경은 자리에서 벗어났다. 긴 복도와 여러 문을 지나치다 보니 가장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방문 앞에 당도한다.
벌컥 문이 열리니 어떤 아이가 울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아이가 추기경 예하를 뵙지 못한다면 계속 울겠다고 버텨서….”
“괜찮네. 다음부터 이러면 매를 들게나.”
추기경은 아이에게 다가간다. 그가 가장 아끼는 정부와의 사이에서 얻은 두 번째 자식.
“체자레?”
“아, 아버지… 제가 교황 성하의 곁에 다가가는 것을 이것들이 막아요. 어떻게… 어떻게… 할 수가….”
생후 3년 가까이 지나니 말도 조리 있게 하고, 제법 걸음도 잘 걷는다.
추기경은 아이의 팔을 세게 잡아당긴 뒤, 그 귓가에 속삭인다.
“그만 울어.”
차가운 말투에 놀란 아이가 순간 굳으며 울먹임을 멈추자,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로드리고 추기경은 웃는다.
“아들아, 교황 성하께서는 지금 편히 잠들어 계신다. 그분의 잠을 방해하면 되겠느냐?”
“하, 하, 하지만… 궁금해, 서….”
“너는 네 궁금증이 목숨보다 중요하느냐? 네가 가까이 다가갔다가 성하께서 돌아가시면 네가 무사하겠느냐?”
세 살이 되어 간다 해서, 추기경의 이런저런 말을 모두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어리둥절하지만, 그저 아버지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과 목소리가 두려워 머리를 끄덕일 뿐.
“다시 또 그럴 테냐?”
“아, 아, 안 그러겠….”
“내게 겁먹지 말거라. 앞으로 너를 겁주려 할 것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추기경 로드리고 보르자는 아이의 팔을 놓고서 슬그머니 머리를 쓰다듬는다.
“체자레. 네 이름은 체자레다. 그 무엇에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끝내 정상에 오른 어느 영웅의 이름에서 따왔다.
너도 그리되어야 한다.”
소년은 아버지의 알쏭달쏭한 말은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아들었는데.
아버지는 기대가 많으시다.
그 기대를 충족치 못하면 버림받는다.
“아, 알겠습니다, 아, 버지….”
“훌륭해. 이제 다시 돌려보내게.”
“네, 알겠습니다. 추기경 예하.”
아이는 유모의 손에 이끌려 총총총 방을 나선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몸이 경직된 채다.
로드리고는 저 아이가 보르자의 이름을 물려받을 자격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한다.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 눈빛이 마치 가축이나 작물의 품질을 가늠하는 듯하다.
뭐, 아직 세 살인데. 저 정도 의젓함이면 훌륭하다. 발육도 나쁘지 않고, 얼굴도 잘생겼으니.
로드리고는 이내 아들에게서 신경을 끈다. 당장 더 중요한 문제들을 생각해야 했다.
전쟁.
빌라의 담장 바깥에서 이탈리아를 불태우는 전쟁.
* * *
“미쳤군! 당신네들은 반역자야!”
“조용! 발언권을 얻고서 이야기하시오!”
“발언권? 고작 발언권 신청이 중요하오? 지금 저 망할 사탄의 새끼들이 조국의 안전을 가지고 도박 노름을 하는데!”
“당신 말 다 했소?”
“아니, 네놈에게 퍼부어 줄 욕은 아직도 차고 남친다. 이 벌레 같은 새끼야.”
“뭐라고? 네가 피렌체로부터 뇌물 받아 처먹은 걸 모르는 인간이 없다, 이 개자식이! 어디서 애국자 행세를!”
시에나의 의회는 떠들썩하였다. 단지 운명적인 전쟁이 눈앞에서 벌어지리라는 사실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갈등의 주된 사유는 주전론자들이 보낸 총 500인의 사병들.
“500명? 그 정도면 충분히 피렌체가 훗날 꼬투리를 잡아 우리의 목줄을 죄기 좋은 숫자로군. 자네들은 반역자일세! 모조리 감옥에 넣어야 한다고!”
“반역자는 자네들이지. 피렌체가 두려워 무릎 꿇고 마치 개처럼 그들이 던져 준 부스러기나 먹으려고 바닥을 핥고 있지 않나?”
“이 작자가 감히 어디라고 말을… 네놈이 로마에서 받았다는 금화는 그럼 어디에 있는지 해명해 보게! 네놈이 사랑해 마지않던 그 남자 시종의 바짓가랑이 사이에 있지는 않은….”
“모함이다! 모두 모함이야!”
“반역자들을 구속해!”
“애국자들을 보호하라!”
오늘의 의회도 요사이 언제나 그랬듯 난투극과 함께 폐회되었다. 결투를 위해 빼어 들어진 칼날에 몸이 상한 몇몇은 두 발로 걸어 나오지도 못했다.
“칼을 빼 들 곳은 의회가 아니라 피렌체와의 국경이 아니오?”
“지금 3만에 달하는 군세가 로마를 향한다며 우리 국경에 가까워 왔소. 저들이 언제 우리의 덜미를 물지 모르는 게 아니오? 시에나의 독립이 당장이라도 피렌체의 발꿈치 아래 짓밟힐 수 있소!”
그러나 이렇게 의회에서 온갖 다툼을 겪으면서도 시에나의 갈등은 수그러들 기세가 없었다.
사실 독단적인 로마 지원에 대한 뭇 시민의 반감 탓에, 주전론자들에 대한 지지는 줄어들고 있었다.
궁지에 몰린 주전론자들은, 도리어 더욱 강경히 반대파에 반역자라고 외침으로써 이 사태에 대응하였다. 그 자체가 주전론자들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이내 기회는 찾아온다.
“…그리하여, 시에나 공화국 의회에 우리 피렌체 공화당과 시민군은 정중히 요청합니다. 대가는 이후에 후히 지불할 터이니 국경 개방을 허락하신다면 최대한 빠르게 귀국의 영토를 벗어나도록 노력하겠….”
“사절을 추방하라!”
“추방하라! 추방하라!”
피렌체군의 특사는 주전론자 의원들에게 양팔을 붙잡혀 의회 문 바깥으로 쫓겨나려 했다. 그를 중립론자들이 막아서면서 회의장이 어지뤄워졌다.
“국경 개방? 군사 통행? 이는 시에나의 자주권에 대한 심대한 침해요! 남은 건 오직 전쟁뿐!”
“미친 소리! 그저 제안일 뿐이 아니오?”
갑작스럽게, 피렌체가 무리한 요구를 던진 것이다.
* * *
모든 행위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피렌체의 시에나행 사절 파견 역시 그렇고.
“서기장 각하, 여유가 없습니다.”
“이번 원정에서 시에나를 크게 우회하여 교황령으로 간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용병대장들과 시민군 지휘관들의 조언은 이러하였다.
“전략적으로는 그럴 겁니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으로는 미친 짓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거기에 대한 사보나롤라의 답은 다시 이러했다.
사보나롤라는 손안에 놓인, 로밀리가 전달해 준 첩보의 내용을 다시금 훑어보았다.
―‘교황령의 병력 동원 규모가 2만이 넘습니다. 각하께서 본래 상정하셨던 수효보다 몇 배를 윗도는 숫자입니다.’
‘의심할 만한 정보는… 아니다. 애초에 날조할 이유도 없는 사항이고.’
왠지 모르겠지만, 스페인 대사는 언제나 성실하게 사보나롤라의 뒤를 지원해 주었다.
어디까지 뻗쳐 있는지 모를 촘촘한 정보망으로 이런저런 뒷소식을 물어다 주었고, 피렌체 경제의 안정화에도 크게 도움을 준 은인이다.
하지만… 세상에 대가 없는 호의는 없다. 그렇기에 바라는 대가를 알 수 없는 호의만큼 두려운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