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224
병사에게서 연초 한 대를 받은 뒤, 로드리고는 마치 그것이 신체 일부인 양 자연스레 입에 물었다.
“그럼 벗이여, 다녀오겠네.”
쾅, 하고 응접실의 문이 닫힌다.
다시 사방이 고요해지고 로드리고와 말상대나 하던 주교는 눈만 꿈뻑거렸다.
아직도 재떨이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 * *
“황제가 교황을 확보했다!”
“빌어먹을! 주님 맙소사! 사탄이 제 무기를 손에 넣었다!”
패닉.
추기경들의 정신 상태를 묘사하려면 그 낱말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황제가 어떻게 해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교황을 숨겨 둔 장소를 알아냈다.
그리고 교황의 측근들을 그곳에다 감금해 놓고 쥐죽은 듯 숨겨 놓았음도.
이제 황제가 자신의 동맹이던 교황의 의식 없는 몸을 안고 이렇게 울부짖으리라.
―“벗이여! 지상의 모든 교회의 스승이여!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몸이 되다니! 내 그대의 원수를 갚아 주겠소!”
그러면, 그 ‘원수’들의 목은 어떻게 될까.
“화, 화, 황제가 우리를 죽인다는 보장은 아직 없잖소…?”
“교황의 측근들이 고스란히 황제의 곁에 들어갔는데 잘도 그러겠소. 이제 우리가 없이도 황제는 교황령을 온전히 손에 넣을 수 있소! 우리가 무슨 쓸모가 있다는 말이오!”
“게다가 지금 저 간악한 사탄의 벗들이 황제에게 무슨 참언을 지껄일지 모르겠소! 저들이 우릴 모함이라도 한다면….”
물론 모함 따위 하지 않아도 죽일 명분은 차고 넘친다.
뭣보다도 교황 암살 사주범들이니까.
“내가 저것들을 그냥 전부 죽여 버리자 하지 않았소!”
“죽이면? 그러면 우리가 잘도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겠소! 전임 교황이 암살당한 직후에 그 측근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면 아무도 우릴 암살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테지! 아주 대단한 지능이오?”
“그, 그, 그만… 다들… 입 닥치시오…. 닥치라니까!!!”
누군가의 일갈에, 서로를 붙들고 갑론을박을 벌이던 추기경들의 헛소리들이 멎는다. 그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가닿는다.
“프란체스코 추기경, 그대에게는 뭔가 답이라도 있는 모양이오?”
“이, 있소….”
“뭡니까! 우리가 살아 나갈 방법이 있단 말입니까!”
프란체스코 델라 로베레의 폭탄 선언에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그는 조심스레, 말하는 것조차 버겁다는 듯이 그 ‘답’을 내뱉는다.
“황제를… 죽이면 되오.”
정적.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외치고들 싶었겠으나, 죽음이 확정된 이들 사이에서 말이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교황도 죽여 보았는데, 황제는 왜 죽이지 못하겠는가?
두려움과 극도의 긴장감에 취한 그들은 생각이 마비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로마로 소환해 놓은 군대가 있잖소. 지금 로마 북쪽 외곽에 주둔하고 있을.”
“설마, 곤살로 데 코르도바의 이야기요?”
“당장 그가 가진 병력의 수가 대강 3천은 넘소. 황제는 해 봐야 5백에서 1천 수준이고. 만일 그를 동원한다면 충분히 가능하오.”
정신 나간 답에 대한, 정신 나간 풀이 과정이 줄줄이 읊어진다.
그러나 지금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추기경은 한 사람도 남지 않았기에.
“황제를 공격하라고? 이게 정말로 내게 내려온 명령이 맞기는 한가?”
“그렇습니다. 추기경 예하들께서 직접 작성하셨습니다.”
곤살로는 예상치도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황제를 치고 교황령의 지지를 얻는다.
황제를 치고 합스부르크 가문을 적으로 만든다.
…황제를 치고 정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교황령의 지지를 얻는다.
…황제를 치고 합스부르크 가문이 군림하는 신성 로마 제국 전체를 적으로 만든다.
계산은 간단했고.
“그래서, 이 명령서가 조금의 날조도 없는 사실이라 이 말인가?”
“그러합니다, 폐하. 제게 교황 성하를 암살하려 한 간악한 무리를 베어 넘길 영광을 주소서!”
해답도 간단했다.
교황령을 치고 황제의 지지를 얻는다.
막간극―소련 정보총국
길고 지루한 예배 주관하기, 뭔가 복잡한 라틴어 구절 외우기, 그 모든 과정에서 졸거나 어색해 보이지 않기.
그 힘겨운 과정이 끝나면 가장 즐거운 작업이 이어진다.
“주교님, 제가 주님께 미사를 드리기 전에 미처 고해를 드리지 못하여….”
“아, 백작 각하. 기억합니다. 미사 전에 말씀을 미리 하셨었지요. 그러면 이쪽으로 드시지요.”
처음에는 커다란 쌀뒤주 같다고 생각해서 뭔가 불길하고 무서웠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저 고해소.
이미 한쪽 문 앞에는 세상살이에서 죄 많이 지은 귀족들이 줄줄이 서있으니, 아까 그를 붙잡은 백작 역시 그 한쪽 끝에 슬며시 서서 기다린다.
그리고 고해소 반대쪽 문으로 디에고가 들어가니.
“주교님, 사실은 제가 처남과 계간을 했습니다. 아내에게서 얻지 못하던 쾌락을 처남이 가져다줄 줄은… 아! 오늘 아침까지도 그와 육욕을 탐하고야 말았으니 저는 진실로 죄인입니다! 게다가 이번에 성당으로 들어오면서는….”
…오늘은 시작부터 수위가 세군.
짜릿하다.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
“인자하신 천주 성부께서는 성자의 죽음과 부활로 세상을 당신과 화해시키시고 죄를 용서하시려고 성령을 보내 주셨으니 교회의 직무를 통하여 몸소 이 교우에게 용서와 평화를 주소서. 나도 성부와 성자와….”
“아멘. 주교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뒤로도 정말 다종다양한 내용의 고해들이 들어온다.
어드메 공작 부인 누구는 사생아를 낳았다.
누구네 아들은 심심풀이로 지나가던 사람의 머리에도 오줌을 누었고.
또 무슨 남작은 도벽이 있어서 연회에 참석할 때마다 귀부인들 머리 장식을 훔쳤으며.
어느 대학생은 학교의 비밀 사탄 숭배 모임에 참석할 때 쓰려고, 입에 문 성체를 삼키지 않고 모아 뒀다가 동기들과 함께 성체를 불에다 태우고 난교를….
와우. 마지막은, 그걸 성당에서 고해해도 되나?
그리고 이 막돼먹은 주교는 성도들의 고해 내용을 즐거운 마음으로 작은 쪽지에 적어 놓는다. 기독교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이다.
허나, 괜찮다.
“디에고 주교님? 오늘은 어디로 가십니까?”
“늘 가던 곳으로 가 주게.”
이 ‘아라곤 출신의 디에고 주교’는 기독교인이 아니니까.
미사를 마친 디에고 주교가 급히 마차에 오르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대강 또 어디 귀부인과 놀아나러 가려니 짐작들을 하고 신경을 끈다.
이 디에고 주교라는 양반은 본래 소문이 몹시 나쁘고 비밀이 많은 양반이다.
그러니까, 닮은 사람으로 바꿔치기하기에 좋은 것이다.
지금 ‘연인’과의 ‘밀회’ 장소로 선정된 곳은 우에스카 외곽의 어느 숲.
마부는 ‘디에고 주교’를 내려 주고는 아무것도 못봤다는 듯 빠르게 자리를 뜬다.
이내 앞으로 한 달간 ‘연인’으로서 그와 접선할 가명 ‘이네스’가 가까이 다가오고.
“오늘의 보고 내용은?”
“여깄습니다요, 동지. 제가 이 짓은요 아무리 해 두요 익숙해지지를 않어요. 저는 말이죠. 무슨 멋드래지는 귀족으루다가 잠입허는 줄 알구….”
“그만, 현식 동지. 쪽지나 내놓으시오.”
디에고 주교, 그러니까 프랑스계 조선인 1.5세대 박현식 동지는 빠르게 쪽지를 넘긴 뒤 유유히 사라진다.
이네스는 이네스대로 다시 인근에서 말을 잡아 바르셀로나로 향한다. 바르셀로나에서 제노바행으로 향하는 어느 선원에게 쪽지를 건네자, 쪽지는 제노바로 옮겨 간다.
한편 신성 로마 제국, 린덴펠트 성.
클라라 토트는 평민의 몸으로서 팔츠 선제후국의 지배자였던 프리드리히 1세와 연인 관계를 가지다 결국 결혼까지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러한 신분 상승을 이루려면 다른 누구보다도 영리하며, 사람의 속내를 잘 파악해 내고, 동시에 그 자신은 빈틈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허나 지금 자신의 남편이던 선제후는 2년 전 세상에서의 마지막 숨을 다한 채 주님에게로 떠났고, 지금 자신은 남편과의 비밀 결혼을 들키지 않으려는 남편의 후계자 필립에 의해 성에 감금되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손에 넣은 듯하던 순간은 어찌도 이리 짧게 지나가는가?
물론 이 역시 자신의 아들을 훗날 제 아비의 적자로 당당히 인정받게 하기 위한 거래의 일종이라 생각한다면 아픔은 그나마 달래지는 듯하였다.
그럼에도, 적적한 생활이다.
“부인! 제가 왔습니다!”
“힐다!”
그래도 찾아오는 몇 안 되는 손님 중 한 사람이 지금 이 브륀힐트, 힐다였다.
남편과 결혼한 뒤 하이델베르크에서 합창단을 꾸릴 때, 지역 유력 상인의 양녀라던 그녀를 단원으로 받아들여 함께 노래 불렀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것이 아름다웠는데!
“힐다, 난… 아직도 하이델베르크에서의 생활이 생각나. 평민은 너와 나밖에 없었어도 노래만큼은 우리가 가장 잘 불렀었는데….”
“걱정 마세요, 부인. 오늘 이렇게 수모의 나날을 보내더라도 마침내 올 내일에서는 다시 자유를 되찾으실 테니 말이에요.”
“다른 사람 눈치도 보지 않고 찾아와 주는 건 너뿐이니… 정말 별걸 다 털어놓게 되네. 미안해.”
“아녜요, 부인! 저도 이런저런 소식들을 전해 드릴 것들이 많으네요.”
“그래, 바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데?”
“잠깐만요, 부인. 제가 부인을 위해 바깥의 소식들을 적어 놓았지요!”
힐다는 그리 말한 뒤 소맷부리에 넣어 두었던 쪽지를 꺼내어 눈으로 훑는다.
―“소련 정보총국 제노바 지부에서 보냄. 필요에 따라 유출할 것.
클라라 토트에게 주입할 정보 목록
첫 번째….”
“음… 요사이 밀라노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소식 들으셨나요?”
작전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그 진행 사항은 ‘작전명 브륀힐트’라는 제목하에 암호화되어 제노바로 전달된다. 밀라노의 상황이 불안정하니 그 접선지도 옮겨 간 탓이었다.
그리고 브륀힐트의 작전 내용 보고가 도착했을 무렵.
마침, 제노바의 어느 뒷골목에서는 늙은 남녀가 서로에게 열정적인 키스를 날린다.
“이 바보 같은! 여기서 이러다가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러나!”
“으하하학! 이런 겁쟁이가 외도는 또 어떻게 생각하고 그랬데? 남자가 고작 이 정도로 담이 작아?”
“너야 잃을 게 없으니 그렇겠지. 나같이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은….”
“닥치고 안겨 있어, 내 사랑. 아무도 안 보고 있을 테니까….”
물론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뒷골목 한쪽 벽을 이루는 건물의 4층 창문에서.
그리고 그들로서는 결코 알지 못할 사실이 한 가지 더 있었으니. 본래대로라면 이 세계에 아직 존재해서도 안 될 ‘카메라’라는 물건이 목격자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찰칵. 찰칵.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나지 않았나? 작은 로켓 같은 걸 열고 닫는….”
“귀도 밝네. 난 못 들었는데….”
하지만 밀회를 즐기던 연인은 그런 가능성따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그 필름은 ‘브륀힐트 보고서’와 함께 제노바에 도착해 있던 함선의 화물칸으로 옮겨져 불쌍한 아라곤 귀족들의 고해 기록과 함께 피렌체로 향한다.
밀라노에서도, 시칠리아에서도, 로마에서도, 비슷한 경로를 밟아 정보들은 모인다.
모두 피렌체의 스페인 공화국 대사관 지하로 향한다.
“필름들은 밀봉한 채로 옮겨! 햇빛에 닿으면 안 돼!”
“밀라노에서 온 암호문들입니다. 일단 일차적으로 자료들은 정리들을 한 뒤에….”
“우선 시기별로 분류하십시오. 1478년 3월분부터 6월분까지 모아 놓고 묶어서 정리하세요.”
“알겠습니다, 로밀리 동지.”
“그리고 현재 시에나 쪽 정보 인력이 모자랍니다. 전쟁으로 인한 조직적인 피해가 너무 커서 정보의 해상도가 낮아졌으니 본국에 추가 파견 요청서를 보내죠.”
“네, 알겠습니다.”
사진 자료, 도청 자료, 작전 보고, 등등의 큰 분류로 우선 나누어진 자료들은 다시 아라곤, 피렌체, 우르비노, 페라라 등 국가별로 다시 소분류가 진행된다
각각 시기별로 라벨이 붙은 자료들은 다시 피사로 옮겨져 분기마다 대사관의 일상용품들을 공수하러 오는 소련 선박에 실려 스페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옮겨진다.
스페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정부 청사에서는 특별히 거리상 더 다루기 간편한 카스티야와 포르투갈, 북아프리카의 자료들이 더해진다.
여기서는 한 가지 작업이 더해지는데.
“사진 현상은 다 진행되었나?”
“네, 동지. 그런데… 어? 지금 여기 제노바에서 6월 7일 자에 찍힌 남자, 제노바의 차기 도제인 것 같습니다!”
“일단 사진 뒷면에다 라벨을 붙이고 기다리게! 내가 보고서로 정리하지.”
사진 필름들은 어두운 현상실에서 상을 얻어 가고. 피렌체에서 정리된 보고서들은 다시 분석되고 가공되어 움직인다. 로밀리 동지의 특별한 지시 사항이 있다면 해당 자료들은 따로 포장이 되고.
그렇게 스페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즉 피게이라 다 포스에서 출항한 정기 항행선은 적도를 넘어 대서양 남쪽으로 향한다.
희망봉을 돌아 잔지바르에 들러 아프리카 지부발 정보들을 인계받는다. 드막에 들러서는 태평양―인도양 지부의 자료들을 인도받는다.
그렇게 전 세계의 반바퀴를 돌아서 제물포로 도착.
그곳에서 한강변의 소련 정부 청사로.
암호화된 정보들은 다시 이곳에서 해독되고, 해독된 정보들은 다시 한 사람의 책상에 올라갈 정도로 간결하게 요약된다.
“국장 동지, 오늘 자 업무분입니다.”
―쿵.
물론 책상에 올라갈 정도라고 해도, 높이가 어른 팔뚝만큼 쌓인 서류는 사람의 기를 질리게 만든다.
“어머니가 나를 버렸어…. 어머니가 인민 위원이 되고 싶다고 나를 트로츠키 동지에게 팔았어….”
그러나 한숨을 쉰다 해도 어쩔 수는 없는 노릇.
이제 이 지긋지긋한 업무량도 생활화되어 버린 유자광은 하나씩, 하나씩 서류를 정리하고 결재하고 보고를 받는다.
“현재, 카스티야의 궁정에서 머무르는 페르난도 2세는 원래의 역사에서보다 훨씬 성격이 신경질적으로 변한 듯합니다.”
“어째섭니까?”
“카스티야 궁정에 살면서 아내에게 원래보다 훨씬 위축되기도 하였고, 또한 검술 달인인 자신의 실력을 드러낼 전장 일선으로 나가지를 못하니 스트레스가 계속 쌓인 듯합니다.”
“흠….”
거기에 시시각각으로 세계 각지에서 들어오는 전보들을 취합하고, 그 간략화된 전보에 세세한 자료들을 더해 맥락과 상황을 부여하며, 그를 소련의 세계적 대전략에 맞춰 편집하고 입으로 읊기 좋게 적당히 고치면….
“크흠, 여기까지가 소련 정보총국의 정기 보고 내역이었습니다.”
트로츠키와 이홍위의 앞으로 전달된다.
‘소련 연방 정보 회의’에는 원칙적으로 소련 인민위원장, 조선 국왕, 원산 인민위원장, 만주 수상, 외무인민위원, 극동인민위원이 한데 모인다.
그런데 이고납합이 일정차 참석이 불가해지고, 현직 소련 인민위원장은 트로츠키로서 원산 인민위원장과 겸직하고 있으니.
유자광의 앞에 앉은 것은 네 사람.
트로츠키, 이홍위, 신숙주, 스피리도노바.
“그래서 밀라노는 이미 함락이 되었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