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228
“서기장 각하, 지금 동쪽 성곽의 방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추가 병력을 투입해야 하는데….”
“내가 직접 지휘하러 가겠습니다.”
맞서야 하는가?
―“사보나롤라가 도시의 남쪽에서 동쪽 성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전보가 전달됨과 함께 로밀리가 창밖을 내다보자 마침 베키오 다리를 건너는 사보나롤라와 수백의 군세가 보인다.
공산주의자들과 공화주의자들이 섞여서 진군하니 적기와 피렌체기가 함께 휘날린다.
책상 밑에서 망원경을 꺼내 들여다보니 사보나롤라의 얼굴이 확대된다.
단단하게 굳어 있다.
‘피렌체의 정복자’라는 명성을 얻고자 달려오는 저 황제의 군세.
저들에게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승리,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부와 명예다.
그렇다면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에게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그는 무엇을 바라고 움직였으며, 또한 무엇을 위하여 달려왔는가?
공화주의자면서도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기꺼이 고개 숙였다. 심지어 그의 권력을 공화주의적 사상으로서 정당화해 주는 짓까지 서슴치 않았다.
로렌초가 죽었을 때는 어떻게 했는가? 모두가 로렌초를 참주라 비난했던 옛날의 기억을 지워 버리고, 그를 공화국의 순교자로 날조하여 거대한 벽화까지 바쳤다.
배신하고, 속이고, 기만했다. 그의 정치적 행보란 그랬다. ‘예언자’라기에는 다른 정치가들과 퍽 다르지 않은 행적이었다.
그리고 그는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전투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
공화국을 위하여 달려 나간다.
* * *
“서기장 각하! 도착입니다!”
어느새 동쪽 성벽이 가까워진다.
과연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대포를 쏘았다더니, 성벽은 크게 무너졌고 인간의 몸이 흙덩이와 함께 나뒹군다.
저 멀리 성벽의 보수를 맡고 있던 어느 젊은 기술자가 달려온다.
“서기장 각하, 보시면 아시다시피 성곽의 상황이 심히 좋지 않습니다. 지금 벌써 많은 병력들이 성벽을 넘어 아군 병사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해결책은?”
“성벽에다 진흙을 덧쌓아서 포격으로 가해지는 충격을 버텨 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허나 이곳이나 다른 많은 성곽들에 그러한 방편이 완전히 적용되지 않아….”
―쾅! 콰라륵!
―우와아아아아!
폭발음과 환호성에 기술자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사보나롤라는 기술자에게 큰 소리로 외치듯 말했다.
“시간이 필요한가!”
“그렇습니다! 지금 황제군이 이곳에 집중하는 동안 다른 성벽들을 보강하면 될 것입니다!”
“자네 이름이 뭔가!”
“빈치의 레오나르도입니다!”
“그래, 레오나르도! 다른 기술자들에게 전하게! 지롤라모 사보나롤라가 이 근방에서 시간을 끄는 동안 작업을 속행하라고!”
“알겠습니다!”
사보나롤라는 달려 나가는 젊은이의 뒷모습을 본다.
“시간을… 끈다….”
대체 얼마나 시간을 끌 건가?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시간을 끄는 일이 고작, 피렌체의 공화정이 처절히 파괴당할 운명을 유예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어차피 결과가 패배와 죽음이라면?
그렇게 잠시 회한에 잠겨 있는 사보나롤라의 앞에 칼을 들고 달려가는 병사들이 보인다.
“인류의 해방을 위하여!”
“피렌체의 자유를 위해!!!”
…아니다. 질문이 틀렸다.
그 운명에 무슨 의미를 가지게 해야 하는가?
주님께서 나를 이끄신다. 용기를 불어넣으신다.
자유와 평등의 왕국을 세우라고.
사보나롤라는, 칼을 뽑는다.
* * *
피렌체 시민들은 싸운다. 이곳이 그들의 조국이기에.
그러나 사보나롤라는 페라라인이다.
‘저는 조국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당신의 조국은 어디입니까? 페라라입니까? 피렌체입니까?
‘아뇨.’
다시 상상 속의 사보나롤라에게 되물어 보아도 그는 해답을 들을 수가 없었다.
당신이 헌신하는 바는 무엇인가? 씻을 수 없는 부덕의 영역에 걸어가면서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공화주의의 승리? 자유와 평등의 확대?
한낱 낱말들이 아닌가?
포탄 소리.
로밀리는 창문을 연다. 재의 냄새가 섞여 온다. 고함 소리들이 들려온다.
이번에는 집무실을 벗어나 한 층씩 더 높이 올라가 본다.
업무 공간이 부족하여, 피렌체에서 할당받은 건물을 증축해 올라간 고층까지.
피렌체의 사방이 내다보이는 높이까지.
그곳에서 다시 로밀리는 피렌체를 내다보았다.
사보나롤라가 있을 동쪽을 보았다.
한낱 수사가, 저기에 서 있다.
* * *
우리는 이길 수 없다.
우리는 승리한다.
그 모순된 문장들을 속으로 새겼다. 분명 말도 안 되는 낱말들의 뭉치인데, 그 한 음절 한 음절이 사보나롤라의 심장 속에서 조화를 이룬다.
사보나롤라는 칼을 휘두르며 외친다.
“피렌체!”
“피렌체!!!”
이 도시의 이름을 외치자 피렌체 시민들은 화답한다.
사보나롤라는 한번 더 외친다.
“공화국!!!”
“공화국!!!!!”
화답하여 오는 소리 역시 커진다.
사보나롤라는 칼을 휘두르기를 멈춘다. 그리고 무너진 성벽께로 그 끝을 향하여 가리킨다.
황제의 신민과 공화국의 공민이 서로 뒤엉켜 싸우는 곳을.
“자유로운 시민이여! 싸웁시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자유를 위하여!”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사보나롤라는 달렸다.
시민군 역시 따라 달렸다.
석궁과 화승총이 발사되었다.
칼날들이 서로 엉켰다.
난전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죽였다.
“두려워 마시오! 우리는 견뎌 낼 것이오!”
다시 외침.
“우와아아아아!!!”
다시 함성.
이곳에서 적들의 진입을 최소화해야 한다. 여기에 너무 많은 전력을 쏟으면 다른 구역에 쏟을 인력이 부족해진다.
그렇기에 사보나롤라는 앞장서서 방어를 독려했다. 성벽이 무너진 틈으로 쏟아지는 황제의 병사들에게 석궁을 쏘도록 지시하였고, 성벽을 넘어온 이들에 맞서는 보병들 사이에 끼어, 전투를 독려하기도 했다.
사보나롤라가 직접 피렌체의 깃발을 쥐고 휘날리면 병사들은 열병에 걸린 듯 흥분하였다. 사보나롤라 역시 그러하였다.
마치 시에나의 시가전에서 그러했듯이.
사보나롤라가 서 있는 한, 사기가 꺾여 후퇴하는 병사는 없었다.
그렇기에 땀투성이가 되도록 달리고, 목이 쉬어 가도록 외치고, 소리 지르고, 깃발을 휘날리고, 구호를 외치고.
“아마 뭔가… 카리스마적인 군종 사제 같습니다.”
“저 사제 때문에 적들의 후퇴가 가로막힌다 이 말인가?”
당연하게도 노련 황제군은 그런 현상을 놓치지 않았다.
“그럼 저격하게.”
적확하게 심장을 노린 석궁의 방아쇠가 당겨진다.
화살 한 발이 어느 수사의 가슴을 꿰뚫는다.
한낱 수사, 예언자가 아닌.
만일 양심에 따라 행했다 하여 그를 예언자라 한다면 행하는 피렌체인 모두가 예언자이리라.
“서기장 각하!”
“서기장 각하께서 저격당하셨다!”
“막아! 각하를 확보해!”
피렌체의 깃발을 휘날리며, 스러지는 사보나롤라를 향하여 맹렬히 돌진하는 저들 모두가.
무산자 날품팔이들에게 귀족들의 땅이 나누어졌다. 시민들이 만든 법률에 따라.
이 도시에는 주님 외에 어떠한 군주도 없으리라고 선포되었다. 시민들이 발의한 헌장에 따라.
그들은 예언자다.
사보나롤라는 그들을 보았다. 서기장이 죽었다며 혼비백산하는 게 아니라, 분노와 열광에 차서 진격하는 그들을 보았다.
예언자는 승리를 자신했다.
그리고 새 한 마리가 날아오른다.
사보나롤라의 천천히 풀어지는 동공에 비쳐 보이다, 보다 높이 날아올라서 저 태양 가까이로 다가간다.
멀리 대사관의 난간에 기대 있던 로밀리는 무심코 그 새를 따라 시선을 돌리다, 태양 빛에 잠시 눈을 깜빡이니.
새는 사라져 있었다.
문득 로밀리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곳에 사보나롤라의 조국이 있었다.
* * *
/ 작가의 말
“야만적 지배의 악취가 모두에게서 풍깁니다. 그러므로 전하의 탁월한 가문이 정의로운 과업에 뒤따르는 희망과 용기로 임무를 맡으셔야 합니다. 그 깃발 아래에서 조국이 고귀해지고, 그 후광 아래에서 페트라르카의 말이 실현되도록 말입니다.”
지난 챕터와 이번 화의 소제목은 군주론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왔습니다.
드디어 이탈리아 회차 본편의 종막입니다. 오늘은 연참 없이 2회차 분량을 한 회차로 압축해 보았습니다.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일담―예언자들의 도시
죽음은 돌이킬 수 없다.
죽음이 불러오는 분노 또한 그렇다.
무엇보다도, 죽은 자는 더럽혀질 수 없다.
그렇기에 순교자란 폭탄과도 같다.
그를 파묻으려 하는 모든 세력에게 영원한 폐허를 안겨 주는 존재.
“피렌체를 공성하는 군대에 공세 중지를 급히 명령하였습니다. 또한 휴전을 위한 사절을 보내었으나 대부분 답을 얻지 못하고 돌아오거나….”
돌아오지 못했겠지.
황제는 문장관이 얼버무린 바에 대해 쉬이 짐작해 낸다.
“그래서 전쟁의 양상은? 피렌체인들은 공세 중지에 어떻게 반응했나?”
이번에는 다른 부관이 답해 온다.
“격분한 피렌체 시민들이 후퇴하는 아군에게 맹렬하게 포격을 날리고 별동대를 보내는 등 호전적으로 나오니 피해가 매우 컸습니다. 그 과정에서 휴전 시도를 납득 못 한 용병들은 명령을 어기고 교전을 이어 가서….”
“휴전은 물론이고, 심지어 전투의 일시적인 중지도 이뤄지지 못했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아직도 피렌체는 전투의 와중이란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이 소식이 이미 피렌체 전역으로 퍼졌을 것이고, 그렇다면 못해도 이탈리아의 3분의 1은 사보나롤라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개중에 특히 밀라노와 시에나는 어떻게 될까?
폭동, 대규모 폭동과 반란.
특히나 밀라노의 통제는 일부러 피렌체와의 대화를 염두에 두고 느슨하게 해 놓은 채다.
게다가 시에나 일부를 장악하던 아라곤군 역시 슬슬 성을 빠져나와 로마로 회군하고 있고.
치솟는 불길을 진화할 도리가 없다.
손쉽게 상상할 수 있는 공포스러운 각본들이 황제의 머릿속에서 펼쳐졌다.
아니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고작 폭동과 반란이 아니다.
심지어 피렌체를 장악하는 데 영구히 실패하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 그 자체도 아니다.
“다시, 아니 계속, 끊임없이 피렌체에 휴전 의사를 표현해 보라고 하게. 거절당하면 거절당하는 대로 무시하고 다시 보내고, 설령 사절이 실종되거나 살해당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게.”
“하지만 용병들은….”
“그깟 놈들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게!”
만일 한 수사가 그의 궁정으로 와서 주인이 없는 공화국이니, 자유와 평등의 왕국이니, 하는 이야기를 했더라면?
그런 바보쯤이야 황제는 쉽게 쫓아낼 수 있었으리라. 한낱 수사 따위니까. 귀족이라고? 조부가 궁정 의사라서? 우습지도 않다.
그러나 그 수사가 지금 황제의 군세와 맞서 싸우다 죽었다. 수만 명이 그의 죽음에 울부짖으며 기도를 올린다.
그 수만이, 앞으로 다가올 수십만, 수백만을 품고 있다.
이미 죽인 적은 다시 죽일 수 없다. 사보나롤라는 공화주의자들의 기억 속에서 전설이 되고 불멸이 되리라.
이제 피렌체는 손쓸 수 없는 불길이 되었고 이미 유럽 전역에는 그 불씨들이 퍼져 있다.
“빌어먹을….”
황제는 안면 근육이 뒤틀어지는 것을 느낀다. 눈의 핏줄이 다 터져 버릴 정도로 힘이 들어간다.
문 바깥의 호위병들은 온갖 집기들이 깨뜨려지고 부숴지는 소리를 듣지만, 품위를 지켜 아무 내색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곧 만신창이가 된 황제가 그 문을 벌컥 열고 나왔을 때는 모두가 당황한다.
“교, 교황 성하께서 계신 곳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