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247
내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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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양고무(商羊鼓舞) (2)
남경의 황제로부터 온 밀서.
조선은 이제 자주국이니, ‘무언가’를 묵인해 달라. 그 무언가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논의가 오갔으나 역시 ‘북벌’이 아니겠냐는 의견이 주류였다. 만일 그렇다면 북조를 지원할지 모를 조선과의 관계를 정리해 두겠다는 의도일 것이고.
어차피 국력에 있어서도 명의 군력이나 경제력이 조선과 소련의 것을 넘볼 수는 없겠지만 이는 마지막 남은 명분상의 허울조차도 벗어 버리는 결과를 낳으리라.
허나,
“전하, 북경에도 천자의 조정이 있어 천조(天朝)가 둘로 나뉜 지 벌써 햇수로 스무 해가 가까워졌습니다. 천하가 오랫동안 나뉘었으며 이제 남경의 성화황제가 북경의 홍치황제보다 특별히 더 강성하다 볼 수 없나이다.”
조선에서도,
“국왕 동지, 북경의 조정과 조선의 관계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소련에서도 이홍위에게 물어 오는 바가 있었다.
중국은 지금 하나가 아니다. 황제도 둘이고, 조정도 둘이며, 고로 그들의 입장과 의견 역시 둘로 갈라진다.
그렇다면 북조에서는 조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 것인가?
지금의 홍치황제, 그때의 주첨선은 소련과 조선을 동경하여 심지어 자본론까지 받아 들고 희희낙락 돌아갔었다.
조선과 같이 명의 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의지를 품고 이런저런 개혁도 감행하였다 한다.
허나, 남조와 마찬가지로 어느새부턴가 공적인 교류는 끊기기 시작한 지 오래. 조선이 북조에 지급하기로 한 조공 역시 언젠가부터 굳이 받지 않는다.
그런 황제가, 조선이 자주국 선언을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아마 별다른 조치는 취하지 못할 것이오. 취할 생각이 있을지도 나는 의문이오.”
“그렇기야… 하겠군요. 그대로 기록하겠습니다, 대군주 동지.”
반쯤 몽골의 속국으로 숙이고 들어간 처지이니 엄연히 몽골과 대등한 동맹국인 조선 및 소련에 대적할 수야 없고.
그나마 이익을 얻을 방책이라면 (옛) 봉신국에게 고개 숙인다며 남조를 대대적으로 비난하고, 그로써 내부적인 지지를 끌어모으는 수밖에 없을 텐데.
문제는 이미 몽골의 카간을 형으로 모시는 북경의 홍치제가 뭐라 말을 더하면 세간의 조롱밖에 더 받겠는가.
거기에 황제의 조선에 대한 개인적인 흠모를 생각한다면 더욱이 가능성은 작아진다.
마지막으로, 조선인들이 보기에는 명분상 남조의 황제가 보다 ‘정통’에 가깝고. 북조의 경태제와 홍치제는 수양과 안평을 떠올리게끔 하는 찬탈자다. 북조보다야 남조의 의사가 국내적으로는 조금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정통 황제는 용인하였고, 비정통 황제는 애써 외면하리라 한다면.
“대군주 폐하 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그 과실은 받아먹을 수밖에.
개국 이래 명과의 사이가 좋았던 적이 그리 많던가? 전쟁 직전과 무던함 사이를 오갔을 뿐, 저 국서의 미사여구들처럼 지성으로 섬겨 온 번방과 자애로 다스린 종주국의 관계였던 적이 있기는 한가?
그래도 어딘가 께름칙한 기분을 느끼던 이들 역시 호칭 개정이 현실화되자, 별수 없이들 만세를 불렀고. 대부분의 조선인은 그런 거리낌도 없이 마음 놓고 기뻐하였다.
자주국의 예에 따라서 직제도 일신된다. 호조는 호부로, 판서는 상서로, 왕비 전하는 왕후 폐하로 바뀌었고, 그 외 문무백관들의 호칭이 변개되었다.
때문에 관료들이 새 직책명들을 외우느라 중얼거리며 걷는 모습이 한동안 흔했다.
외교 관행에도 변화가 생겼다. 특히 몽골과의 관계에서 그런 점이 두드러졌다.
“대조선국 대군주 폐하께 삼가 인사드립니다. 두 나라의 교린함이 오래되었고 그 우애가 두터워 가는데 이렇게 조선이 자주하는 예를 세우니 아국에서는 기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대원국과 대조선국 사이에 언제나 지금까지와 같은 신의와….”
그간 몽골과의 외교 관계에 잔존하던 모순들이 해소된 바는 고무적이었다.
대원국 카간 또는 ‘황제’가 대조선국 ‘왕’과 동등한 위치이며, 다시 대원국 카간은 대명국 황제의 형님이다. 한편 대조선국 왕은 대명국 황제의 신하라.
이렇게 기괴하게 뒤틀려 있던 서열 관계가 정리된다.
지난 20년 동안 애매하게 눙쳐져 왔던 의전과 전례의 문제가 남조 황제의 밀서와 함께 완전히 해결되었던 것이다.
첫 번째로 오간 몽골과 조선 양국의 사신은 그러한 호칭과 관례 정리, 그리고 송축을 위해서였다.
몽골의 카간과 조선의 대군주는 이제 어떠한 걸림도 없이 형식상에서도 대등한 지위를 정립했으니, 거기에 대한 축하 사절은 마땅했다.
허나 조선은 생각한 것보다도 성대한 규모의 사절단에 꽤나 놀랐고, 그 면면 역시 첩보를 통해 들려오던 거물들이었던지라 긴장하였다.
두 번째 사신은 몽골에서만 보내었을 뿐 조선에서는 특별히 보내지 아니하였는데, 역시나 사행의 규모든 화려함이든 격식이든 간에 힘을 준 게 명확히 느껴졌다.
“저희 폐하께서 대군주 폐하를 위하여 갖은 선물들을 준비하였으니 부디 우애롭게 받아 주시기만을 바라옵니다.”
“우방과의 절친한 사이를 이리 다시 확인하니 기쁘도다. 짐과 조선 또한 마땅히 그대들을 정성으로 맞을 것이다.”
헌데, 이상했다.
분명 사행을 온 이들은 지난번처럼 고관들이다. 또한 그들이 가져온 재물들 역시 호화롭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렇게 공을 들인 사절단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니….
딱히 없었다.
과시? 몽골이 조선에 부로써 과시한다니 개가 웃을 일이다.
압도? 지금은 슬슬 마무리되어 가는 동유럽 정벌에서 조선과 소련이 제공한 기관총 부대를 빼놓을 수 있던가?
신숙주와 성삼문, 박팽년과 하위지가 열심히 달라붙어 그들의 저의를 캐내려 하였으나 별다른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단지 그들의 태도가 심히 조심스러우며, 이상하리만치 주위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 빼고는.
“어쩌면 정말 그저 정탐이 목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탐의 목적은 뭐란 말인가?”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폐하, 분명하지 않사옵니다.”
민신처럼 해당국 조정의 심장부까지 파고들어 간 ‘슈퍼 두더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유럽처럼 공들여 조직과 정보망을 구성한 것도 아니니, 몽골 내 첩보는 다른 데 비하면 신통치 못했다.
결국, 영 찝찝한 심정으로 몽골의 사절을 되돌려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로 조선에 도착한, 1480년의 몽골발 사절단은 느낌이 달랐다.
전날보다도 더한 화려함 속에, 엄숙함과 긴장이 있었다.
그들은 지난번에 이홍위로부터 받은 서신에 대한 답서를 펼친 뒤 몽골의 카간이자 루스의 차르, 그 외 기타 등등 지역의 수호자이자 술탄이신 에센 폐하를 칭송하였다.
그들의 장광설은 지난번 사행길에서 들려준 바에 대한 답서를 슬슬 넘어서기 시작하였다.
이런 자리에서는 미사여구와 전주가 길고 화려할수록 그 내용이 중대하기 마련이기에, 길게 이어지는 주절거림 속에서도 조선의 백관들은 긴장으로 손에 땀을 쥐었다.
마침내 그들은 의중을 드러내니….
“이번에 아국의 황상께서 점차 기력의 쇠함을 느끼시었으므로 황태자 전하께 드디어 대원국의 대업을 물려주려 하시니, 조선국에서도 사절을 보내어 함께 기쁨을 보태 주시기만을 삼가 바라옵니다.”
* * *
“국… 아니 대군주 동지, 이는 우연이 아닌 듯하옵니다.”
뭔가 입에 달라붙지 않는 ‘대군주’라는 호칭을 입에 담으며 신숙주는 지적하였다.
그리고 극동인민위원이자 전 예조판서 현 예부상서, 조선 최고의 외교 전문가이자 책임자로서 그의 의견은 모든 인민 위원과 조선 조정의 중신들에게 중히 여겨진다.
이홍위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짐 또한 그리 생각하였다. 대명국의 남조가 조선의 자주를 은밀히 선언한 일이나, 몽골의 카간이 제 자식에게 양위하는 일이나 어느 하나 작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렇게 시기를 가까이 하여 두 사건이 일어났음에는 분명 연유가 있을 터.”
“허면 대군주 동지, 무슨 일이겠습니까?”
“트로츠키 동지.”
물론 소련은 이제 신대륙에 똬리를 틀었다. 한 해마다 경기도만 한 영토가 소련의 강역으로 끊임없이 추가되고 있는 참이다. 천운이 따라 선주민 부족들과의 큰 갈등도 없었다.
허나 소련의 핵심은 여전히 조선반도다. 그곳에 소련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산다.
조선은 대륙의 정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명 남조와 몽골 사이에 어떤 교류가 있었으리라는 짐작이 서는 겁니까?”
“…내가, 아니 짐이 보기에는.”
이홍위의 답에 트로츠키는 늙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다. 수전증이 슬슬 오는지 손에 진동감이 있다.
“…어렵군요. 파악하기 어려운 몽골과 남조의 움직임이라니.”
“어찌 되었건 상황은 변하지 않소, 료바, 자네는 일단 본질만 보게.”
스피리도노바는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듣더니 외무인민위원의 자격으로 가만히 말을 던진다.
“동지 여러분, 우리 모두가 알겠지만, 몽골은 신생 세계 제국이오. 소련이 성립된 것과 함께 급팽창한 젊은 제국이고 그 카간 역시 본래 보르지긴이 아니었소.”
그렇다면, 이번 양위는,
“분수령이오. 몽골의 체제가 로마 제국처럼 수백 년을 견디느냐, 아니면 알렉산드로스의 것처럼 바스라지느냐의.”
남조와 몽골의 내통은 어떻게 보면 작은 문제일 뿐.
2대 카간으로의 성공적인 승계는 흥안령 산맥에서 폴란드 영토 일부까지 차지한 대제국의 존망이 걸린 문제다.
진시황 역시 기념비적인 제국을 건설했을지언정 그 이세 황제인 호해(胡亥)의 대에 무너지지 않았던가? 에센이 이렇듯 생전 퇴위를 결정한 것도 그를 염두에 둔 것일 터.
이번 양위가 성공적으로 치러지느냐, 새 황제가 될 황태자와 상황이 될 에센의 행보가 어떻게 이어지느냐에 따라 유라시아를 뒤덮은 제국의 미래가 결정되리라.
남조와의 관계나 중원의 역동은 그 거대한 변화의 일부고.
“그럼… 이번에 양위식에 참석하고 새 카간 즉위를 축하할 사절은 누구로 해야 하겠습니까?”
“그거야 뻔한 것 아니겠소, 성삼문 동지?”
트로츠키는 웃는다.
“사건이 사건이고 동맹이 동맹인 만큼, 우리 역시 최고위급 인사가 나가 보아야 하오. 내가 알기로는 지난번에 한양과 원산을 오갔던 사절 역시 몽골 제국 상서성의 고위 관료가 아니었소?”
“그 말이 맞소, 인민 위원장 동지.”
“감사합니다, 대군주 동지. 아무튼 이야기를 이어 가자면 우리 역시 최고위급 인사를 보내 몽골의 경사를 축하해야 할 것이오. 당연히 국가 원수들은 빼고, 그 외에 다양한 국내외 사무들이 바쁜 부서들도 제하고, 웬만하면 몽골어에 능숙하면 좋을 테고….”
트로츠키의 눈길이 불안하게 스치자 신숙주는 바짝 엎드린다.
“폐하, 신이 벌써 예순이 되어 노구에 병이 들었사오니 보다 젊은….”
“보다 젊은? 그리 나이로 제하면 남는 인사가 누가 있다는 말이오? 유자광 동지나 김종직 동지는 외교 전문가도 아니거늘.”
누군들 반기겠나. 수천 킬로미터를 이어지는 데다 제대로 된 도로도 없는 사행길을.
경의선을 타고, 다시 만주 내부의 철도를 통해 최대한 북상한다 하더라도 이 시대 기준 중늙은이에게 초원과 사막을 넘어 카라코룸까지 향하라니.
신숙주의 등을 식은땀이 훑고 지나간다.
20여 년 전. 일본행 선박에 올라타던 기억이 이마의 땀방울과 함께 알알이 떠오른다.
자신의 후들거리는 가느다란 팔다리와 고기반찬으로 열심히 채워 놓은 늙은 뱃살과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는 심폐 지구력을 생각하며,
한양과 카라코룸의 거리를 떠올린다.
직선거리로 약 2,200킬로미터.
“며, 명을… 받잡겠사오니….”
곧바로 이어진 사절 정사(正使) 거수의 결과는 전원 찬성이었다.
기권표를 하나 빼고는.
* * *
“폐하, 대조선국 및 대소련에서 예부상서 겸 극동인민위원을 맡은 신숙주를 사절로 보내온다 하옵니다. 아마 달포 안에는 도착할 듯하옵니다.”
당연히 사행단은 다수의 인원이 성대한 규모와 의례를 갖춰 나아가므로 그 진행 속도가 빠르지 않다.
그렇기에 그들이 보내오고, 또 카라코룸으로부터 다시 돌려보내는 필마로 드나드는 소식이 사행단보다 더 빠르게 도착한다.
그렇게 에센은 신숙주와 다른 소련인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들어올지를 머릿속으로 가늠한다.
카라코룸은 여느 때보다도 더한 성시를 누리고 있으니 이는 모두 만국 열방으로부터 달려오는 사신들의 물결 덕분이다.
수십에서 수백 명씩, 수십에서 수백의 나라로부터 몰려오는 귀족과 시종들의 무리는 모두 중개 무역으로 지탱되는 제국의 혈관에 직통으로 꽂히는 영양제 주사와도 같았다.
유럽으로부터, 오리엔트로부터, 인도와 페르시아, 중국과 남방 열도들, 그리고 소련으로부터.
말 그대로 세계가 제국의 탄생을 칭송하러 다가오고 있다.
그 사실에 약간의 전율과 만족감을 느낀 카간은 창가로부터 시선을 뗀다. 그리고 지친 듯 털가죽과 비단을 섞어 두른 의자에 주저앉는다. 이렇게 빠르게 체력이 빠지다니, 한창 대륙의 동쪽 끝부터 서쪽 끝까지 말달리던 젊은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
창가로부터 고개를 돌리자 페르시아 지역의 색 유리병에 두 사람의 얼굴이 비친다. 늙은 자신과 젊은 아들의 것이다.
이제 곧 만방의 축복 속에서 세계의 황제가 될 황태자 호루크다슨을, 자신의 적법한 후계자를 그는 바라보았다. 자신이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보다 훨씬 크고 위대한 것을 물려받을 운명을 타고난 아들.
젊은 오이라트 에센을 이 나라에 돌려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반쪽은 자신의 피가 섞인 젊은 아들을 주겠다.
이 나라가 영속하는 동안 가장 위대한 정복자의 이름 역시 영원토록 칭송받으리니.
“소련의 사절은 특히 우대하여 대접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네, 아버지.”
분명 몽골이 전 세계적 육상 교역로를 건설하면서 조선 및 소련과의 무역은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이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여전히 그 강고한 강철을 만들어 내는 기술력은 숱한 첩자들을 보내어 캐냈음에도 흉내조차 낼 수가 없다. 몽골의 군사력을 지탱하는 주된 요소가, 아직도 그들에게 의존한다.
거기에 그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줄었을 뿐, 소련의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소련과 거래되는 상품의 품목과 규모 역시 늘어나 그들이 몽골의 경제에서 차지하는 바는 결코 작지 않으니.
소련과의 혈맹이 결코 깨져서는 안 되는 수많은 이유 중 몇 가지만 생각하더라도 이미 그 관계의 중요성은 납득할 수 있다.
특히,
“앞으로 일어날지 모를, 네게 닥칠지 모를 모든 사태에 대비하려면 소련과의 우호선린은 계속되어야 한다.”
에센이 말하자 호루크다슨은 꿇었던 무릎을 펴고 일어선다.
어느덧 에센이 세계를 정복하던 나이대에 다다른 아들이, 자신을 내려다본다.
그가 새 시대의 카간이 되어야 한다. 제국을 안정적으로 이어 가야 한다. 설령 그를 위하여 에센 자신을 암살할지라도.
그래야만 제국과 에센 자신의 업적이 무궁히 빛날 수 있다면야… 노인의 얼마 남지 않은 수명 따위 하찮기 짝이 없는 대가다.
물론 호루크다슨에게는 아직도 에센이 필요하기에 그럴 일은 없겠다만.
“티무르의 자손들과 이야기는 잘 진행되고 있느냐?”
“네, 아버지. 예정대로 그 일대의 모든 왕이 소련 다음으로 화려한 무리를 이끌고 올 듯합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들이 이 무대에서 맡은 바를 잊게 하지 말거라.”
“제가 잘 조율하고 있습니다. 믿으시지요.”
“믿겠다.”
아들의 당돌한 답에 안도한 에센은 눈을 감는다. 의자의 등받이에 편히 몸을 기댄다.
곧 한 카간의 퇴위와, 한 카간의 즉위가 이어진다.
에센은 퇴위하고 곧 늙어 죽겠지만… 그가 만든 왕조가 그의 영혼의 일부를 싣고 이어지리라.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다.
이제 남은 준비물은 이 위대한 제국의 탄생을 위한
희생 제물뿐.
상양고무(商羊鼓舞) (3)
한양의 뒤에는 삼각산(三角山, 북한산의 옛 이름)이 자리 잡았고, 앞에는 한수(漢水)의 북쪽(陽)이라는 한양(漢陽)의 이름자에 걸맞게 거대한 물길이 흘러다닌다.
한양만 보면 알 수 있듯 조선 땅 사방 삼천리를 둘러보면 그 반은 산줄기가 이리저리 솟았고, 그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강과 시내가 여기저기에 뻗었다.
그러니 주위 세상을 더러 강산(江山)이라 부를 때 조선인들은 모두가 그를 자연스레 여기어 온 것이고.
허나 신숙주가 보기에 이곳 사람들은 자신들 주위를 일컬을 때 강산이라 이름할 수 없을 듯하였다.
머나먼 수천 리 길을 지나오면서 가장 눈에 많이 담은 것은 단 세 가지.
하늘.
초원.
그 사이 지평선.
그뿐이었다. 특히 지평선은 굴곡이 적어 부드럽게 요동칠 뿐 온후한 평탄함을 잃지 않았으니, 세상을 초록색과 하늘색으로 구분하는 그 얄따란 선 너머로 있을 카라코룸을 상상하며 신숙주와 사절단 일행은 나아갔다.
그 단조로움과 광막함.
그리고 그 정지한 듯이 광대한 자연 속에서 어떻게든 생동하려 움직이는 우마와 사람들. 단조로운 지평선을 역동시키는 거뭇거뭇한 점들과 같은 사람과 천막들.
그 광경이 이 제국을 상징하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