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252
“카스티야 여왕에게 서신을 보내야겠네.”
먼저 움직인 것은 교황이었다.
웃기게도, 교황이 온전히 의지할 만한 이탈리아 내의 건실한 대규모 군대라고는 반역자들이 불러온 카스티야의 파견군밖에 없었으니. 오히려 카스티야와 교황의 접점은 점점 더 많아지는 추세였다.
그런 상황에서 교황은 이사벨에게 일련의 유혹적인 선물을 보내기 시작한다.
그라나다의 술탄이 어떤 의중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가설들, 그의 군세가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한 첩보, 메시카에 있는 그의 강력한 경쟁자 후아나의 동태 등등.
모두 그에게 가장 귀중한 정보들이다. 개중에서도 이사벨이 우선 관심을 보인 것은,
― “후아나 데 카스티야는 연회와 초콜릿에 빠져서는 영지 관리도 휘하 관료와 남편에게 맡기고 있다 하니. 한시름 놓으셨소. 요사이에는 자신의 초상화를 수집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하오. 요새 신대륙에서 잘나가는 빈치의 레오나르도라는 작가가 지금 그의 여덟 번째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지.”
당연히 맨 마지막의 것, 자신을 제하면 가장 유력할 왕위 계승자의 정보.
“…첩보장, ‘라 벨트라네하’는 어떻게 되어 간다고 하였나?”
“최근 동태는 확실치는 않으나, 음주와 연회로 소일한다고 합니다.”
“지금 그 여자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건?”
“거기까지는….”
이사벨은 상상한다.
그 영리한 아이가 온 힘을 다하여, ‘난 방탕하다. 난 왕재가 아니다. 죽임당할 이유가 없다.’라고 외치는 꼴을. 남들 보란 듯이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진미들을 모아 놓는 모습을.
후아나에게는 자주 감시역을 붙이고는 했지만, 메시카의 최고위 귀족을 건드리기에는 아무래도 불안하니만큼 항상 사용할 수는 없는 방법이다.
그리고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아마 세계에서 가장 그의 동태에 관심이 많은 자신보다 교황이 먼저 그의 일상에 대한 정보들을 접수하였다.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정보의 진위 여부가 확인될수록, 교황의 의도는 확실해지고 그가 준 ‘선물’들의 값어치 역시 뛰어오른다.
교황은 이사벨을 충동질한다.
― ‘선교왕’의 그림자에 눌려 지낼 참인가? 새 업적을 세워야 하지 않겠나?
― 이베리아반도에서 무슬림을 완전히 몰아내었다는 위업은 어떤가?
이사벨은 한숨을 쉬었다.
거머리 같은 늙은이, 그 선물만큼은 고맙게 받겠다.
“그라나다가 곧 국경 마을을 습격할 듯하다.”
이사벨이 편지에서 들은 바대로 이야기하자 주위 기사들이 놀란다. 아마 저들 역시 낌새를 느껴 왔을 터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근방의 순찰을 늘리고, 추후 기회를 봐서 명분을 만든다. 언제든 타격할 수 있게 준비하라.”
레콩키스타(Reconquista)가 예비된다. 이번에야말로 이 땅의 무슬림 왕국들이 절멸되리라.
이는 시작일 뿐이었다.
교황은 남쪽을, 그리고 동쪽을 주시하기 시작한다.
물론 자신이 직접 동원할 수 있는 군사력은 하찮기 그지없지만, 프랑스나 스페인, 헝가리나 여타 이탈리아 국가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가능할지 모른다.
그의 계획에 황제 역시 묵인의 메시지를 보내온다. 아마 이탈리아 외부로 교황이 힘을 쏟을 때, 자신이 반도를 손에 넣겠다는 꿍꿍이속일 듯한데. 교황 역시 그를 눈감아 준다.
왕과 황제, 주교와 교황이 서로의 손을 불안하게 맞잡고 같은 방향을 주시하기 시작한다.
기독교 세계가 몽골의 침공 이후 새로운 구심점을 찾기 위하여 움직인다.
지난 200년 동안 잃어버린 고토에 대한 이야기들이 교황의 연설에 자주 언급되기 시작한다.
곧 온 유럽의 거리에서 한 낱말이 주문처럼, 유령처럼 떠돌아다닌다.
십자군.
다시 신앙의 전쟁이 시작될지 모른다.
위대한 제국이 멸망하리라 (1)
전쟁을 준비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무엇일까?
우습게도, 바로 전쟁이라 할 수 있겠다.
이미 사회의 제도가 전쟁과 그 후처리에 알맞게 짜여져 있다면, 또한 다년간의 실전 경험으로 숙련된 병졸들과 지휘관들이 온존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정복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오늘날 이 지구상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뛰어난 정복자들, 전쟁 기계들은 바로 몽골인들이었다.
지난 백여 년 동안 초원에서 싸움은 끊이지를 않았고, 다시 지난 20여 년 동안 푸른 늑대의 자손들은 강역을 넓혀 나가기에 바빴으니.
이곳에 선 젊은이들은 그 아버지 대, 할아버지 대부터 이미 전사의 피와 영혼을 이어받은 셈이었다.
반쯤은 황량함으로, 반쯤은 시원스러운 광활함으로 묘사될 수 있을 법한 평원에서 아락투무르는 칼을 뽑아 들었다.
“너희가 예케 몽골 울루스의 병사들인가?”
“그렇습니다!”
수천 명이 외치고, 수만 명이 동시에 소리 지르자 그 압도감에 모두의 신경 세포가 흥분으로 날뛰었다.
아락투무르는 기분 좋게 퍼져 나가는 흥분감을 되새기며 다시 외친다.
“너희가 요동의, 티베트의, 중국의, 루스의 정복자들인가?”
“그렇습니다!”
“너희가 그 패배해 본 적이 없다는 군세인가!”
“맞습니다!”
“이번에도 승리할 것인가! 카간의 영토를 드넓히고, 이 땅에 다시 제국에 대한 경외심과 복종심을 불어넣을 것인가!”
“우와아아아아아아!!!”
마지막은 대답 대신 함성이었다.
모두가 칼을 뽑아 들고는 카간에게 충성과 승리를 맹세한다.
그리고 갑주를 차려입은 현 카간 호루크다슨이, 단상 위에서 그들의 충성 맹세를 지켜보고 있었다.
모두가, 제국의 가장 엄선된 장수와 병사들이었다.
“폐하, 폐하의 군세가 갈라져 나간 몽골의 후예들을 규합할 준비를 마쳤나이다.”
우선 폴란드의 왕이자 요동과 유럽의 정복자로서 위명을 떨친 아락투무르가 총사령관을 맡았다.
그는 제국의 극적인 확장기 동안 요동의 총관, 즉 점령지의 뒤처리꾼이라는 그닥 화려하지 못한 직책으로 경력을 시작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조선과의 교역로를 지배하는 이로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던 것이다.
그러다 요동 일대가 만주국으로 독립해 나가고 나서는 폴란드의 상징적인 왕으로 봉해져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
다시 이번에도 소련 측이 관리하는 루스에서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유럽인들에게서 끌어모은 약탈품과 귀족들의 몸값으로 떼돈을 벌었다.
그는 오늘날 카간을 제하고서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또한 이런저런 전투에 참여함으로써 군사적 업적 역시 넉넉하게 쌓아 놓아 그 명예와 위신도 무시할 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그런 그도 이제 백발이 성성하고 선황 에센 칸과 같이 늙었으니.
전장을 직접 나돌아다니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전장의 큰 작전을 짜고 지휘하는 데는 빠지지 않으리라.
“에센 칸 만세! 호르크다슨 칸 만세! 몽골의 영광을 위하 싸워라!”
“몽골 만세!!!”
그의 옆에 서서 군사들을 선동하는 인물은 카간 호루크다슨의 외사촌, 에센의 여동생과 타이순 칸 사이에서 나온 자식인 마르코르기스. 서른을 넘지 않은 젊은 장수다.
몽골의 것이 아닌 듯한, 그 독특하고 이국적인 이름은 마가복음의 저자 성 마르코에게서 따온 것이었다. 보르지긴의 자손이니, 합치면 보르지긴 마르코르기스.
그 역시 에센이 견제하던 황금씨족의 일원이고 아버지가 에센에게 살해당하기는 하였으나, 너무 어릴 때인 데다가 에센과의 혈연관계 때문에 아버지와 운명을 같이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에센의 위상이 점차 드높아지는 가운데 옛 카간의 혈통인 그는 포섭 1순위 대상으로서 에센과 함께 다양한 전장을 나돌아다니며 실전 경험을 갈고닦았으니. 그야말로 새로운 몽골과 함께 자라온 새로운 시대의 장수였다.
그 외에도 펄럭이는 수많은 깃발 가운데 익숙한 얼굴들이 더 엿보인다.
“루스인들이여! 그대들의 차르에게 봉사하라! 위대한 차르께서 티무르의 후예들에 대한 정복전을 명하시지 않았더냐!”
한때 모스크바 대공의 고귀한 공자였으나 이제는 오랜 전쟁 가운데 예케 몽골 울루스의 장수로서 활약하게 된 이반 바실레비치 류리코비치.
트로츠키가 조선으로 오지 않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는 ‘이반 3세’라는 왕호를 달고 러시아의 하얀 차르가 되었어야 할 자.
원칙대로라면 루스의 이런저런 공국과 대공국들이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흡수되는 과정에서 일개 시민이 되었어야 했겠지만, 귀족 작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루스인 귀족들과 함께 몽골로 귀화하였다.
지난 유럽과의 전쟁 가운데 그들은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하여, 다른 몽골인 장수들보다도 먼저 뛰쳐나가 적들의 목을 베었다.
그런만큼 유럽에서는 더러운 배교자, 이교도의 개라는 온갖 멸칭을 얻었지만 반대로 몽골에는 신뢰할 만한 충신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그들은 이제 의심의 여지 없는 몽골 제국의 일원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반을 필두로 다시 한번 몽골의 깃발 아래 모여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 외에도 제국 각지에서 모인 다종다양한 이들이 수많은 깃발을 휘날리며 승리를 부르짖는다. 왜 몽골이 세계 제국이라 불리는지 알려 주겠다는 듯 그 종족적·문화적 구성도 다양하다.
선황 에센은 아들의 권위를 위하여 일부러 출정식에 참여하지 않은 만큼, 호루크다슨 칸은 할 수 있는 한 근엄한 자세로 그들 앞에 나서서 명했다.
“내게 승리를 가져오라.”
그와 함께 몽골 제국의 푸른 깃발이 바람을 맞아 휘날리기 시작한다. 마치 계시처럼.
곧 카간의 단 한마디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수천수만의 말발굽이 초원을 내달려 나간다.
소련의 세계 지도에서 몽골의 푸른색이 얼룩처럼 번져 나간다.
* * *
아부 사이드 무함마드 미란샤 티무르, 짧게는 아부 사이드.
아불 하이르 칸이 이끄는 우즈베크족의 도움을 받아, 선대에 분열되었던 티무르 제국의 강역 상당 부분을 재통합한 티무르 제국의 중시조.
그러나 본래대로라면 훨씬 더 뻗어 나갔어야 했을 그의 강역은 동맹 아불 하이르 칸과 우즈베크족의 칸국이 에센에 의해 지구상에서 ‘삭제’되면서 어느 정도 수준에서 멈추게 된다.
그런 와중에 백양 왕조를 일으켜 세운 당대의 명장, 위대한 군주 우준 하산에게 아부 사이드의 목이 잘리면서 티무르 제국의 분열은 점입가경으로 펼쳐지게 된다.
가장 큰 세력을 쥔 것은 페르시아 땅 상당 부분과 호라산, 헤라트 일대를 장악한 후세인 바이카라지만 그 역시 지방으로 넘어가면 술탄의 명령이 닿지 않기 시작한다.
곳곳에 아미르(أمير, 사령관 또는 토후 또는 왕 등을 의미하는 말)니 술탄이니 자칭하는 이들이 아버지의 대까지도 토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던 것이다.
후세인 바이카라 스스로 역시 아부 사이드가 사망한 뒤에 호라산의 통치자가 된 티무르 왕조의 자손이었다.
거기에 아무다리야강 북쪽의 땅에선 후세인 바이카라의 형제들이 저마다 땅을 차지하고서 아예 독립적인 국가들을 건설해 버린다.
아부 사이드의 장남인 아흐마드는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소르를 장악했고 그 외에도 많은 황족들이 마을과 마을을, 도시와 도시를 서로 떼어다가 자신의 지배하에 두었다.
더 이상 통일된 티무르 제국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에 술탄 후세인 바이카라가 야심을 품고 여기저기를 정벌하기 시작하니, 티무르의 다른 자손들은 셈이 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젠장, 이대로 가면 저 망할 호라산의 술탄에게 모두 잡아먹히게 생겼소.”
“어떻게 해 볼 수는 없겠는가? 다른 세력을 끌어들이다든가.”
“…사실 얼마 전에 몽골로부터 사신이 오기는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요. 복속을 요구하기에 일단 재물만 주고 잘 달래어서 돌려보냈는데….”
“지금 우리가 기댈 데가 달리 있는 것도 아니잖나? 뭘 그리 따지고들 있나!”
마침 돌아온 카간의 양위식.
몽골에서 재차 방문해 온 특사들과 사전에 합의한 뒤, 그들은 몽골 제국의 카간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군대와 영지를 바쳤다.
사실 티무르의 후예라는 명분 하나로만 독립 정권을 유지하기는 버겁기 짝이 없는 일이다. 언제 반란이나 토벌이 일어나 자신의 목에 칼이 들이대어질지 모르는 법이 아니던가?
그러나 세계 최강이라는 몽골 제국에 항복하고 그 안에서 자치권을 인정받는다면 상황은 훨씬 나아진다.
이렇게 앞장서서 몽골에 복속을 요청해 온 지역들, 처음에는 복속을 거부하다 막상 정복자들이 코앞까지 나서자 마음을 돌린 영지들.
이런 곳들을 차근차근 장악해 나가는 것이 몽골의 우선적인 전략이었다.
제대로 된 전투조차 없었다. 몽골군이 도착하면 성문이 열리고, 제국의 깃발이 꽂힌 뒤에 다시 이동하는 게 전부였다.
당장에라도 양 제국 사이에서 피 튀기는 혈전이 일어날 것 같던 분위기는 잠잠해지고 지루한 점령과 점령이 이어진다.
“…이거 혹시, 전쟁 안 나는 것 아닙니까?”
거기에, 잔뜩 촉각을 세우고 있던 소련 역시 대번에 긴장감이 풀어진다.
* * *
잠잠한 몽골 쪽과는 별개로, 거대한 군세의 움직임에 바짝 긴장하고 있던 오스만의 움직임은 기민하고도 급박했다.
“카라마니 메흐메트 파샤는 나와 함께 움직이라. 다른 이들은 남쪽과 북쪽으로 우회하여 적을 포위한다.”
“예, 폐하.”
군 지휘관으로서 메흐메트 2세는 직접 갑옷을 입고 군마에 올라 전장으로 나아갔다. 때로는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젊은 시절처럼 직접 칼을 휘두르고 싸움에 나서기도 했다.
그리고 파디샤의 군세는 승리했다.
메흐메트 2세의 천부적인 군재의 덕택이기도 했지만, 백양 왕조는 명군이던 우준 하산의 죽음 이후로 한창 분열기를 겪고 있었으니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오스만국의 군대에게는 쇠약한 적수였다.
“폐하, 저 앞으로 이틀을 더 가면 우물과 호수가 나옵니다. 여기서 식수를 구하러 후퇴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저 일대의 영주는 저와 막역한 사이이니 대화로 설득하면 쉽게 투항하여 문을 열어 줄 겁니다!”
“그럼 그대에게 맡기겠다.”
거기다 아버지 우준 하산에 맞서 반역을 일으켰던 장남 오그룰루 모하메드가 망명자로서 오스만군의 길잡이 노릇을 했기에 정복 작업은 훨씬 수월했다.
물론, 그렇다 하여 5만이 넘는 기병을 거느렸다던 우준 하산의 군세는 어디 하늘로 증발하지 않았다.
“술탄께서 저 망할 오스만인들을 죽이라 명하신다!”
“술탄을 위하여!”
제 형을 죽이고 자리에 오른 야쿠브 벡은 빠르게 전열을 정비하여 맞섰고, 각지에서 익숙한 지형에 기대 일어나는 기병 위주 게릴라도 오스만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팠다.
그렇게 몇 번의 격전이 일어났다.
허나 수백에서 수천에 달하는 말과 사람들이 한 지점에 모여 격돌하면 대부분 승자는 침공을 치밀하게 준비한, 심지어 선왕의 반역자 장자(長子)가 합류한 오스만 측이었다.
게다가 백양 왕조의 영역권이라 할지라도 몽골 새로운 정복지와 인접한 이들은 눈앞의 초토화를 보고 충격에 빠져 슬슬 오스만 쪽을 향해 슬슬 고개를 숙여 오니.
야쿠브 벡으로서는 즉위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닥쳐오는 이러한 순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형제와 친족들이 그렇게 몽골에 무릎을 꿇고 나자, 남은 야쿠브 벡의 잔당들.
그들은 각개격파되었다. 백양 왕조의 땅에 몽골군이 닿기도 전에 피가 흘러 흙을 적셨다.
* * *
그러나 대부분의 소련인들은 비교적 거리가 먼 소아시아의 소식보다는 우방국인 몽골의 역동에 더 크게 신경 쓰고 궁금해했다.
분명히 몽골의 군세가 점차 남하해 오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동원된 군의 규모가 생각보다는 크지 않았고, 또한 치뤄지는 전투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런 현상은 소련의 일반 인민들에게 어떤 착각을 낳도록 유도한다.
“이거, 잘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겠는데? 오만 호들갑은 다 떨어 놓고 말야.”
“망할. 술친구들이랑 어느 나라가 이기고 질지 내기도 걸었는데. 그대로 파토 나게 생겼군.”
어쩌면 언론에서 그리 시끄럽게 굴던 저 분쟁도 국지적인 무력 도발들로 마무리될 수 있다.
어쩌면 설레발이었을지 모른다. 세계 체제니 첩보 작전이니 하는 것도 전부 지나친 김칫국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인식이 대중들 사이에서 의심으로 화하여 퍼져 나간다.
“예상대로 진척되어 가고 있습니다. 몽골의 주변 우호 세력 흡수와, 오스만의 백양 왕조 정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단 그럼 일본 상인 점조직들은 그대로 활동을 정지시키게. 적당히 기회를 봐 가면서.”
반대로 지도부는 당혹하지 않았다.
이미 전쟁의 전개 과정은 어느 정도 예측이 끝나 가는 수순이었으니 소련의 지도부는 잠자코 다음 작전을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대중들이 점차 무료와 권태감으로, “아무 일도 없는데 왜 신문에서는 맨날 오스만이 어쩌고 하는지…” 같은 이야기를 꺼내게 될 쯤.
“도, 동지! 첫 전투입니다!”
“드디어? 어떻게, 몽골군이 오스만군을 어떻게 이겼나? 아니지, 아니지. 승패는 어떻게 되나? 오스만군이 수적 열세에도 잘 싸우던가?”
헐레벌떡 달려오는 유자광을 보고도 트로츠키는 차분히 물었다. 그래, 꼭 몽골이 오스만에 승리를 거둔다는 보장은 없다. 메흐메트 2세는 명장이니….
“오스만군이 대승을 거뒀습니다.”
“호, 의외의 결과로군. 그렇다면 생각보다 몽골군의 서진이 늦춰지겠….”
“카간이 목숨만 겨우 건져 달아났습니다!”
“…뭐?”
속속들이 들어오는 첩보에 소련의 정보부는 경악을 금치 못했고, 곧 외무인민위원회에서는 민간에 보도 자료를 배포한다.
모든 신문의 헤드라인에 전쟁의 향방이 큼지막하게 박혀서 인쇄되어 나왔고, 나오는 족족 매진이었다.
―‘몽골 대패! 메흐메트의 위대한 승리!’
―‘메흐메트 2세, 칼리프 즉위 선언! 몽골 제국을 이단으로 선포!’
소련을 감싸던 권태는 그렇게 순식간에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