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40
그날 신료들은 징계 3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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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사라진 창공 (2)
“···자네, 술 혹시 있나?”
“없습니다.”
“그러면 뭐 종이 같은 건 가지고 있나?”
“귀한 종이, 정부에서도 없어서 힘든데 제가 어떻게 갖고 있겠습니까?
그리고, 있어도 못 드립니다. 인민위원께서 저한테 몇 번씩이나 부탁하셨단 말입니다.”
“제발, 딱 한 번은 봐줄 수 있지 않나?”
“로 동지가 신숙주 동지께 그런 말을 들으면 이렇게 전하라 했습니다.
‘믿을 것 같냐?’”
호위병의 말에 신료들은 다시 식탁에 엎어져서는 배달되어 온 아침식사를 입에 깨작깨작 집어넣을 뿐이었다.
숙소에서 몰래몰래 즐기던 지난 밤의 술판에, 노름판까지 싸그리 들켜버린 뒤다.
그 날, 신료들은 징계 3개를 받았으니···
술 금지, 카드 금지, 사방에서의 감시.
그리하여 각자의 개인실은 사생활을 고려해 놔두더라도, 모두가 모이는 거실에는 저 호위가 하루 4교대로 꼬박꼬박 감시를 서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은밀한 음주도, 노름도 원천봉쇄.
징계 이후로 들이닥친 짐 검사 때문에 보따리 한 구석에 꽁쳐둔 술이나 카드도 모조리 빼앗긴 상태다.
그 덕에 신료들은 모두 지루함에 돌아버릴 상태까지 다다랐고, 이에 대한 불평을 쏟아내려고 하니···
“지루하면 산보라도 잠시 즐기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뭐, 원산의 풍경이야 여러분 뵈시기에 살풍경하겠다만은.”
와, 이걸 어떻게 알았지? 불만사항을 이야기하려던 직전에 선수를 치고 나온다.
그리고 그 경호원의 공손한 말투에 겸비된 험상궂은 얼굴에, 신료들은 뭔가 말을 더 붙이려다 그냥 숙소 밖으로 나가버렸다.
“참으로···. 이곳은 선비들이 살기에 인심이 야박한 땅일세.”
“아마 이 근방의 산세가 험해서가 아니곘는가?”
그렇게 불평불만을 쏟아들 내지만, 주위의 호위(겸 도박 감시)병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거기에 질려버린 이들은, 시선을 돌려 원산 시내를 바라본다.
그리고 모두들 숨이 멎는다.
처음 그들이 원산에 왔을 때, 군악대를 동반한 환영식의 요란스러움과는 대비되게도 도둑처럼 원산 시내를 피하며 RMS 켈틱 1호에 승선해야 했다.
그 뒤로 멀리서 원산의 정경을 바라보면, 멀리서 보아 흐린 시야에는 무언가 항상 희끄무레하고 납작한 것들이 널려 있었다. 그들은 그것이 땅거미인 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이 원산에 상륙한 어제, 늦은 밤에 이동하느라 역시 도시의 정경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야 원산을 본다.
천하만물을 만들었다는 조물주가 편집증적이었더라면, 세상 산천이 모두 이런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제 몸으로 천지지간을 가득 채웠다는 반고(盤古)의 오장육부가 깍두기처럼 네모졌다면?
마치 세상이 바둑판이고, 신료들은 그 격자 위에 선 바둑돌이 된 듯하다.
“‘뵈시기에 살풍경하겠다만’이라··· 그렇기는 하구만.”
신숙주는 방금 호위가 꺼냈던 말을 떠올리며 눈앞의 이질적인 풍경을 서서히 받아들여본다.
회색의 네모진 집들, 크기와 가로세로 비율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 모두 똑같이 생긴 두부 같은 단층 건물들이 가로세로로 열을 맞춰 배열되어 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넓고 곧게 뻗은 도로가 보인다.
마치 어떤 거인이 제 먹을 두부와 묵을 이리저리 버려두고 간 듯한 모습이다. 어떤 장식도, 어떤 개성도 없이 집들은 나란히 늘어서 있을 뿐이다.
그것이 수백, 아니 수천 채.
규모가 주는 웅장함이 각 객체의 단순함을 압도한다.
“돌···인가? 아닌 듯한데? 나무에 회칠한 듯한···.”
박팽년이 꿈꾸는 듯한 말투로 중얼거리며, 방금 그들이 걸어 나온 숙소의 벽을 두드려본다. 텅, 텅, 하고 울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 뭔가 거칠고 묵직한 질감과는 이질적이다.
그리고 박팽년의 추측은 잠시 후 올리버 로가 와서 설명해줌에 따라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합판에 모르타르를 발라 만든 얇고 단단한 벽체.
제대로 된 접착제도 없이 급조하여 부실한 합판들. 그것들을 서로 끼워 맞추고 조립한 뒤, 상하지 말라고 모르타르를 칠하여 썩는 것을 막는다.
필요하다면 그 속에 단열재를 깔기도 하지만, 자원이 부족한지라 극소수의 건물에만 단열시공이 가능했다. 조선의 신료들이 머물던 곳에, 한기가 들어차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목재로 사용될 산림자원의 고갈을 최대한 막고, 최소한의 시간과 자원으로 대규모 주거공간을 확충하려는 시도의 산물.
“하··· 대단하군.”
이제 신숙주는 깨달았다.
궁벽한 어촌에 수만의 인구가 몰려들었다.
그런데 유랑하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 그 이유가 눈앞에 있었다.
단 1년만에, 수만의 집과 곧게 뻗은 도로들을 건설해냈다?
도대체 어떻게?
신숙주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머릿속에서 잡념을 지웠다.
신료들은 한동안 감탄하며, 그 기묘한 정경 속을 꽤 오랫동안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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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으으으음···.”
“저기 트로츠키 의장?”
“흐으으으으으음···.”
“의장?”
이홍위의 앞에서 트로츠키가 머리를 싸매고 무언가 고민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10분 전,
“···그런 이유로, 경제적 토대에 의하여 사회정치적 요소가 결정됩니다. 어느 정도 이해가 가십니까?”
“뭐, 대강은 짐작이 가는 듯하오. 예컨데 남의 땅 부쳐 먹는 농민들과 지주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가 나라의 기틀을 정한다는 것이 아니오?”
“맞습니다! 역시 가르칠 보람이 있게 영민하시군요.”
“헤, 과찬이시오.”
쑥스러워한다.
트로츠키는 머릿속 사전에 ‘조선국왕은 칭찬에 약함’이라는 내용을 추가했다.
아무튼 그렇게 강의가 이어지다가···
“의장? 여기서 질문이 하나 있소!”
“흠, 무슨 질문입니까?”
“여기··· 여기 이 부분을 읽어보면, ‘그러므로 봉건적 전제군주를 척살한 불란서(佛蘭西)의 자유주의 혁명은 부르주아지적 발전의 토대를 닦았다.’라는 구절이 쓰여있는데···.”
“크헉, 컥.”
“트로츠키 의장, 괜찮으시오?”
“아, 예. 괜찮습니다. 우연히 사례가 들렸군요.”
아니 어떤 미친 새끼가 교재에 저딴 내용을?
지금, 이 경연 시간에 신료들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심스러웠다.
자칫하면 정말 살해당하기 직전까지 갔으리라.
“···그래서 트로츠키 의장, 질문의 답은 무엇이오?”
“아 미안합니다.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했군요.”
“불란서 혁명 부분은 어느 정도 알겠는데, 노서아(露西亞) 혁명 부분이 납득되지 않소.
전제군주를 죽였다니? 그런 이야기는 지난 판소리에 나오지 않았었는데···?”
트로츠키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다시 10분 후.
“저기··· 그래서 질문의 답은 언제쯤 해줄 수 있소?”
“···답을 들으시기 전에 저와 하셔야 할 약속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우리의 처지를 생각해주십시오.”
“그럼, 알겠소.”
그렇게 트로츠키의 설명이 이어졌다. 수십 년을, 아주 간략하게.
시작은 러시아의 개괄적인 역사였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봉건제적 체제, 차리즘의 강대한 위세.
그리고 그 다음은,
“그때 차르의 군대는 총을 겨누고, 발사했습니다.”
피의 일요일.
차르의 초상화를 들고 ‘러시아 인민의 자애로운 아버지’에게 자신들의 고통을 전하려던 시위.
차르의 군대에 의해 러시아의 동토 위에 시위대의 피가 뿌려졌다. 그때 차르는 별장에 있었고, 별장에서 돌아와서도 그 사건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혁명이 이어진다.
2월 혁명, 그리고 같은 해 발발한 볼셰비키의 10월 혁명.
볼셰비키가 독일과의 종전을 선언하자 그에 반발한 반 볼셰비키 세력과의 전쟁이 발발한다. 적백내전의 시작이다.
그리고,
전쟁의 와중에,
“우리가 죽였습니다, 어느 오두막에서, 가족들까지 전부.”
모르겠다. 더 아름답게 이야기할 수도 있었겠으나,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 어린 아이에게는 최대한 진실하고 싶었다.
트로츠키는 설명을 대강 마무리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이홍위의 반응을 기다렸다.
두려워할까? 실망할까? 경멸할까?
이홍위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뭐가 문제요?”
“예?”
“천명이 이미 그를 떠나 있었다면, 그는 군왕이 아니라 한낱 필부(匹夫)가 아니오? 맹자께서도 탕왕(湯王)이 걸(桀)을 죽이고 무왕(武王)이 주(紂)를 죽인 것을 임금을 시해한 것이 아닌 필부를 죽인 것이라 하였소.
어찌 그것이 볼···새비키의 죄가 되겠소?”
그 말을 던지고, 이홍위는 무언가 쑥스러운 듯 일으켰던 몸을 다시 의자에 앉히고는 괜히 선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겨울 파도가 치는 바다가 보인다.
“···아마 제신(諸臣)들이 있었더라면 이리 말하지 않았겠소?”
“조선국왕 전하, 전하는 저와 소련이 두렵지 않습니까?”
“두렵소.”
그렇게 툭, 말을 뱉고는 다시 이홍위가 고개를 돌려 트로츠키를 바라본다.
“그러나 나는 저 바깥이 더 두렵소. 내 삼촌도, 신하들도, 조선이라는 나라도 이제는 믿을 수가 없소. 이제 나는 돌아갈 곳이 없소.
의장은 나를 해치지 않으리라 하였소. 이 곳은 나를 배신했던 그 모든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들로 가득 차 있소. 아직도 나는 소련이라는 나라가 알쏭달쏭하오.
그렇기에 나는 이 나라가 좋소. 나는 의장을 믿겠소.”
“···.”
잠시 ‘의장’은, 트로츠키는 말하기를 잊었다.
내가··· 언제부터 저 소년의 인생에 이리 깊숙이 들어와 버렸는가?
이래도 괜찮을까? 저자는 외국의 소년, 그것도 군주인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고맙습니다. 믿어줘서.”
그냥,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익숙한 것들이 소년을 배반했다. 가족들이 그를 죽은 사람 취급한다.
그가 도망쳐 와서 본 것은 낯선 도시, 낯선 나라, 낯선 사람들.
그것이 그를 어떻게 바꿔 놓을 것인가? 조선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그런 거대한 질문들보다도, 트로츠키는 지금 정적을 메우는 창밖 너머의 차가운 파도 소리가 더 신경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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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다음 순번으로 신료들의 가이드를 맡은 블레어가 활기 찬 목소리로 시설을 소개했다.
“여기가 중앙의료원입니다! 우리 소련의 가장 큰 자랑 중 하나죠! 수십 명의 전문 의사와 간호사들이 현지 조력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소련 인민들의 건강을 책임집니다!”
신료들은 의료원의 구조에서 뭔가 익숙한 느낌을 받는다.
“여기는 복도 양옆으로 번호가 매겨진 방들이 있는 것이, 마치 켈틱 호에서 머물던 때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어, 그렇습니까? 한번도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군요.”
신숙주의 질문에 블레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소개를 이어간다.
“크흠, 아무튼 엄밀히 말해서, 작금의 의료 수준은 참담합니다. 하지만 조선의 전통 의원들과 공조사업을 벌여 조선의 의약재와 민간요법에 대한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면서 재료와 장비의 부족을 극복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끄아아아악!”
“···물론, 마취약이 ‘조금’ 부족하기에 19세기 마냥 수술을 속도전으로 진행해야 하는 난점이 있다만. 그래도 발전된 의학기술이 저희가 이 지역의 민심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주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신나게 설명하던 블레어가 갑작스레 들려온 환자의 비명에 머쓱한 듯 덧붙였다.
“대체 저 환자는 무슨 병을 앓기에 저리 고통에 겨워하는 것입니까?”
“종기··· 그러니까 등창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가벼운 질환’이니, 아마 며칠 푹 쉬면 퇴원하고 잘 살게 될 것입니다!”
신료들의 얼굴이 꿈틀거린다. 좋다. 일부러 이들을 이 수술실 근처로 데려온 것도, 모두 중국학자들의 조언에 따른 결과였다.
이제 곧 반응이 올 때가···
“등창이 ‘며칠 푹 쉬면’ 될 만큼 가벼운 병이란 말이오!!”
“아니, 어찌 그럴수가 있습니까? 만약에 조금만 더 그대들이 일찍 왔더라면 문종대왕께서는···.”
“참으로, 참으로 원통할 수밖에 없구려. 만일 조선땅에 그대들 만한 의원만 있었더라도 이 조선이 이런 환란을 겪지는 않았을 터인데···.”
어,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강렬하다.
“아, 아닙니다! 제가 과장했군요. 아무리 저희가 종기를 절개하고 제거하는 기술이 발전했다 하더라도, 감염으로 인한 추가 질환은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차라리 고름이라도 제거하고 가셨더라면 그리 고통스럽게 승하하진 않으셨을 것을···.”
이미 블레어의 해명이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충격에 빠진 듯, 신료들이 중얼거렸다.
‘문종대왕만 살아계셨어도··· 김종서 류의 인사들이 그렇게 쉽게 정권을 쥐지도 못했을 것이고··· 대군들의 권세가 그리 날뛰지도··· 난이 일어나지도··· 팔자에도 없는 원산으로의 도망도···.’
블레어는 알아서 입을 다물고 신료들이 트라우마에 빠진 정신을 추스릴 시간을 주었다.
그렇게 신료들의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된 이후에야 안내가 재개되었다.
“여기, A구역 4번실로 들어와 주시죠.”
참 방마다 숫자 붙이길 좋아하는군, 하고 신숙주는 생각한다.
“이런저런 회의에서 자주 만났겠지만 서로 이야기할 기회는 거의 없었을 겁니다. 여기, 노먼 베순 박사와 에드워드 바스키 박사입니다! 우리 소련 의료계의 큰 지주인 두 사람이죠!”
“조선에서 온 귀한 손님분들을 환영합니다, 하하.”
“그래, 고맙네. 자네들 이름이 노먼 베순, 에드워드 바스키? 노먼이랑 에드워드가 이름이고, 베순이랑 바스키가 성이 맞나?” 이렇게 말한 것은 하위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