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tsky and our Joseon Royals RAW novel - chapter 80
그렇게 시간 야심해도록 기도를 올리던 에드워즈는 곧 피로에 차서 침대에 몸을 던졌다.
“하··· 자네 일처리를··· 이 따위로?”
그리고 기도는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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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코앞에서 조직이 이뤄지는데 통제를 못하면 어떻게 하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말? 자네 문제가 뭔 줄 아나?”
“예, 문제 많죠. 다 압니다.”
에드워즈의 대꾸를 들은 스탈린은 어디선가 튀어나온 안락의자에 앉아 등을 기댔다.
“그러면 한번 얘기해보게.”
“예?”
“자네의 문제가 뭐였는지 이야기해보라고.”
···개새끼 진짜. 꼽주기로는 트로츠키와 타이틀 매치라도 한번 떠봐야 하는 것 아닌가?
“자네 생각은 다 들린다니까.”
“이번엔 들으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럼 자네의 문제가 뭐였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하지 않았을까?”
“아오, 젠장···.”
문제라, 문제··· 내가 북청 수용시설을 운영하면서 저질렀던 실수와 문제들.
“우선, 시작부터 이야기하자면 만주족들을 계속 하나의 덩어리로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만주족이라는 분류는 결국 후대에 생긴 것이니 제가 착각하면 안 됐던 것이죠.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100년을 훌쩍 넘긴 뒤에야 나올 개념으로 지금의 사람들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의외로 지금까지는 괜찮네. 더 해보게나. 다른 문제는?”
“다른 문제는 말씀하신 대로 코앞에서 정치 조직이 생겨나는데 그걸 관리 못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냥 마르크스주의 독서 모임이라 해도 소꿉장난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뭐, 대단한 걸 해내겠습니까? 그냥 자기들끼리 책이나 조금 읽고 그럴 줄 알았지···.
책이나 열심히 읽다 이해 안 되는 거 있으면 물어오는 그런 귀여운 녀석들일 줄 알았단 말입니다. 그래서 시선을 떼 놓았더니만···.”
“그래, 그럼 자네의 문제를 스스로 잘 인식하고 있는 것 같···”
“세번째는···”
“세번째?”
“예, 무슨 일입니까?”
“음··· 아닐세. 계속 해보게.”
스탈린이 뭔가 찜찜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별 수가 있겠는가? 에드워즈로서는 생각나는대로 계속 이야기하는 수밖에.
“하··· 일단 만주족의 민족주의를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키워버렸습니다.
지금 저들의 구상은 매우 거대하고 구체적입니다. 떠돌이들을 모아다 일 시키고 콩고물 가져가겠다는 이고납합의 계획을, 민족적인 기획으로 확대시켜 만주민족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인데···”
“그래, 맞네. 그렇게 민족주의로 자신들을 묶어서 그 열정을 동력으로 근대화를 이뤄내겠다는 것이지.”
“문제는 그게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역시 조선인들 사이에 흡수시키고 정체성을 지워버리는 편이 낫지 않았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예?”
에드워즈가 얼떨결에 답하자 스탈린은 혀를 끌끌 찬다.
“그렇다면 앞으로 들어오는 만주인들 역시 뿔뿔이 흩어 놓고 살아가게 하겠군? 말도 통하지 않는 몇몇 고을에다 가족별로 떨어뜨려서 던져 놓고, 홀로 살아가다 죽도록 말일세?”
스탈린은 슬슬 안락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다. 의자는 파도에 젖은 모래성처럼 녹아서 사라지고 그 대신 두 사람 사이에 탁자가 생겨난다.
스탈린은 그 탁자에 양 손을 올리고 에드워즈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대답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그건···”
“자네가 애초에 왜 이 짓거리를 시작했는지 기억나지 않는가 보군. 말해보게. 어째서였나? 만주인들을 받아들인 것은?”
“···저들이 죽기를 바라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런데 저들을 갈갈이 찢어 놓고 사방팔방에 흩어 놓는다니? 도덕적인 의기로 행한 바의 결과 치고는 약간 초라하지 않은가?
게다가 말해보게. 조선의 행정력으로 저들을 흩뜨려 놓고 그들이 해당 고을에서 탈출하거나 다른 이들과 뭉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가? 그것도 수백 명의 작은 고을 단위가 아니라 수만 명 단위로 귀순해 오고 있는 지금 이 상황에?”
에드워즈는 순간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연히 사회주의자니까 민족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로막혀 있었다.
스탈린의 말이 옳은가? 틀리다면 왜 틀린가?
“하지만 그렇잖습니까? 지금 만주인들은 부족주의적 공동체로 찢어져 근대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지원 물자를 끊는다 하더라도 저들이 제대로 근대사회로 진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말일세? 우리의 이아구 동지께서 현명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나?”
새로운 민족을 만들어, 근대화를 이룩한다.
“그게 왜 잘못된 선택지지? 저들이 부족 공동체를 부술 걸세. 그것도 사회주의적인 열성을 가진 이들이 앞장서서.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느냐는 말일세.
저들을 추방하지도, 탄압하지도 않고서 근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 대해 말해보게나?
내 생각에 이 질문의 답은 이미 이아구 동지가 마련해준 것 같네만.”
스탈린이 탁자 위를 가리킨다. 에드워즈가 그를 쳐다보자 지도가 펼쳐져 있다.
에드워즈가 살펴보니 지금 동아시아의 지도다.
“자네가 살펴야 할 것은 두 가지뿐일세. 하나는 조선과 몽골에 해가 가지 않는 방향으로 민족주의적 열성을 잘 제어하는 것. 그런데 어차피 이아구의 목적은 근대화에 있고, 근대화를 위해서 중국을 주 타겟으로 삼았으니 큰 상관은 없어 보이는군.”
“파시즘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파시즘? 저들이 왜 파시스트지? 민족 단위로 단결하고 계급들이 서로 타협해야 파시즘 아닌가? 그런데 만주족에게 계급이··· 지금 있나? 노동하는 자가 없는데? 노동이 없는데 노동착취는 어딨나?
그저 나치와 외양만 비슷하다고 파시스트인가? 국기를 걸어 놓고 경례하며 지도자에게 충성하라고 하면 모두 파시스트인가?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군대는 파시스트겠구만 그래!”
스탈린이 코웃음을 치며 말하자, 에드워즈는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살펴야 할 두 번째 문제는 설마···”
“맞네.”
“트로츠키 동지입니까?”
“그 놈이 이 ‘문제’를 문제가 아니라고 받아들이게 만들게.”
“트로츠키 동지가 받아들이겠습니까?”
“받아들이게 만드는 건 자네 몫이지. 내 몫이 아닐세. 자네 말대로 나는 이제 태어날지도 확신할 수 없는 유령이 아닌가?”
그리고 다시, 스탈린의 모습은 흩어져간다. 마치 먼지로 이뤄진 인간이 바람에 쓸려가는 듯하다.
“내 말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단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겠네.
날 불러내려고 무슨 제사를 지내? 자네 유물론자 맞나아악!!!”
“끄으아아아악!!!”
스탈린의 우렁찬 호통과 함께 깨고 보니 아침이다.
한양에서 전보가 온 어제 날짜가 1456년 11월 3일, 트로츠키가 방문하겠다고 예고한 날짜가 11월 20일.
···후, 나는 11월 20날까지만 살아있는 거다. 그때까지 어떻게든 손님맞이 준비를 하는 거다.
그리고 11월 20일은 도둑놈처럼 순식간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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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공기가 맑군. 이 얼마나 오랜만의 목가적인 풍경인가?”
“한양도 그렇게 도시 같지는 않덥니다만.”
“자네는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리버풀 공업단지의 공기가 기준이니 그렇겠지. 나는 우크라이나 태생일세. 한양도 사람들이 북적거리니 땔감 때는 냄새도 독해진단 말일세.”
“아, 그러시군요.”
“아무튼 앞장서서 안내하게나.”
“그렇다면 먼저 집무실로 가서 이곳의 간단한 약도를 보고···”
“무슨 말인가? 내가 가장 먼저 들를 곳은 뻔하지 않은가?”
에드워즈가 혹시나 싶어 고개를 돌리자 답지 않게 인자하고 쾌활한 미소가 트로츠키의 만면에 가득하다.
“그 화제의 ‘만주족 공산주의자 대동맹’···? 거기부터 방문해야 하지 않겠나?”
시, 시발··· 시작부터?
트로츠키의 눈치를 살살 살펴보니 분명 오랜만에 휴가처럼 북청으로 나들이 온 거다. 적당히 조용한 곳으로 시찰차 오면서 휴식하려고.
“일단 제가 집무실과 청사부터 구경시키고 이곳의 현황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하하, 머리가 아파지는 일은 나중으로 미뤄두고 싶구만 그래.”
동맹 회관으로 가면 무엇보다도 머리 아픈 일이 생기리라는 사실을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트로츠키가 바득바득 우겨대니 어쩔 수 없이 그를 끌고 갈 수밖에 없었는데···
“여러분! 오늘의 회합에 무려 소련의 지도자이신 트로츠키 동지께서 참석하셨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이아구도 그렇고··· 다른 동맹원들도 그렇고 반응이 몹시 좋다. 당연히 공산주의자 모임에 공산주의자 지도자가 방문하니 기분이 좋지 않을 리가.
“트로츠키 동지! 말로만 들었고 저서로만 접할 수 있었는데 이리 선생을 직접 만나 뵙게 되니 이 어찌 영광스럽지 않겠습니까?”
이아구가 직접 트로츠키와 악수를 나누고 동맹원들을 소개하였으며, 트로츠키가 회관 곳곳을 거닐며 동맹원들에게 이런저런 덕담을 건네주기도 했다.
그렇게 만주족공산주의자대동맹, 일명 ‘만맹’의 모두가 트로츠키와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즐겼다.
즉, 그 자리에서 트로츠키의 딱딱하게 굳은 눈빛을 알아챈 것은 에드워즈밖에 없었다.
그리고 회관의 문을 나서고, 집무실에 들어와 두 사람만 남자 트로츠키는 조용히 문을 잠근다.
“···설명하게.”
“일단 천천히 제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변명할 거면 설명하지 말게.”
“저 현상을 굳이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없습···”
“변명하지 말라니까!!”
트로츠키의 눈빛이 변한다. 그는 곧바로 집무실의 상석, 그러니까 본래 에드워즈가 앉아야 할 자리를 찾아 앉고서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이 바보 같은 짓거리를 변명할 생각이 있나? 자네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맞기는 한가?”
“제가 ‘얍삽한 기회주의자’일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마르크스주의자였습니다.”
“웃기지 말게. 마르크스주의자는 마르크스주의가 말하는 역사의 진보를 이끄는 자가 곧 마르크스주의자지. 자네 같은 인간이 아닐세!!”
트로츠키는 안경을 벗어 던진 뒤 에드워즈를 직접 바라본다. 렌즈를 거치지 않고 들여다보이는 트로츠키의 눈동자에는 분노감이 들끓었다.
“마르크스가 뭐라고 했나? 엥겔스는? 자본주의가 팽창하면서 좁아터진 장원들을 부수고 더 큰 공동체를 만들지. 그게 민족일세.
그러니 자본주의를 형성한 민족은 인근의 작은 민족, 미발달한 민족과 전-민족들을 잡아먹네. 더 거대한 경제 공동체를 위해서 말일세.
그리고 자본주의가 더 커지면? 당연히 쓸모없어질 민족도 사라지네. 그게 진보일세. 자네는 이 당연한 이치를 모르는 듯하네만.”
어느덧 끓는 기름처럼 뜨겁던 그의 분노는 다시 차갑게 식어 경멸감으로 변한다. 그는 강철보다 차분한 말투로 이렇게 단언한다.
“···자네는 진보를 역행했어.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린 망할 반동일세.”
진보를 위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로 흡수시키려 한 자, 신념을 위해 자신의 고향을 져버릴 수 있었던 한 인간이 말했다.
마찬가지로 차분한 목소리의 에드워즈는 답한다.
“저는 결단코 반동이 아닙니다.”
“그럼 자네가 아니면 내가 반동적이란 말인가?”
“···어쩌면요?”
“뭐?”
그리고 진보를 위해 소수민족들을 ‘만들고’ 별도의 공화국으로 독립시켜 자치권을 부여한 자, 그 과정에서 트로츠키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고향을 내버렸던 인간이 있다.
“레닌 동지께서, 그리고 스탈린 동지가 왜 소련을 연방국가로 만들었습니까? 왜 레닌 동지는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했습니까?”
스탈린.
그 이름이 들려오자 트로츠키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저들의 민족주의 운동은 비(非)역사적 민족을 역사적 민족으로 바꾸는 진보적인 과정입니다. 민족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내용에서는 사회주의적이되, 형식에서는 민족적으로’ 나아가는 변혁적인 기획이란 말입니다!”
“자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는 있는 건가?”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스탈린의 이름을 들먹이고, 스탈린의 발언을 인용한다.
그것도 트로츠키주의자가 트로츠키에게.
이 기괴한 아이러니에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올 것만 같다.
“저들의 민족주의에 잠재한 힘은 강력합니다. 만주의 고토에 대한 강한 애착과, 마찬가지로 근대와 사회주의로 나아가려는 숭고한 열망을 품고 있습니다.
저들의 운동이 기존의 전근대적인 부족들을 부숴버리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겁니다. 만주민족이라는 공동체를 말입니다. 그리고 단언컨대! 그 공동체는 사회주의적일 것입니다!
···이 또한 진보입니다. 이게 제가 낸 결론입니다. 제 판단의 타당성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에드워즈는 그렇게 속사포로 말을 내뱉은 뒤 심호흠하듯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트로츠키도 함께.
“하아··· 그게 결론이라 이 말인가?”
“예.”
“더 할 말은?”
“없습니다.”
“좋아···.”
어쩐지 모든 감정이 한결 누그러진 모습이다. 아까의 불꽃 같던 분노나 얼음 같던 경멸은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노회한 혁명가는 다시 안경을 써서 눈앞의 풍경이 선명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림이 끝나자, 트로츠키는 갑작스럽게 에드워즈에게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였다.
“자네에게는 우선, 두 가지 문제점이 있네.”
뭐지, 치고박다 보니 서로를 닮아버린 건가?
“···또입니까?”
“음? 또라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크흠, 아무튼. 첫번째 잘못은 소련 국내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것일세.
작금의 원산에서는 북청의 만주인들을 지원한다면서 온갖 후원행사들이 벌어지고 있다는군. 들었겠지?”
“아, 안 그래도 물자를 조금 받았습니다. 아마 본격적으로 쏟아지려면 더 걸리겠지만.”
“그래, 그 후원행사들 속에서 사교 클럽들이, 취미 동호회들이 등장하고 있네. 무슨 뜻인지 알겠나?”
···아.
에드워즈는 다시 트로츠키의 얼굴을 자세히 본다. 저 피로함 아래에 자리한··· 불안감.
사람이 모이면 대화가 오가고 인간관계가 쌓인다. 특히 취미 등 서로의 일상을 터놓는 긴밀한 모임일수록 정치적인 조직화가 이뤄지기 쉽다.
“그리고 지금 북청의 소식이 전해지면 어떻게 되겠나?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의 열풍이 불고 있다고 말일세? 저 클럽과 동호회들은 곧바로 분파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의 소굴이 될 것일세. 아마 지금도 그러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의용군은 트로츠키가 장악한 조직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프랑스 정부에서 자리를 깔아놓고 전세계의 좌파들을 모아 놓으면서 트로츠키를 간판 삼은 것일 뿐.
스탈린주의자들, 비(非)레닌주의 마르크스주의자들, 드물게는 아나키스트들까지. 심지어 트로츠키는 에드워즈가 거슬리자 트로츠키주의 조직들을 날려버렸기에 기반은 더욱 취약해졌다.
트로츠키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조직만 제대로 된다면, 그는 꼼짝없이 퇴임할 수밖에 없는 불안한 형세다. 지금까지 이런저런 정치적인 곡예를 부려오면서 유지해온 의장의 자리다.
“그러면 현 상태에서 조선국왕의 멘토이자 조선과 소련 양국의 가교로서 작동하는 내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되겠나?
민족주의자들이 지원하는 세력이 당선된다면? 소련의 미래를 안정적으로 예측할 수 있나?”
그게 트로츠키이 품은 불안감의 근원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예, 듣고 있습니다.”
“···다음부터 이런 일을 벌일 거면 보고 좀 먼저 하게.”
“예?”
“이런 깜찍한 짓을 해놓는다면 제발 나를 놀래키지 말고 먼저 이야기하고 상의하게.
다음부터는 말일세.”
···트로츠키가 ‘다음’을 말했다.
트로츠키는 에드워즈를 버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게다가 에드워즈의 만맹 지원 정책을 유지하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도, 뭐, 자네에게 이것저것 기대해보겠네.”
에드워즈는 트로츠키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 시선 속에 담긴 감정이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이전에는 없던 한 가지 감정이 엿보인다.
신뢰.
트로츠키의 에드워즈에 대한 평가가, 조금은 상향조정되었으리라.
트로츠키는 의자에서 일어나 책상 건너편에 서 있던 그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린다.
“앞으로는 잘하게. 알겠나?”
“물론입니다.”
트로츠키의 입가에 조금씩 흡족한 미소가 지어지고, 아마 에드워즈는 자신의 얼굴 또한 비슷한 상태일 거라 짐작한다.
둘 사이의 긴장이 어느 정도 누그러지고 합의가 도출된 듯 보이자 에드워즈가 앞서서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자, 트로츠키 동지 나오시···”
어라? 왜 트로츠키의 표정이 바뀌지?
왜 갑자기 썩어가지?
에드워즈는 트로츠키의 시선이 멈춘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제야 확인한다.
작은 조선식 책상과 그 위에 올라간 대강 고기기름 굳혀 만든 초, 그리고 물그릇.
그 위의 스탈린 초상화.
“어··· 저··· 저 광경이 어떻게 보일 줄은 알지만··· 지금 생각하시는 것과는 조금 괴리가···.”
시발 진짜. 쥐구멍에는 볕 들 날이 없다.
작가의말
“테리 마틴(Terry Martin)과 같은 역사가는 소비에트 체제를 심지어 “소수민족우대 제국(Affirmative Action Empire)”이라고 명명하기까지 한 바 있다. 이들 역사가들이 묘사하는 소비에트 체제는 제정 러시아와 같은 “민족의 감옥”이 아니라 편집증적일 정도로 소수민족을 우대하고 보호하는데 열심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우대와 보호” 및 “민족해방”을 관철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 민족을 새로 “창조”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던 기이한 체제였다.”
구자청, ““맑스(Marx)”에서 “스탈린(Stalin)”으로 -맑시즘 민족론을 통해 본 소비에트 민족정책의 역사적 계보-\\\’”, 사총 80권 0호, p. 446.
“볼쉐비키 정권의 민족정책은 소수민족들에 고무적이었고, 그런 뜻에서 진보적이었다. 물론 강제이주 형태로 일부 민족들에 “테러”를 가하기도 했지만, 당시 스탈린의 전략목표가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 즉 소련이 자본주의적 포위망에서 벗어나 완전한 국가안전보장을 확보하는 것이었음을 고려한다면 “테러”를 이유로 그의 민족정책이 허구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서규환, 이완종, “사회주의와 민족문제 -소련의 민족정책을 중심으로-”, 슬라브 연구 23권 1호, p. 26.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스탈린이 단순히 소수민족을 탄압했다고만 인식하고 또 그렇게 학습받고 있으나, 실제 소련 내부를 살펴보면 그런 단면적인 인식만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모습들이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소수민족에게 더욱 급진적인 자치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레닌의 반대에 부딪히는 스탈린의 모습은 우리에게 상상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는 스탈린에게서 공산주의적인 색채를 제거하고, ‘대러시아 쇼비니즘’을 혐오했던 그를 도리어 ‘러시아 민족 영웅’으로 등극시키려는, 현재 푸틴을 위시로 한 통합러시아당 정권의 공작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그렇게 심지어 러시아인도 아닌 스탈린이 현재 러시아에서는 위대한 민족 지도자로 추앙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소련은 현재까지도 세계 각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살아있는 역사이기에 그 해석과 수용을 둘러싼 정치적인 쟁투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화를 통해 저는 스탈린을 단순히 ‘사악한 소수민족 탄압자’가 아닌, 소수민족의 권리와 자치를 부르짖은, 소수민족 문화의 형성과 보존에 지대하게 관여한 ‘민족문제 전문가’로서 드러내고자 하였습니다. 위의 인용구에서 보이듯 그의 ‘테러’를 들어 그의 민족 정책 전반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인쇄 작업 들어가고 있습니까?”
“예, 아마 하루 뒤면 다 끝날 듯합니다.”
“그러면 제가 한번 내용을 들여다보아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옵니다, 영상 대감.”
블레어는 잠시 고개를 숙여 막 인쇄된 조보(朝報) 한 장을 살펴보았다.
누가 두 품계를 건너뛰어 특진을 했다더라, 어느 서리가 비리를 일으키다가 적발되어 파직되고 곤장을 맞았다더라, 주상 전하께서 하교하시기를 향민청에서 백성의 교화 작업에 더욱 중점을 두기를 바라신다 하셨더라···
그 수많은 내용 중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몇 문장 안 되는 짧은 부분이었다. 그 내용을 찾아내자 블레는 손가락을 짚어가면서까지 한 글자, 한 글자 조심하며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