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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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하운의 집
하르메아는 조용히 주변을 살폈다. 리엘라가 그에게서 등을 돌리자 하르메아는 크게 입을 벌리고 제가 노리던 것을 물었다. 그 순간 리엘라가 소리쳤다.
“하르! 하운 님 물지 말라고 했잖아요!”
“…칫.”
노기가 섞여 있는 리엘라의 목소리에 하르메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제가 입에 물었던 하운의 손가락을 뱉었다. 어떻게 알았지? 인간은 등 뒤에 있는 건 볼 수 없다고 알고 있는데?
리엘라는 하르메아에게 다가가 주먹으로 아프지 않을 정도로 하르메아의 머리를 콩콩 때렸다.
“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이럴래요? 정말로 화낼 거예요!”
“하지마안… 맛있을 것 같단 말이야… 하운 먹으려면 지금이 기회인데….”
하르메아는 정말 아깝다는 듯 침대에 누워 있는 하운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하르메아가 말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러다 잠시 한눈을 팔면 하운을 꿀꺽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먹으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만약 하르가 사람을 먹으면….”
“…먹으면?”
“멜다 부인에게 더 이상 하르에게 요리해 주지 말라고 할 거예요.”
그 말에 하르메아는 하늘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안 먹을게!”
리엘라와 하운이 잘 먹는 것을 늘 흐뭇하게 바라보던 멜다 부인이었다. 그녀는 하르메아에게도 자신의 솜씨를 잔뜩 발휘해 언제나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다. 덕분에 하르메아는 리엘라 다음으로 멜다 부인을 따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루시안은 말했다.
“밥 주는 사람을 따르는 건 당연한 거죠”
리엘라는 침대 옆에 두었던 물수건으로 조금 전, 하르메아가 물었던 하운의 손을 닦았다. 정말로 먹고 싶었는지 침으로 범벅이 된 손에는 이빨 자국까지 나 있었다.
“나, 나가서 놀거야!”
리엘라가 하르메아를 흘겨보자 그는 주춤거리더니 후다닥 밖으로 나가 버렸다.
“정말이지 매번 먹겠다고 물어 대니….”
리엘라는 깨끗하게 닦은 하운의 손을 다시 침대 위로 올려 둔 다음 그를 바라보았다.
벌써 사흘째, 하운은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
리엘라가 그의 뺨에 입을 맞춘 순간 하운의 몸이 휘청이더니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앉은 채로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놀란 리엘라가 하운을 일으키려 하자 근처에 있던 레이안이 기사들과 보석술사 그리고 의사들까지 전부 불러 하운을 살피게 했다.
리엘라는 하운의 옆에서 그가 설마 이대로 죽는 것이 아닐까 걱정스러워 훌쩍이며 바라보았다.
하운을 살펴본 사람들이 그를 왕궁으로 데려가려고 들어 올렸을 때, 리엘라의 몸이 휘청였다.
“어?”
영문을 몰라 두리번거리며 아래를 바라보았더니 리엘라의 치맛자락이 그의 손에 쥐여 있었다. 리엘라가 잡힌 옷을 빼내려고 노력했지만, 어찌나 단단히 잡았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기사들이 노력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옷을 좀 잘라 내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다가온 국왕이 그 광경을 보고 혀를 찼다.
“……!”
그제야 리엘라는 국왕이 이 모든 상황을 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운 좀 살려 달라고 자신을 데리러 왔던 것을 보면 둘의 사이를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서, 설마 다 보고 계셨던 건 아니겠지?’
제가 하운의 뺨에 입을 맞췄던 것까지 다 본 걸까? 잘못한 게 없는데도 어쩐지 국왕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민망함에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국왕은 얼굴을 들지 못하는 리엘라에게 말했다.
“의사들과 보석술사들 말을 들어 보니 다른 건 문제없고, 잠을 좀 길게 잘 거라는군. 그래서 말인데…. 공작저에서 좀 데리고 있어 주지 않겠어?”
국왕의 시선이 하운의 손을 향했다.
“그 편이 이 녀석의 회복을 도울 것 같으니 말이야.”
결국 하운은 공작저로 오게 되었다.
그가 기사의 등에 업혀 돌아왔을 때 저택의 하인들은 그를 씻기고 옷을 입힌 다음 침대에 눕혔다. 그때부터 리엘라는 하루 종일 그의 곁을 지켰다. 공작저의 주치의는 하운의 방에 들어갈 때마다 하운은 정말 괜찮은 거냐며 매번 물어 오는 리엘라 때문에 이제는 문을 열고 그녀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그저 잠들어 계실 뿐입니다.”를 인사처럼 말했다.
그래도 리엘라는 도무지 안심이 되질 않아 루시안에게도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강한 보석을 쓰고 나서 탈진하면 이렇게 쓰러져 몸이 회복될 때까지 잠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너무 놀라지 말라고 말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들었음에도 리엘라는 하운이 걱정되었다. 그 와중에 하르메아는 쓰러진 하운을 보더니 그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맛있을 것 같다는 말을 연신 중얼거리며 조금 전처럼 자꾸만 그의 손가락을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었다.
‘한 번만 더 그러면 이번에는 엉덩이를 때려 줘야겠어.’
드래곤이고 뭐고, 하지 말라면 하지 말라고!
리엘라가 결의를 다지고 있을 때 누워 있던 하운의 몸이 움직였다.
“하운 님?”
그가 눈을 뜨려는 것인가 싶어 급히 다가가 바라보았지만 하운은 몸을 움츠릴 뿐,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몸을 웅크리는 걸 보니 아무래도 추워하는 것 같았다.
‘다시 비가 와서 추워졌으니….’
하운이 쓰러진 뒤, 몇 시간 후 수도에는 차가운 비가 내렸다. 그동안 그가 막아 내고 있었던 비구름이 다시 수도의 하늘을 덮은 것이다. 다행히 거의 끝나 가고 있었던 모양인지 비는 꼬박 이틀을 내린 뒤 그쳤다. 오늘은 다시 하늘이 맑아졌지만 간밤까지 내렸던 비의 영향에 바람은 서늘했다.
하운의 이마를 만져 보던 리엘라는 방구석에 있는 옷장으로 다가갔다.
“미안하지만 옷장 좀 열게요.”
대답이 없을 것을 알면서도 리엘라는 하운을 향해 말한 다음 옷장을 열었다. 몇 달간 공작저에 계속 머무르던 하운이다. 그렇다면 예전에 입었을 두꺼운 실내복 몇 벌 정도는 걸려 있을 것이 분명하다.
“어?”
하지만 옷장 안을 본 리엘라는 당황했다. 옷장은 거의 비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두세 벌의 예복 그리고 저택 안에서 입었던 장식 없고 단순한 실내복 몇 벌 외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으니까.
“다른 데 있나?”
옷장을 닫은 다음 리엘라는 다시 잠들어 있는 하운에게 서랍장 좀 열어 보겠다고 말하고 서랍을 열었다. 하지만 서랍장 안도 옷장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정말 여기서 사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리엘라는 하운의 방을 둘러보았다. 지난 며칠간 쓰러진 하운만 바라봤던 탓에 이제야 겨우 방 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공작저의 방이고, 하운을 위해 특별히 내준 방이다 보니 방 안에는 화려한 가구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전부 처음부터 이 방에 있던 물건들뿐이었다. 하운이 가져왔을 개인적인 물건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왕궁에 있으려나.’
공작저가 아니면 왕궁에 주로 머물렀던 하운이었으니 이곳에 물건이 없다면 그곳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 사실에 리엘라는 조금 섭섭함을 느꼈다. 그래도 이곳에서 오래 머물렀는데 곧 떠날 것처럼 제 물건들을 거의 놔두지 않았을 줄이야.
리엘라는 네아를 불렀다. 방으로 들어온 네아는 “이거 아직도 자네요?”라며 하운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리엘라의 곁에 섰다.
“무슨 일이세요, 아가씨?”
“저기… 왕궁에 연락을 하고 싶어요.”
“왕궁에요? 어떤 일로요?”
“보니까 하운 님의 물건이 거의 없더라고요. 옷도 그렇고… 물론 새로 사면 되겠지만 그래도 원래 입었던 것들을 입는 게 좀 더 편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리엘라의 말에 네아는 하운의 방을 둘러보더니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왕궁에 연락해서 하운의 옷과 물건을 보내 달라고 할게요.”
네아가 편지를 보내고 나서 몇 시간 후, 왕궁에서는 그의 물건을 챙겨 보내겠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그래도 며칠 정도는 걸리겠다 싶었기에 리엘라는 당장 하운이 따뜻하게 입을 옷을 주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왕궁에 연락을 넣은 날 저녁, 리엘라는 왕실의 문장을 달고 있는 마차가 공작저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벌써 왔어?’
꼭 기다리고 있다가 보냈다고 생각할 정도로 빠른 도착이었다. 리엘라는 아래층으로 향했다. 내려가는 도중에 복도에 놓인 꽃 장식들이 보였다. 꽃 축제를 다녀온 정원사들이 갑자기 의욕이 샘솟는다며 신나게 만든 것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거, 이젠 쓰레기장으로 갔겠네.’
리엘라는 행사장 구석에 버려졌던 하르메아 조형물을 떠올렸다. 매일같이 행사장에 간 이유는 축제 구경을 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것을 살펴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리나와 함께 돌아다니다가 적당한 이유를 대며 잠시 다른 곳을 돌아보기로 한 다음에는 곧바로 하르메아 조형물이 있는 곳으로 가 물을 뿌리고 상한 꽃을 빼내며 관리했다.
버려진 것이라고 해도 자신이 애정을 갖고 만들었던 것이다. 혹시라도 조용한 곳을 찾아 근처에 온 사람들이 방치된 조형물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리엘라는 아무도 찾아보지 않을 그것을 매일 관리했다. 하지만 하운이 쓰러진 이후로 완전히 잊고 있었으니 지금쯤은 철거된 천막들 옆에서 썩어 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아….”
리엘라가 한숨을 쉬며 현관으로 가자 왕궁의 마차에서 내린 시종들이 짐을 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리엘라는 길 저편을 기웃거리다가 시종들에게 질문했다.
“다른 마차들은 언제 오나요?”
“다른 마차요?”
“네. 이 마차 한 대로 다 싣고 오는 것은 무리일 테니….”
“어, 그게… 짐이 별로 없어서 한 대로도 충분했습니다.”
“네?”
그사이 시종들이 마차 뒤에서 트렁크 하나를 들고 와 현관에 내려놓은 다음 리엘라에게 왕실의 문장이 찍힌 편지를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 들자 그들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희들은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잠깐만요! 분명 하운 님의 짐을 전부 보내 달라고 했는데….”
“이게 전부입니다.”
“네?”
“저희가 전해 받은 건 이게 전부였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할 일을 끝낸 왕궁의 시종들은 빠르게 돌아갔다. 리엘라는 편지를 뜯어보았다. 깔끔한 글씨로 ‘왕궁에 있는 하운 대공의 모든 물건을 보낸다’는 내용이 적힌 종이가 안에 들어 있었다.
“아가씨, 이거 위에 올려 둘게요.”
네아는 트렁크를 밀어 보더니 이내 번쩍 들어 어깨에 들쳐 멘 다음 이 층 하운의 방으로 향했다. 리엘라는 재빨리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네아가 힘이 세긴 하지만 그녀가 들고 가는 데 전혀 문제없는 크기의 트렁크다. 이게 왕궁에 있는 하운의 짐 전부라니?
네아가 하운의 방으로 들어간 다음 트렁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리엘라는 재빨리 잠금장치를 풀고 트렁크를 열었다. 안을 본 리엘라는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 이게 전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