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7
18
방을 나온 네아는 곧바로 하운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공작님의 명령만 아니었어도.’
그러면 하운 따위 마주할 일도 없을 텐데.
네아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복도를 걷다 하운이 있는 방 앞에 섰다. 싫은 건 싫은 거고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조금 전에 리엘라가 없었다면 하운은 망설임 없이 자신을 죽였을 것이다.
“으… 짜증나….”
혼자서 하운을 다시 본다고 생각하니 눌러 두고 있던 손톱이 튀어나올 정도로 긴장되었다. 그런 네아의 입꼬리가 삐쭉거리며 올라갔다. 온실을 떠날 때 보았던 하운의 표정이 생각났다. 살면서 그렇게 멍청한 표정을 짓는 하운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정말 공작님의 말대로 되고 있네.’
네아는 하운이 수도로 돌아와 아직 제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당장 죽이려 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호슨 공작은 심술궂은 웃음을 짓더니 대답했었다. 그럴 리 없다고. 리엘라가 너를 아끼는 것을 보면 하운은 절대로 너를 해칠 수 없다고. 그 이유는….
네아는 공작이 말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크게 숨을 쉰 뒤 문을 열었다.
***
문이 열리는 소리에 하운은 반가운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네아의 정체에 대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리엘라에게 상황을 설명해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끌어안은 것과 다치게 한 것에 대해서도 사과를 할 생각이었고. 하지만 돌아본 자리에는 리엘라가 아닌 네아가 서 있었다.
곧바로 하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보석을 사용하려고 하자 네아는 팔짱을 끼며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죽으면 리엘라 아가씨가 무척이나 슬퍼하실걸.”
“뭐?”
“아가씨와 변호사님들은 너와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할 것이고 네 평판은 바닥을 치겠지. 하운 대공, 수도로 오자마자 저택의 하녀를 살해하고 공작의 상속인을 협박하다! 어때? 내일 신문의 머리기사로 괜찮지 않아?”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그렇게 말하면서도 곧바로 손을 내리는 하운의 모습에 네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리엘라의 름이 나오는 순간 움찔거리는 하운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네아가 웃자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여기에 남은 목적이 뭐지. 분명 공작이 세상을 떠나면 이곳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을 텐데.”
하운의 말에 네아는 주머니에서 투명한 보석 하나를 꺼내 하운에게 던졌다. 그것을 받아 든 하운은 네아가 던진 보석이 잔영(殘影)의 크리스털임을 알았다. 시간의 모습을 기록하는 보석이기에 가장 자주 쓰이는 보석 중에 하나였다.
“받아. 공작님께서 네게 따로 남긴 유언이야.”
하운은 손에 들린 크리스털을 보았다.
호슨 공작과 그는 오랜 인연이었다. 그러니 적어도 제게 어떤 내용이든 자신이 약속한 것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 편지 한 장 정도는 남겨야 했다. 하지만 공작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따로 맡겨 놨을 줄이야. 하운은 제 손 위에 네아에게 받은 크리스털을 올렸다.
대부분의 크리스털은 기억을 다시 보여 주는 힘을 갖고 있다. 세상에 가장 많은 보석 중에 하나이며, 가장 사용하기 쉽기에 보석술사라면 가장 먼저 사용하게 되는 보석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더 선명하게 기억을 남길 수 있는 크리스털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잔영의 크리스털이라는 이름이 붙어 더욱 귀하게 취급되었다.
하운은 제 손에 올려진 크리스털을 보았다. 그가 집중하자마자 조금 떨어진 곳에 호슨 공작의 모습이 나타났다.
“…….”
하운은 크리스털이 보여 주는 호슨 공작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사람이건만 크리스털이 보여 주는 공작의 모습은 너무나도 생생해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할 정도였다. 침묵하던 하운이 네아에게 질문했다.
“언제 기록한 모습이지?”
“돌아가시기 이틀 전.”
그의 기억 속에서 호슨 공작은 언제나 강대한 보석술사였다. 하지만 지금 크리스털이 보여 주는 공작의 모습은 그동안 그가 제대로 보지 못했던 세월의 흔적이 잔뜩 묻어 있었다.
공작이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었던 걸까. 한참이나 공작을 바라보던 하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추억에 젖을 때가 아니었다. 하운이 한 걸음 공작에게 다가간 순간 호슨 공작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하운 대공. 지금쯤 펄펄 뛰고 있을 당신을 생각하면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순간에도 즐겁답니다.”
“알고도 이런 짓을 했다 이거지.”
“알고도 이런 짓을 했냐고 말하겠지요.”
“…….”
네가 할 말 정도는 다 짐작하고 있다는 듯 말하는 호슨 공작의 모습에 하운은 제 미간을 눌렀다. 기록이 아닌 본인과 직접 이야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이거 정말 기록한 영상이 맞는 건가?
“그러길래 제가 예전에 말씀드렸지요. 서명을 받아 내기 전까지 방심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 가르침을 잊은 당신이 문제입니다. 내 모든 것을 받고 싶었다면 나를 굴복시켜서라도 서명을 받아 냈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방심하니 이렇게 당하는 겁니다.”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호슨의 모습에 하운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오기 전에 빛나는 꽃은 봤겠지요? 그리고 리엘라도 만났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걸….”
“어떻게 그걸 알았냐고 묻는다면 둘 다 보기 전에는 크리스털을 주지 말라고 네아에게 일러두었으니까요.”
영상 속 공작의 말에 뒤에 서 있던 네아가 휘파람을 불었다. 하운은 그런 네아를 노려보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좀 갑작스럽겠지만 리엘라는 빛나는 꽃을 길러 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뭐?”
하운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빛나는 꽃을 길러 낼 수 있는 사람이라니?
“설명은 나중에 네아가 할 터이니 넘어가도록 합시다. 어쨌거나 리엘라를 본 순간에 나는 알았습니다. 나는 평생을 반짝이고 예쁜 것들을 모으며 살았고, 이제 내가 모은 마지막 보석의 이름은 리엘라가 될 것을. 물론 그녀는 살아 있는 사람이기에 보석의 방에 들어가는 일은 없겠지만요.”
보석의 방이라는 말에 하운의 몸이 움찔했다.
보석의 방은 보석술사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공간이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보석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보석의 방이라고 불리긴 하지만, 갖고 있는 보석의 종류와 수에 따라 그 공간은 작은 상자일 때도 있었고 저택 전체일 때도 있었다.
대륙에서 가장 많은 보석을 소유하고 있는 호슨 공작의 경우 저택의 별채 전체를 보석의 방으로 만들었다. 그곳에는 드래곤들을 쓰러트리고 가져온 보석들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귀한 보석들이 모인다는 소르디아 경매장에서 공작이 사 온 보석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보석의 방에 강력한 보석들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해했지만 호슨 공작은 한 번도 그 안에 어떤 보석들이 있는지 알려 준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전쟁에서 사용한 보석들뿐이었으며 모두들 보석의 방 안에는 알려진 것보다 더욱 강한 보석들이 있을 거라 수군거렸다.
‘내가 받기로 되어 있던 것들.’
하운은 제가 대신 드래곤을 상대하는 대가로 호슨 공작에게 보석의 방을 넘겨줄 것을 요구했었다. 공작의 개인 소유였던 보석들을 넘겨받아 나라의 것으로 만들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호슨 공작의 보석 중에는 맹약의 헬리오도르 같은 나라를 위협할 정도로 강한 보석들은 물론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강한 무기가 될 수 있는 무척이나 위험한 보석들도 있었다. 하운은 그것들을 모조리 거둬들일 생각이었다.
영상 속 호슨 공작은 잠시 숨을 고른 다음 계속해서 말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난 내가 거둔 보석들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습니다. 그들이 안전하고 편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일이라 생각했으니까요. 리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리엘라가 다른 보석술사들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적이었지요. 누군가 그녀의 능력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모두가 그녀의 꽃을 나눠 가지는 평화로운 앞날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하운은 침을 삼켰다. 호슨 공작의 말대로였다.
하운 역시 빛나는 꽃이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어쩌다 가끔 그런 꽃을 발견하면 곧바로 가져와 제 보석에게 주지 않았던가.
그나마 그런 꽃은 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데다가 아주 우연히 발견하는 게 아닌 한 찾을 길이 없는 것이기에 지금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길러 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운은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리엘라에게 호슨의 이름이 붙은 모든 것을 넘겼습니다. 내 이름과 돈이 어느 정도 그녀를 지킬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슬슬 의문이 생기고 있을 겁니다. 내가 왜 이 사실을 당신에게 알려 주는가 하는 의문 말입니다.”
호슨의 말대로였다. 하운은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정말로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단 말인가? 그리고 왜 호슨 공작은 그 사실을 나에게 알려 주는 거지?
“나는 당신이 리엘라를 해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짐작했을 뿐인데 네아의 행동을 보고 확신을 얻었지요.”
그 말에 뒤에 있던 네아가 나?라고 중얼거리며 놀라 영상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해치지 못한다 정도가 아니라 당신이라면 한눈에…. 아, 됐습니다. 어쨌건 당신들 두 사람이 워낙에 닮은 덕택에 알기 쉬웠답니다.”
호슨 공작의 말에 이번에는 하운과 네아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누가 이런 새끼랑 닮았다고 그러세요!”
“누가 이런 것과 닮았다는 말인가!”
동시에 소리친 하운과 네아는 서로를 노려보다 짜증난다는 듯 고개를 픽 돌렸다. 호슨 공작은 마치 그런 모습이 보이기라도 하는 듯 웃고 있었다.
“어쨌거나 대공께서는 리엘라를 지켜야 할 겁니다. 그녀의 능력을 다른 자가 알게 되면 정말로 위험해지니 말입니다. 물론 그냥 해 달라는 건 아닙니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놓도록 하지요.”
그 말에 하운은 웃음이 나왔다. 그는 호슨의 다른 재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원하는 것은 오직 그녀의 보석뿐. 그것을 리엘라에게 줘 버린 주제에 무엇으로 자신을 움직일 생각이란 말인가. 호슨 공작은 여전히 웃는 모습으로 말했다.
“보석의 방에 있는 내 보석들 전부 정도면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