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8
19
“뭐?”
“사실 내 유언장은 한 장이 더 있습니다. 그 유언장에는 보석의 방에 있는 보석들의 소유권을 당신에게 넘긴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변호사들에게 물어보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해 줄 겁니다. 네아도 알고 있지요.”
하운이 뒤를 돌아보자 네아는 팔짱을 낀 채 벌레를 씹은 듯한 얼굴로 하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아의 반응을 보아 공작의 말은 사실임이 분명했다. 제 뒤통수를 치며 리엘라에게 모든 재산을 넘겼는데 이제는 갑자기 순순히 넘겨주려 하다니. 이건 또 무슨 꿍꿍이지? 하운은 잔뜩 경계하며 영상 속 호슨 공작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 유언장이 어디에 있냐 하면….”
“…하면?”
“내 보석의 방 가장 깊은 곳에 있습니다. 6개월이 지나면 사라지도록 해 놓았지요. 미리 말하지만 지금 보석의 방은 함부로 열 수 없을 겁니다. 내가 나오면서 그 안에 있던 보석들을 전부 깨워 놓고 마음대로 놀게 해 두었으니까요. 일반인은 물론 어지간한 보석술사도 함부로 열었다가는 목숨이 위험할 겁니다.”
당연한 소리였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전설적인 보석들이 있던가. 그런데 그것들을 전부 풀어 두었다니. 그렇다면 문을 여는 것부터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하운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지었다. 차라리 네이판타의 레어 한가운데에 두었다 할 것이지, 그 보석들이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있는 보석의 방 가운데 두었다고? 가져가지 못한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하운의 입에서 으드득, 하고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지금까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던 호슨 공작의 표정이 바뀌었다. 이미 오래전의 영상이건만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호슨 공작의 모습에 하운은 저도 모르게 제 보석을 꺼내 경계를 세웠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얼굴을 한 채, 호슨 공작이 말했다.
“노력하십시오, 하운 대공. 원래 당신이 받았어야 할 것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영상은 거기에서 끝났다. 조금 전까지 호슨 공작이 서 있던 공간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운이 멍하니 영상이 사라진 곳을 보았다. 진지했던 표정과 목소리가 아직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들어온 건가 뒤돌아 본 순간 하운은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리엘라였다. 그녀를 본 그 순간 조금 전 호슨 공작이 남긴 영상이 떠올랐다. 그래서 하운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다가가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고 말았다.
“호슨의 이름이 붙은 것은 원래 전부 내 것이 될 거였어.”
그래야 했다. 그런데 그것 모든 것이 다른 사람에게 간다고?
“그러니 돌려받도록 하지.”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것 같나?
“당신까지 포함해서, 전부 다.”
하운의 말에 잠시 리엘라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하운도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깐, 지금 내가 뭐라고 한 거지? 뭘 돌려받아?’
저도 모르게 내뱉어진 말에 놀라 하운이 급히 다시 말하려는 순간 리엘라는 빙글 몸을 돌렸다. 그러더니 자신이 들어온 문을 활짝 연 다음 하운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오늘 만남 즐거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하운 대공님.”
하운의 귀에는 어쩐지 그 말이 ‘꺼져, 이 자식아’로 들리는 것 같았다.
05. 보석의 방
“읏차!”
큰 기합 소리와 함께 리엘라는 화분을 들어 올렸다. 워낙 큰 화분이었기에 순간 리엘라의 몸이 휘청거렸다.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긴 리엘라는 조금 떨어진 햇볕이 더 잘 드는 곳에 화분을 내려놓았다.
“이게 마지막인가?”
리엘라는 손등으로 흐르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고개를 돌려 온실 안을 바라보니 수십 개의 화분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마음이 심란할 때는 몸을 움직이라더니.”
리엘라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옛말은 역시 틀린 게 없다.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해가 하늘 가운데 떠 있었다. 아마도 곧 네아가 데리러 올 것이다. 어차피 정리도 끝났겠다 리엘라는 쓰고 있던 밀짚모자를 벗으며 근처의 벤치에 앉았다. 아무리 창을 열어 놓았다고 해도 정오의 온실은 더울 수밖에 없었다.
한참이나 모자로 부채질을 하고 있던 리엘라의 시선이 움직였다.
“하아….”
시선의 끝에 있는 것을 본 리엘라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반나절 동안 잊고 있었는데 앉자마자 바로 생각나게 되는 걸 보니 역시 완전히 무시하기는 틀렸다.
리엘라가 보고 있는 것은 빛나는 꽃을 심은 화분이었다.
호슨 공작에게 선물하기 위해 가져왔던 날 한 번 그리고 하운 대공의 품에 던지느라 한 번. 두 번이나 박살이 났던 화분. 그것은 여전히 멀쩡한 모습으로 온실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운 대공이 돌아간 다음, 나중에 그 화분을 집어 던졌던 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다시 황급히 온실로 돌아왔을 때 리엘라는 조금 시들거리는 모습으로 다른 화분에 엉망으로 담긴 채, 햇빛이 잘 닿는 자리에 놓여 있는 이 꽃을 볼 수 있었다.
“왜 안 가져갔지?”
호슨 공작은 이것을 알아보는 보석술사라면 꽃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 하지만 하운 대공은 가져가지 않았다.
“이상한 사람이야.”
리엘라는 얼굴을 찌푸리며 턱을 괴었다. 그날 들었던 하운 대공의 말이 생각났다.
“그러니 돌려받도록 하지. 당신까지 포함해서, 전부 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로 화가 치밀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이성이 그가 대공이라는 사실을 인지했기에 겨우 험한 소리 하지 않고 그저 안녕히 가라는 말로 그를 돌려보낼 수 있었다.
‘내가 무슨 물건도 아니고.’
그때를 생각하니 다시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공작님의 사람 보는 눈은 옳았어. 그런 사람이니까 유언을 바꾸신 거야.”
변호사들의 대표인 크레이튼 씨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공작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아가씨도 아실 겁니다. 저희도 솔직히 처음 이 유언장을 접했을 때는 공작님께 몇 번이고 다시 물었습니다. 하지만 공작님의 의지는 확고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변호사이기에 그분을 따르는 것도 있습니다만 그분의 선택을 언제나 존중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호슨 공작님의 뜻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말한 크레이튼은 진지한 얼굴로 리엘라를 보았다.
“그런 분이 약속을 하운 대공이 아닌 아가씨를 선택하셨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저희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받아야 할 것을 가로채었다는 찝찝한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다음에도 크레이튼은 많은 것을 설명했다. 특히나 아직 들어가지 못한 보석의 방에 대해서. 공작의 재산은 대부분 잘 정리되어 있었으나 보석의 방은 어떠한 자료도 없었다. 그 이유를 묻자 크레이튼이 대답했다.
“보석술사들은 자신들이 어떤 보석을 갖고 있는지 알리는 것을 꺼립니다. 그래서 보석들을 방 안에 넣어 두고는 그곳을 강한 힘으로 지킵니다. 강한 보석술사일수록 보석의 방에 거는 함정이 무시무시하지요. 호슨 공작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보석의 방을 열려면 무척 강한 보석술사에게 부탁을 해야 할 겁니다.”
그 말에 리엘라는 보석의 방을 여는 것은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호슨 공작이 손을 써 둔 함정이라니. 어지간히 강한 보석술사가 아니면 힘들 것이다. 그때 리엘라의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하운 대공이었다.
“으….”
그를 떠올리자 리엘라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 그 사람은 안 돼. 생긴 것만 훌륭하지 인성이 바닥이야. 보석의 방에 들어가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그러니까 하운 대공은 탈락.
‘그럼 누구에게 부탁을 해야 할까.’
리엘라는 제가 아는 보석술사들의 이름을 떠올려 보았다. 신문에는 하운 대공만이 나오는 게 아니었다. 자주 언급되는 보석술사들이라면….
“아가씨!”
“응?”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리엘라는 뒤를 돌아보았다. 네아가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택의 다른 하녀가 뛰어오고 있었다.
“아가씨! 빨리 저택으로 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저택에 무슨 일 있어요?”
“헉헉… 하운… 하운 대공님의….”
“또 그 사람인가요?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래요!”
리엘라는 이를 악물고는 저택으로 뛰었다. 대공이고 뭐고 오늘은 진짜 제대로 따져야 할 것 같았다.
***
하운은 왕궁의 접견실에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안녕히 가세요, 하운 대공님.”
한겨울의 바람보다 시리던 목소리. 황급히 제가 내뱉은 말에 대해 해명하려고 했지만 리엘라의 눈을 본 순간 하운은 깨달았다. 지금은 제가 입을 다무는 것이 제일 좋을 것임을.
저택을 나와 자신의 왕궁으로 돌아왔을 때, 하운은 공작이 남겼던 잔영의 크리스털을 가져온 것을 알았다. 하운은 다시 잔영의 크리스털에 남아 있는 기억을 불러냈다. 하지만 몇 번을 시도해도 호슨 공작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한 번만 볼 수 있게 손을 써 두었군.”
잔영의 크리스털은 보통 열 번 정도 제가 기억하는 순간을 보여 준다. 그러나 아무리 하운이 보석을 불러도 그때 보았던 영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호슨 공작이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둔 것이 분명했다.
‘용의주도한 인간 같으니.’
하운은 이를 갈면서 소파에 몸을 묻었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감사관이라는 지위를 받았으니 지금도 호슨 공작의 저택에 가려면 갈 수 있다. 하지만 가면? 분면 리엘라가 왜 왔냐는 듯한 눈으로 싸늘하게 바라볼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운은 몸을 뒤척였다. 그때 소파의 뒤에서 누군가 몸을 쑥 내밀며 나타났다.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을 가진, 조금은 마른 여자. 주근깨가 살짝 있는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무척이나 날카로운 여자. 하운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무슨 근심이 그렇게 많습니까, 하운 대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