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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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운은 몇 번이나 시선을 멈춰 가면서 편지를 읽었다. 편지는 전부 다 해서 다섯 장.
종이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가득 채워 쓴 편지였기에 그냥 읽어도 꽤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보고 싶다’라는 문장은 다섯 번쯤 다시 본 데다가 중간에 있는 ‘정말 보고 싶다’는 열 번쯤 다시 보았다. 그리고 편지의 마지막에 그려진 입술 모양의 그림은 백 번쯤 다시 본 것 같았다.
분명 혼자 있는 데도 하운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그곳에 입을 맞췄다. 그래 놓고서 혼자 붉어진 얼굴로 멋쩍게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었다.
리엘라는 편지의 말미에 바빠서 이번에는 길게 쓰지 못했다며 다음번에는 꼭 열 장 넘게 쓰겠다고 약속했다. 아마 일주일 후에는 봉투가 빵빵할 정도로 편지지가 가득 들어 있는 편지가 도착할 것이다.
‘자기 전에 한 번만 더 읽을까?’
옷 안주머니에 편지를 넣으려던 하운은 아쉬운 마음에 다시 봉투를 꺼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네이판타가 모습을 드러냈나!”
편지 말고 저녁에 그를 찾을 일은 비상 상황뿐이다. 그가 다급히 문을 열자 문 앞에는 낯이 익은 보석술사 두 명이 손에 접시를 든 채 그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굳은 하운의 얼굴을 보더니 덜덜 떨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오늘 제 고향에서 온 후발대가 고향 음식을 좀 가져왔는데, 대공 님께서도 드셨으면 해서….”
어린 보석술사들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접시를 들고 있는 동료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찌르며 “그러게 하지 말자고 했잖아….”라고 속삭였다. 하운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쟁반을 들고 있는 보석술사를 보았다.
이번이 첫 참전이라고 했던가. 가문 대대로 물려받은 보석이 냉기를 막아 주는 힘을 갖고 있어서 이번 선발대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했다.
어린 보석술사의 손목에는 여러 가지 색의 실을 꼬아 만든 팔찌가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가족들이 그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하나씩 만들어 준 것일 터다.
일단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안도한 하운은 그가 들고 있는 쟁반을 바라보았다. 그 위에는 케이크와 비슷한 것이 놓여 있었다. 형태가 살짝 다르긴 하지만 하운이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떠나기 전에 리엘라와 함께 만들었던 것.
그는 잠시 그 디저트를 보다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바쁜가?”
“네? 네! 아니, 아닙니다! 안 바쁩니다!”
두 사람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하운은 그들을 보며 피식 웃더니 말했다.
“들어와서 차라도 한잔 마시고 가게. 같이 먹으면 더 좋겠군.”
“네? 여, 영광입니다!”
하운의 제안에 두 보석술사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안으로 들어와서도 여전히 쭈뼛거리며 선 그들에게 자리를 권한 하운은 처음으로 제가 머무는 거처의 주방을 뒤졌다. 다행히 그가 오기 전에 이곳을 정리했던 자들이 놓고 간 찻잎이 있었기에 하운은 재빨리 보석의 힘으로 물을 끓여 내었다.
하운이 따뜻한 물과 주전자를 가져오자 보석술사들은 자신들이 하겠다며 재빨리 그의 손으로부터 쟁반을 넘겨받은 다음 주전자 안에 차를 넣었다. 곧 그들의 주변으로 향긋한 차 향기가 가득 찼다.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디저트들과 달리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것들이라….”
“괜찮아. 먹어 본 적 있거든.”
“네? 아, 하긴 어딘가로 멀리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먹긴 하지요. 그래도 서쪽의 과자인데, 수도에서 만들어 주는 분이 계셨나요?”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먹는다고?”
하운이 되묻자 보석술사들은 신나서 설명했다.
“네, 이건 카르디아 서쪽의 전통 디저트인데 집을 떠나 먼 곳으로 가는 사람에게 무사히 돌아오라는 뜻을 담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집을 잊지 말라는 마음으로 집에 남아 있는 향신료들을 전부 넣는 게 특징이지요.”
그런 의미가 있었나.
하운은 조용히 디저트를 바라보았다. 그런 의미를 리엘라가 몰랐을 리가 없다. 아니, 알고 있었기에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그는 포크로 디저트를 잘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리엘라와 만들었던 것과 비슷한 맛이 느껴졌다.
“이건 카다멈이 들어갔나….”
그가 좋아하지 않는 맛이 살짝 느껴진 탓에 중얼거리자 보석술사들이 대답했다.
“카다멈은 항상 들어가는 재료 중 하나입니다. 서쪽에서 많이 나니까요. 어떤 레시피를 봐도 들어가 있을걸요?”
“…….”
하운은 말없이 다시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리엘라가 준비해 놨던 재료들이 생각났다. 레시피대로만 만들었으면 카다멈이 들어갔을 텐데….
‘내가 싫어하니까 빼 주었군.’
그가 도착했을 때, 주방에서 혼자 훌쩍거리고 있던 리엘라의 모습이 생각났다. 혼자서 이것을 만들 준비를 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하운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보석술사들은 다시 불안해졌다. 맛이 없었나?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왜 저렇게 표정이 어두우신 거지….
애타는 보석술사들의 마음도 모른 채 하운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남은 디저트를 삼켰다.
***
‘이제 정말 여름도 끝인가 봐.’
리엘라는 한낮이 되어도 덥지 않은 공기를 느끼며 옷장에서 얇은 겉옷을 챙겨 입었다. 오늘은 그녀가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날이었다. 리엘라가 현관으로 나오자 그곳에는 여러 대의 짐마차가 잔뜩 물건을 실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곧 안에서 네아가 약이 가득 든 상자를 가볍게 들고 와 마지막 짐마차에 싣더니 외쳤다.
“준비 끝났어요!”
그 말에 리엘라는 마차에 올라탔다. 네아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마차의 옆으로 다가왔다.
“오늘도 직접 가실 거예요?”
“일손이 부족하다잖아요. 왕궁에서 오신 보석술사님들도 함께 가신다고 하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렇긴 하지만….”
네아는 흘깃 뒤를 돌아보았다. 하운의 부탁으로 왕실에서 보낸 보석술사들이 네아를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서 있었다.
“약해 보인단 말이죠. 한 대 치면 부러질 것 같은 사람들이라 아가씨 경호를 제대로 하기나 할지.”
네아의 말에 보석술사들이 굳어 버리는 것이 보였다.
“네아가 너무 강한 거라니까요.”
“그래도….”
네아는 여전히 탐탁지 않다는 듯 보석술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저택 안에서 아일리가 옷을 챙겨 들고 나왔다.
“준비 끝났어! 가자!”
아일리는 잽싸게 마차에 올라타더니 마부에게 출발해 달라 소리쳤다. 이윽고 마차가 움직였고, 리엘라는 여전히 걱정 어린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있는 네아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모습에 아일리는 혀를 찼다.
“세 살짜리 애를 물가에 내놔도 저렇게는 걱정 안 하겠다. 공주님이네, 공주님.”
“응, 나 여기서 공주님이야. 그러니까 알아서 좀 모셔 주라, 언니.”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공주 언니는 공주 아니냐?”
이겨 봤자 아무 의미 없는 자매끼리의 실없는 말싸움이 마차 안에서 오갔다.
마차는 공작저를 나와 수도의 북쪽으로 향했다. 수도의 북쪽에는 낮은 언덕이 있는 공원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곳은 북부 전선에서 대피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했다.
공원에 가까워지자 여기저기에 몰려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리엘라가 탄 마차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호슨 공작님의 문장이야!”
“레이디 리엘라가 왔다!”
그들은 공원으로 들어오는 짐마차를 향해 다가왔다. 짐마차를 둘러싼 사람들의 소리가 점점 더 커지자 아일리가 마차의 창문 밖으로 몸을 빼더니 소리쳤다.
“넉넉하게 가져왔으니 저번처럼 싸우지 마세요! 부족하면 더 가져올 테니까! 그러니까 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줄을 서세요! 새치기하면 가만 안 둬!”
마지막 말에 가득 담긴 진심을 알아차렸는지 사람들은 서둘러 가족들을 찾아 저 멀리 보이는 ‘식량 배급소’라고 적힌 천막으로 향했다.
짐마차들이 배급소 뒤에 차례대로 도착하자 안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이 나와 반갑게 리엘라를 맞이했다.
“오셨군요!”
리엘라는 재빨리 마차에서 내려 그들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좀 늦었죠? 이쪽은 오늘까지 공작저에서 사들인 약들을 모아 왔어요. 그리고 오래 보관 가능한 빵들도 구워 왔고… 미리 부탁해 놓은 과일과 채소, 고기도 곧 이곳으로 올 거예요.”
리엘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짐마차들이 하나둘씩 도착해 “레이디 리엘라가 부탁하신 물건들입니다!”라며 나무 상자들을 내리기 시작했다. 배급소의 직원들은 공작저의 하인들과 함께 나무 상자들을 재빨리 안으로 날랐다. 천막 너머에서 식량을 빨리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리엘라는 어두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네이판타가 북부를 쑥대밭으로 만든 지 벌써 한 달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하운을 포함한 선발대가 다행히 네이판타가 남쪽으로 진격하는 것을 막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변의 마을들이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북부의 사람들은 일 년간 공들여 가꾼 삶의 터전을 놔둔 채 그곳을 떠나야 했다. 아직 네이판타의 공격을 받지 않은 밀밭이 바람에 흔들리며 그들을 배웅했다.
사실 왕실은 북부의 사람들이 전에 거주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을 명했다. 하지만 모두가 돌아갈 수는 없었다. 결국 오갈 데가 없어진 사람들은 수도로 몰려들었고, 왕실은 수도 북쪽의 공원을 그들이 머물 곳으로 지정해 임시 숙소와 식량을 제공했다.
갑자기 부활한 드래곤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에게 수도 사람들의 온정이 쏟아졌다.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공원으로 와 그들이 머물 임시 숙소를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탰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자들은 필요한 물건을 사서 보내거나 모금함에 돈을 넣었다.
그리고 리엘라는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하고 있었다.
“이럴 때 쓰라고 남기신 유산이죠!”
리엘라는 곧바로 제가 쓸 수 있는 모든 자금을 끌어왔다. 소르디아에서 쓴 돈이 너무 커서 얼마 안 남았을 줄 알았더니 크레이튼 씨와 회계 담당자들은 팔아도 되는 재산의 목록이라면서 리엘라의 키만큼이나 긴 목록도 건네주었다.
리엘라는 망설임 없이 제가 살아생전 가지 못할 것 같은, 이름도 모르는 지역의 오래된 저택들을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큰 금액의 부동산은 바로 거래가 힘들 텐데, 크레이튼 씨와 회계 담당자들은 잘도 일주일 만에 모든 것을 정리했다.
그리고 지금 그 돈들은 전부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위해 쓰이고 있었다.
리엘라는 단순히 돈만 지원하는 게 아니었다. 리나를 통해 알게 된 농장에 부탁을 해 상품으로 팔기는 애매하지만 품질에는 문제가 없는 농산물들을 싼값에 구입해 모조리 이곳으로 가져왔다. 옷 가게의 창고에 쌓여 있던 계절이 지난 옷들도 싼 값에 전부 사 들여 가져와 나눠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머물 임시 숙소를 지을 인력도 따로 고용했고.
‘의식주가 해결되면 한결 안정을 되찾을 거야.’
처음에는 한꺼번에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혼란스러웠지만 리엘라가 돈을 퍼붓자 이곳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어디 보자…. 야채수프도 큰 솥으로 한 번 더 끓여야 할 것 같고….”
리나에게 얻어 온 대용량 레시피를 점검하면서 리엘라는 천막 뒤에 쌓아 놓은 채소들을 바구니에 담았다.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니 따뜻한 수프를 잔뜩 만들어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리엘라가 바구니를 들고 몸을 돌리는 순간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땅굴?”
“그래, 엄청나게 긴 땅굴이었다니까. 끝까지 안 가 봐서 모르겠는데 그거 분명….”
말하는 이는 제가 본 것을 다시 떠올리는 것조차 두렵다는 듯 몸을 떨며 말했다.
“사람이 만든 건 아닌 것 같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