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31
33
정신없이 리엘라가 포장을 하고 있을 때 거리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각 잡힌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곧 가게 앞으로 말을 탄 기사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북부 전선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병사들이 귀환한 것이다.
“리엘라, 빨리!”
“알았다니까!”
서둘러 꽃들을 양철통에서 꺼내면서 리엘라는 생각해야 했다. 무슨 꽃들을 섞지? 소재를 어떤 걸 넣지? 샤를이 무슨 색을 좋아했더라? 걘 먹을 수 있는 꽃을 좋아하는데!
꺼낸 꽃들 늘어놓은 리엘라는 재빠르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운과 네아는 그런 리엘라의 움직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냥 되는대로 꽃을 꺼내 온 거라고 생각했는데 리엘라가 손을 몇 번 움직이면 어느새 그 자리에는 예쁜 꽃다발이 완성되어 있었다.
하운은 모든 게 신기했다. 하운에게 꽃은 그저 꽃일 뿐이었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것들. 그에게 의미를 갖는 것은 빛나는 꽃 하나뿐이었고 꽃의 색과 아름다움에 신경을 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특히나 꽃다발은 그가 가장 쓸모없다 생각하는 것 중 하나였다. 얼마 있지 않아 시들어 버릴 것들. 받아 봤자 쓰레기인 것.
“…….”
하지만 지금 리엘라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꽃다발은 문외한인 그의 눈에도 아름다워 보였다. 아무렇게나 꽃들을 묶는 것 같은데 어느새 그녀의 손 위에는 자연스럽게 조화된 꽃다발이 만들어졌다. 무엇 하나 서로의 아름다움을 침범하지 않고 함께 있어서 더욱 자연스러운 모습에 하운은 넋을 잃고 바라볼 뿐이었다.
“오고 있다! 리엘라!”
리엘라가 바쁘게 움직임에도 엘빈은 애가 타는지 그녀를 재촉했다. 리엘라가 진땀을 흘리는 도중 갑자기 루시안이 옆으로 다가갔다.
“제가 좀 도와드려도 될까요?”
갑자기 루시안이 팔을 걷어붙이더니 리엘라의 옆에 섰다. 그런 그의 모습에 리엘라는 곤란하다는 듯 그를 말렸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괜찮아요. 쉽게 보일지 몰라도 나름대로 기술이 필요한 거라….”
리엘라가 곤란해하며 그의 손에 들린 꽃을 받아 들려는 순간, 루시안의 손이 움직였다.
그는 소재 자리에 두었던 유칼립투스 잎을 꺼내더니 그것을 잘라 꽃 주변을 둥글게 감쌌다. 큰 봉오리의 장미를 높낮이가 다르게 배치하며 사이사이의 빈 공간에는 작은 봉오리의 리시안셔스를 가져와 끼웠다. 그의 손놀림을 보던 리엘라의 눈이 커졌다.
‘빨라!’
속도뿐만이 아니다. 색깔에 따른 꽃의 배치와 소재의 사용도 훌륭했다.
“루시안 님?”
리엘라가 당황하며 그를 불렀다.
루시안은 꽃 한 묶음을 만들더니 가게 밖 양철통에 남아 있는 꽃을 보고 리엘라에게 말했다.
“보라색 꽃들은 리엘라 양이 해 주겠습니까? 전 이쪽의 붉은 꽃들을 손질할 테니.”
“네? 네!”
어쨌거나 일단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저 엘빈을 빨리 샤를의 곁으로 보내 줘야 했다. 리엘라는 곧바로 보라색 꽃들로 다가가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고마워! 값은 내일 와서 치를게!”
“어서 가 보기나 해!”
여러 개의 꽃다발을 들고 있는 엘빈은 하나의 거대한 꽃 덩어리처럼 보였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양손 가득 꽃을 들고 가는 엘빈에게 손을 흔든 리엘라는 자신의 꽃집을 돌아보았다.
전투가 끝난 후 전장이 이런 느낌일까. 바닥과 테이블에는 꽃의 줄기와 잎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거기에 꽃을 포장한 포장지와 리본의 잔해까지. 그것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리엘라는 고개를 돌려 루시안을 바라보았다.
“루시안 님,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냐 이거겠죠?”
리엘라가 무슨 질문을 할 줄 알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 그가 대답했다.
“비밀은 아니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인데 왕실 수석 플로리스트 ‘모리스 경’이 사실은 제 아버지거든요.”
그는 조금 곤란한 듯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네?”
“뭐?”
“헐?”
리엘라와 하운과 네아가 동시에 소리쳤다.
‘모리스 경’이 누구던가.
이 나라 가장 유명한 플로리스트이자 정원사, 또한 꽃 품종 개량의 선구자.
원래 그는 귀족이 아니라 평민이었다고 한다. 수도 근교 화훼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나이부터 여러 꽃들의 교배에 성공시켜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 냈다.
훨씬 봉오리가 크고 화려한 동시에 향기까지 진한 작약.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핏빛처럼 붉은색의 장미. 그동안 너무 꽃이 작아 잡초 취급을 받았던 디디스커스의 꽃봉오리를 키워 훌륭한 하나의 꽃으로 인정받게 된 것까지. 그런 그가 경이라는 호칭을 얻게 된 것은 오래전 꽃 축제에 그가 그 당시 왕비에게 바친 꽃 때문이었다.
작약과 장미를 섞은 듯한 처음 보는 화려한 꽃은 순식간에 저 멀리 다른 나라에까지 소문이 났고 그는 그 공적을 인정받아 경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꽃으로 귀족의 작위를 받은 사람은 모리스 경이 유일했다.
그래서 이 나라 꽃의 역사는 모리스 경 이전과 이후로 정리할 수 있다는 말이 돌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루시안의 아버지라고? 리엘라는 눈을 반짝이며 루시안을 보았다. 모리스 경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들을 수 없을까 하는 기대에 가득 찬 눈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네아는 옆에 있는 하운을 보며 말했다.
“지금 여기서 가장 할 일 없는 사람, 너 같은데?”
하운은 신난 얼굴로 대화하는 리엘라와 루시안을 보았다.
리엘라를 만난 이후로 저렇게 기뻐하는 표정은 처음이었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리엘라의 표정은 어떤 것이던가. 처음 만났을 때, 리엘라는 울고 있었다. 그다음은 네아 때문에 겁에 질렸던 얼굴이었고. 그 후에는 잘 가라며 경멸하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금 새로운 꽃다발을 만드는 루시안의 옆에서 그의 손길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열심히 보고 있는 리엘라의 모습은 그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운은 갑자기 속에서 무엇인가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너도 어디 가서 꽃다발 만드는 법이라도 배워 와야…. 야?”
계속해서 하운을 놀리려던 네아는 생각 외로 조용한 그의 모습에 하운의 상태를 살폈다. 너무 놀렸나? 그래도 이렇게 조용할 놈이 아닌데? 차라리 가만 안 두겠다고 보석을 쓰면 모를까.
“너 괜찮냐?”
“…….”
하운은 네아의 말에 대답 없이 자신이 정리하고 있던 것들을 바라보았다.
사실 리엘라가 루시안과 사이좋게 지내든 말든 알 바 아니었다. 자신은 어서 보석의 방을 열고 그 안에 있을 공작의 유언장을 빼 오면 모든 게 끝난다. 호슨 공작은 리엘라를 지키라고 했지만 그 기간을 지정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평생 해 주겠다 해도 본인이 거부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어서 보석의 방을 열 방법이나 고민하고 있으면 되는데 리엘라와 루시안이 하하호호 하는 저 모습이 왜 이렇게 신경 쓰이고 기분 나쁜지 모를 일이었다.
‘저놈, 열 능력이 안 되니 리엘라를 공략하겠다는 건가?’
루시안 역시 보석술사이기에 보석이라면 눈이 돌아가는 녀석이다. 게다가 원탁회의 의장도 자신은 귀찮다 귀찮다 말하지만 정작 다른 누군가가 대신 하겠다 하면 절대로 내 줄 사람도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내질 않아서 그렇지 탐욕이라는 보석술사의 미덕에 가장 충실한 놈이 저 놈일 텐데 그것도 모르고 헤헤 웃으며 옆에 있는 꼴이라니.
열심히 새 꽃다발을 만드는 리엘라와 루시안을 노려보는 하운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을 때, 말이 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거리의 사람들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리엘라의 꽃집을 바라보았다. 뭔가 특이하다 싶은 사람은 다 이곳을 찾아오는 것 같으니까.
“비키시오!”
말을 탄 사람이 큰소리로 외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가 타고 있는 말의 안장에는 하운의 눈에 익숙한 왕실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말을 탄 전령은 리엘라의 꽃집 앞에 내리더니 곧바로 하운의 앞에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하운 대공님! 지금 즉시 모든 보석과 함께 입궁하라는 전언입니다!”
***
왕궁에 들어가 복도를 걸을 때부터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하운은 느낄 수 있었다.
서로 모여 이야기하고 있는 대신들의 얼굴에는 어두움이 묻어 있었고 목소리는 낮았다. 그들의 모습에 하운의 얼굴 역시 어두워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왕궁의 분위기는 이러며 국왕은 급히 자신을 찾은 것일까.
하운이 복도를 걸어 회의실에 도착하자, 대기하고 있던 시종들이 서둘러 문을 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보였다. 또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도.
“왔냐?”
방 안에 서 있던 레이안은 하운을 보자 반가운 얼굴로 맞이했다. 그의 옆에는 하운에게도 익숙한 대신들과 왕실 기사단의 사람들이 보였다. 하운은 그들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한 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목이 뜯겨 나간 몬스터의 사체였다.
푸른 피부와 인간보다 훨씬 큰 덩치, 근육으로 덮인 팔과 다리로 보아 그것은 오크가 분명했다. 몬스터들 중에서 가장 인간과 비슷하며 무리를 지어 사는 존재들이었다.
인간과의 대립에서는 이미 밀려난 존재들이었기에 오크들은 인간들이 오지 않은 깊은 숲속에서 소규모의 무리를 지어 자신들끼리의 마을을 만들었다.
서로 전쟁을 벌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산속에서 만난다면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눌 존재들도 아니었기에 몬스터로 분류되는 오크. 그런데 그것의 시체가 왜 왕궁에 있는지 하운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목이 뜯겨 나간 자국을 자세히 봐.”
레이안의 말에 하운은 오크의 시체로 다가갔다. 생각보다 썩은 냄새가 덜한 것을 보면 죽은 지 그리 오래된 시체는 아닌 것 같았다. 물에 한 번 빠지기라도 한 것인지 말라붙은 진흙이 묻어 있었다. 다가가서 목의 자국을 본 순간, 하운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이것을 발견한 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접니다.”
하운의 질문에 구석에 서 있던 기사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어디서 어떻게 발견했는지 소상히 말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