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eirs RAW novel - Chapter 9
9
하운은 편지 봉투를 살펴보았다. 항상 자신이 받던 편지 봉투가 맞았으며 붙어 있는 밀랍 봉인에는 쓰러진 드래곤과 세 개의 보석이 그려져 있는 호슨 공작의 문장이 있었다. 그러니 이건 분명 공작이 보낸 편지가 분명하다. 하지만 글씨체는 전혀 다른 사람의 것이라니.
‘어떻게 된 일이지?’
하운은 급히 편지를 읽었다. 곧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제가 들고 있는 편지지를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이게 뭐야?”
호슨 공작의 편지는 언제나 짧고 간결했다. 수도의 날씨는 이렇다. 북부 전선의 날씨는 어떠하냐. 플레노트는 잘 제압하고 있느냐. 수도 오면 얼굴이나 한번 비춰라.
쓰이는 말이 조금씩은 다를지 몰라도 내용을 요약하자면 크게 다를 것이 없는 형식이 정해진 편지였다. 하지만 지금 제 손에 들려 있는 편지는 지금까지 받아 온 편지들과 달랐다.
공작저의 온실에는 새로운 나무들이 들어왔습니다. 먼 남쪽에서 온 뿌리가 땅 위로 올라온 나무들은 물속에 잠겨 자라는 것들이라 공작저의 온실 안에 급히 연못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기왕에 만드는 연못이라면 좀 더 실감나게 만들어 보자! 라는 목표 아래 모두가 열심히 땅을 파고 수초를 찾아오고 물고기까지 구해 와….
하운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편지지를 바라보다 테이블 위에 있는 램프에 가져다 대었다. 편지지의 끝에 불이 붙어 타오르자 급히 흔들어 끈 다음 다시 살펴보았다.
“열 반응 암호를 적은 것도 아니고.”
그 후로 한참이나 하운은 군에서 쓰는 암호 해독법까지 떠올리며 편지의 내용을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종이를 살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숨겨진 내용은 없었다.
“지금 공작저에서 온실 공사한 내용을 나에게 보냈다 이건가?”
그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절반은 탄식, 절반은 어이없음이 담겨 있는 한숨이었다. 그는 긴장했던 탓에 뻐근해진 목을 천천히 돌리며 의자에 앉았다. 짜증나는데 확 태워 버릴까. 잠시 제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 편지를 노려보던 그의 눈동자가 글씨를 따라 움직였다.
평소 호슨 공작의 편지는 편지지 한 장을 절반도 채우지 못할 만큼 짧았는데, 오늘 도착한 편지는 몇 장을 넘겨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전부 쓸모없는 이야기였다. 공작저의 후원에 사는 고양이가 새끼들을 데리고 사냥 연습을 시켰다는 이야기와 그물을 쳐 두지 않은 블루베리를 까마귀가 다 따먹었다는 이야기가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하운은 짜증을 내면서도 편지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다 한참 후, 낯선 글씨체가 전장에서 몸 조심히 건강하라는 인사말로 편지를 끝맺었을 때, 하운은 낯선 감정에 잠겼다.
“몸조심하라고.”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쓴 글씨는 누가 보더라도 받는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더욱 하운은 어이가 없었다. 몸조심하라니. 어릴 적 제 형을 제외하고 그에게 감히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도대체 이 편지 누가 쓴 거지?”
그러다 하운은 편지지 마지막에 적힌 호슨 공작의 필체를 발견했다.
눈이 침침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이제 다른 사람이 편지를 대필할 겁니다. 당신이 하운 대공인 걸 모르고 쓰는 편지이니 무례가 있더라도 이해하시길.
이제 하운은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인 거지?’
하운은 호슨 공작을 잘 알고 있었다. 겉으로 보면 인자한 노인으로 보이는 호슨 공작이지만 그녀는 군인보다 더 군인 같은 자이며 어느 순간에도 방심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제 편지를 다른 자의 손에 맡겼다고?
‘도대체 누굴까?’
편지에 대필인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필체로 젊은 여자이겠거니 짐작할 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필체가 속임수일지 모른다.
‘어쨌든 네아는 확실히 아니야.’
호슨 공작의 하녀를 떠올리던 하운은 혀를 차며 다시 편지를 바라보았다. 대필자가 누구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네아 말고 옆에 다른 이를 두지 않던 호슨 공작이다. 그런 그녀가 편지를 맡길 정도의 사람이라니?
‘무슨 꿍꿍이를 가진 자일까.’
호슨 공작이든, 이 대필자이든 분명 뭔가 목적이 있으리라. 모두가 그러하듯이.
***
“안녕하세요, 멜다 부인.”
네아와 함께 저택으로 온 리엘라는 현관에 서 있던 중년의 부인에게 인사했다. 푸근한 웃음으로 리엘라를 맞이한 멜다 부인에게서는 고소한 냄새가 났다. 리엘라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자 멜다 부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공작님께 가 보세요. 아침부터 기다리고 계셨거든요. 스콘이 다 구워지는 대로 가져갈게요.”
“감사합니다!”
멜다 부인에게 꾸벅 인사를 한 리엘라는 공작의 방을 향해 걸었다.
이제 공작저는 리엘라에게 익숙한 공간이 되었다. 공작저의 온실에서 많은 식물들을 돌보기 위해 매일같이 왔으니까. 그사이에 저택의 사람들과도 친해졌다. 조금 전 만난 멜다 부인은 특히나 리엘라가 오는 것을 반가워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똑똑.
공작의 방 앞에서 리엘라는 옷을 정리한 다음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게나.”
안에서 공작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리엘라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소파에 앉아 있는 공작의 모습이 보였다.
“어서 오게. 기다리고 있었어. 오늘도 편지를 좀 부탁하고 싶군.”
그 말에 리엘라는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테이블 위에 편지지와 펜이 준비되어 있었다. 리엘라는 익숙하게 앉은 다음 펜을 집고서 물었다.
“오늘도 내용은 제가 알아서 적으면 되나요?”
“물론이야. 길수록 좋다네.”
그 말에 리엘라는 시선을 돌려 편지지를 바라보았다. 벌써 몇 번째 리엘라는 공작의 편지를 대필하고 있었다. 이런 일은 네아가 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 했더니 네아는 말없이 그녀의 글씨를 보여 주었다. 읽기 불가능할 정도 엉망인 글씨를 본 리엘라는 더 묻지 않고 펜을 잡았다. 뭐든지 잘하는 것 같은 네아지만 못 하는 일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호슨 공작은 오래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했을 뿐, 이 편지가 누구에게 가는 것인지 말 해 주지 않았다. 역시 아무래도 자신이 그 상대를 아는 것이 조금 걸리는 모양이다 생각하고 리엘라는 그 사실에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저 북쪽 전선에 있는 누군가에 보내는 것이라 짐작할 뿐이었다.
‘공작님은 보석술사들을 많이 알고 계시겠지.’
리엘라는 얼마 전 보았던 신문의 기사를 떠올려 보았다. 북부 전선의 레드 드래곤 플레노트가 수면기에 들어갔다는 기사였다. 그래서 그곳에 있는 군인들과 보석술사들은 대부분 돌아올 것이고 반대로 농사를 짓거나 마을을 복구하기 위한 사람들이 북쪽으로 간다고 했다.
‘나이가 많이 드신 분이겠지?’
호슨 공작과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이면 아무래도 비슷한 나이의 보석술사일 것 같았다. 리엘라가 막 인사말을 쓰려고 할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멜다 부인과 네아가 함께 과자와 차를 가져왔다.
“홍차와 막 구운 스콘을 가져왔답니다. 좀 드시면서 하세요.”
“맛있겠군. 어서 먹는 게 좋겠어.”
공작의 권유에 리엘라는 펜을 내려놓고 냉큼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
예전에 친구들과 돈을 모아서 수도에서 제일 비싸다는 티 룸의 가장 싼 세트를 시켜 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 천국의 맛을 보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곳보다 멜다 부인이 만드는 과자들이 몇 배는 더 맛있었다.
멜다 부인은 당장이라도 침을 뚝뚝 흘릴 것 같은 리엘라를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저번에 아가씨가 맛있다고 말한 치즈 스콘을 다시 구워 봤어요. 들어가는 치즈를 좀 바꾸어 봤는데 한번 비교해 줄래요? 여긴 오늘 아침에 농장에서 가져온 클로티드 크림이니 온실에서 딴 딸기로 만든 잼과 함께 먹어요.”
공작이 집는 것을 확인한 다음 리엘라는 스콘으로 손을 뻗었다. 따끈따끈한 스콘에 클로티드 크림을 듬뿍. 그 위에 딸기가 그대로 들어 있는 딸기잼도 듬뿍. 그사이에 네아가 어느새 리엘라의 찻잔에 차를 따라 주었다.
그대로 크게 한입 베어 물고 몇 번을 우물거리던 리엘라의 손이 파닥거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너무도 황홀하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멜다 부인, 결혼해 주세요. 제발요.”
“어머, 그건 좀 곤란한데요.”
“그럼 딸로 삼아 주세요. 사랑해요, 어머니.”
리엘라의 호들갑에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서렸다. 호슨 공작이 그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역시 젊은 사람이 있는 게 좋아.”
“그러게요. 이렇게 신나게 먹어 주는 사람이 생기니 만드는 보람이 있네요.”
이런저런 수다가 오갔다. 리엘라는 세 번째 스콘을 입에 물며 생각했다. 편지에는 이 이야기를 적어야겠다고.
***
북부 전선은 소란스러웠다.
그동안 주둔하고 있던 군대가 수도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꾸리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모두들 들떠 있는 탓에 크고 작은 사고들이 일어났고 하운은 그 뒤처리로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결국 그가 수습을 끝내고 막사로 돌아왔을 때는 늦은 밤이었다.
“후우….”
피곤에 지친 한숨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의자에 앉은 하운은 테이블 위에 도착한 편지가 있는 것을 보았다. 호슨 공작의 문장. 그것을 확인한 그는 빠르게 봉투를 열었다. 안에 있는 편지지를 펼친 그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역시나 오늘도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적힌 인사말이 보였다. 그리고 그 내용은….
“스콘이 맛있었나 보군.”
공작저의 멜다 부인이 얼마나 스콘을 맛있게 만들며 딸기잼 또한 대단하다는 이야기. 거기에 그 딸기는 온실 관리자들이 열심히 키워 냈다는 이야기였다. 하운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열심히 편지를 읽고 있었다. 어쩐지 누군가 제 옆에 앉아서 재잘거리며 하루의 일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릴 적부터 일찍 전장으로 나가 지금까지 전투 속에서 살아온 하운이었다. 그의 주변에는 언제나 피와 비명이 함께했으며 맞서야 하는 것은 인간을 향해 끝없는 적의를 가진 드래곤과 몬스터들이었다. 그런 그에게 수도의 평화로운 하루는 다른 세상의 모습과도 같았다.
지금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보내고 있는 평온한 일상.
“…….”
편지를 보던 하운의 입가에 그도 모르는 미소가 걸렸다.
전장에 있다 보면 사람은 회의감이 들기 마련이다. 나는 왜 여기에, 무엇을 위해 있는가 하는 의문과 함께. 하운은 다시 편지를 보았다. 읽는 것만으로도 고소한 스콘의 냄새가 풍기는 것 같은 편지였다. 그것을 읽어 가던 하운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이렇게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노력했는지 답을 알려 주는 편지라니.
하운은 오랜만에 깊이 잠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