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38
◈ 238화 우연한 마주침 (5)
루드거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얼굴을 향해 달려드는 어둠의 정령을 붙잡았다.
손끝에 느껴지는 폭신한 감촉에 신기해하면서도, 어둠의 정령이 보여 준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에 의아함이 들었다.
‘정령이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신의 힘을 다루는 루드거는 정령들이 기피하는 대상이다.
물론 정령의 등급에 따라서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는 한다.
중급 정령쯤 되면 마음이 맞는다면 서로 협력도 가능한 관계.
다만, 그것을 제외하면 중급 정령들은 기본적으로 루드거를 꺼리거나 적대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데도 이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달려들었지.’
용기가 넘치는 건지 겁이 없는 건지.
아니면, 겉보기와 다르게 정령으로서의 급이 꽤나 높은 걸지도 몰랐다.
“앗!”
셀리나도 뒤늦게 자신의 정령이 루드거에게 달려들었다 한 손에 붙잡힌 것을 깨닫고 비명을 내질렀다.
“루, 루드거 선생님! 괜찮나요?”
“네. 그보다 여기.”
루드거는 손에 쥔 정령을 내밀었다.
녀석은 루드거의 손에 붙잡힌 그 순간에도 시종일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셀리나는 검은 솜뭉치를 받아들고는 품에 꼬옥 안았다.
“얘. 함부로 날뛰면 못 써.”
정령은 못마땅하다는 듯 몸을 꾸물거렸지만, 셀리나는 엄격한 표정을 지으며 정령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아이를 혼내는 엄마 같았다.
“신기하군요. 설마하니 정말로 어둠의 정령일 줄이야.”
“아, 네. 저도 듣기만 했지, 실제로 존재하는 건 이번에 처음 봐요.”
“다른 정령학 선생님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네? 루드거 선생님에게만 처음으로 보여 준 건데요?”
“아. 그랬죠.”
루드거는 턱을 쓰다듬으며 어둠의 정령을 살폈다.
‘대단하군.’
적어도 그가 아는 지식 내에서, 어둠의 정령이 갖는 희소성과 가치는 가히 추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정작 셀리나는 이 정령의 진귀함에 대해서 잘 모르는 눈치였다.
혹시 나중에라도 놀라지 않게 지금이라도 미리 말해 주는 것이 좋으리라.
“셀리나 선생님. 어둠의 정령이 어떤 정령인지 알고는 계십니까?”
“네?”
저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어둠의 정령은 그냥 희귀한 개체가 아닌가요?”
“그렇게 단순히 짚고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셀리나 선생님. 어둠이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어…… 지금 대답해야 하는 건가요?”
무슨 스위치가 들어가기라도 한 듯 갑자기 교사로서의 면모를 뽐내는 루드거의 모습에 셀리나가 당황했다.
“뭐라고 생각하시죠?”
이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될 분위기인지라, 셀리나는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답을 내놓았다.
“그야 어둠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새까만 칠흑. 빛의 반대 아닌가요?”
“보통은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만…….”
“아. 아니구나.”
루드거의 반응을 보면 아무래도 틀린 듯싶어서 셀리나는 시무룩해졌다.
“셀리나 선생님.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아무것도요?”
“예. 풀도 나무도 대지도 바람도 물도. 그리고 빛마저도. 그 모든 것이 없는 완전한 무(無)이자 공허. 그것이 어떤 형태라 생각하십니까.”
“그건…….”
셀리나는 자기도 모르게 품에 안고 있는 정령에게 시선이 가고 말았다.
“설마 이 아이가?”
“맞습니다. 바로 어둠입니다.”
루드거는 셀리나와 함께 서 있는 좁은 길목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길목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아무것도 없는 부재의 상태. 어둠이란 바로 그런 겁니다. 빛의 반대는 어둠이 아닙니다. 빛의 부재를 비롯한 다른 모든 것의 부재가 바로 어둠의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셀리나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것 보다, 어둠이라는 요소가 갖는 근원적인 의의는 훨씬 더 크고 방대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자면 해가 저문 이후의 밤이 있다.
새까만 밤에도 완전한 어둠은 없다.
빛이 들지 않는 한밤중의 숲속에서도 눈에 보이는 것은 있다.
하늘의 별빛과 달빛도 그렇고, 아주 미약한 양이지만 빛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먹구름이 가린다 한들 마찬가지다.
어떠한 물체든지 아주 미약하지만 빛을 반사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어둠이라는 개념을 빛의 ‘최소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빛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어둠 속성 마법과도 마찬가지다.
결국, 어둠 속성 마법은 마나로 어둠을 ‘흉내 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루드거가 다루는 마법수인 [아테르 녹터누스] 또한 마찬가지다.
새까만 그림자처럼 생겼지만, 이 또한 완전한 어둠이라 볼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마탑에서도 속성원소별로 색의 칭호를 내리지만.
어둠 속성을 의미하는 흑(黑)색의 자리는 항상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셀리나가 부리는 어둠의 정령은 어떠한 불순물과 잡음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어둠.
정령이 순수한 자연의 원소에서 탄생하는 영적인 존재라는 걸 생각하면.
어둠의 정령은 단순히 마법으로 흉내를 낸 가짜 따위가 아닌, 진짜 어둠이라는 말이었다.
“어쩌면 정말 대단한 정령일지도 모릅니다.”
“네? 이 아이가 그 정도로요?”
셀리나는 루드거가 저렇게까지 말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야 그럴 것이 그녀가 품 안에 안고 있는 어둠의 정령은 너무나도 작고, 또 귀엽게 생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대단하다고 말을 해도 직관적으로 와 닿지 않는 것이다.
루드거는 잠시 고민하듯 턱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조금 뜬금없는 질문처럼 느껴지시겠지만, 셀리나 선생님은 혹시 신의 존재를 믿습니까?”
“어, 음. 아마도요? 믿냐 믿지 않으냐로 따진다면 그래도 믿는 쪽이겠죠.”
“왜 믿습니까?”
왜 믿냐니.
셀리나는 그 질문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차분히 답했다.
“그야 신을 믿는 사람들도 많고, 실제로 역사에는 신의 은총과 같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잖아요.”
“그렇다면 다른 걸 묻죠. 악마는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에이. 그야 없죠. 아무리 제가 소문이나 괴담을 좋아한다 해도 그런 건 믿지 않는다구요.”
셀리나는 루드거가 장난을 친다 생각했지만, 루드거는 진지하게 되물었다.
“왜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그야, 악마는 없잖아요? 없는 걸 없다고 말을 한 건데.”
“그 악마가 없다는 것을 제게 증명하실 수 있습니까?”
루드거의 말에 셀리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기본적으로 증명은 ‘존재하는 것’에 국한된 말이다.
없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을 한다는 걸까.
이해가 가지 않아 아리송한 셀리나의 모습을 본 루드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셀리나 선생님.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그걸 입증하기 쉽습니다. 왜냐면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단 하나만 보여 주면 그만이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반대로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려면, 이 세상 어디에도 악마는 없다는 것을 ‘모두’ 증명해야 합니다.”
모두라는 말에 셀리나는 눈을 크게 떴다.
루드거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이해한 것이다.
“그렇네요. 제가 악마가 없다는 것을 주장해도, 세상 어딘가에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악마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셀리나 또한 괜히 세오른의 교사가 된 것은 아니라는 듯, 루드거의 이론에 대해서 흥미롭게 생각했다.
“맞습니다. 존재의 증명은 쉽지만, 부재의 증명은 불가능하다는 거죠. 그리고 그 아이.”
루드거는 셀리나가 품에 안고 있는 어둠의 정령을 가리켰다.
“그 어둠의 정령은 말 그대로 순수한 어둠에서 탄생한 존재. 어둠이란 곧 빛의 완전한 부재. 그 부재를 증명하는 존재라는 겁니다.”
“그런 거였구나.”
셀리나는 어째서 루드거가 어둠의 정령을 보고 이렇게 말했는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은 셀리나가 어깨를 흠칫 떨며 물었다.
“어, 그러면 혹시 이 아이를 실험한다거나 그러려는 건 아니시겠죠?”
“제가 왜 그럽니까?”
“어? 아니었나요?”
“저는 단지 셀리나 선생님께서 새로 계약한 정령이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잘 모르시는 것 같기에 말씀을 드린 것뿐입니다.”
애초에 루드거는 정령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정령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몰두하려면 정령과 접점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저와는 거리가 먼 일이죠.”
“아, 맞다. 그랬지.”
셀리나는 루드거가 정령에게 미움받는 체질이라는 걸 상기했다.
실제로 작고 아담한 하급 정령들은 루드거를 보면 무서워서 피해 다녔다.
“그런데 이 아이는 왜 루드거 선생님에게 달려든 걸까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루드거는 그렇게 말하며 셀리나의 품 안에 안겨 있는 솜뭉치를 응시했다.
녀석은 지지 않겠다는 듯 루드거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유모를 적대감에 의아해하면서도 루드거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새로 계약한 이 정령의 이름은 뭐로 지으셨습니까?”
“아. 이 아이 말인가요?”
셀리나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에스메랄다요.”
* * *
물보라가 터진 이후 사람들이 시끄럽게 모인 현장에서, 메릴다와 셰릴은 서로 싸울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셀리나를 놓쳤어!’
‘루드거 선생님이 사라지셨어!’
갑자기 벌어진 소요를 타고서 루드거와 셀리나가 사라진 것이다.
서로 상반된 목적을 지닌 메릴다와 셰릴이지만, 둘 다 불안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메릴다는 셀리나 혼자서 뭘 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 때문에.
반대로 셰릴은 두 사람이 함께 있어서 무언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어쩌지? 나 혼자서 사람을 찾을 수는 없는데.’
‘어쩌면 좋아. 이대로 가면 두 사람의 데이트가 무사히 끝나고 말아.’
서로 고민하던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교환했다.
“일단 찾을 때까지는.”
“함께 움직이죠.”
그렇게 결성된 임시 동맹.
하지만 손이 하나에서 둘로 늘었다고 해서 사라진 사람을 찾는 방법은 요원해 보였다.
“두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일단 이 근방에서 가장 갈 확률이 높은 곳으로 움직이지 않았을까요?”
“예를 들자면……?”
“데이트 명소 같은……?”
로열 스트리트에는 여러 관광명소가 존재하지만, 그중에서 데이트를 위해 갈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을 꼽으라면 오직 한 곳.
‘뮤지컬 극장!’
로열 스트리트에 온다면 반드시 한 번은 들러 봐야 한다고 소문이 난 곳.
루드거라면 몰라도 셀리나라면 분명 루드거에게 그곳에 가자고 제안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있다면 두 사람은 이곳의 지리를 아직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표지판이라도 찾는다면 모를까 돌아다니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서야 그럴 방법도 요원했다.
한시라도 빨리 루드거와 셀리나를 쫓아가야 하는 입장에선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곳의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거리를 둘러봐도 전부 외부에서 온 손님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는 놓치고 마는데.’
그때 메릴다와 셰릴의 시선에 한 남자가 보였다.
“으음. 어디선가 곤란해하는 미녀의 기척이.”
“…….”
“…….”
이국적인 피부를 지닌 금발의 미남자는 산책이라도 나온 것 같은 가벼운 차림새였다.
아무리 봐도 이곳에서 거주하는 주민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행색이었지만, 문제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경박함이었다.
‘뭔가.’
‘괜히 엮이면 피곤해질 거 같은 사람인데.’
평소라면 오히려 피해갔을 사람이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메릴다는 일단 연상으로서 용기를 내 남자에게 다가갔다.
“저기.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요.”
“예. 말씀하시죠. 아름다운 아가씨. 혹시 차라도 한잔하고 싶으신 겁니까. 이런이런.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초면부터 저런 말을 하다니. 보통 인간이 아니다.
‘뭐야 이 남자. 내가 쉬워 보이나?’
흥.
메릴다는 그렇게 생각하며 팔짱을 꼈다.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예쁜 사람만 보면 저도 모르게 이래서.”
“……뭐, 그러면 넘어가 주죠.”
메릴다는 이어지는 남자의 입에 발린 칭찬에 홀라당 넘어갔다.
‘……메릴다 선생님. 가드가 너무 약하신데.’
셰릴이 그 모습을 옆에서 미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러는 사이에 메릴다와 남자의 대화는 계속됐다.
“아. 뮤지컬 공연장을 찾으시는군요. 제가 잘 알고 있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어머! 정말 고마워요!”
일단 못 미덥긴 하지만 셰릴도 함께 따라가기로 했다.
* * *
“……에스메랄다, 말입니까.”
“네.”
“왜 그런 이름으로 지으신 겁니까?”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꿈속에서 몇 번이고 들었던 그 이름. 이 아이가 저와 계약을 맺게 된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습니까.”
루드거는 에스메랄다를 떠올렸다.
원래라면 셀리나의 진짜 인격이었어야 할 그녀.
콰지모도에게 영혼이 속박당해 인형처럼 부려지던 그녀는 자유가 되어 하늘로 올랐다.
분명 저 정령은 실제 에스메랄다와 관련이 없겠지.
비슷한 거라 해 봤자 그녀의 머리카락 색을 닮은 검정이 전부.
그렇다 하더라도.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셀리나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 상태로 흐름을 이어 나간다면, 루드거에게 다음 목적지를 자연스럽게 제안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셀리나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서두를 어떻게 꺼낼지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
셀리나의 품 안에 안겨 있던 어둠의 정령, 에스메랄다가 몸을 크게 떨더니 도망치듯 역소환 됐다.
“어, 어어? 에스메랄다야?”
이상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가만히 있던 루드거의 얼굴이 갑자기 심각할 정도로 싸늘해진 것이다.
“루드거, 선생님?”
셀리나가 이름을 불렀지만, 루드거는 그녀의 말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사람이 없는 좁은 길목의 끝에 고정되어 있었다.
항상 무덤덤한 루드거였으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두려워하고 있어? 대체 무엇을?’
루드거는 명백히 두려움을 보이고 있었다.
그 루드거 첼리시가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는 것에 놀라면서, 셀리나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루드거가 보는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한 소녀가 있었다.
인형처럼 아름다운 금발의 소녀였다.
프릴이 잔뜩 달린 와인색 드레스에 한쪽 손에는 햇빛을 가리기 위한 양산을 쥐고 있었다.
귀족 집안의 여식이 혼자서 산책을 나온 것이 아닐까 싶은 모습.
소녀는 대체 언제부터 있던 것인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홍옥처럼 붉은 눈동자가 닿는 순간 셀리나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고 말았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그때 소녀의 분홍빛 입술이 움직였다.
“오랜만이구나. 제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