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cover Professor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520
◈ 520화 선전포고 (1)
“그게 무슨 말이지?”
루드거가 묻자 세리단은 평소와 다르게 약간 풀이 죽은 어조로 말했다.
“나는, 솔직히 도움이 되지 못할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나 보군.”
“여기엔 내 특기가 먹히지 않아. 폭약도 없고, 무언가를 만들 재료도 없어. 찾아보면 뭔가 있겠지만, 그걸 조합해서 새로운 걸 만들기엔 시간이 부족해.”
세리단의 특기는 무언가를 조립하고 만드는 것이다.
특히 그녀의 진가는 폭발물을 만드는 데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
바깥에서는 충분한 지원이 가능하기 때문에 세리단이 무언가를 만드는 데 문제 될 건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무언가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가 하나부터 열까지 없었다.
가장 기초적인 것이 부족하니, 세리단으로서는 뭘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뛰어난 담력과 뭐든 밀어붙이는 저돌적인 성향도, 그것이 능력이 받쳐 줬을 때나 효과를 발휘하는 법이었다.
세리단은 이런 상황에서도 억지를 부릴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흠.”
루드거도 그런 세리단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저도, 사실 비슷한 생각을 하기는 했어요.”
세디나도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고백했다.
“여기서는 제 마법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아요. 마법을 펼치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무엇보다 최근 들리던 식물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있어요.”
최근에 녹색의 마법사로 발돋움해서 얼마나 기뻤던가.
이제 누구의 발목도 붙잡지 않고, 루드거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 가득 기대했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꿈속 세상에서는 식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식물들은 그저 무의식과 기억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
진짜가 아니기에 세디나는 식물들을 다루지 못했다.
결국, 종이 마법만 사용해야 했는데, 드림랜드의 특성상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세리단과 마찬가지로, 세디나는 자신이 이곳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너희 둘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동료의 발목만 붙잡을 바에야, 차라리 가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거기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결국 포기한 것이 아닌가.”
“그치만 나리. 이게 현실이잖아. 되지 않는 걸 무턱대고 우기면 오히려 더 일이 커진다고.”
세리단도 사실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평소 행실에서 볼 수 있다시피, 세리단은 자존심이 매우 높은 드워프 소녀였다.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동료들이 위험한 상황에 나서서 싸워야 하는 지금,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상당한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세디나도 마찬가지였다.
루드거가 세리단과 세디나를 번갈아 살핀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분명 너희 둘은 지금으로서는 도움이 되지 않겠지.”
그 적나라한 지적에 두 사람의 안색이 침울해졌다.
“하지만 잊었나 본데, 그건 현실에서나 국한되는 법이지 않나.”
“……방법이 있는 거야?”
“여기는 현실세계가 아니라 드림랜드다.”
“이곳만의 방식이 따로 있다는 거지?”
“이 드림랜드의 특징 중 하나가 상상하는 것이 현실이 된다는 것이더군.”
가령 이렇게.
루드거는 자신의 손 위에 평소 애용하던 지팡이를 만들었다.
검은색 바탕에 은은한 황금색이 섞인, 손잡이 끝에 까마귀 형태가 양각된 지팡이.
평소 루드거가 지팡이를 꺼내는 방식과는 달랐다.
그림자 안에서 꺼내는 것과,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갑자기 만들어 내는 것은 별개의 것이었으니까.
세디나와 세리단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체구도 작은 두 사람이 같은 반응을 보이니, 마치 마술을 처음 본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림랜드에서는 마법도, 정령술도, 강령술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곳은 우리가 알던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라 별개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라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드림랜드에서는 드림랜드의 방식을 따라야만 했다.
“지금부터 기존의 상식을 버려라.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확신을 품어야 한다.”
“나리는, 그걸 어떻게 했는데?”
“그냥 하더니 되더군.”
그게 뭐야.
세리단은 루드거의 당당한 표정을 어이가 없다는 시선으로 응시했다.
루드거로서는 드림랜드에서 사용하는 방식이 익숙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루드거가 사용하는 ‘진짜 마법’은 이성이 아닌 감성의 영역이었다.
자신의 내면에 깃든 신념과 상상이 현실이 되는 드림랜드의 법칙은, 이런 부분에서 보면 ‘진짜 마법’과 일맥상통해 있었다.
“힘들 거라는 건 안다. 자신이 상상한 걸 현실로 구현하라니, 그런 말이 안 되는 요구를 바로 구현하는 건 힘들지.”
“뭐, 뭔가 조언 같은 거라도 있으신가요?”
세디나의 물음에 루드거는 잠시 고민하다 답을 내놓았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자신이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
그 말에 세리단이 양 갈래 머리카락을 쫑긋 세우며 반응했다.
무언가 감을 잡기라도 한 것인지, 세리단은 오른손을 활짝 변 뒤 손바닥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끄으으응.”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얼굴에 경련이 일어난 게 아닐까 싶은 순간.
세리단의 손바닥 위에 하나의 물건이 마법처럼 나타났다.
“됐다!”
세리단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녀가 만들어 낸 것은 다이너마이트였다.
누가 뭐래도 세리단의 가장 큰 특기는 폭발물 제조.
그녀는 자신이 아는 가장 기초적인 폭발물을 만든 뒤, 근처 자그마한 물웅덩이를 향해 집어 던졌다.
“터져랏!”
물에 퐁당 빠진 다이너마이트가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폭발을 일으켰다.
물 수면이 크게 요동치며 자그마한 물기둥이 솟구쳤다.
그 광경에 한스와 세디나가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떴지만, 정작 세리단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위력이 부족해!”
솟구치는 물기둥의 크기만 보아도, 세리단이 만들어 낸 것은 일반적인 다이너마이트에 비해 화력이 현저히 부족했다.
“뭐가 잘못된 거지?”
“처음이라 무의식적으로 잘 안 될 거라는 생각이 깃들어서 그런 거다. 이곳은 무의식도 영향을 주는 곳이다. 그런 부분도 제대로 컨트롤하지 않으면 힘들 거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구나.”
루드거는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군. 보통 방법을 알려 준다 해도 그걸 바로 할 줄 아는 사람은 없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뿐, 네가 만든 다이너마이트는 제대로 폭발을 일으켰지 않나.”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걸. 계속 시도하다 보면 더 늘겠지?”
“그래.”
세리단이 만든 다이너마이트는 화력만 부족하다 할 뿐이지, 그 외의 부분에서는 오히려 더 뛰어난 점도 있었다.
일단 세리단이 다이너마이트를 던질 때, 따로 뇌관이나 불을 붙이거나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폭발을 일으켰다는 것은, 현실에서 필요한 여러 자잘한 과정을 모두 무시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아마 폭발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다 보니, 다른 귀찮은 과정을 본능적으로 생략한 모양이지만.’
그 상상력을 제대로 가다듬고 다룰 줄 만 안다면, 누구보다도 뛰어난 무기가 될 수 있다.
‘이런 엉뚱한 세상에 떨어져도, 적응만 하면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거겠지.’
오히려 현실에서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보이지 못했던 사람이, 드림랜드에서 두각을 드러낼 가능성이 컸다.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지, 반대로 더 큰 위기를 낳을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루드거의 시선이 여전히 멍한 얼굴의 한스와 세디나를 향했다.
“준비해라. 출발하기 전에, 이곳에서 힘을 다루는 방법의 기본적인 것은 터득해야 할 테니.”
“혀, 형님?”
“참고로 내 가르침에는 자비가 없을 것이다.”
“아, 아니 왜 갑자기…….”
한스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옆에서 군기가 바짝 든 세디나가 외치는 것이 더 빨랐다.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한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왜 세오른 학생들 사이에서 루드거가 악명이 자자한지, 면전 앞에 서 보니 납득이 갔다.
무언가를 가르치는 루드거는, 평소와 달리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 * *
“그러니까, 머릿속으로 상상을 했더니 그게 됐다고?”
“응.”
레오는 에이단의 해맑은 대답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하지만 사실인걸.”
에이단이 보여 주었던 믿기지 않는 무력은 현재 이 자리에 모인 모두의 관심사 중 하나였다.
어떻게 그런 힘을 보일 수 있었냐.
그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참 엉뚱한 것이었다.
“상상력이라니.”
그게 말이 되냐고 따지려 하다가도, 에이단이 보여 준 모습을 생각하면 또 무조건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네가 그 바위게를 지팡이로 베어 버린다고 상상을 하니, 모두 썰어 버릴 수 있었다는 거지?”
“응.”
“그게 말이 돼? 아니, 그보다 그걸 어떻게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통은 안 먹힐 거라 생각하지 않나?”
에이단이 검지로 뺨을 긁적였다.
“으음. 뭔가 다급해지니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싶더라고. 그런데 막상 나섰는데 내가 당하면, 또 너희가 걱정할 거 아니야?”
“잘 아는 사람이 무턱대고 뛰쳐나가?”
“아하하. 미안. 하지만 내심 뭔가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 수인족에게 배운 야성의 감이라는 거려나? 해야 한다를 넘어서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드니까, 이렇게 되더라고.”
에이단의 설명을 들을수록 다른 학생들의 표정이 모호하게 흐려졌다.
이론에 충실한 마법사들에게 있어서, 에이단이 말하는 상상력이라는 것이 와닿지 않은 탓이었다.
“저 애 말이 맞아.”
그때 에이단을 두둔하고 나선 것은, 놀랍게도 이 자리의 대표라 할 수 있는 플로라였다.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뚜렷하게 생각하면, 술식을 사용하는 것보다 마법이 훨씬 더 잘 구현됐어.”
“플로라, 그게 정말이야?”
셰릴의 물음과 동시에 주변의 시선이 모두 플로라에게 쏠렸다.
플로라는 손가락으로 이제는 검은기가 맴도는 머리카락을 빙빙 꼬며 말했다.
“이곳이 꿈속 세상이라는 걸 생각하면, 환경의 특수성이 적용됐다고 봐야겠지. 다들 그러잖아? 꿈속에서는 뭐든지 될 수 있다고. 사람도 하늘을 날 수 있고, 아이도 어른이 될 수 있어. 여기도 마찬가지인 거고.”
“그, 그러면 우리도…….”
테이시의 기대를 플로라가 칼같이 잘라 냈다.
“그렇게는 안 될걸?”
“왜죠?”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완전하게 구현하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일 리가 없잖아.”
“해 보지 않으면 모르잖아요!”
테이시의 반박에 플로라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래? 그러면 너, 머릿속으로 절대 고양이를 떠올리지 말아 봐.”
“네?”
“고양이. 쉽잖아? 그냥 고양이를 생각하지 않으려 하면 돼.”
그 지적에 테이시가 당혹해하는 것도 잠시.
그녀의 주위로 자그마한 고양이가 나타났다.
테이시의 머리카락 색을 닮은 붉은 털의 고양이였다.
“어, 어어? 뭐야?”
“고양이?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고양이가 튀어나오다니.
테이시가 믿기지 않는 시선으로 자신의 다리에 머리를 비비는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왜, 왜 이게…….”
“보여? 네가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통제하고 있지 못한다는 증거야.”
“하지만 이건 고작 고양이잖아요.”
“과연, 그게 진짜 고양이일까?”
플로라가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그 서늘한 분위기에 테이시가 몸을 움찔 떨었다.
“그게 정말 고양이라 생각할 수 있어? 사실 그 모습으로 의태한 끔찍한 괴물이라면? 지금 너에게 머리를 비비는 행동도, 호의가 아니라 너를 방심시키기 위한 수작이라면?”
플로라의 말에 마치 저주처럼 테이시의 귓가에 스며들었다.
테이시의 뇌는 그녀가 원하지 않는 상상을 억지로 쥐어 짜냈다.
안 돼. 떠올리지 마. 생각하려 들지 마.
테이시의 바람과 다르게, 그녀의 머리는 이미 플로라가 한 말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캬아악!
테이시의 발아래에 있던 고양이의 얼굴이 끔찍하게 일그러졌다.
입이 길게 찢어지며 날카로운 이빨이 테이시의 발목을 물어뜯으려 드는 것도 잠시.
퍼엉!
플로라가 쏘아 낸 마력의 섬광이, 괴물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고양이의 모습을 한 괴물은 그대로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테이시는 식은땀을 흘리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봤지? 사람은 무언가를 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더 그 부분에 집착하지.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힘을, 너는 어떻게 다룰 생각이지?”
플로라의 시선이 다른 학생들을 훑었다.
조금 전 괴물 고양이의 모습에 들떠 있던 학생들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너희도 마찬가지야. 이곳에서 발휘되는 힘은 분명 대단하지만, 그걸 잘못 활용하게 된다면 그때는 큰 독으로 작용하게 되겠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뭐 너희 상상에 맡길게.”
실제로 중층을 탐험하는 드림워커들은 자신의 무의식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 정신 수양을 필수로 여겼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아무리 기운차고 긍정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간혹 컨디션 난조 때문에 우울감에 빠질 수 있었다.
그리고 드림랜드에서 이런 부정적이고 우울한 생각은, 눈앞에 들이닥치는 현실로 작용한다.
“철저하게 너희의 무의식과 감정을 지배해야 하는데, 그게 과연 훈련 없이 가능할까?”
“하, 하지만 에이단은…….”
“에이단? 쟤는 너희랑 달라. 너희도 알고 있잖아?”
에이단은 바보 같을 정도로 순진하고 올곧은 성격이다.
사람을 잘 의심하지 않으며 항상 선의로 무언가를 대한다.
그리고 그 마음가짐은 행동으로 주저 없이 이어지기까지 했다.
이 시대에 맞지 않은 정의로운 사람.
철저하게 이성적이고 계산적인 마법사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던 그것이, 돌고 돌아 이곳에서 에이단에게 날개를 달아 준 것이다.
계산이 아닌 선천적으로 타고는 성향과 본능으로 만들어 낸 결과.
마치, 노력에는 반드시 보답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의 한 구절 같기도 했다.
“자. 알았으면 토 달지 말고 움직여.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 없으니까.”
플로라는 한시라도 자리에 가만히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노닥거리는 와중에도 위에 존재하는 위협은 점점 아래로 내려오고 있을 테니까.
* * *
드림랜드의 심층.
모든 시간과 관념이 뒤틀린 그 깊은 세계에서, 흥얼거리는 콧노래 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니르바는 즐거운 듯 허밍을 이어 나가다 이내 눈을 샐쭉 휘었다.
황금의 기류로 빛나는 눈동자가 한 방향을 향했다.
“그리운 얼굴이로군. 오랜만에 만나는 거 같은데, 잘 지냈나?”
니르바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남자, 제로 오더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서 여기엔 무슨 용무인가? 나의 위대한 뜻에 동참할 생각이라면, 내 기꺼이 받아 주겠네.”
“동참?”
그 말에 제로 오더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난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서 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