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217
218화
의아해하는 강향숙을 보며 박명구가 입을 열었다.
“어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삼촌 이름 이야기하면서 아버지가 육백만 원을 빌리셨다고 하셨어요.”
“그 사람이 누군데?”
“서신대학교 심리학과 임상옥 교수입니다.”
“임상옥 교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강향숙이 물었다.
“그 사람은 그걸 어떻게 알았대?”
“저도 그걸 어떻게 아셨냐고 여쭤봤는데, 설명하기 어렵지만 여차여차 알게 됐다고 하시더군요.”
박명구의 말에 강향숙이 물었다.
“그럼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의아해하는 강향숙을 보며 박명구가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돈을 갚는다고 육백만 원을 찾아오라고 하셨는데…… 돈을 찾아와 보니…….”
잠시 말을 멈춘 박명구가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주무시는 것처럼 편히 가신 뒤였습니다. 장례 치르고 경황이 없다가, 나중에 아버님 물건 정리하던 중 돈을 봤습니다. 아버지가 생전 마지막으로 하려던 일이라, 뒤늦게나마 제가 하려 했는데 누구에게 빌렸다는 말을 안 하셔서 돈을 갚지 못했습니다. 설마하니 돌아가신 삼촌께 돈을 갚으려 했다는 생각은 못 했습니다.”
“아…….”
“그런데 임상옥 교수가 정확하게 육백만 원이라는 말을 하더군요. 그리고 삼촌 이름 말하는데…… 알았습니다. 그날 아버지가 육백만 원을 누구에게 가져다주려고 했는지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강향숙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억을 더듬다가 말했다.
“그런데 임상옥이라는 사람은 처음 듣는데…….”
“저도 처음 듣는데…… 예전에 두 분하고 몇 번 만난 사이라고 들었습니다.”
박명구는 임상옥에 대해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임상옥이 말발로 잘 설득을 해 놓은 모양이었다.
박명구가 강향숙의 손에 쥐여진 신문지 뭉치를 가리켰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찾아온 돈입니다.”
박명구의 말에 강향숙이 돈 뭉치를 보다가 말했다.
“이걸 안 쓰고 가지고 있었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부탁하신 거라 쓸 수가 없었어요.”
웃으며 돈 뭉치를 보던 박명구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을 이제야 들어주게 되니…… 아버지 생각이 나는 것이다.
그런 자신의 어깨를 가볍게 안아 주는 강향숙을 보며 박명구가 입을 열었다.
“집에서 이 돈을 볼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나고, 그분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드리지 못해서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박명구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마음이 편하네요.”
환하게 웃는 박명구를 보던 강진이 흠칫했다. 어느새 박명구 옆에 박정철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래, 아들…… 너무 고맙다. 네 덕에 내 마음이 아주 가벼워.”
환하게 웃으며 박명구를 보는 박정철의 모습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마음의 짐이 저거였구나.’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김흥수는 웃으며 박정철을 보았다.
“5년이나 지나서 돈을 갚는데 그렇게 좋나?”
“좋지. 너한테 빚져서 내가 죽어서도 눈을 못 감은 거잖아.”
두 귀신의 말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김흥수가 강진을 보았다.
“고마워.”
김흥수의 말에 강진이 작게 웃었다. 그러던 강진의 눈에 박정철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화아악!
박정철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역시…….’
박정철이 사라지는 것에 미소 짓던 강진이, 연이어 벌어진 일에 놀란 얼굴이 되었다.
박정철이 사라지는 것과 함께 김흥수의 몸도 빛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두 귀신의 모습이 거의 동시에 사라지자, 강진의 눈빛에 의아함이 스쳤다.
박정철은 어느 정도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김흥수도 승천을 하게 될 줄은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김흥수 할아버지는 왜? 친구와의 약속이 이행이 되어서 가신 건가?’
그런 생각을 할 때, 그의 앞에 종이가 세 장 떨어지기 시작했다.
펄럭! 펄럭!
그에 강진이 슬쩍 종이를 잡아서는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다가 문득 강진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 종이, 사람들 눈에 보이는 건가? 아니면 내 눈에만 보이는 건가?’
자신의 눈에야 종이로 보이지만, 어쨌든 이 종이는 JS에서 직통으로 날아오는 것이니 저승의 물건이다.
자신이 귀신을 보는 것처럼 이 종이도 자신에게만 보이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보이는지 궁금한 것이다.
‘나중에 확인해 보자.’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진이 박명구와 강향숙을 보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며 강진이 아이스박스를 보았다.
아이스박스 안은 많이 비어졌고, 전이 담긴 통은 이제 여덟 개 정도만 남아 있었다.
그에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저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고마워.”
“아닙니다. 그리고 5년 동안 약속을 못 지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이렇게라도 약속 지켜줘서 내가 더 고맙지.”
“아닙니다. 그리고 자주는 약속을 못 드리지만 가끔 전 만들어 오겠습니다.”
“정말?”
“5년이나 늦은 음식 배달인데 이 정도는 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정말 고맙지.”
강향숙의 말에 박명구가 그를 보았다.
“음식점 명함 있으면 하나 주시겠습니까.”
박명구의 말에 강진이 주머니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 주었다. 박명구가 명함을 받자 강진이 아이스박스에서 남은 통을 꺼내며 물었다.
“이건 어디에 둘까요?”
강진의 말에 강향숙이 냉장고 위를 가리켰다.
“냉장고 위에다 둬. 이따가 정리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통들을 냉장고 위에 올린 강진이 마지막으로 강향숙에게 작게 고개를 숙였다.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그래. 고마워.”
강향숙이 웃으며 강진의 손을 잡았다. 쭈글쭈글한 피부와 바짝 마른 듯한 손의 감촉…….
강진이 웃으며 그녀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올린 뒤 맞잡아 주었다. 그런 강진의 손을 쓰다듬으며 강향숙이 말을 했다.
“또 와.”
“알겠습니다.”
재차 고개를 숙인 강진이 아이스박스를 들고 병실을 나섰다.
요양병원을 나온 강진이 트렁크에 아이스박스를 싣고는 주머니에 넣어 둔 종이를 꺼냈다.
종이는 세 장이었다.
두 장의 수표 중 강진은 박정철이 발급한 수표를 보았다.
“지급을 나하고 임상옥 교수님 둘로 해 놓으셨네.”
생각을 해 보면 박정철의 한 풀어주는 데 임상옥도 한 일이 있다.
아니, 임상옥이 거의 다 하기는 했다. 박정철 아들 박명구에게 가서 그에게서 돈을 갚게 했으니 말이다.
강진은 계기만 만들어 줬을 뿐이었다. 그러니 박정철이 돈을 두 사람에게 나눠 지급해 달라고 수표를 쓴 것이다.
김흥수는 자신에게 수표를 써줬고 말이다.
어쨌든 두 귀신이 써 준 수표를 보던 강진이 세 번째 종이를 보았다.
김흥수의 편지에 강진이 웃었다.
“귀신 생활 5년을 했는데 JS에 돈도 있고. 흥수 할아버지도 살아서 나쁘게 살지는 않으셨나 보네.”
귀신으로 살게 되면 알게 모르게 JS 잔고가 줄어들게 된다. 저승식당에서 밥과 술을 먹는 것도 돈이 빠져나가고, 귀신으로 살면서 하는 나쁜 행동들에도 잔고가 빠져나간다. 그런데도 돈이 350만 원이나 있어 수표를…….
거기까지 생각을 하던 강진이 눈을 찡그렸다.
“아니…… 돈이 있으면 그걸로 저승길 노잣돈을 하셔야지, 이걸 다 보내시면 어떻게 해?”
강진이 알기로 저승길은 무척 힘들다. 살을 자르는 검수림, 똥통에서 튀겨지는 변탕지옥, 생살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추운 한빙지옥까지…….
그런 지옥을 대비해서 노잣돈을 가지고 가야 하는데 그 돈을 다 보내다니?
김흥수가 쓴 편지를 보던 강진이 주머니에 편지와 수표를 넣고는 차에 올라탔다.
***
덜컥!
문을 열고 나온 강진은 JS 금융으로 걸음을 옮기며 강두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사장님.]반갑게 전화를 받는 강두치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진이 말했다.
“저 JS 금융인데, 잠시 은행 업무 좀 보고 싶은데요.”
[JS 금융 업무요?]“제가 수표를 받았는데 아무래도 받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음…… 알겠습니다. 그럼 JS 금융 들어오셔서 172번 창구 쪽으로 와 주시겠습니까?]“알겠습니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JS 금융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강진은 길게 늘어서 있는 귀신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빚이 많아서 JS 금융에 잡혀 온 귀신들이었다.
그런 귀신들을 보며 강진이 창구를 보았다. 창구에는 1번부터 번호가 써져 있었는데 직원이 있어야 할 자리는 모두 비어 있었다.
1번 창구를 지나 순서대로 가던 강진은 66번 창구에 직원이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기는 하겠네.’
JS 금융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귀신들의 업무를 이 직원 한 명이 처리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귀신들은 계속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류를 냈다가 처리가 안 되면 다시 뒤로 가서 줄 서서 자기 순서 기다리고 말이다.
배용수가 치를 떨며 했던 말을 떠올리며 66번 창구를 지나가자 100번 창구가 보였다.
100번 이상의 창구에는 직원들이 있었다. 다만 100번과 101번 창구 사이에는 직원들이 라인을 쳐 놓고 일반 귀신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강진이 라인에 다가가자 직원으로 보이는 정장 입은 사람이 줄을 뽑아 그가 지나갈 수 있게 해 주었다.
“고맙습니다.”
“업무 처리 도와드릴까요?”
친절한 웃음을 보이는 JS 금융 직원의 모습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강두치 씨와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강두치 대리님은 172번 창구에 계십니다.”
고개를 숙인 직원이 다시 라인을 치자 라인 너머에 있는 귀신들이 부럽다는 듯 강진을 보았다.
그러다가 귀신 한 명이 슬며시 강진처럼 라인을 넘어가려 하자 직원이 그 앞을 막았다.
“나도 여기서 일 좀…….”
“손님의 일은 이쪽에서 보시면 됩니다.”
“귀신 차별하는 겁니까!”
귀신의 외침에 직원이 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차별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더 말을 하지 않고 라인을 지키는 직원의 모습에 귀신이 떨떠름한 눈으로 그를 보다가 다시 줄로 가서 서려 했다.
그러자 줄을 서 있던 귀신들이 급히 자리를 좁혔다.
“뒤로 가요.”
“방금 전까지 여기가 내 자리…….”
“줄 나갔으면 끝이지. 뒤로 가요.”
“이봐!”
“뭐!”
고함을 지르는 귀신들의 모습에 직원이 한숨을 쉬고는 줄을 빠져나갔던 귀신의 목덜미를 손으로 잡았다.
“악!”
“줄을 서세요.”
“여기가 내 자리였는데…….”
“가서 줄을 섭니다.”
그리고 자신을 밀어 버리는 직원의 모습에 귀신이 뭐라 말을 할 듯 입을 달싹였다가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맨 뒤로 가서 줄을 서기 시작했다.
한편, 101번 이후의 창구에는 모두 직원들이 한 명씩 앉아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손님들은 몇 되지 않아서 대부분의 창구는 비어 있었다.
‘빈익빈, 부익부라…….’
할 일 없이 앉아 있는 101번 이후 창구 직원들과 손님들로 가득 찬 1번대 창구는 분위기부터가 많이 달랐다.
101번 이후 창구 직원들은 몇 되지 않는 손님에게 서넛이 붙어서 이야기를 하고 상담을 진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해.’
이승에서도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차별이 있는데…… 저승은 그것을 노골적으로 더 심하게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