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04
505화
김영지가 주방에 고개를 살며시 내밀었다.
“저…….”
“필요하신 것 있으세요?”
“주방에 이렇게 들어오면 안 되는 거 아는데, 할 말이 있어서요.”
김영지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짓했다.
“들어오세요.”
그러자 김영지가 안으로 들어와서는 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식사비는 이따 나중에 주시면 되는데요?”
김영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중에 애들이 와서 밥 달라고 하면…… 이걸로 그냥 주셨으면 해요.”
김영지의 말에 강진이 봉투를 보다가 손을 저었다.
“괜찮습니다. 어머니 아니더라도 제가 아는 애들인데요.”
김영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 받을 정도의 일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 저 먹을 때 밥만 두 그릇 더 푸는 겁니다.”
“그게…….”
김영지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저 제 마음이라 생각하시고 받아주세요. 그리고…… 가끔 이걸로 종수한테 용돈을 좀 주세요.”
“종수한테요?”
임대강이 아니라 최종수한테 용돈을 주라는 말에 강진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자기 아들이 아닌 종수에게 주라니?
“그…… 종수 집 사정이 좋지가 않다고 이야기 들었어요.”
강진이 ‘그래서요?’하는 표정으로 보자 김영지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리 대강이가 자기 용돈으로 종수하고 자주 노는 모양인데…….”
“그게 마음에 안 드세요?”
김영지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정말 좋아요. 우리 대강이가…… 친구가 없었거든요. 학교 갔다가 집에만 와서 용돈 쓸 일도 없었는데 지금은 종수하고 놀고 늦게 들어와서 저는 더 좋아요.”
“그런데요?”
“혹시라도 종수가 상처를 받을까 걱정이 되어서요.”
“상처?”
“대강이는 같이 놀고 싶어서 돈을 쓰는 거지만, 계속 받기만 하는 입장에선 점점 민망해지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주면 대강이가 사는 것이나 별 차이도 없고요. 그래서…….”
김영지가 강진에게 다시 봉투를 내밀었다.
“가끔 종수 용돈 좀 주세요. 그럼 종수도 대강이한테 간식을 사 주든 피시방 비를 내주든 할 거예요. 그럼 대강이도 종수도 둘 다 기분이 좋고 더 친해지겠죠.”
강진은 봉투를 물끄러미 보다가 받아 들었다. 김영지가 한 말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양심 없이 얻어먹는 것만 좋아하는 친구도 있지만, 대부분은 얻어먹으면 한 번은 갚으려고 한다.
친구가 더 잘 살아서 세 번 얻어먹고 한 번 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주고받는 것이 세상 이치였다.
아무리 친해도 매번 얻어먹기만 하는 친구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김영지는 두 아이가 지금처럼 계속 친하길 바라는 것이다. 자신의 집에 놀러 온 대강이 친구는 최종수가 유일하니 말이다.
“가끔씩 아이들 오면 용돈 주겠습니다. 대신 종수만 줄 수는 없고, 대강이에게도 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환하게 웃은 김영지가 고개를 숙이며 홀로 나가자, 그 뒷모습을 보던 강진이 임호영을 보았다.
“사모님이…… 무척 착하시네요.”
임호영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영지를 보았다.
“그래서 제가 양심도 없는 도둑놈 소리 들으면서 저 여자를 사랑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내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더 할 나위 없이 따뜻했다.
식사를 마친 김영지와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강진이 홀로 나왔다.
“식사 맛있게 하셨어요?”
“네.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김영지의 말에 미소 지은 강진이 최종수와 임대강에게 쇼핑백을 하나씩 내밀었다.
“계란말이하고 김밥 잘 먹는 것 같아서 좀 넣었어. 집에 가서 간식으로 먹어.”
“감사합니다.”
최종수는 냉큼 쇼핑백을 받았고, 임대강은 김영지를 보았다. 그에 김영지가 작게 임대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형이 주는 건데 받아야지. 그리고 할머니도 김밥 좋아하시잖아.”
엄마의 말에 임대강이 고개를 숙이며 쇼핑백을 받았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래.”
강진이 쇼핑백을 다 건네자, 김영지가 지갑을 꺼내며 말했다.
“얼마인가요?”
“다음에 와서 주세요. 오늘은 제가 대강이 어머니에게 인사 겸 대접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김영지가 지갑을 만지작거리자 강진이 웃으며 슬쩍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냈다.
그러고는 최종수와 임대강에게 한 장씩 내밀었다.
“친구끼리 친하게 지내.”
“어…….”
강진이 내미는 돈에 최종수가 급히 손을 뒤로 숨겼다.
“형, 저는 괜찮아요.”
“괜찮아. 형이 너하고 알고 지낸 지 얼마인데 그동안 용돈 한 번 안 준 것이 생각나서 그래.”
“하지만…… 형한테 받는 것도 많은데.”
“형이 그랬지?”
강진이 최종수의 가슴을 툭 쳤다.
“나중에 성공해서 갚아.”
“네?”
“네가 나중에 성공해서 인사 오고 그러면 형이 얼마나 뿌듯하겠어. 내가 용돈 주고 했던 녀석이라고 손님들에게 자랑도 하고 말이야.”
“아…….”
강진의 말에 최종수는 그가 든 만 원을 보았다. 그 시선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엄청 크게 성공하고 그러라는 것은 아니야. 그저 네가 성실하게 일하고 좋은 가정 이뤄서 사는 게 성공하는 거다.”
최종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다 그렇게 살지 않아요?”
“남들처럼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웃으며 강진이 돈을 다시 내밀었다. 그에 최종수가 망설이다가 두 손으로 돈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러고는 강진이 임대강에게도 만 원을 내밀었다. 최종수가 받는 것을 봐서인지 임대강도 공손히 돈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두 아이가 돈을 받자, 김영지가 미소를 지으며 강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 친구들하고 한 번 오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아!”
강진은 번뜩 떠오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냈다.
“볶음밥은 마음에 드셨어요?”
“그럼요. 아주 맛있었어요.”
정말 맛있게 먹었다는 듯 그녀의 웃는 얼굴에는 만족감이 한껏 담겨 있었다.
“내 레시피로 만든 건데 당연히 당신 입에 맞겠지.”
임호영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언제든지 갑갑하시거나 술 한 잔 생각 나시면 찾아 주세요.”
“말이라도 고마워요. 다음에 올게요.”
고개를 숙인 임호영이 먼저 가게를 나섰다. 뒤이어 최종수와 임대강이 고개를 숙였다.
“형, 또 올게요.”
“그래. 자주 와.”
어깨를 두들겨 준 강진이 손님들을 배웅해 주었다.
“또 오세요.”
강진의 인사에 김영지가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던 강진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손님들이 가고 난 자리를 치우던 차달자가 강진을 보았다.
“애 엄마가 참 속이 깊네요.”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돈 봉투가 그런 의미인 줄은 몰랐네요.”
작게 중얼거리며 차달자와 함께 그릇을 쟁반에 담은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종수 자존심까지 배려를 해 줄 거라곤 생각을 못 했어요.”
“돈이 없다고 자존심까지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특히 아이들은 이런 것에 민감할 수도 있고.”
웃으며 차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엄마예요.”
강진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 친구의 자존심까지 배려하는 김영지는 확실히 좋은 엄마였다.
***
귀신들로 북적거리는 저승식당 안에서 강진은 오랜만에 허연욱과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요즘 정말 많이 바쁘신가 봐요.”
“본의 아니게 많이 뜸했지요.”
저승식당의 원년 멤버는 허연욱, 최호철, 배용수였다.
배용수와는 식당 음식 도와주는 걸로 친해졌고, 최호철은 같은 보육원 출신이었으며 사회 나왔을 때도 도와준 고마운 형이었기에 원체 친했다.
그리고 허연욱은 침을 놔 준 것을 계기로 친해졌다. 그 이후로 그는 강진을 통해 진맥을 하면서 가게에 오래 머물렀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가게에 잘 오지 않고 자신이 일하던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저 병원이 더 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다 보니 강진도 의술이 꼭 필요할 때만 그를 불렀고, 그때 얼굴을 보는 게 다였다.
그런데 오늘은 허연욱이 정말 오랜만에 음식을 먹으러 온 것이었다.
“요즘은 뭐 하고 지내세요?”
강진이 묻자 허연욱이 웃으며 소주를 한 잔 마시고는 말했다.
“새로 나온 논문도 보고, 후배들이 환자 진료하는 것도 보고, 병원에 있는 귀신들하고 이야기도 하고 그러고 있습니다.”
“논문을 보세요?”
“의학도 계속 발전을 하니까요. 제가 죽었지만 그래도 의사 출신 귀신인데 새로운 의학이 나오면 배워야지요.”
“그런데 논문은 어떻게 보세요?”
“병원에 공부 열심히 하는 전문의가 하나 있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병원 도서관에서 논문을 보는데 그 옆에서 같이 보고 있습니다.”
“병원에도 도서관이 있어요?”
“일반 도서관은 아니고, 의사들이 필요한 의학 자료와 잡지, 논문들이 비치된 도서관이 있습니다.”
“도서관이라…… 그립네요.”
“도서관을 좋아하십니까?”
허연욱이 묻자 강진이 웃었다.
“돈을 내지 않고 하루 종일 있어도 내쫓지 않는 곳은 도서관이 유일하니까요. 고시원 비가 떨어졌을 때 도서관에서 며칠 먹고 자고 한 적이 있습니다.”
“도서관에서요?”
“불편하기는 하지만 얼굴 놓을 책상도 있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난방도 해 주거든요.”
“그래도 도서관에서 사는 건 힘드셨을 텐데.”
“딱히 힘든 건 없었어요.”
“그래요?”
“짐은 광현 형 연구실에서 맡겨 놨고, 씻는 건 학과 건물 샤워실에서 하면 됐고, 잠만 도서관에서 자고 오면 되니까요.”
“최광현 학생과 많이 친하신 것 같던데…… 차라리 연구실에서 자는 것이 더 편하지 않았겠습니까? 저희 학교 후배 중에도 연구실에서 숙식하는 애들도 많았는데.”
“가끔 하루 자는 것이야 괜찮지만, 저는 거기 연구실 소속이 아니잖아요. 그런 제가 계속 거기에서 지내면 민폐죠. 그리고 광현 형도 그때는 거기 왕고도 아니었고.”
“하긴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던 허연욱이 강진을 보았다.
“참 힘들게 사셨군요.”
허연욱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었다.
“힘들고 좀 외로웠죠.”
강진의 말에 허연욱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친척분들이 너무하셨습니다.”
“후! 조금 그런 편이죠.”
말을 한 강진도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 살아 계실 때만 해도 나름 친하게 지냈는데…… 사촌 동생들하고도 친했고요.”
강진은 입맛을 다셨다. 성인이 되기까지, 딱 2년만 살펴 줬더라면 이렇게까지 서운하지는 않았을 텐데 싶어서였다.
강진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허연욱은 화제를 바꾸려는 듯 말했다.
“다음에 저희 병원 한 번 오세요.”
허연욱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를 보다가 급히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저 어디 안 좋은가요?”
그에 허연욱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후! 그럴 리가요. 저 같은 명의가 사장님 몸 살펴 주는데 안 좋을 것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병원에는 왜?”
“저희 병원에 이번에 추나를 잘하는 선생님이 한 분 새로 오셨습니다. 워낙 칭찬이 자자하기에 치료하는 걸 한 번 봤는데…… 제가 죽은 것이 아쉽더군요.”
“아쉬워요?”
“살아 있었으면 저 시원해 보이는 추나를 다 받아 볼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아…… 그렇게 대단하세요?”
강진이 놀란 눈을 하고 보자 허연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에서 막 우두둑! 우두둑! 소리를 다 내더군요. 특히 발바닥에서 우두둑 소리를 뽑아내는데 정말 시원해 보였습니다.”
“근데 뼈 우두둑거리는 거 몸에 안 좋은 것 아닌가요?”
“그거야 무분별하게 하면 그런 거지만, 전문가들이 하면 그것만큼 시원한 것이 또 없지요. 한 번 받아 보세요. 요즘은 추나도 보험 처리가 돼서 가격도 얼마 안 한다고 합니다.”
허연욱의 추천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 정도로 말을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시원하기는 한가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