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515
516화
“그럼 잘 먹고 간다.”
“후! 그럼 앞으로는 형 동생 하는 겁니다.”
강진의 말에 이진웅이 웃으며 손을 들었다.
“간다.”
그러고는 걸음을 옮기자 이소연이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저씨! 잘 먹고 가요!”
이소연의 손짓에 강진이 웃으며 작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자 이소연이 서둘러 이진웅의 뒤를 쫓아 뛰어갔다.
그런 이소연의 뒷모습을 보던 강진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홀에서 차달자와 여자 귀신들이 그릇들을 치우는 것을 보던 강진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 바닥 한쪽에는 그릇들이 쌓여 있었는데, 배용수가 그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아쉬우면 나와 보지 그랬어.”
배용수는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많이 봤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배용수의 얼굴에는 아쉬움과 슬픔이 어려 있었다.
‘아이고…… 이놈아.’
그는 아마도 이진웅과 이소연이 같이 있는 것을 볼 자신이 없어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배용수를 보던 강진이 고개를 젓고는 그릇들을 치우려 하자, 배용수가 만류했다.
“놔 둬. 내가 할게.”
“요리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내가 할게.”
“됐어. 오랜만에 설거지 한 번 하련다.”
평소에 음식은 배용수와 이호남이 하고, 설거지와 정리는 여자 귀신들이 한다.
그래서 배용수도 설거지는 정말 오랜만에 하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설거지를 하고 싶어서 한다기보다는 이소연이 먹은 것을 치우며 아이를 더 느끼고 싶어서이지만 말이다.
배용수가 그릇들을 싱크대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릇들은 모두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라면도 네 봉이나 먹고, 그 외에도 김밥과 이런저런 간식들까지…… 성인 대식가라고 해도 한자리에서 다 먹지 못할 만큼을 이소연은 깨끗하게 다 먹고 간 것이다.
“그 조그마한 몸으로 많이도 먹었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그릇들을 담다가 웃었다.
“예전에 소연이가 맛있는 것을 먹어도 배가 안 부르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더 많이 먹으려고?”
“응.”
웃으며 배용수가 말했다.
“내가 몰래 라면을 끓여 주곤 했는데…… 2인분을 혼자 먹다가 남기면 막 울었어. 이 아까운 걸 남긴다고.”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었다.
“애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작게 한숨을 쉬며 가게 밖을 보았다.
“애가…….”
배용수는 고개를 젓고는 이소연이 비운 그릇들을 마저 설거지했다.
그런 배용수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죽었지.’
고개를 저은 강진이 주방을 나왔다.
‘용수 생각해서도…… 노력해야겠네.’
이소연이 승천을 해서 좋은 곳으로 가도록 말이다.
***
저승식당 영업시간에 강진은 친한 귀신들과 자리를 하고 있었다.
소주를 한 잔씩 나누던 최호철이 힐끗 주방을 보았다.
“그런데 용수는 왜 안 나와?”
“오늘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혼자 조용히 마시고 싶대요.”
“무슨 일 있어?”
최호철이 묻자 강진이 힐끗 주방을 보았다. 지금 주방에는 배용수 혼자 라면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친한 사람과, 친한 사람의 아이를 만났거든요.”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그를 보다가 주방 쪽을 보았다.
“죽었어?”
“아이가요.”
최호철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오는 데 순서가 있으면 가는 데도 순서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의사로서 환자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죽는 것을 많이 봐 온 허연욱이 맞장구쳤다.
그런 허연욱을 보던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그 유 선생님은 인기가 많으신가 봐요.”
“아! 그렇지 않아도 그 이야길 하려고 했습니다. 혹시 다음에 또 언제 가십니까?”
“이모님이 거기에서 친해진 할머니 계신데, 그분하고 시간 맞춰서 가야죠.”
“그럼 가기 전에 예약을 하고 가세요.”
“선생님 지정 예약도 되나요?”
“그럼요. 한 이틀 전에 예약해두고 가면 됩니다. 시간 잘 지키시고요.”
허연욱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 장사하는 제가 다른 영업점 예약 시간 어기겠어요?”
다행히 강진의 가게에는 아직까지 예약하고 펑크를 내는 사람들이 없었다.
하지만 음식점에 예약하고 펑크 내거나, 예약 시간보다 늦게 와서 손해를 끼치는 사람들도 많은 게 현실이었다.
강진이 고개를 끄덕일 때, 허연욱이 말했다.
“그리고…… 유 선생님한테 여자 수호령이 있습니다.”
강진이 보자, 허연욱이 살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유 선생님한테 마사지를 받으라는 것도 있었지만, 사실 지은 씨와 이야기를 좀 했으면 하고 추천한 겁니다.”
“수호령분 이름이 지은인가 보죠?”
“임지은입니다.”
말을 한 허연욱이 입맛을 다셨다.
“귀신들이야 다 사정이 있지만…… 지은 씨는 참 안쓰러워요.”
“귀신들은 다 안쓰럽죠.”
강진의 말에 허연욱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그리고…… 지은 씨 보게 되면 좀 놀라실 건데, 마음 강하게 먹고 만나세요.”
허연욱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강진이 웃었다.
“귀신 어디 한두 번 보나요?”
강진은 지금까지 끔찍한 모습을 한 귀신들을 여럿 봐왔다. 특히 최호철과 배용수가 귀신일 때의 모습은 아무리 자주 본다 해도 가끔 놀랄 정도기도 하고 말이다.
그에 비하면 보통 귀신들은 그냥 살짝 놀랄 수준이지, 기겁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강진의 말에 허연욱이 그를 보다가 입맛을 다시고는 말했다.
“귀신이 죽었을 때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시지요?”
“알고 있습니다.”
저승식당 내에서 현신을 한 귀신은 ‘평소의 자기 모습’이라고 기억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평소엔 자신이 죽었을 때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분이…… 몸이 굳는 병에 걸려서 죽었어요.”
“몸이 굳는 병요?”
“몸이 천천히 굳어지다가 나중에는 숨을 쉬는 것도, 음식을 삼키는 것도 힘들어져서 죽는…… 그런 병입니다.”
“아…….”
강진이 놀란 눈을 하는 사이, 최호철이 허연욱을 보았다.
“몸이 굳어져 있어서 보기 힘들다는 건가요?”
“네.”
허연욱의 답에 강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살았을 때 그렇다고 해도 죽어서는 상관없을 텐데요?”
최호철은 양팔이 부러진 상태로 죽었지만, 그 팔로도 잘 움직였다.
“제가 몇 번 대화를 해 봤는데…… 트라우마가 있어서인지 몸을 잘 움직이지 못하더군요.”
“아…….”
허연욱의 말에 최호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그런 귀신들이 있었다.
사고로 다리가 다친 귀신들은 그 고통을 잊지 못해서 일어서지를 못하고 앉은뱅이로 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몸이 잘 움직이지 않으면 수호령으로 붙어 있기도 힘드실 텐데?”
“잘 걷지를 못해서 유 선생님이 움직일 때는 끌려다니는 편입니다.”
“아…….”
수호령과 지박령은 묶여 있는 대상에게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질 경우 강제로 끌려가게 된다. 그래서 걷지 못해도 알아서 그곳으로 딸려가는 것이다.
“그런데 좀 많이 무서우신가 보네요.”
“그…….”
잠시 머뭇거리던 허연욱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몸이 굳어서 영양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고 죽으신 분이라…… 좀 무섭습니다.”
‘의사이신 분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걸 보면…… 진짜 많이 무서운가 보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허연욱이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겉만 그렇지, 속은 아주 여리고…… 사랑스러운 분입니다.”
“소희 아가씨처럼요?”
강진의 말에 허연욱은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농으로라도 그렇단 말을 못 할 정도로 김소희는 어려운 존재인 것이다.
그 주 금요일, 점심 장사를 끝낸 강진은 차달자와 함께 지하 주차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오늘은 유 선생님이라는 분에게 추나 받겠네요.”
“기대가 되면서도…… 살짝 무섭네요.”
“무서워요?”
“유 선생님한테 좀 무서운 여자친구가 붙어 있는 모양이에요.”
“수호령?”
“네.”
“귀신이 뭐가 무서워요. 사람이 무섭지.”
그러고는 차달자가 옆을 보았다.
“그래서 용수 씨에게 같이 오자고 한 거예요?”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배용수도 의아한 듯 강진을 보고 있었다.
“진짜 무서워서 같이 오자고 한 거야?”
“무…… 무섭기는. 그냥 너도 우두둑 소리 좀 들어 보라고 같이 오자고 한 거지.”
“그게 뭐 들을 게 있다고 같이 오냐?”
“에이! 내가 들어 보니까 뭔가 묘한…… 그런 기분 좋음이 있어. 신기하기도 하고.”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무서워서인 건 아니고?”
“조금은…… 그런 것도 있지.”
아무래도 귀신이자 의사인 허연욱도 무섭다고 할 정도의 수호령을 만나려니 조금 떨리는 것이다.
동물원 안에 있는 사자가 해를 끼치거나 하지는 않지만 보면 무서운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의지가 되는 배용수에게 같이 오자고 한 것이다.
이래저래 이야기를 나눌 때, 차달자가 말했다.
“오시네요. 문 좀 열어주세요.”
차달자의 말에 강진이 입구 쪽을 보았다. 입구 너머에서 장인영이 최순심이 탄 휠체어를 밀며 오고 있었다.
그에 강진이 급히 입구 문을 열어 잡았다.
“하하하! 이 사장 이렇게 또 보니 너무 좋네!”
장병두가 웃으며 손을 들어 보이자 강진이 웃으며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 사이, 강진이 열어 놓은 문을 통해 최순심과 장인영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장인영의 인사에 마주 인사한 강진이 문을 닫다가 문득 지하 주차장 쪽을 보고는 물었다.
“그런데 택시 타고 오신 거죠?”
“네.”
“그런데 왜 지하 주차장 쪽에서 오세요?”
지상에서 내려서 오면 될 텐데 왜 지하 주차장으로 오나 싶은 것이다.
“기사님이 여기에서 내려 주셔요.”
“왜요?”
“지상은 보도블록이 깔려 있잖아요.”
“그렇죠?”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인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도블록에 걸리면 휠체어 덜컥거린다고 늘 지하 주차장에 내려주세요.”
장인영의 말에 강진이 감탄을 토했다.
“와…… 기사님 너무 착하시네요.”
“다른 기사님들도 되게 친절하고 좋은 분들이세요.”
“그럼 다른 분들도 다 지하 주차장에 내려 주세요?”
“네.”
장인영의 말에 강진이 미소 짓자 그녀가 물었다.
“왜 웃으세요?”
“한국이 아직은 살기 좋은 것 같아서요. 참 좋으신 분들이네요.”
할머니를 태워다 줬던 택시 기사들은 돈 몇 백 원 더 받자고 지하 주차장에 들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하 주차장에 손님이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좁은 출입로를 지나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니 말이다.
“뉴스에는 나쁜 사건 이야기들이 많지만…… 일상에는 좋은 분들이 아주 많아요.”
장인영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할머니 모시고 가끔 산책하러 나갔다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달라고 하면 다들 웃으며 도와주세요.”
장인영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두 번째 방문이라 그런지 진료는 빠르게 이뤄졌다. 유 선생과 예약도 한 상태라 강진은 바로 추나를 받는 치료실로 들어섰다.
치료실에서 가볍게 몸을 비틀며 풀고 있을 때, 사십 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다가왔다.
“이강진 씨?”
“네.”
“유훈입니다.”
고개를 숙이는 유훈을 향해 고개를 돌리던 강진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유훈의 뒤에 귀신 하나가 두둥실 떠서 오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천천히 발을 끌며 오는데…….
꿀꺽!
강진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눈가와 광대 밑이 푹 들어간 얼굴에 온몸의 뼈마디가 그대로 보이는 것만 같은, 빼빼 마른 여자 귀신이 느릿느릿 오고 있었다.
“와…… 너 혼자 왔으면 오줌 지릴 뻔했다.”
배용수의 중얼거림에 강진이 재차 침을 삼켰다. 정말…… 오줌을 지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공포 영화 속 귀신보다 더 무서웠다.
잠시 여자 귀신을 보던 강진이 배용수에게 작게 속삭였다.
“너무 무서운 티 내지 마. 상처받으신다.”
“사람이 귀신 걱정해 주냐?”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여자 귀신을 보았다.
여자 귀신은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이 힘든 듯 이리 비틀, 저리 비틀했지만 천천히 유훈에게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