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world Restaurant RAW novel - Chapter 629
630화
쟁반에 잔들을 올리는 소월향을 보며 강진이 물었다.
“그럼 복채 기준은 있는 건가요?”
강진의 물음에 소월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금액의 기준은 없습니다. 그저 주고 싶은 사람 마음대로 주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저에게 돈을 주는 행위…… 즉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럼 오백 원 줘도 되는 건가요?”
소월향은 웃을 뿐 답은 하지 않았다. 되기는 하지만 정말 오백 원을 주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그런 의미인 것도 같고…… 어쨌든 무당 같은 웃음이었다.
그런 소월향을 보던 강진이 물었다.
“그런데 귀신은 그렇다 치고 이미 승천하신 분들에게는 어떻게 메시지를 전하세요? 아니면 그냥 해 본 말이세요?”
강진의 물음에 소월향은 쟁반을 내려놓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그에 강진이 자리에 앉자 소월향이 태블릿을 들어서는 손가락을 가져다 대 잠금을 풀었다. 그러고는 화면 한쪽에 있는 JS 메일이라는 앱을 눌렀다.
“어? 설마?”
강진이 놀란 눈으로 태블릿 화면을 보자 소월향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작두라도 탈 줄 아셨어요?”
“그건 아니지만 태블릿으로 저승에 메일을 보내실 줄은…….”
“저승이 이승 유행을 얼마나 잘 따라가는데요.”
소월향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듣기로는 미국 쪽 저승에서는 사과 회사 회장 죽을 때 조금 더 살게 두자는 이야기도 나왔었대요.”
“잡스요?”
“네.”
“왜요?”
“거기 저승 관리자들이 사과 핸드폰 많이 쓰는데 잡스가 죽으면 새로운 제품들 못 나온다고요.”
“근데 잡스 죽고도 사과 회사에서 핸드폰 잘 나오잖아요.”
“잘 나오기는 하죠.”
소월향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핸드폰 가게 해서 잘 아는데 잡스 죽고 사과 핸드폰 진짜 아주 이상하게 변했어요.”
“그래요?”
“잡스는 핸드폰이 한 손에 쥐어지는 사이즈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사이즈가 커졌잖아요.”
“아…….”
“그래서 옛날 사과폰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금 별로 안 좋아해요.”
“하지만 요즘 폰은 다 크잖아요.”
“그러니까요. 트렌드를 주도하던 사과폰이 어느새 트렌드를 따라가는 신세가 된 거죠.”
“사장님도 사과폰 좋아하셨나 보네요?”
“좋아한다기보다는…… 예전에 사과폰이 저희 가게 매출을 많이 올려 줬죠.”
소월향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진이 웃다가 물었다.
“그래서 잡스를 좀 더 살게 해 준 건가요?”
잡스가 죽기는 했지만 원래 죽을 날보다 더 늦게 죽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강진의 물음에 소월향은 고개를 저었다.
“사람 살고 죽는 건 저승에서도 관여 못 해요. 죽는 것도 몇 시간 전에 겨우 알아내는 걸요.”
“그럼 아까 더 살게 해 주자는 말은요?”
“말이 그렇다는 거죠. 그쪽 관리자도 답답하니까요.”
“아…… 그렇군요.”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소월향이 말을 덧붙였다.
“이승 물건이 좋아지면 저승 물건도 좋아지니까요.”
소월향은 메일 창을 열었다. 그리고 편지를 적어가기 시작했다.
할머니, 유미라, 김영지가 남긴 전언들을 각자의 편지 주인에게 적은 소월향이 발신을 눌렀다.
“됐어요.”
“그럼 이걸 저승에서 받아 보는 건가요?”
“지옥에 있으면 오늘 중으로 배송이 될 거고, 저승에 있으면 3일 이내에 도착할 거예요.”
소월향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녀를 보았다.
“지옥 배송이 더 빠르네요?”
“지옥에서 이런 편지 받는 사람은 더 힘들다고 빨리 보내주는 모양이에요.”
“더 힘들어요? 이런 편지 받으면 힘이 날 것 같은데?”
강진이 의아해하자 소월향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소월향의 말에 강진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병이 집에서 온 편지 받는 느낌인가?”
“무슨 소리예요?”
“훈련병일 때 엄마가 보낸 편지 보면 눈물 나고 집 생각난다고 해서요. 생각해 보면 편지를 보는 동안은 집인 것 같고 엄마와 같이 있는 것 같지만, 고개 돌리면 다시 훈련병 생활이잖아요.”
“아…… 지옥에서는 더 그러겠네요. 눈 돌리면 지옥이니…… 착하게 살걸, 하는 후회도 하게 될 테고.”
“그렇겠죠. 이승에서는 보고 싶다는 그리움이겠지만, 저승에서는 후회가 되겠죠.”
고개를 끄덕이는 소월향을 보며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지옥 배송이 당일이군요. 빨리 받아서 더 후회하고 더 힘들어지라고.”
“정말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괴롭히다니 세심하기 이를 데가 없네요.”
쓸데없이 세심하다는 생각을 하던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JS 메일을 보았다.
‘그래도 그 두 분이라면…… 후회보다는 미소를 지으시겠지.’
가장 좋은 건 지옥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3일 후에 받는 거지만…… 그 두 분이라면 웃으며 편지를 읽을 것이다.
그리고 두 분 다 나쁘게 사시지는 않으셨을 것 같으니 지옥에 걸린다 해도 좋은 변호사만 잘 만나면 재판을 잘 받아서 금방 벗어날 수도 있었다.
물론 능력 있는 변호사는 수임료가 비싸서 쉽게 구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은 JS 메일을 보며 말했다.
“혹시 저승에 계신 저희 부모님에게도 메일을 보낼 수 있을까요?”
소월향은 강진을 지그시 보다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두 분께서는 이미 환생을 하셔서 메일을 받아 보실 수 없을 듯합니다.”
“그게 보이시나요?”
말을 하며 강진이 주위에 귀신이 있나 보았다. 하지만 주위에 귀신은 없었다.
“귀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 외에도 몇 가지 재주가 있습니다.”
“그럼 혹시 저희 식당 전주인이신 김복래 어른께 편지를 보낼 수 있습니까?”
강진의 물음에 소월향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아무리 무당이라고 해도 그런 식으로는 저승에 이야기를 전할 수는 없습니다.”
“못 보내는 건가요?”
“죽은 사람과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만 가능합니다.”
“저도 인연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김복래에게 가게를 유산으로 받았으니 말이다.
“살아 계실 때 뵈신 적은 없지요?”
“아…….”
소월향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좋은 분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게 되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소월향은 가게 밖을 보며 말했다.
“그리고 종훈 학생은 앞으로 정말 좋은 사람이 될 테니까요.”
“사람의 운명 같은 것도 보이세요?”
“몇 가지 재주 중 하나입니다.”
소월향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특별히 정해진 운명은 없습니다.”
“운명이 없어요? 그럼 어떻게 종훈이가 잘 될 거라고 하시는 거죠?”
“운명이란 건 없지만, 인과는 있지요.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듯…… 종훈 학생이 이때까지 살아온 삶을 원인이라 본다면 그 결과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소월향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말했다.
“어떻게 보면 사장님이 더 귀신 같으세요.”
“귀신?”
“아! 나쁜 의도로 한 말은 아닙니다.”
강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승식당을 하며 본 귀신들은, 귀신이라고 해도 일반 사람과 다를 바가 없더라고요. 오래 이승에 계셨거나 처녀나 총각처럼 한이 많은 귀신들이 아닌 이상은 어디 갈 데도 걸어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더라고요.”
“그건 그렇지요.”
“그런데 사장님은 귀신도 못 하는 그…… 몇 가지 재주도 하실 수 있으시잖아요.”
강진의 말에 소월향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저는 이만 퇴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강진이 고개를 숙이고 가게를 나가자 소월향이 그를 배웅하고는 가게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잠시 테이블을 보다가 자리에 앉았다.
뒤이어 태블릿으로 메일 한 통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김복래에게 자신의 소식을 전하는 소월향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
가게에 돌아와 쉬던 강진은 최종훈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종훈아, 집에 잘 갔어?”
[아니요. 지금은 종수 집이에요.]“종수 집?”
[할머니가 오늘은 자기 집에서 자고 갔으면 좋겠다고 해서요.]“내일 학교는 어떻게 하려고?”
[학교 끝나고 바로 와서 상관없어요.]최종훈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 끝나고 바로 왔던 터라 교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니 내일 학교 갈 때 그냥 가면 될 것이었다.
“잘 됐네.”
[근데 형.]“고맙다는 이야기는 넣어둬. 우리 사이잖아.”
강진의 말에 최종훈이 웃었다.
[저도 고맙다는 인사는 나중에 저 성공해서 형한테 좋은 거 선물하면서 할 거예요.]“그래. 꼭 성공해서 작고 비싸거나, 크고 비싼 거로 선물해라.”
[꼭 그렇게 할게요.]농담으로 한 말인데 최종훈이 진심으로 답하자 강진이 웃었다.
[근데 오늘 어머니한테 이야기 들었는데 대강이 아버님께서 게임 아이템을 유산으로 남기셨다고 하던데.]“이야기 들었어?”
[저희 학비…….]잠시 말을 멈춘 최종훈이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해 주신다는 이야기 듣고 거절을 해야 하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그래. 나중에 형한테 고맙다고 할 때, 대강이 어머니와 할머니한테도 고맙다고 해 드려. 작지만 비싸거나 크고도 비싼 거 선물하면서.”
[꼭 그래야죠.]“그래서, 그거 이야기하려고 전화한 거야?”
[그것도 그런데 제가 아이템 검색해 보니까. 가격대가 엄청나더라고요.]“벌써 검색을 해 봤어?”
[대강이 어머니께서 확인은 해 봐야지 않겠냐고 알려 주셔서 검색해서 알아봤어요.]“그런데?”
[근데 제가 아직 나이도 어리고 이런 건 해 본 적이 없어서요. 혹시 형이 대신 거래 좀 해 주실 수 있나 해서요. 보니까 거래 사기도 많이 당하고 하는 것 같아서요.]최종훈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사기가 많기는 하지.’
강진은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할 당시 아저씨 몇이 사기를 당하곤 상대방을 죽이러 간다고 길길이 날뛰었던 걸 떠올렸다.
“알았어. 형이 한 번 알아볼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고맙단 인사는 나중에 선물 가지고 와서 해.”
[네! 알겠습니다.]그걸로 통화를 끝낸 강진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비틀었다.
“끄응! 조금 쉬었다가 저승식당 오픈하자.”
강진은 한쪽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는 배용수의 옆에 가서 앉았다.
탓!
강진이 옆에 앉자 배용수가 귀찮다는 듯 그를 힐끗 보고는 다시 TV를 보았다. TV에 나오는 건 얼마 전부터 배용수가 재밌게 보는 드라마였다.
“재밌냐?”
“말 걸지 마라. 드라마 본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다가 툭 쳤다.
“재밌냐고.”
“아이! 진짜 왜 그래?”
배용수가 눈을 찡그리며 자신을 보자, 강진이 웃었다.
“그냥 네가 재밌게 보니까 나도 좋아서.”
“뭐래, 미친놈이.”
배용수가 툴툴대며 드라마로 시선을 돌리자 강진도 TV를 보았다.
‘어디 그럼 나도 용수 취향이 뭔가 볼까?’
하지만 강진은 얼마 못 가 탁자에 머리를 박고는 쿨쿨거리며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런 강진을 힐끗 본 배용수는 카운터로 가서는 무릎 담요를 꺼내왔다.
가지고 온 담요를 둘둘 말고는 강진의 머리를 슬쩍 든 뒤 그 아래에 넣어주었다.
스륵!
강진이 무릎 담요를 끌어안고 잠을 자자 배용수가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
“엄마! 엄마!”
자신을 부르며 뛰어오는 어린 임호영을 할머니가 안아 들었다.
“엄마! 엄마!”
환하게 웃는 임호영을 보며 마주 웃던 찰나, 할머니의 눈에 쥐색 군복을 입은 임호영이 보였다.
“엄마!”
웃으며 달려온 임호영이 그녀를 껴안았다.
“엄마.”
새까맣게 탄 얼굴의 임호영은 웃으며 할머니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엄마.”
새까만 얼굴에 화장을 잔뜩 해서 조금은 이상한 얼굴로 보이는 임호영은 어느새 정장을 입고 가슴에는 꽃까지 꽂은 채 환하게 웃으며 할머니를 보았다.
“엄마.”
이번엔 뱃살이 두둑한 임호영이 배에 임대강을 올려놓은 채 할머니를 올려다보았다.
“엄마.”
교복을 입고 선 앳된 얼굴의 임호영은 환하게 웃으며 할머니를 보고 있었다. 잠시 말없이 쳐다보기만 임호영은 할머니를 껴안았다.
그리고 그대로 잠시 할머니의 목에 얼굴을 묻고 있던 임호영이 입을 열었다.
“엄마…… 사랑해.”
주르륵!
눈물을 흘리며 할머니가 눈을 떴다. 아직 주위가 어두운 것이 저녁인 것 같았다. 눈을 뜬 할머니는 자신의 눈을 만지고는 베개를 쓰다듬었다.
베개는 축축했다. 잠시 멍하니 누워 있던 할머니는 눈을 감았다. 방금 꾼 꿈을 애써 떠올리려 하던 할머니가 한숨을 쉬었다.
꿈에서는 선명하게 보이던 아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 꿈을 꾸었던 느낌만이 그리운 향기처럼 머릿속에 감돌 뿐이었다.
“엄마도 아들 사랑해.”
웃으며 중얼거린 할머니는 아들이 꿈에 다시 나오길 바라며 잠을 청했다.